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앱에서 20년 전 인연이 끊어진 옛친구를 만났다. 만난 것이 아니라 발견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다른 모임 구경도 해보자 싶어서 이런저런 모임을 둘러보는 중 알고 있던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엔 동명이인 인가 싶었다. 프로필을 클릭해보니 역시 그였다. 본인 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뭔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랐다.


 그와 인연이 끊어질 때 좋지 않게 헤어졌고 심한 말다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정확히 특정할 수 없었지만 아마 내 잘못이 더 컸을 것이다. 말다툼할 때 심한 욕설도 오고 갔었다. 그의 사진을 보고 놀랐던 이유는 그와의 마지막 연락을 기억에서 삭제시켜 버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일을 다시 떠 올리는 일은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다. 그도 그랬을까? 아마 그도 나에 대해 다시 떠 올리기 싫은 혐오스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 나름 나의 유일한 절친이자 지기였고 책을 좋아하고 전공이나 철학쪽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 이야기가 잘 통했지만 성격이 깔끔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을 대책 없이 벌려놓고 수습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듯 했지만 학과 리포터를 제때 제대로 제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마감기한이 다 돼서 내 리포터를 기웃거렸다. 내 자취방에 와서 며칠씩 묵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한 적도 많았다. 전기밥솥 솥을 철 수세미로 박박 긁어 설거지해서 밥솥 코팅을 다 벗겨 못쓰게 만든 일이 생기자 나는 그를 내 자취방에서 영구 추방해 버렸다. 밥솥 사건은 그 이후로 그가 나를 비난할 때마다 되풀이하는 좋은 먹이감이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지만 술과 담배를 마음껏 즐기다가 주일마다 교회 가서 참회기도 한 번으로 깨끗하게 도덕 세탁을 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지만 결국은 나도 그와 같은 부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방에서 스스로 셀프 사면을 해 왔다는 것. 그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있자니 또다시 온통 그를 비난하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내 모습도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닌듯싶다. 그래서 다시 기억을 복원해 보니 좋았던 일, 고마운 일이 훨씬 많았다. 좋은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나는 그와의 추억을 부정적으로 편집해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속해있던 그 모임에 가입해서 그에게 연락을 시도해 볼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와는 인연이 끝났지 않은가? 지금 와서 그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인간은 육체적 생노병사만 겪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생노병사가 있다는 말을 누군가 했었고 나는 그 말을 정말로 확실하게 믿는다. 아니 믿음이 아니라 그말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잘 관찰해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친 듯이 사랑하던 사람과도 언젠가는 헤어져 죽는 순간까지 영영 볼 수 없는 상황들은 전혀 생소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친구 간의 우정도 마찬가지고 부모 자식 관계도 역시 그렇다. 죽음이 관계를 소멸시키기도 하지만 죽음과 상관없이 소멸되는 관계가 사람들에게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겠지만 그와 나의 관계는 연락과 소통이 단절되면서 완벽하게 끝이 났다. 관계의 생노병사에서 死의 단계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말을 걸 수도 없고 걸어서도 안된다. 역으로, 웃기는 상상이지만, 그가 내 연락처를 알아내서 내게 말을 건다 해도 나는 응하지 않을 참이다. 이렇게 독백으로 그를 추억하는 일만이 그와 소멸된 관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합당한 일이라고 본다.


 그때는 그가 미웠지만 지금은 그 미움이라는 감정보다는 당시 미숙했던 내 인간관계 요령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대학시절부터 10년의 인연이었고 그 후 20년이 흘렀다. 나는 이제 20년만에 그 옛 친구와의 관계를 홀가분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에게 빚진게 있어 내 몫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때 내 친구여서 정말 고마웠다. 이 짧은 글은 그를 마지막으로 소환해서 내 기억에서 완전히 소멸시키는 리추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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