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을 시간도 영화 볼 시간도 없다. 신문만 열심히 읽는다. 생각의 층위는 얕아졌으나 행동은 재바르게 되었고 말의 깊이는 줄었으나 속은 단단해졌다.
감기에 걸려 며칠간 골골대다가 선배한테 갈굼을 당하기도 하고 친구와의 술 약속을 파기하여 개욕을 먹기도 했다. 선배는 원래 좋은 사람 같으니 그러려니 하고 친구는 속정이 깊은 아이니 오히려 정겨웠다. 지금도 콜록대는 기침 때문에 고역이지만 견딜만 하다. 수월하지 않은 밥벌이의 아득함을 느끼며 내 미욱함을 바라본다.
덕분에 글도 변했다. 미문(美文)을 즐겨 사용했으나 언어는 딱딱해지고 누군가가 읽기 편하게 수정되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 요양을 하며 감기를 다스리고선 영화나 책을 보며 핍진한 영혼을 어루만져야겠다. 자아가 흘러내린 곳엔 새로운 내가 싹튼다.
이제 하루하루는 지극한 봄이다. 봄의 들머리에 뒤돌아보며 겨울을 느끼는 아둔함을 보여선 안 되겠다. 엄마가 해 준 봄나물이 그립다. 아직 홀로 서지 못한 미천한 의지를 북돋운다.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