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교정의 만화를 보면 별명이 '소시지' 인 아이가 나온다.
소세지? 길쭉해서? 살이 말랑말랑해서? 아아니.

앞 뒤로 꽉 막혀 있어서.

큭큭큭 웃다가 흠칫, 찔려버렸다.
저거 혹시 내 얘기 아냐;;

늘 먹는 음식만 먹고 다니는 길로만 다니는 사람이 있다. 머리 모양도 늘상 똑같고 옷차림도 그대로. 그게 바로 나다. 심지어 책도, 내게서 골드멤버쉽(!)을 발급받은 이미 안전해진 것들만 주리줄창 섭취한다.
어쩌면 그냥 돈이 많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소심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치즈맛 소세지가 되기 위해서는 야들야들하면서도 탱탱한 탄력이 필요하다. 비닐옷을 홀라당 벗고 튀어 올라 호르륵 입 안으로 튕겨 들어가는 탄력이 아닌,
정체불명의 접근 물체는 미끈한 비닐옷에 싸인 탱탱한 몸뚱이로 무조건 튕겨낼테다, 지금 내가 입은 비닐을 절대 벗지도 갈아입지도 않겠다-- 하는 조금은 과격한 탄력.

나로 하여금 신간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고, 나오면 그 즉시 주머니 속 10원까지 득득 긁어 모아 사고야 말리라 울부짖게 만드는 작가는 5년 전만 해도 꽤 많았고 점점 많아져서 걱정까지 됐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들이 나를 실망시킨 것인지(X) 아니면 그냥 내가 시들시들해진 것인지(O) 하나 둘씩 슬그머니 멀어지더니 지금은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래도 시큰둥 저래도 시큰둥이 되어버린 나. 이런 나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건성' 이 아닐까 싶다.  건조하거나 아니면 대충이거나.

어쨌거나 나는 점점 진정한 소세지로 거듭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시도를 하지 않았고 읽을 책이 없으면 읽은 책을 또 읽었다. 꽉꽉 틀어막아 놓고 혼자 소세지 비닐을 덮어쓰고 나날이 쫄깃하고 탱탱한 탄력만을 무한대로 키워 가고 있었다. 풀뿌리보다 엉성하게 남아있는 몇 안되는 골드멤버;의 책으로만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좁게 살아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소세지 꼭따리를 우득 뜯어내며 몰캉한 속살을 한 입에 구겨넣듯 어느 날, 알라딘이 덥석 나를 잡아챘다. 끊임없이 내 귀에 속살거렸다. 천운영을 읽어봐. 박민규도 재밌어. 고종석은 안 읽어? 오정희도 다시 읽지? 야 야 국내 것만 읽을거냐? 시야를 넓히라구. 저 많은 외국 작가들을 좀 보라니까-- 이번 기회에 고전들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아-- 시끄러 시끄럽다구--

솔직히 시끄러웠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읽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번역문만 보면 완벽하게 졸아버리던 내가 많은 이국의 작가들을 이제는 반가운 마음으로 펴들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신나해도 되었다.

코엘료. 세풀베다. 보르헤스. 이제 이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가고 있다. 그러고보니 모두 지구 반대편 인물들이다. 땅 파고 계속 파서 지구를 뚫고 나가 얼굴 삭 내밀면 나타날 그 곳. 뭐 아직은 시작도 안 했다. 그러니 부디 그 여정이, 지구를 계속 파서 반대편으로 나가는 과정처럼, 계속 깊어지고 깊어졌다가 다시 그렇게 얕아진다면, 나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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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07-2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 뒤로 꽉 막힌 소세지라.. 재미있지만 뜨끔한 비유네요. (님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 잘 읽고 갑니다. 근데 글자 크기를 조금 크게 하시면 안될까요? 읽기 힘들어요 . ㅠ.ㅠ

반딧불,, 2004-08-1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비유군요..
저도 뜨끔뜨끔....

열린 듯 열리지 않는 내 안의 막힌 부분에 큰 소리로...

뚫어~~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