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전집 7 (양장) - 셜록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 시리즈 7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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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즈는 확대경을 밀쳐놓고 팰림프세스트를 둘둘 말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해야겠네. 이건 정말 눈을 혹사시키는 작업이거든. 내가 판독한 바에 따르면, 이것은 15세기 후반부에 씌어진 어느 대성당의 보고서일세. 별로 재미있는 건 아니야. 어럽쇼! 어럽쇼! 어럽쇼! 저게 뭐지?"
  윙윙거리는 바람 속에서 말발굽 소리가 나더니, 마차 바퀴가 삐거덕거리며 연도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의 그 마차가 우리집 문 앞에 선 것이다. (중략)
  "자, 홉킨스, 이리 와서 발을 녹이게. 시거는 여기 있네. 그리고 의사 선생은 오늘 같은 밤에 잘 듣는 특효약으로 레몬을 넣은 더운 물을 처방해 줄걸세. 이런 비바람을 뚫고 온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용건이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홈즈 선생님. 오늘 오후에는 정말 바쁘게 뛰었지요. 석간 신문 최신판에서 욕슬리 사건 기사를 보셨습니까?"
  "오늘은 15세기 이후에 나온 건 한 글자도 읽지 않았네."-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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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 논어 홍신한문신서 1
이기석.한백우 역해, 이가원 감수 / 홍신문화사 / 2000년 10월
품절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編) 17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니라. 정직하지 않아도 살아 있음은 요행으로 면하는 것이니라."
원문: 子曰, 人之生也直하니 罔之生也는 幸而免이니라
해의: 곧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 본연의 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요행으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성품, 즉 천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 천성을 그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욕심이 있고, 또 그것이 너무 강하게 발로되기도 하기 때문에 때로는 본의 아니게 못할 짓도 하게 마련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혀서 처음부터 그릇된 일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다. 설사 그로 인해 한때 뜻을 이룰지 모르지만 오래 계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공자는 이런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천성과 천의(天義)를 내세워 말했다. 인간의 천성은 원래 정직한 것이다. 그러므로 곧고 바르게 살지 않고도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건 요행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이나 사상은 수천 수만 년이 지난 이후라도 인간 세상에서 사라질 수 없는 진리가 될 것이다.-106-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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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26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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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루키야넨코
나이트 워치 (상)
황금가지, 2005-10-25

2005년 11월 4일 읽기 시작.
2005년 11월 11일 읽기 마침.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빛과 어둠의 이야기

  나는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의 종교, 혹은 이념은 각각 얼마나 많은 신도가 있느냐에 따라 그 힘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모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세계에서는 좀 더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여러 이념의 수호자들이 그 '힘'을 이용해서 싸운다. 그런 충돌은 현실에도 영향을 갖고 온다. 한 이념의 수호자가 다른 이념의 수호자를 쓰러뜨린다.

  쿵.

  그 순간 현실에서도 총소리가 울려퍼진다.

  탕.

  슬라브족 해방의 '이념'으로 무장한 세르비아의 청년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한다. 나는 이런 환상 소설 같은 일들을 상상하고 뒹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책을 처음 집어들 때 역시 그런 기대가 있었다. '<반지의 제왕>을 압도한' 소설이라는 뻔한 광고보다는(사실 소설은 <다 빈치 코드>에 밀리지 않았는가?), '다른 존재들'의 싸움과 '어스름의 세계'의 그 기묘한 분위기가 날 끌어당긴 것이다. 빛과 어둠의 존재라는 설정은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뻔하기 짝이 없는 이분법이 되기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느낀 건, 나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게 되면 반드시 빛과 어둠 사이의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는 것은 과연 이분법적 사고이지만, 빛과 어둠의 세력이 서로를 절대적인 적으로 규정하고 한쪽이 이기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서로 대협약을 체결하고 빛의 세력은 야간 경비대를, 어둠의 세력은 주간 경비대를 만들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정신과 의사 출신이라는 작가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현실 세계에 대한 묘사도 매력적이다. 현대 러시아의 모스크바가 주무대인데, 이 거대하고 유서 깊은 도시는 컴퓨터와 인터넷과 휴대 전화, 거대한 마천루와 유흥가가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영화를 간직한 옛 건축물과 급격한 개혁·개방으로 인한 과거의 흔적도 갖고 있는 곳이다. 어둡고 축축한 골목길, 허름한 아파트, 만원 지하철과 같은 주위 배경은 소설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부분의 환상 소설들은 그 자체로 현실적이고 완결된 세계를 그렸거나, 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하면서 교묘하게 환상의 세계를 끼워넣는 경우가 많다. 그 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에 나는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적인 현실 묘사'는 이 작품의 영화화에도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위의 세계가 색깔을 획득했다. 비디오카메라의 세피아 또는 옛날 영화 모드에서 일반 촬영 모드로 전환할 때 일어나는 화면의 변화와 흡사하다. 정확하게 똑같다. - 81쪽

와 같은 문장을 보면서 동시에 그 영상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이다. 좋은 시나리오의 조건 중 하나는 읽으면서 영상이 떠오르는 것이라는데, 이 작품의 묘사는 그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킨다. 영화를 만드는 데 시나리오가 다는 아니지만, 확실히 이런 묘사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러시아에서 50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에 주는 별을 하나 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품 자체에 있지 않다. 문장의 내용이 흡인력있게 독자를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눈에 걸리는 문체와 오타가 독자를 현실로 끌어낸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우린 아무 문제없이 여자를 찾아낼 수 있다. 벌써 다닐라와 파라드가 거의 찾아낸 듯하다. 5분에서 6분 정도 더 소요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어쨌든 적군은 우리 편에 최후 통첩을 띄운 상태다." - 93쪽

와 같은 문장을 보면 이게 정말 사람의 말투인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배경 묘사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개성을 살린 문체인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투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그 이외에도 번역된 문장 중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많다. 아래 몇 가지만 예를 들었지만, 이게 다는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가 온전히 번역자의 탓으로 돌아가는 것은 잘못이다. 출판사에서는 책을 내는 이상 교정을 보는 것이 정상이고, 편집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허나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에는 눈에 너무 많이 띄는 비문들은 읽는 이를 피곤하게 한다. 문장을 통째로 바꿔야 할 정도의 오류가 아니라면 다음 판에서는 수정되었으면 한다.

  여자는 특유의 마녀다운 눈초리로 나를 천공해 보았다. - 76쪽

- 우리말에 '천공하다'라는 동사가 있는가? 내가 배움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임에 틀림없다. '꿰뚫다'라는 뜻인가?

  "로컬 네트워크라는 랜 관련 업무를 해봤소?" - 89쪽

- '랜'이라는 말 자체가 근거리 통신망(Local Area Network)의 약자이다.

  곧 모든 게 뒤엉켰고 너무 빨리 일이 벌어졌다. 무슨 경비대와 무슨 어스름의 세계를 두고 고함이 오갔다. - 119쪽

- 할 말 없음. '무슨 경비대와 무슨 어스름의 세계'? 이 문장은 대체 '무슨' 뜻인가?

  "평행의 세계인가요?" - 135쪽

- 환상소설이나 SF를 많이 읽었다면 대체로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로 번역할 것이다. 이 책의 번역에 의심이 가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최근 10년 전까지 소련방 공산당 지구 위원회 서기로 근무했다. - 176쪽

-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대개 '소련' 아니면 '소비에트 연방'으로 쓰지 않는가?

  아가씨의 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줄기부터 30미터 줄기로 쭉 뻗은 총상화까지 전부를 보았다. - 197쪽

- 국어사전에는 총상화가 "총상 꽃차례의 꽃"이라고 되어 있고 총상 꽃차례는 "무한 꽃차례의 하나. 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끝까지 핀다. 꼬리풀, 투구꽃, 싸리나무, 아카시아의 꽃 따위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결국 이 아가씨의 머리 위 인페르노의 기둥의 끝부분은 꽃 모양이란 것 같은데…… 해석이 좀 찜찜하다.

  꼬리는 재량 있게 좌우로 채찍질 치고 오른쪽 앞발은 바닥에 발린 역청을 긁어대고 있었다. - 236쪽

- 재량 있게 흔드는 꼬리는 어떤 것일까? '이번에는 왼쪽 위로 30도, 다음 번에는 오른쪽 아래도 45도 정도?'라고 생각하면서 흔드는 꼬리?

  코스차는 아무것도 이해 못하고 신음하는 여자 흡혈귀를 양 팔에 앉고 갔으며 시몬과 호랑이는 조용히 그들 뒤를 따랐다. - 272쪽

- '안고'가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이야기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소설이 주는 재미가 저런 문제점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문학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장르 문학에 있어 읽고 나서도 계속 기억에 남을 정도의 재미가 있다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 아닌가? 약간의 주저가 있겠지만, 결국 나는 읽지 않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할 것이다.

  어스름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목차

나만의 운명
아군 속의 아군 (상)


책 속에서

  60년대를 겪은 부모 세대가 길러낸 '불특정 연령'의 소년 소녀들이 아직까지도 이 얼마나 많은가. 행복해지는 법을 모르는 불운한 인간들이 이 얼마나 많은가. 너무나 당신들을 동정하고 싶다. 너무나 당신들을 돕고 싶다. - 198쪽

  그러나 절대로 안 된다.
  선과 관련된 온갖 행동은 악의 활성화에 대한 허가 행위다. 협약! 경비대들! 세계의 균형? -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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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zFire 2005-11-1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문제... -_-;;
저번, 반지의 제왕 황금가지판과 거의 비슷한 포스가 느껴지는군요...

외톨이 2005-11-15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 괜찮은 것 같은데요.... 막상 자세히 따지고 들자면 이정도는 어느책이든 다 있지 않나요?

페일레스 2005-11-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rozen Fire/ 재미는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너무 서둘러서 낸 듯한 느낌이...
안티세력/ 사실 요즘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대부분의 장르소설의 번역과 비교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데, 번역도 번역이지만 편집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오타도 눈에 자주 띄고, 이 정도는 문맥에 맞게 고쳤으면 하는 단어들도 보이고 말이죠.

사또 2005-11-1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일레스님! 당신의 리뷰에 딴지를 걸어도 될까요?
일단 번역문제에 지적하신 부분은 페일레스님의 주관적인 지적같군요
제가 보기에 오타만 빼면 그리 거슬리는것 없는데요
소련방이란 말도 전 많이 들어봤구... 예전 뉴스에서 거의 이렇게 말하던데...
랜관련 지적도 앞의 수식어는 부연설명이지 중복된 표현이 아니라 보입니다
천공하다 라는 표현은 영혼이나 영적세계를 관통해 보는상황이라 적절한 표현을
만들어낸거라 봅니다 제가 보기엔 신선하고 창조적으로 느껴지느데요
만약 노려본다나 뚫어보다는 영적세계가 아닌 민간인들한테나 어울립니다..
그리고 재랑있게... 딱 감이 오는데요 지나치지 않고 적당하게 절도있고...
딱 간단하게 재랑있게가 어울리는데...
어떻게 표할까요?
번역도 어느정도 창조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재밌지!!

페일레스 2005-11-17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또/ 소련방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셨다고 하셨으니 그 역어는 별 문제가 아닐 수 있겠습니다. 제가 예전 뉴스를 별로 보지 못한 탓이겠죠. 그리고 재량있게(재랑있게가 아닙니다), 천공하다 같은 표현은 뭐 창조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로컬 네트워크라는 랜 관련 업무'가 부연설명이라는 얘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랜이라는 네트워크 관련 업무'라고 했으면 말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사또님 지적을 듣고 나니 제가 쓸데없는 걸 갖고 딴지를 걸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장르문학에서는 그 작품 내에서 다루는 특수한 개념(어스름의 세계)나 배경지식(러시아의 문화적 배경이라던가) 외의 묘사는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총상화'라는 역어는 좀 심한 거 아닙니까?

sayonara 2005-12-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편가르기 싸움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전 페일레스 님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소련방이라는 말을 예전에는 많이 썼는지 몰라도 제 주변 사람들은 전부 처음듣는 표현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웬만큼 이런저런 문자매체들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영 어색하네요. ^^;
통속적인 문학작품에서 '천공'이라는 표현은 창조라기 보다는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예술적 잔재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아쉽게도 평범한 독자들이 보기에는 신선하다기보다는 그저 정교한 한자어 정도로만 보이네요. ^^;;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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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06-09

2005년 8월 13일 읽기 시작.
2005년 8월 15일 읽기 마침.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이보게, 세상은 자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일세.
  그럼 어떤 곳이죠?
  <스테이지 23>. 이 세상의 실제 이름이지.

  -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中

㉿, 코리언 스텐더즈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골프…… 비단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도 치열한 생존경쟁, 일등만이 살아남는 그야말로 프로, 의 세계다. "국제사회가 다 엉망이" 되도록 폭력을 써서라도 제압해야 한다. 결국 폭력은 "지양止揚해서, 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강좌, 세미나, 부흥회, 워크샵, 클리닉……을 통해서 권장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를 조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경제학이 있는 한" 폭력을 조장하는 "시장市場은 이미, 우리의 운명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런 사회에서 "한 마리의 도도새처럼 태평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을 단단히 잡수셔야" 한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 우리는 후기산업사회를 살고 있"으니까.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당신도 군대를 다녀오면, "매사가 긍정적으로 여겨"지고,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고", "취업을 준비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갑자기 확 고도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 들어도 세상에는 '산수'라는 게 있다. 그 산수를 맞추기 위해 사우나에서 부장에게 거시기도 대 주고, 아침에는 푸시맨, 저녁에는 주유소 알바, 밤엔 편의점 알바를 뛰어야 한다. 친구 집에서 빌붙는 아침 식탁에서 나만 계란후라이가 빠질 수도 있다. 냉장고 위에 계란 두 판이 있어도 말이다. 아, 예예. 라는

  대답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지만, 이렇게 산수를 맞추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니까.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그렇게" 물어도 소용없다. "참치도 인간도, 결국은 밀실에서 살아"가고, 죽어간다. "세상에 뭐 이딴 게 다 있지?" 어쩌면 "너무 그렇고 그"런 이

세계는, 이미 한 마리의 괴수일지도 모른다

  별 수 있겠나. 일단 적응해 본다. '방'이 아닌 '관' 같은 곳에서 "온순한 한 마리의 열대어와 같은 가스를" 방류하고, 우아하게 걸으며, 오래된 밥을 먹는 방법을 터득하고, 웅크린 채 잠든다. 헤드락을 피하기 위해 바벨을 들어올리고, 프레스를 하고, 푸시업을 하고, 신경안정제를 주식으로 삼는다 - 그리고, "한 마리의 도도새처럼 태평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헤드락을 돌려준다. 아침의 러시아워, 넘치다 못해 터지는 지하철에 타는 사람들의 "머릴 누르고, 막, 등을 팔굽으로 찧고, 밀고, 그"래 본다. 그러면 "경제도 차차 좋아질 거"고, "무디슨가 어디서 우리의 신용등급이 또 한 단계 올라"설테니까. 그래도 들리는 대답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환장할 노릇이군". 여기 저기로 가 본다. 먼저 모습은 있지만 모습을 잃은失像,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농촌'으로. 그런데 그곳엔 "우릴 너무 잘" 아는 UFO가 이삭을 쏙쏙, 빼가고 있었다. 이런 젠장. 그럼 오리배 '라-47호'를 타고 퐁당퐁당, 미국으로 캐나다로 브라질로 다시 미국으로, 페달을 밟아 건너가 본다. 그런데 거기 역시 "춥기도 하고, 또 수납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살 것도 많다. 아, 정말 뭐란 말인가. 이놈의 세상은. 이놈의

  세상이 개복치인지 세상이 대왕오징어인지 세상이 거북이 위에 놓여 있는지. 코스모를 느끼고 싶다. 정말로, 궁금하다. 그래서 '9호 구름'을 타고 우주로 나가보지만,

  "다른 행성의 존재에게 알려주기엔, 인류의 몽따주는 얼마나 슬픈가". 그래서,

  화성인들은 좋겠다. 금성인들은 참, 좋겠다.

  이제, 카스테라를 구울 때"다. "어렴풋이,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카스테라

  의 재료를 고르는 "원칙은 둘 중 하나 -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 그 모든 것을 "반죽한 후 빛이 나올 때까지 오븐에서 굽는다 - 인류를 위한 마음으로", 아니 꼭 인류가 아니어도 좋다. 아무튼 중요한 건 "노력 여하에 따라, 우리의 지구는 전구電球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니까.

  지미 헨드릭스가 데뷔작 <Are You Experienced>를 발표했을 때, 그건 '프로'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비틀즈가 <She Loves You>를 들고 나왔을 때도, '프로'는 아니었다. 무라카미 류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했을 때 역시, '프로'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박민규의 <카스테라> 역시, 그렇다. 그들은 아마,

  1.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한다.
  2. (지구라는 오븐의) 문을 연다.
  3. 반죽을 넣는다.
  4. 문을 닫는다.

  의 과정을 통해 카스테라를 구웠을 것이다. 이 카스테라를 구울 수 있다면, 프로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돈 받고 파는 카스테라를 사는 게 아니라 직접 제대로 된 '아마' 카스테라를 구울 수 있다면, "우리의 지구는 전구가 될 수도 있다".

  내일부터, 나도 카스테라를 구울 생각이다.


목차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아, 하세요 펠리컨
야쿠르트 아줌마
코리언 스텐더즈
대왕오징어의 기습
헤드락
갑을고시원 체류기


책 속에서

  원칙은 둘 중 하나 -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 - 29쪽

  때로 새벽의 전철에 지친 몸을 실으면, 그래서 나는 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몸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밀지 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왜 세상엔 <푸시맨>만 있고 <풀맨>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 91쪽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다. 인류의 나이는 300만 년이고, 나는 스무 살이다. 누가 뭐래도 세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한다면 자본주의의 나이는 고작 400년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래도 그쪽이 편했다. …… 그런 이유로, 나는 지구와 인류보다는 자본주의와 함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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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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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너, 외롭구나
예담, 2004-08-05

2004년 12월 30일 읽기 시작.
2005년 1월 2일 읽기 마침.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지난 세기 말부터인가, 소위 '홍대 앞'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서울 변두리'의 문화도 아니고 비상구 없는 '압구정동'의 문화도 아닌, 돌연변이 같은 문화가 태어난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며 갈 곳 없는 청춘들의 해방구가 되었던 홍대 앞, 그곳의 거품도 걷힌 지 오래다. 그렇게 홍대 앞은 수많은 엉터리 밴드와 몇 안되는 제대로 된 뮤지션(혹은 아티스트), 그리고 수많은 클럽을 남겼다.
  홍대 앞 문화가 남긴 사람들 중에는 앞서 언급한 '엉터리 밴드'의 리더일 수도, 몇 안되는 '아티스트'일 수도 있는 김형태가 있다. 스스로를 '무규칙이종예술가'라고 부르는 그는,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바라는 것은 소비를 위한 돈과 안정된 직장" 뿐인 21세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홈페이지(www.thegim.com)를 열고 카운슬링을 시작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총 쉰 건의 카운슬링과 김형태가 각 장 끝에 쓴 다섯 편의 글을 읽으면서, '이건 내 얘기잖아'하면서 부끄럽기도 했고 그런 스스로를 변명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답변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글쓴이가 "부모님 세대의 삶의 경험을 자식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것은 정말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먹고살기에 급급한 직업관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인생 불변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데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썼듯이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과 그걸 움켜쥘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10대 학생에서 50대 아줌마까지, 정말 다양한 고민을 가진 이 책의 질문자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세대는 '이태백'으로 대표되는 20대 청년들일 것이다. 이들에겐 충고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부모들은 고슴도치처럼 제 자식 감싸기 바쁘고, 선생들도 좋은 대학 가라는 얘기 말고는 할 말이 없고, 도대체가 '인생의 선배'가 없다. 이런 현실이 안타까운 글쓴이는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주는 선배처럼 때론 따뜻한, 때론 따끔한 충고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것조차 이 사회가 청년들을 '일하게 만들려는' 수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다 읽고 난 뒤에 그런 마음은 간 곳조차 없다. 컴퓨터와 핸드폰 같은 기계가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변한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믿음. 글쓴이는 그런 것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김형태야말로 "예상문제와 자격증 얘기 말고 진짜 인생 이야기를 해줄" 인생의 선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목차

프롤로그 - 청춘 카운슬러가 된 어느 예술가의 진심과 진담 그리고 진실

1. 이, 태, 백, 시대. 그래도 지구는 돈다

2. 분노의 에너지로 날아오르기

3. 행복 자격증을 향하여

4. 박제된 청춘에도 날개가 있다

5. 외로움, 청춘의 쓰디쓴 자양분

덧붙이는 말 - 김형태에 대해서 나에게 묻지 말라 / 이외수(소설가)
카운슬링 그 후


책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김수철 씨는 아주 오래전 그이 나이 20대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김수철 씨는 기타를 참 잘 치시네요?"
  "네…… 남들 공부할 때 기타만 쳤습니다. 그리고 또 남들 놀 때 기타쳤고요."
- 156-157쪽

  나의 20대에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바꿀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을 더 멋지게 바꾼다고 생각하니 심장에서 열이 펄펄 났더랬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 203쪽

  그것은 내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나의 부모님께서 가난했던 것이므로, 나의 가난은 아닙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가난한 것을 자신의 인생과 연결해서 자기까지 가난한 인생으로 규정 짓는 사고는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 241쪽

  "형태야, 너 요즘은 날계란에 흰 우유 안 먹지?"
  "에? 그게 뭐예요. 우유는 안 먹어도 계란은 먹는데……."
  "그게 아니고, 너 옛날에 그거 먹고 살았잖니."
  난 기억이 안 나서 뭔 소리냐고 물었더니, 그 형이 얘기해 줍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점심시간이었는데, 내가 캠퍼스 벤치에 앉아 흰 우유와 날계란을 들고 홀짝홀짝 먹고 있더랍니다. 그 형은 제게로 와서 뭘 그런 걸 먹냐고 물었더니 김형태 왈, "형, 이렇게 날계란하고 흰 우유를 먹으면요, 200원이면 되는데, 소화가 잘 안 돼서 하루 종일 배가 안 고파요. 헤헤"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그 10년은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자랑스러운 시간들이지요. 한 번도 현실 문제 때문에 내 꿈을 포기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난한 것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 245-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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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0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최근에 재밌게 읽었어요.
곳곳 따끔한 일성이 속이 시원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