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엑스포메이션
하라 켄야.무사시노 미술대학 히라 켄야 세미나 지음, 김장용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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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엑스포메이션’은 ‘알몸’이란 주제에 대한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담긴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예술서적 특유의 난해함이 있어서 그런지 책 속에 소개된 작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통로, 즉 ‘하라 켄야 세미나’를 이끄는 하라 켄야의 총평과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작가들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각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는 것으로 서평 아닌 서평을 쓰게 될 것 같다. ‘information'의 상대어로 고안된 조어 ‘ex-formation’이 담고 있는,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것을 미지화하여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세미나의 목적에 걸맞게 책에 담겨 있는 ‘알몸’에 대한 다양하고 독특한 표현방식들을 보며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먼저 프롤로그에서 ‘알몸’의 통상적인 감정인 부끄러움의 근원을 개체의 편차에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무런 연출도 없는 여성의 나체사진을 통해 알몸이란 것이 단순히 성적이거나 수치심, 부끄러움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알몸의 가치를 밝히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작품 마에지마 준야의 ‘Material + baby'는 갓난아기를 표현한 순수한 조형물에 꽃이나 유리조각, 나무껍질, 금속재료를 각각 덧씌워 표현했는데 아기를 통해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충만한 사랑스러움부터 낯설고 공포스럽고, 심지어 죽음과도 같은 어두운 이미지까지 느낄 수 있었던 특이한 작업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엔도 가에데의 ‘나체의 인형’은 기존의 예쁜 여자캐릭터 인형을 O다리로 만들거나 뚱뚱하게 혹은 갈비뼈가 튀어나오도록 비쩍 마르게 만들어냈는데 왠지 신체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획일화하여 강요하는 현 세태를 꼬집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꼬야마 게이꼬의 ‘나체의 소녀만화’는 순정만화의 등장인물들을 모두 알몸으로 만들어 원작과 비교해 보여주는 작업을 선보였는데 설명하는 것처럼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지나 다시 보니 굉장히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앞서 세 작품에서 다뤄진 아기의 모습과 소녀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몸’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다시 말해 접근하기에 용이한 대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네 번째 작품인 무라카미 사치에의 ‘팬티 프로젝트’에서부터 이 세미나의 개성이랄까 특징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피망이나 포크, 장도리, 수도꼭지, 빨래집게 등 입힐 수 있는 모든 사물에 팬티를 입혀봄으로써 ‘알몸’의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맨몸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팬티를 다양한 사물에 입혀본다는 발상 자체가 무척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장도리나 피망 같은 경우는 의외로 섹시(?)했고 포크나 스패너, 계란에 입힌 팬티를 입힌 모습은 어찌나 귀여웠는지! 다섯 번째 작품인 다까야나기 에리꼬의 ‘「완성」을 벗기다’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들, 즉 연필이나 콘센트, 스푼, 고물줄 같은 완성품들의 미완성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낯설고 특이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보는 노란 고무줄 같은 경우, 절단되어 고무줄 형태로 나오기 직전의 둥글고 누런 고무관의 형태를 보니 지금 내 눈앞에 굴러다니고 있는 고무줄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미지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물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끼야 나오의 ‘알몸의 알몸’은 일상 속의 다양한 행위들, 예를 들어 전화를 받거나 물건을 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의 행위들을 알몸으로 하고 있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준다. 이런 상상은 어쩌다 한 번쯤 하게 되는 상상이 아닌가 싶어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가장 특이한 ‘알몸’에 대한 연구라 할 수 있었던 일곱 번째 작품, 도야마 아이의 ‘알몸의 색상’은 우리가 보는 피부색을 단순한 하나의 색이 아니라 살과 혈관, 지방, 뼈 등의 각각의 색으로 분석하고 해체한 다음 다시 작가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혼합하여 피부 색채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여덟 번째 작품인 후지가와 코다와 후나기 아야의 ‘엉덩이’는 앞서 ‘「완성」을 벗기다’와 ‘알몸의 색상’을 보며 너무 어려워서 머리가 아프고 빙빙 돌던 나에게 휴식과도 같은, 그러면서 미소를 짓게 하는 깜찍한 작업이었다. 엉덩이라는 신체의 특징을 비누, 마시멜로, 떡, 각설탕, 성냥의 디자인에 적용하여 귀여운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엉덩이 모양을 한 캐스터네츠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것을 딱딱 두드리는 느낌은 어떨까? 약간 묘할 것 같은데... 책에서는 체벌의 의미로서 엉덩이를 두드린다는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불붙는 부분을 엉덩이 모양으로 만든 성냥개비는 엉덩이가 불탄다기보다는 하트에 가까운 느낌으로, 불타는 사랑을 떠오르게 했다. 아홉 번째 작품인 후나비끼 유헤이의 ‘먹어서 벗겨내는’은 먹고 마시고 난 후의 흔적을 ‘알몸’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숨겨진 것이 드러났을 때의 흥미로운 순간을 작가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솜사탕 막대기를 양 모양이나 비행기 모양으로 하여 솜사탕을 다 먹고 났을 때 양 모양 막대기가 나온다면 우리가 먹은 행위는 양털을 모조리 깎아낸 행위로 느낄 수 있고, 비행기 모양 막대기라면 우리가 먹은 행위는 비행기를 둘러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는 행위로 느낄 수 있는 식의 재미있고 독특한 상상을 실물로 표현했다. 커피나 죽을 담는 그릇 바닥을 고래나 상어, 부표와 같은 형태가 나오게 하여 먹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드러나게 하도록 만든 것도 독특하고 참신했다. ‘엉덩이’와 ‘먹어서 벗겨내는’ 이 두 작품은 실제로 제품화해서 판매해도 인기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바야시 츠브라의 ‘알몸의 지구’
는 ‘알몸’에 대해 어떤 것과 연결시키는 상상력의 스케일이 가장 큰 작업이었다. ‘알몸 엑스포메이션’이란 책의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끌렸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지구를 뒤덮고 있는 바다를 전부 걷어내버림으로써 황량하게 드러나는 지구의 모습을 지구의 ‘알몸’으로 생각한 작가의 상상력이 독특하고 대단해보였다. 그런데 이 이미지는 예전에 일본의 어떤 과학연구에 관련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얼핏 나서 혹시 그것과 이것이 관련이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알몸’의 개념이 이렇게 전지구적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니 부끄럽게만 느끼고 있기엔 너무나 중요한 것이로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마지막으로 열한 번째인 와따히끼 마사히로의 ‘정보를 벗김’을 생각하면 다시 머리가 아파진다. 하나의 사물에서 심벌이 되는 핵심적인 이미지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배제해버린 상태를 ‘알몸’의 이미지와 연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보를 벗김’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우리는 보통 서로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핵심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게 되는데 결국 핵심이 분명하면 부연 설명은 길어도 좋고 짧아도 상관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한 사물이나 개념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거나 알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곁가지들을 많이 들이대고 있지만 결국 그것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의 심장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핵심, 즉 심벌이 되는 이미지가 확실하다면 곁가지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 그런데 만약 가지가 꼭 필요하다면 아주 질서정연한 형태로 뻗어나가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해가 잘 안되어서 이렇게 말을 비비 꼬게 된 것인데, 아무튼(또 아무튼!이라니...) ‘알몸’이란 것이 순수하고 본질적인 하나의 ‘핵심’, ‘상징’과도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터무니없게 결론을 지어버렸다. 

 
이상 하라 켄야 세미나에서 도출된 ‘알몸’에 관한 ‘엑스포메이션’ 열한 가지 작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상을 길게도, 참 길~게도 이야기해보았다. 사실 이 글도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벗기고 벗기다 보면 몇 줄에 다 요약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든 본질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장황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리 두껍지도 않고 텍스트도 많지 않아서 짧은 시간에 몇 번이고 훑어볼 수 있을 정도이지만 물리적으로 담긴 그 이상의 생각을 요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한 ‘엑스포메이션’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미지화하여 새로운 가치를 깨닫고 그에 따른 인생의 목표를 세워 열정을 다해 달려가고 싶다는 희망이 당장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자극을 받은 것은 분명하며, 언젠가는 그 열매를 반드시 맺게 되리란 믿음을 가지고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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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식 사고를 길러주는 영어표현사전
박정해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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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식 사고를 길러주는 영어표현사전’은 10년 이상의 저자의 경험과 노력이 담겨있는 만큼, 그냥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둘 책이라기보다는 기간을 정해놓고 천천히 내용을 공부해가며 이해해야 독자 입장에서는 제값을 할 책이다. 콩글리시라 해도 원래 의미를 잘 살리면서 적절히 축약된 좋은 표현도 있을 수 있는데 저자 역시 콩글리시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보다 정확한 영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미리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언어와 관련한 문화를 소개하는 부분은 좀더 보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이런 표현은 잘못됐다, 원어민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주요 설명방식이다. 그런 식으로 500페이지 가까운 책의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재미를 목적으로 한 책이 아니니까...^^; 관용적인 표현을 통해 그 나라 문화를 잘 살펴볼 수 있는데 그 부분은 짧긴 하지만 직역오류를 다룬 챕터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외국인과 대화할 때 콩글리시로 인해서라기보다는 긴장해서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자신감이 부족해서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많이 들었다. 오히려 콩글리시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오해나 난처한 상황 등을 겪는 것은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도움으로 콩글리시가 많이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막상 부딪혀보면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다른 요인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눈앞에 있으면 쭈볏거리게 되는 그런 심정과 비슷하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아... 좀 그런가...ㅡㅡ;) 아무튼 무엇이든 그런 것 같다. 배우고 익힌 것은 실천의 반복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 콩글리시든 퍼펙트 잉글리시든 사람들과 자꾸 말을 섞어봐야 온전히 자기 것이 될 것이다.  

저자가 실제 수집한 예제라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표현했을까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영계’를 young chicken, ‘날개 돋친 듯 팔린다’를 selling as if they have wings, 가장 의문스러웠던 ‘대일밴드’(Dae-il band), 에프킬라(F-killer) 등이다. 반대로 PC room이나 all-in, 맥가이버칼 같은 표현은 원어민들이 자주 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주입시켜 보는 건 어떨까? one-side love도 훨씬 괜찮은 것 같은데^^; 정말이지 와이셔츠나 라운드티는 원어민들이 역으로 받아들여 써도 좋을 것 같다. airhead 같은 경우는 우리말로 ‘머리가 비었다’는 표현이 있어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93년에 출간되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라는 책이 떠오른 것은, 연결되는 어휘의 특징을 역사와 문화, 재미있는 그림을 통해 말꼬리를 붙잡듯 학습하는 이 책의 장점을 ‘영어표현사전’(책의 내용을 감안하면)을 만드신 분들이 참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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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상상력을 연주하다 - 세계적인 뮤지션, 양방언이 그려낸 꿈의 궤적
양방언 지음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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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음악가 양방언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또 늘 그랬듯 새로운 변화와 도전 앞에 희망과 포부를 밝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모님께서 그의 이름을 지어주실 때 이야기였다. 양방언이라는 이름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의미와 일본적인 느낌을 가진 한자들을 하나씩 담고 있고 한국식, 일본식, 중국식으로 읽는 법에 있어서도 각각의 멋이 담겨 있어 이름을 지으실 때의 그의 부모님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름 하나로 그의 운명이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세련되거나 뭔가 의미가 있고 독특한 멋이 있는 이름이 불렸을 때와 정말 밋밋하고 심지어 놀림거리가 되는 그런 이름이 불렸을 때 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성장과정에서 상당히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부모님의 센스에 감탄했다. 
   어린 시절부터 형제들의 영향으로 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의 음악에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아버지의 뜻대로 의사의 길을 계속 가지는 못했지만 그의 영혼을 울리고 이끄는 음악과의 만남은 어떠한 논리와 이성으로도 설명하지 못할, 말 그대로 운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 악기를 만지고 차례차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며 그의 삶은 더욱 음악으로 강렬하게 그리고 가깝게 이끌려 갔으며 그때마다 만난 음악적 동료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인연처럼 그와 친분을 맺는다.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인데 이점에 있어서 양방언은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의 첫 피아노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은 자유롭고 열린 사고를 가진 분이어서 학창시절 밴드활동을 겸하며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던 그의 심적 어려움을 말 한 마디로 깔끔히 해결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네가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내지 않아. 네가 다른 곳에서 다른 음악을 하는 것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 재즈나 록, 그밖에 멋진 음악이 많이 있어. 모쪼록 다양한 음악을 접해서 그걸 많이 흡수하도록 노력하는 게 좋아. 그리고 여기 오는 것도 그만두지 말고 계속해야 돼. 그렇게 하면 언젠가 많은 것들이 모여 음악으로서 결실을 맺는 날이 올 테니까.”

   피아노 선생님의 이 말은 양방언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고 이후 그의 음악적 궤도의 원칙처럼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장르의 음악과 음악을 표현하는 형식에 있어서 그의 열린 사고는 그를 어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고 고유의 위치를 가진 음악가로 성장해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인생에는 수많은 결단의 순간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양방언은 심플하면서도 분명한 목표설정을 통해 지금 당장 해야할 것을 마치고 당당히 그가 하고 싶은 것을 취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가 음악을 하기 위해 일본의과대학에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하는 과정을 보여준 예가 바로 그것이다. 또 그는 ‘스스로 확신만 있다면 가끔은 두 마리든 세 마리든 욕심내서 토끼를 쫓아보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너무 무모하면 안 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다. 결국에는 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면서 인생에 있어서 하겠다는 의지와 소망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졸업 후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결국 또 한 번 결심하게 된다.

‘그래, 지금처럼 무언가에 억눌린 기분은 결코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스로 선택해서 책임을 지자. 스스로 선택한다면 설령 실패해도 납득할 수 있고, 괴로워도 푸념이나 변명을 하지 않고 하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의 탓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니까.’

   미련없이 의사의 길을 버리고 그의 운명인 온전한 음악으로의 첫 걸음이었다. 이후 차곡차곡 음악인으로서의 경력을 쌓던 그는 해외에서 일을 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항상 마음의 짐이었던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의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의 마음을 가늠해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된다.

‘어쩌면 내 이름이 준 운명은 해외의 사람들과 음악을 하는 일일지도 몰라.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해야만 하는 커다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주 조금은 아버지의 의도에 가까워지는 것일 수도 있어.’

   이후 솔로앨범 활동, 한국에서의 영화와 영상, 게임음악 등의 활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아시아 문화와 음악을 접목한 대륙의 기상과 꿈과 미래를 담은 듯한 음악적 성취를 이뤄나간다. 자유로울 수 없었던 출신배경을 딛고 오로지 그가 의미와 열정을 느끼고, 하고자 하는 일에 전심전력하여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양방언의 삶이 변화, 도전, 열정, 꿈 등으로 요약되듯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거침없는 인생을 달려왔고 앞으로도 힘차게 달려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언제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끝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그려질 그의 꿈의 궤적이 어떤 모양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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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8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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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보니 제가 읽었던 코지 미스터리라면 프로페셔널한 도둑과 기묘한 쌍둥이가 등장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스텝파더 스텝’이 떠오릅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 즉 코지 미스터리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을 애써 떠올려봐도 온다 리쿠와 오기와라 히로시의 몇몇 단편들이 전부인 것 같네요. 한정된 장소, 혹은 마을의 단순한 일상 속에 폭력의 정도가 낮으면서 유머와 감동, 유쾌함을 담고 있는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과연 본격 미스터리물(사회파 미스터리나 살인사건해결)만 주로 접하던 저에게는 신선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작품의 무대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가공의 도시 ‘하자키’ 시. 갖은 불운과 시련 끝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자 다다른 도시 하자키의 해변에서 아이자와 마코토는 이곳에서마저 치를 떨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자 ‘나쁜 놈아!’하고 외치는 순간 떠밀려온 남자의 사체를 만나게 된 것! 이것을 시작으로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도시 하자키에서의 흥미로운 사건이 전개됩니다. 


한편 도시의 중심부에서는 하자키 시를 좌지우지하는 소위 지역유지라고 할 수 있는 ‘마에다 마치코 오피스’의 사장 마에다 마치코, 오피스 내의 방송국 하자키FM의 열혈 디제이 와타나베 치아키, 작품 속 사건을 차근차근 해결해가는 형사반장 고마지, 신참 이쓰키하라, 그리고 의문의 소녀이자 마에다 마치코의 딸 마에다 시노부, 그리고 작품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인 헌책방 ‘고서 어제일리어’의 주인인 할머니 마에다 베니코가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베니코 할머니는 마치코 사장의 고모입니다.


복잡한 집안 관계 속에서 앞서 해변으로 떠밀려온 사체가 조카 히데하루여야만 자신의 목적을 취할 수 있는 마치코 사장, 그리고 히데하루인지 확신할 수 없는 베니코 할머니와 형사들! 진실을 알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마코토와 치아키, 그리고 그의 동료와 친구들! 그러나 일은 그리 단순하게 진행되지는 않는군요. 사체가 누구냐의 진위여부가 확인되기도 전에 마치코 사장이 헌책방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불운의 끝을 보는 듯 이때 마코토는 베니코 할머니의 부탁으로 대신 헌책방을 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예기치 않았던 다른 사건과 연결되고 이렇게 연결된 두 사건은 과거에 일어났던 미해결 사건과 연결고리를 맺으면서 점차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소설은 진행됩니다. 하지만 죽음과 살인이 다뤄지는 소설답지 않게 등장인물 간의 알콩달콩 로맨스와 재치 넘치는 유머의 요소들이 적절히 녹아들어 무겁지 않게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가장 섬뜩한 인상을 남기는 의외의 인물들이 있었으니 그 실체를 확인하는 오싹한 즐거움은 아직 이 작품을 접하지 않은 독자 분들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작품을 읽다보면 무궁무진한 로맨스 소설의 계보를 살짝 엿볼 수 있는 보너스 같은 부분도 만날 수 있답니다.


참, ‘어제일리어’의 의미는 작품 중간에 나오지만 처음 읽을 때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하고 있던 참에 동시에 읽고 있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 ‘엄마는 저격수’에서 각주로 설명하는 부분을 보며 알게 된 재미있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떤 꽃 종류의 품종을 통틀어 이르는 원예용어라고 한다. 어떤 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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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 보고서 여형사 유키히라 나츠미의 두뇌게임 시리즈 2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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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유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다. 무엇이 목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메시지로 경찰과 매스컴을 오리무중에 빠트린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유아유괴사건은 소녀연쇄살인사건과 맞물리며 작중의 주인공은 물론 읽는 독자까지 더욱더 깊은 혼란으로 이끈다. 결국 사건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인물(이 인물이 과연 범인일까?^^)의 의미 있는 죽음을 위한 의지가 무너진 모성의 비극과 우연히 만나 뜻밖의, 하지만 운명과도 같은 전개를 보여줌으로써 끝맺는다.  

(작가의 전작 '추리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일본드라마 ‘언페어’의 뒷이야기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장면전환이 빠르고 시원하다. 그래서 어떤 때는 대본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이미 드라마를 본 독자라면 시노하라 료코와 에이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쉽게 몰입할 수도 있고, 굳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더라도 빠른 시점 전환과 전개에 매료되어 한 편의 미스터리 영화를 보듯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중반 이후까지 도무지 범인의 의도와 유괴사건의 당사자인 어머니의 시원찮은 태도에 대해 궁금증만 유발할 뿐이지만 그것이 읽는 독자에게 답답함을 준다거나 늘어지게 하는 일은 없다. 진상에 근접해가는 여형사 유키히라와 동료 경찰들의 긴박한 수사과정이 실감나고 흥미롭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이력 때문에 주인공과 주인공의 딸 사이에 생긴 마음의 벽이 조금이나마 허물어질 가능성을 보인 상황을 통해 주인공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힌트를 깨닫게 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은 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매력이나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는 재미도 크지만, 읽는 동안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어째서 이 세상은 공정하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가 등의 본질적인 물음을 갖게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unfair’라는, 드라마와 원어소설에서 쓰인 단어를 살리는 쪽으로 제목을 번역했으면 ‘살인보고서’보다는 좀 더 멋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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