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글은 안 써지는 작가의 초조한 마음이 이런 것일까? 에징어 첫 게임 마감 시한이 하루도 채 남지 않았는데 슬슬 부담감이 오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살짝 받는 상황이지만 약간 기분 좋은 스트레스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인지력과 집중력을 더 강화시킨다고 한다. 중요한 시험 직전에 보통 집중력과 몰입도는 최고로 강력해지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라서 글쓰기에 최적이다.

 

​ 첫 게임 참가 글인데 어떤 주제가 좋을까? 글쓰기에 관한 글이 좋을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의문이다. 그런데 질문이 좀 거창해 보인다. 잘 팔리는 유명 작가가 자신의 책 서문에 써 붙일만한 주제 아닌가? 나는 전문 작가도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만한 글재주나 능력도 없다. 그저 최근 들어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일 뿐인데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런 거대한 질문 나한테 가당치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작년 연말부터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게 몇 가지 있어 그것에 대해 약간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임경선이 최근에 낸 책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에서 글 쓰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글을 쓰는 일은 달리 말하면 곱게 미쳐있는 상태인 것 같다

 

​ 완전히 공감한다. 정말 멋진 말이다. 곱게 미쳐 있는 상태, 그 상태는 아마도 글쓰기 모드로 들어간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경험하고 있는 곱게 미쳐 있는 상태는 분명히 평상시나 회사에서 업무처리 할 때의 심리와는 다르다. ,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집중력이나 몰입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하는 상태? 세상과 어떤 사건과 자신과 그 관계들에 대한 하염없이 깊은 관조적 상태, 주시, 바라보기,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또 다른 상위적 자아, 즉 메타인지가 최대로 활성화된 상태? 지적 엑스터시나 작은 깨달음의 연속들. 모든 존재와 시간을 여실히 생생하고 선명하게 느껴보는 것,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들과 진실에 대한 호기심, 또는 이성과 감성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섞어내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모드? 라고 하면 어떨까? 시인이라면 감성이 최대한 작동하거나 판사라면 판결문 쓸 때 이성과 논리력를 극한으로 운용하는 상태? 그렇지만 그 어느쪽이든 완전히 미쳐 피안으로 가버리지 않고 이 세계를 긍정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감성과 이성의 극한은 평행의 대척점이 아니라 사다리꼴 모양으로 수렴되어 나에게 돌아와 행복을 주는 그런 고운 미침.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내가 더 이상 정확하게 묘사할 만한 언어나 표현이 나에겐 없어 당혹스럽다.

 

​ 그러니 글쓰기에 집중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정도에서 내가 하려는 말의 뜻을 알아서 잘 이해하시리라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약간 미치지 않고서는 글이 안 써진다는 것을 말이다.

 

​ 글쓰기에 곱게 미쳐있는 상태는 더불어 즐거운 고통을 수반한다. 아니 고통스런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내 경험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글 쓰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무척 고된 일이다. 지금도 문장 하나하나 겨우 더듬더듬 써내고 있다.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쓰기처럼 숙련되기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라고 한탄한다. 임작가는 저술업으로 20년째 먹고 살고 있는데 그런 전문작가조차 힘들어하고 버거워 하는게 글쓰기란 것. 글이 술술 잘 써지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럼 나는 어렵고 힘든 이걸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글쓰기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한 편의 글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써냈을 때의 그 성취감이 너무 좋고 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유의 기쁨과 즐거움이 뒤따른다. 한마디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생각한 뒤에 그 글이 일단 대충이라도 완성됐을 때의 그 희열은 정말 짜릿하다. 또 내가 한 건 해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 물론 대충 완성된 글이라 고쳐 써야 할 또 다른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글을 고치는 시간은 이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순간이다. 지복의 과정인 셈이다. 글의 내적 정합성을 살펴보기도 하고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문맥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는지 따져보고 표현이나 어휘가 적절한지 매끄러운지 검토해 본다. 위선이나 가식이 없이 솔직하고 진솔했는지에 대한 자기검열도 필요하다. 나는 정말 내 글을 고치는 과정이 너무 재밌다. 이 글도 내가 재밌게 고치고 주무른 결과물이리라.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을 쓴다는 개념은 사실상 고치고 또 고친다 라는 의미라고 했다. 동의할 수 밖에 없다.

 

​ 초고를 완성하고 여러 날 묵히면서 그 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고치면서 내면이 순수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온다. 막혀있던 문장이 다시 물 흐르듯 이어지고 어지럽고 정리되지 못해 꼬였던 마음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후련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하지도 못한 영감이 떠 오르거나 소소한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겠다. 이런 과정이 바로 내가 빠져든 글쓰기의 매력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만두기 어려워 나름대로 즐기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는 제법 강한 중독성이 있다. 다시 한번 임경선의 말을 옮기자면,

 

진실하고 진정한 글쓰기는 스스로를 갱신하고 초월하는 경험을 돌려준다. 한번 이러한 사랑, 혹은 글쓰기를 경험해 본 사람은 결코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갈 수 없다

 

​ 여기서 원래의 장소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고 내 마음의 상태라고 해야 정확할 듯 하다. 글쓰기에 빠져든 사람의 마음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허투루 보지 못한다. 일상이 모두 글감이 되고 삶 자체가 글 쓰는 과정이 된다. 나는 이런 마음 상태가 바로 서두에서 말한 곱게 미쳐있는 상태바로 그것이라고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에서 깨어나면 글은 더 이상 잘 써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감도가 무디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한테 걸리는 3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내 글 구려병, 내 글 뻔해병, 내 글 싫어병.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가 지적한 병이다. 웃기지만 정확하고 슬픈 지적이다. 나도 내가 쓴 글이 구리고 뻔하고 보기 싫고 마음에 안든다. 밤새 쓴 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뭐 이딴 글을 내가 썼단 말인가? 하고 한심하고 부끄러워 노트북을 재빨리 덮어버리지만 글을 삭제하지는 못한다. 내 정신의 흔적이기도 하고 고민하면서 집중한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니 지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쓴다 해도 그 형편없는 글보다 더 잘 쓸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을 두고 묵혀서 다시 보면 그래도 좀 봐 줄 만한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럼 그 부분을 붙들고 다시 쓰기 작업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보기 싫었던 글이 그래도 조금 흡족한 순간이 온다. 그렇게 미완성된 글들이 노트북에 항상 여러 편 굴러 다닌다. 단박에, 한 번에 글이 나오지 않는다. 완성된 글을 블로그에 옮겨도 내 글 구려병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 글 구려병이 완전히 불치병은 아니다. 결국엔 나도 내가 쓴 글을 인정하게 되고 애정을 가진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내가 쓴 글 아닌가?

 

​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밖에 없다. 내게 글쓰기는 세월 속에 나를 방치하지 않고 나와 불화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것. 내 자신과의 연애라고 해야겠다. 뻔하고 진부한 결론 같지만 글쓰기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일이다. 그 일은 때때로 내 글 구려병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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