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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 전2권 세트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헐리웃 액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일견 그것은 완벽해 보였다. 대중적인 인지도와 검증된 연기력을 자랑하는 남녀 주인공, 흥미로운 사건, 탄탄하고도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 그리고 철저하게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스펙타클한 액션과 정교한 CG. 영화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하는 듯한 그 자신만만한 물량공세. 하지만 헐리웃이라는 꼬리표만 달고 있으면 무조건 볼만 할 것이며 돈도 별로 아깝지 않을 것 같던 그 믿음은 곧 역전이 되어 이제 그 꼬리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 식상 혹은 도식. 한마디로 뻔함.
다빈치 코드는 마치 한 편의 헐리웃 영화 같다. 아니 아예 이 책 두 권을 가져다가 잘 변형시키면 바로 그럴 듯한 시나리오 한 편이 탄생할 것 같다. 각각의 작은 장이 모두 하나하나의 장면이 되고 그 속에서 인물들은 숨막히게 바삐 움직인다. 롱테이크는 절대 금물. 긴장감 넘치는 진행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 전환은 점점 빨라진다. 게다가 이 소설은 대단히 친절하게도 머리 속에 직접 화면을 구성해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이며 막판에 상상못할 반전까지 제공해줌으로써 자신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덧붙여 남자 주인공이 해리슨 포드를 닮았다고 초장부터 선언한 것을 보면 미리 캐스팅까지 신경을 써 놓은 듯한 세심함(?)까지도 엿보인다.
기호학의 대가인 로버트 랭던. 암호해독가 소피 느뵈. 두 사람이 어려운 몇 겹의 수수께끼들을 파헤치고 풀어내며 시온 수도회가 2000년을 지켜온 성배에 대한 비밀을 찾아 나서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이다. 초반, 죽어가는 사람이 몸으로 직접 남긴 암호를 해독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두 사람의 고단한 원정은 살인사건과 결부되면서 끊임없이 추격을 당하는 긴장감 속에서 진행이 되고, 그 과정 속에 등장하는 복잡다단한 암호들의 향연과 그것의 해석을 위해 이끌어져 나오는 고대에서 현대에 걸친 종교와 기호에 관한 해박한 지식들은 실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 권이라는 분량이 무색하도록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강한 흡인력을 지녔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맥이 죽죽 빠진다. 그리고 그 강한 흡인력이 사실은 내용의 긴박함과 흥미진진함 때문이 아닌 단지 호흡 가쁘게 구성된 장면전환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일단은 엉성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푸스데이와 바티칸 교회 그리고 시온 수도회가 얽혀 있는 것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성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이므로 매우 밀도있게 설명되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두 권 내내 그럴듯한 복선과 암시로 성배를 놓고 줄다리기하는 듯 전개되던 모든 것은 싸그리 무시한 채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너무나 단순하다. 그냥 누군가가- 아니라면 아닌거지, 하는 식의 해석은 똥줄타게 읽어제끼며 결말을 향해 달려간 독자들을 패대기치는 짓이 아닐까. 그리고 암호를 해석해나가는 과정 또한 내가 맞다면 맞는거지,의 정신으로 일관한다. 역사와 종교에 두루 능통한 기호학의 대가인 랭던과, 어렸을 때부터 숙달된 조교에 의해 양성된 암호해석의 대가인 느뵈가, 이건 이래서 이런거다 라고 하며 암호를 풀었는데 과연 누가 거기에 왜? 라는 물음을 달 수가 있겠는가. 전문가가 맞다는데, 전문가가 혼자 머리 속으로 명상을 하다가 앗!하고 암호해독의 실마리가 스치고 지나갔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계속되는 사건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꼬임과 우연의 남발은 사실 후반부의 반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장치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누구나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이 될 거라는 건 다 알고 있다. 다만 범인이 누군지, 혹은 진실은 무엇인지 하는 문제가 얼마나 멋들어지고 정교하게 (심지어 뒷통수까지 때려주면서) 결말에 이르는가 하는 기대감 같은 것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정신없이 부풀었던 일말의 그러한 기대감은 후반부에 가서 바람빠진 풍선처럼 쉬식 소리를 내며 쪼글쪼글해져 버리고 만다.
사실 기호니 암호니 하는 것은 일상에서 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흥미로운 동시에 생소하고 어렵다. 게다가 종교의 역사와 연관되고, 라틴어도 잘 모르는 판국에 더 어려운 듣도보도 못한 언어까지 등장을 하면 일단 겁이 나면서 보통의 추리소설을 읽듯이 스스로 해결을 해보려는 시도를 조금은 접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의 지적 활동이야말로 어쩌면 이런 류의 소설을 읽는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 측면에서 이 소설은 지나치게 친절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빠른 장면 전환과, 모처럼 고민을 하려고 하면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과정도 없이 바로 해답을 제시해주는 과잉친절. 압축과 여운없이 구구절절 읊어서 나열되는 사건과 해결들. 진심으로 안타깝다.
작가 댄 브라운은 이 책에 나오는 날조된 성서와 숨겨진 성배에 관한 이야기가 100% 진실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가려져 있던 순전한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 게다가 그것이 세계를 받치고 있는 기둥 하나를 뿌리채 흔들만큼 강력한 것이라면, 불의를 향해 일침을 날리는 그런 보물찾기 같은 소재는 언제나 사람을 매혹시킨다.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뭉개진 여성성의 비밀이, 댄 브라운의 말대로 진정 진실일까 하는 의구심과 놀라움,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의 즐거움,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이 준 가장 크고도 유일한 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