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무려 4년 동안이나 나는 한 아이를 짝사랑했다. 짝사랑이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 흔해져버리다 못해 빛을 잃고 너덜너덜해진지 오래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저 단어를 떠올리면, 먼 발치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다 쓸쓸히 돌아선다거나, 마냥 하염없이 기다리다 주려고 산 꽃이 시들다 못해 꼬부라져 버린다거나 하는 드라마에서 자주 우려먹는 간절한 모습의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참나,
내가 그랬다. -_- 생각하면 정말 창피하고 안쓰러운, 그래서 중학교 얘기만 나오면 나는 머리 속에서 팔린 쪽들의 대장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쓰면서, 읽던 책이 재미없으면 확 덮어버리듯 머리 속도 늘 그렇게 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사는 동안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생각지도 않고 사는 중학교 시절의 그 아이가, 신기하게도 1년에 한 두번은 꼭 꿈 속에 등장을 한다. 그 때 그 모습 그대로(물론 지금 모습은 동창회에 안 가봤으니 모른다.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여전히 그대로라고도 하더라만) 해사한 미소를 띠면서 나에게 주로 잘해주는 역할로 당연지사 주인공이다. 시대배경은 물론 시시때때로 변하는게 꿈이긴 하지만 주로 중학교 시절이고 나도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다. 주위 친구들은 짬뽕이 되어서 고등학교 때 친구나 현재의 주변 인간들이 죄다 나오기도 하지만, 그애와 나는 항상 그 교복에 그 머리모양으로 친하게(!) 지내며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우엑).
그런데 그 꿈을 꾸다가 깨고 나면 늘상 한동안은 엇 여기가 어디냐, 하는 어리둥절함을 느낀다. 꿈 속에서 너무 희희낙락 했기 때문에 깨고 나서 아쉬워 전화로 나를 깨운 인간을 저주하기도 했고, 되돌아온 현실이 문득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져서 울적했던 적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정말 그 때의 짝사랑이 얼마나 내 사춘기에 처절한 생채기를 남겼으면 이 날 이 때까지 욕구불만을 꿈으로 해소하려고 하는가 하는 조금은 안쓰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지금 따져보면 생채기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하다.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널뛰고 쓰러지고 하는 생쑈였을 뿐) 어쨌거나,
그 애는 소위 말하는 전교적으로 노는 인기덩어리였다. 공부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외모가 받쳐주는 건 필수코스에다 예체능까지 섭렵해서 매번 추종자들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드는, 지금 생각하면 참 내 취향은 아니다. 사실, 그 때도 처음부터 그 애가 내 가슴에 와락 꽂혀서 내 파란 중학 시절을 온통 갖다 바치리 하고 마음 먹었던 건 절대 아니었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편지였다.
그 당시 워낙 편지 쓰는 걸 좋아했던 나는 혼자서 쓴 편지에 스스로 도취되어; 아무도 원하지 않던 연대중(연애편지대필중앙위원회)을 홀로 자발적으로 결성하여 회장직을 자칭하고 다녔는데 장난처럼 시작한 그 일이 어쩌다보니 반은 진지해져버리고 만 것이 결정적으로 문제라면 문제였다. 친구 하나가 장난 식으로 대필을 부탁했고, 의뢰받고 쓴 그 첫 편지를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검수를 받았는데 의외로 괜찮다느니, 문장이 살아있고 구구절절 애틋하다느니, 심지어 계절의 변화까지 민감하게 포착하여 편지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연애편지사상 전무후무하다느니 하는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짐작하다시피 결코 잘 쓰지는 못했다. 내가 친구들보다 잘 쓰는 것 처럼 느껴졌던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또래에 비해 달짝지근하고 느끼한 단어들을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 느글한 단어들의 출처는 흠흠)
어쨌든 내가 진짜 잘써서 그랬건 잘 쓰느라 보려고 그랬건 지가 쓰기엔 귀찮아서 그랬건 난 우습게도 진짜로 몇 통의 편지를 대필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우스웠던 건 그 편지의 수신자는 단 한 명, 바로 그 인기덩어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이미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이 오고 사랑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먼저 만발해 있고 사람을 그 속에 맞추는 일이 더 많다는, 그게 사춘기라는 걸 말이다. 스스로에게 감정이 생기자 그 인기덩어리에게 쓰는 편지는 쉽고도 어려워졌다. 감정을 드러내고 분출하기에는 쉬웠지만 발신자의 이름은 내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어려운 심정이었다.
아, 영화 '시라노 드 벨주락' 의 주인공 시라노처럼, 아리따운 록산느에게 추한 자신을 드러내진 못하고 그저 잘생긴 이의 뒤에 숨어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남의 이름으로 전하는 시라노처럼, 나는 진정 괴로워했다......
고 말하고도 싶지만, 사실 마침 그 즈음인지 언젠지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나오는 그 영화를 본 탓에 진정 그처럼 멋있는 사랑 이야기에 나를 대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도 남았지만, 어디 현실이 영화와 같으랴. 아니 내가 어찌 그리 멋있을 수가 있으랴;
그 애가 몇 반의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아니더라 새로 전학 온 누구한테로 넘어갔다더라 하는 진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오고 가는 가운데, 그 애는 속절없이 써 보낸 발신인 없는 편지가(난 내 감정을 너무나 사랑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멋진 시라노가 되기를 애저녁에 때려친 나는 감정이 북받치는 날이면 일필휘지로, 용기가 없어서 그냥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둥의 무시무시한 편지를 몇 통 보냈던 것 같다;) 내 소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답장. 네 마음 알았으니 고만 보내라,도 아니고 일단 친하게 지내자는 형식적인 내용도 아니고 그것은 그냥 편지였다. 그저 편지를 잘 받았다는 진정한 답장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를 바라는 애절한 심정도 아닌 채 그저 혼자서 연료를 소진해가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까지도 그 꼭꼭 눌러 쓴 글씨체를 붙들고 계속 마음을 꺼트리지 못했다.
나는 정말 사춘기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가 날 정도로 그 때 창피한 짓을 많이 저질렀다. 감정을 너무 쏟아버려서 별로 남은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때는 심하게 출렁거렸다. 별것 아닌 그 때의 그 짝사랑이 지금까지 내내 그리운 게 아닌 창피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 그 애가 나를 외면해서, 와 같은 상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내가 내 감정에 잡아먹혀서 그것이 나를 조종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인 것만 보아도, 한 마디로 나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맞구나 싶다.
알럽스쿨이 한참 성황을 이루고 있었을 때 같이 가자는 협박이 들어와도 나는 중학교 모임에 갈 수가 없었다. 소심하고 작은 나를 기억하지 못할 확률은 무척 높지만 그래도 나는 그애들을(그리고 그 때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간혹 꾸는 중학 시절의 꿈은,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안 좋은 꿈으로 분류된다.
하룻밤의 꿈 때문에 기분이 울적해져서, 그 땐 그랬지 하는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들 허공으로 날리며 쓴웃음 짓는 일이나 생각도 하기 싫다며 황급히 머리를 뒤흔들어 기억들을 섞어버리는 일 따위 별로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떨칠 수 없는 아쉬운 자각 하나가 매번 고개를 쳐 든다.
아마도 다시는 그렇게 완벽하게 유치해지며 나를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안도하는 자각. 어쩌면 다짐하는 다짐.
뻔한 결말이지만 이젠 슬슬 그립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그 때의 내 모습을 경계한다.
또다시 감정에만 휘둘릴까봐(나는야 감정의 동물) 나는 그 시절을 오롯하게 간직할 수 없다.
허나 이젠, 꿈은 사랑하기로 했다. 다만 너무 자주 꾸지만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