바이오필리아 - 우리 유전자에는 생명 사랑의 본능이 새겨져 있다 자연과 인간 1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안소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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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적 읽기에 부담이 되는 두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사상과 세계관, 생명에 대한 애정은 너무나 광대하고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최재천 교수님의 추천사와 저자의 서문을 통해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생명 사랑’의 능력을 일깨워 현대 시대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책의 기본 정신을 안내받고 생각해가며 힘겹게 끝까지 읽어나간 것 같다.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인 ‘베른하르츠도르프’에서는 수리남의 수도인 베른하르츠도르프에서 연구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저자가 과학과 생명, 마음, 정신 등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본격적인 자연주의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2장 ‘초유기체’에서는 저자가 남아메리카에서 ‘열대 개미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얻은 ‘잎꾼개미’라는 종에 대한 생활과 습성 등 관련 지식의 대략적 소개와 현대 과학이 발견하고 연구해야 할 무궁무진한 생태계의 미개척 영역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이야기하고 있다. 3장 ‘타임머신’에서는 현대 생물학이 어떤 갈래로 발전해왔는지 찰스 다윈과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루이스 아가시의 학문적 논쟁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오늘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 과학과 인문학,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고찰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내용이 꽤 흥미롭다. 4장 ‘파라다이스의 새’와 5장 ‘시적인 종, 인간’에서는 과학과 예술이 오랫동안 대립되는 경향을 보여 왔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탐구와 발견이라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많고, 자연계의 특성을 발견하고 설명하는 과학의 역할과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예술의 역할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6장 ‘뱀’에서는 저자의 유년 시절의 경험담을 통해 생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배경과 지구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공포와 경외가 혼합된 독특한 감정을 일으키는 뱀을 통해 자연물이 문화의 상징으로서 기능하게 된 과정을 생물학과 문화인류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다.


   7장 ‘우리 마음속의 거주지’, 8장 ‘생명의 윤리’ 부분에 이르러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명 사랑’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현실과 밀접한 문제들을 언급하고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꽃을 피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연에 의지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미래에 우주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달이나 다른 행성, 혹은 거대 우주선을 통해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한다고 해도, 인공물에 둘러싸인 인간이 과연 정신적으로 버텨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던진다. 과학만으로는 인간이라는 종이 참 행복을 성취할 수 없다는 말이다. 도시 속에서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행위처럼, 편리한 전자기기와 정보화 환경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인공이 아닌 자연물에 대한 욕구를 보이는 것은 생명을 향한 인간 본성에 대한 최소한의 신호가 아닐까. 이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환경파괴를 막고 보존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확고해지는 것이다. 당장 사람들의 삶의 편리함을 위해서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는 결국 인류에게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구상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인간과 자연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경제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자원을 소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한계가 명확한 지금의 시스템보다 생태계를 보존하는 가운데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연구함으로서 관련 분야를 시장으로 발전시켜 지속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 8장 ‘수리남’에서 저자는 기존 학문들에 비해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생물학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늘어난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리관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며 다가올 미래를 더욱 평화롭고 발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이 그대로 대놓고 막장으로 치닫는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분명 어느 한도를 넘으면 전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 텐데, 그 선을 용케도 넘지 않고 역사를 전진시키는 지혜를 발휘해 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 - 환경 파괴, 전쟁, 범죄, 패륜 등 입에 담기도 입술이 떨리는 흉악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느 한쪽에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든든히 버티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선악을 나누어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인류사에 에드워드 윌슨이 주창하는 이른바 ‘생명 사랑’의 지혜가 효과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비로소 온전한 선한 세상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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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 행복해! 살림어린이 그림책 16
나라 요시토모 글.그림, 배주영 옮김 / 살림어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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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거대해 누구도 그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외로운 강아지가 있었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한 어린 소녀가 그 존재를 눈치 채고 이내 둘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이 그림책의 내용이다. ‘혼자라서 외롭더라도 누군가가 당신의 친구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중요한 것은 친구를 찾겠다는 마음이다’, 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저자는 이 책을 끝맺는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강아지와 소녀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면서 놀라는 순간은 잠깐, 이내 미소를 짓고 노래를 불러주며 금세 친한 친구가 되는 과정이 매우 단순화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어린 아이들이 주 독자층이 될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단순하게 만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보기가 너무 어려워진, 아무런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우정과 사랑, 배려, 나눔의 소중함을 이 책은 내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쯤 이 정글 같고 전쟁터 같은 지구라는 삶의 터전을 성경에 묘사된 천국의 모습처럼 사자의 입이나 뱀굴에 손을 넣어도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올 수 있기나 한 걸까. 인류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능력을 돌아봤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혁명을 막고 있는 것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짧은 이야기를 가지고 너무 심각한 생각에 빠진 것 같다... 아무튼! 나라 요시토모의 팬이라면 그의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너를 만나 행복해’는 남녀노소 누구나, 특히 아빠와 아이, 엄마가 나란히 모여앉아 즐겁게 볼 수 있는 예쁜 선물 같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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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읽는 생명의 역사 - 137억 년간의 생성과 소멸 그 순환의 기록
하랄트 레슈.하랄트 차운 지음, 김하락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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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역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상상력의 탄생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고고학이나 인류학적으로 인류의 발달 단계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만큼 확실한 연결고리가 모두 밝혀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어느 정도 확실히 밝혀져 있는 역사의 영역에서 인류의 발전사를 되돌아 봤을 때 인류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은 외부세계와의 대결 혹은 적응 과정에서 상상력이 탄생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의의와 의미, 배경, 초월적 절대적 존재에 대한 발상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주와 생명, 인간의 의식의 기나긴 여정에 대해 ‘하루만에’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가능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인간의 직관 능력을 초기 우주의 빅뱅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인상적인 시작으로 이 책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공간과 물질의 개념, 은하, 행성, 지구의 탄생과 최초의 원시생물의 등장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 오랜 세월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파충류의 시대를 지나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생존능력을 발휘했던 포유류의 등장까지 저자는 각 장에서 우주의 기원과 해당 시대를 넘나들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욱 관심과 흥미를 갖고 읽어볼 수 있는 부분은 인류의 탄생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정말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사람이라는 개체가 점점 종 안에서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온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류 쪽에서 보면 가히 제2의 빅뱅이라 할 수 있는 창조적, 문화적 의식의 탄생 혹은 자각은 인류사 최대의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지적 혁명의 기원은 그리스의 역사와 유적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그 이전의 시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항상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상상과 전망, 연구를 통해 현재까지 발전해왔다. 비록 근본적인 물음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빚어낸 무수히 많은 문명의 성과들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최대의 과거인 빅뱅보다 더 이전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미래에 대해서는 다른 은하계나 외계생명체를 넘어 우주 너머의 우주, 신들의 세계 같은 불가해한 영역까지 상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주와 생명, 의식과 같이 역사라는 대서사시의 핵심 요소들에 대해 짧은 분량이지만 효과적으로 안내하고 있는 ‘하루만에 읽는 생명의 역사’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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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전쟁 - 국가 간 생존을 위한 사투
시바타 아키오 지음, 정정일 옮김 / 이레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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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석유를 비롯한 한정적인 지구의 자원 상황에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가 지속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이른바 고가자원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구의 자원을 얼마나 흥청망청 써왔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요가 있게 될지를 다양한 단위의 수치와 그래프를 통해 알려주고 있지만, 한마디로 미래의 자원과 에너지, 환경 문제는 중국이 어떻게 하느냐 또는 세계가 중국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하느냐로 요약되는 것 같다. 기존의 한정적인 지하계 자원이 주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과 선진국으로 곧 진입하는 단계에 있는 국가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자원은 풍부하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한 아프리카 국가들 등 다양한 나라와 글로벌 에너지 관련 기업들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 세계의 경제상황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런 이권 다툼의 너머에는 보다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전지구적 위기의 가능성이다. 
 

   저자는 자원문제를 자원부족(고갈), 환경파괴 및 식량문제, 공급불안, 지구온난화의 문제로 나누어서 논의하고 있다. 특히 앞에서 말했듯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차세대 경제대국인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이른바 BRICs라 불리는 나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발전에 따르는 자원 수요와 공급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가와 이미 쓸 만큼 써댄 미국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다. 현 상황을 볼 때 한쪽이 양보하거나 양쪽이 만족할만한 타협안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될 경우 모두가 다 파국으로 치달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른 방안이 필요한데 바로 대체에너지의 개발이다. 원자력을 비롯해 친환경적인 풍력, 지열 에너지의 개발과 무한의 태양계 자원인 태양열 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한 각국의 노력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찍부터 시민의식이 선진화된 유럽이 많이 앞서가고 있다. 다른 대안으로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을 이용한 바이오에너지가 개발되어 상용 단계에 있긴 하지만 식량과 환경파괴에 대한 해결 과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 말고도 기존의 전자제품이나 폐기물에서 자원을 추출하는 재활용 기술과 절약 기술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일본이 단연 앞서가고 있다고 한다. 자원 문제는 석유나 석탄, 희귀금속 뿐만 아니라 물 문제도 포함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나라가 미래의 수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번 석유 가격의 폭등을 겪으면서 전 세계의 석유 및 각종 자원의 사용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또 다시 전 세계의 석유 사용량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석유 자원의 고갈을 예측하는 갖가지 지표가 나오고 있는 것 또한 불안한 미래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렇듯 고가자원 시대를 앞두고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전망 및 대안을 내놓고 있는 ‘자원 전쟁’을 읽으면서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이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예전에 한 학자가 무선 기술을 이용해 무한의 에너지를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고안한 적이 있었는데 기업가들이 요금 부과를 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상용화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어떤 댓글을 통해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당장 그 수준까지는 갈 수 없을지라도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경제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시스템의 발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수단이 무엇이 되었든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유형, 무형의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소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학자의 바람과 같이 경제 혹은 경제체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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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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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거둔 가장 큰 수확은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다. 일본계 영국 작가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세계적으로는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남아 있는 나날’의 가장 큰 장점은 시대 배경이 20세기 초중반의 영국이고,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낯선 전통이 있는 영국의 ‘집사’라는 직업과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사이의 있었음직한 일들을 다루고 있어 굉장히 딱딱할 것 같지만 의외로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고 있어 작가의 다른 소설은 어떨지 궁금하게 한다. 

   소설은 주인공 스티븐스가 전 인생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달링턴 경을 섬기던 시절에 있었던 일을 1956년 현재의 시점에서 여행을 하면서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평생을 섬긴 주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집사로서의 자부심을 높게 가지고 있던 스티븐스는 현재 섬기고 있는 미국인 페러데이라는 사람의 배려와 그 자신의 업무에 대한 실수를 만회하면서 동시에 예전에 미묘한 감정을 가졌던 켄턴 양과의 재회를 위해 여행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지금껏 마음속에 묻어 두고만 있었던 지난 날들에 있던 다양한 사건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프로페셔널한 집사로서의 삶에 있어서는 만족을 하지만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서는 상실과 허무함의 쓰디쓴 감정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당사자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던가. 뜻하지 않게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가졌던 스티븐스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과 의미를 되새기면서 소설은 마무리 된다. 
 
   소설 속에 묘사된 결국 이루어질 수 없었던 스티븐스와 켄턴 양과의 고집스런 대화 공방전을 보고 있자니 오늘날의 어떤 남녀 간의 심리를 다룬 연애 소설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당시의 높은 신분의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을 대접하는 장면들이 많다 보니 역사의 이면, 즉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불안했던 시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탐욕이 순수성을 본격적으로 넘어서는 시대의 전환기를 소설 속에서 집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시선으로 간접적이긴 하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이며, 결국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어떤 체계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임을 보여주고 있어 씁쓸한 면도 있지만 늦게나마 주인공이 조금은 자기 삶의 주체로서의 자아를 되찾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 소설은 의미를 생각하고 해석하는 즐거움도 분명 클 테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로서 무척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책 말미에 수록된 이 작품과 한나 아렌트가 만나는 지점을 다룬 번역가 김남주 님의 작품 해설도 소설의 이해를 돕고 있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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