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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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06-09

2005년 8월 13일 읽기 시작.
2005년 8월 15일 읽기 마침.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이보게, 세상은 자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일세.
  그럼 어떤 곳이죠?
  <스테이지 23>. 이 세상의 실제 이름이지.

  -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中

㉿, 코리언 스텐더즈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골프…… 비단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도 치열한 생존경쟁, 일등만이 살아남는 그야말로 프로, 의 세계다. "국제사회가 다 엉망이" 되도록 폭력을 써서라도 제압해야 한다. 결국 폭력은 "지양止揚해서, 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강좌, 세미나, 부흥회, 워크샵, 클리닉……을 통해서 권장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를 조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경제학이 있는 한" 폭력을 조장하는 "시장市場은 이미, 우리의 운명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런 사회에서 "한 마리의 도도새처럼 태평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을 단단히 잡수셔야" 한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 우리는 후기산업사회를 살고 있"으니까.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당신도 군대를 다녀오면, "매사가 긍정적으로 여겨"지고,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고", "취업을 준비하는 성실한 학생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갑자기 확 고도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 들어도 세상에는 '산수'라는 게 있다. 그 산수를 맞추기 위해 사우나에서 부장에게 거시기도 대 주고, 아침에는 푸시맨, 저녁에는 주유소 알바, 밤엔 편의점 알바를 뛰어야 한다. 친구 집에서 빌붙는 아침 식탁에서 나만 계란후라이가 빠질 수도 있다. 냉장고 위에 계란 두 판이 있어도 말이다. 아, 예예. 라는

  대답이 자기도 모르게 나오지만, 이렇게 산수를 맞추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니까.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그렇게" 물어도 소용없다. "참치도 인간도, 결국은 밀실에서 살아"가고, 죽어간다. "세상에 뭐 이딴 게 다 있지?" 어쩌면 "너무 그렇고 그"런 이

세계는, 이미 한 마리의 괴수일지도 모른다

  별 수 있겠나. 일단 적응해 본다. '방'이 아닌 '관' 같은 곳에서 "온순한 한 마리의 열대어와 같은 가스를" 방류하고, 우아하게 걸으며, 오래된 밥을 먹는 방법을 터득하고, 웅크린 채 잠든다. 헤드락을 피하기 위해 바벨을 들어올리고, 프레스를 하고, 푸시업을 하고, 신경안정제를 주식으로 삼는다 - 그리고, "한 마리의 도도새처럼 태평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헤드락을 돌려준다. 아침의 러시아워, 넘치다 못해 터지는 지하철에 타는 사람들의 "머릴 누르고, 막, 등을 팔굽으로 찧고, 밀고, 그"래 본다. 그러면 "경제도 차차 좋아질 거"고, "무디슨가 어디서 우리의 신용등급이 또 한 단계 올라"설테니까. 그래도 들리는 대답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환장할 노릇이군". 여기 저기로 가 본다. 먼저 모습은 있지만 모습을 잃은失像,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농촌'으로. 그런데 그곳엔 "우릴 너무 잘" 아는 UFO가 이삭을 쏙쏙, 빼가고 있었다. 이런 젠장. 그럼 오리배 '라-47호'를 타고 퐁당퐁당, 미국으로 캐나다로 브라질로 다시 미국으로, 페달을 밟아 건너가 본다. 그런데 거기 역시 "춥기도 하고, 또 수납공간도 많이 필요"하고, 살 것도 많다. 아, 정말 뭐란 말인가. 이놈의 세상은. 이놈의

  세상이 개복치인지 세상이 대왕오징어인지 세상이 거북이 위에 놓여 있는지. 코스모를 느끼고 싶다. 정말로, 궁금하다. 그래서 '9호 구름'을 타고 우주로 나가보지만,

  "다른 행성의 존재에게 알려주기엔, 인류의 몽따주는 얼마나 슬픈가". 그래서,

  화성인들은 좋겠다. 금성인들은 참, 좋겠다.

  이제, 카스테라를 구울 때"다. "어렴풋이,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카스테라

  의 재료를 고르는 "원칙은 둘 중 하나 -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 그 모든 것을 "반죽한 후 빛이 나올 때까지 오븐에서 굽는다 - 인류를 위한 마음으로", 아니 꼭 인류가 아니어도 좋다. 아무튼 중요한 건 "노력 여하에 따라, 우리의 지구는 전구電球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니까.

  지미 헨드릭스가 데뷔작 <Are You Experienced>를 발표했을 때, 그건 '프로'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비틀즈가 <She Loves You>를 들고 나왔을 때도, '프로'는 아니었다. 무라카미 류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했을 때 역시, '프로'의 세계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박민규의 <카스테라> 역시, 그렇다. 그들은 아마,

  1.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한다.
  2. (지구라는 오븐의) 문을 연다.
  3. 반죽을 넣는다.
  4. 문을 닫는다.

  의 과정을 통해 카스테라를 구웠을 것이다. 이 카스테라를 구울 수 있다면, 프로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돈 받고 파는 카스테라를 사는 게 아니라 직접 제대로 된 '아마' 카스테라를 구울 수 있다면, "우리의 지구는 전구가 될 수도 있다".

  내일부터, 나도 카스테라를 구울 생각이다.


목차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아, 하세요 펠리컨
야쿠르트 아줌마
코리언 스텐더즈
대왕오징어의 기습
헤드락
갑을고시원 체류기


책 속에서

  원칙은 둘 중 하나 - 소중하거나, 세상의 해악인 것. - 29쪽

  때로 새벽의 전철에 지친 몸을 실으면, 그래서 나는 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몸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밀지 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왜 세상엔 <푸시맨>만 있고 <풀맨>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 91쪽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이다. 인류의 나이는 300만 년이고, 나는 스무 살이다. 누가 뭐래도 세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한다면 자본주의의 나이는 고작 400년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래도 그쪽이 편했다. …… 그런 이유로, 나는 지구와 인류보다는 자본주의와 함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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