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3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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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놓친 화합

의심이란 왜 생기는 걸까? 포장마차에서 한 남자는 끊임없는 의심으로 화합의 현장에서 구경꾼이 된다. 그게 변두리에 남게 된 이유는? 의심, 혹은 깔봄. 말 그대로 진정성의 결여다. 진정성은 어디서 생기는가? 화합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보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생기는가? 그들의 화합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황혼

자신의 욕망 뿐 아니라 타인의 욕망, 특히 늙은 사람의 욕망을 마주 한다는 건 참 곤혹스런 일이다. 늙으면 욕망도 사라지는가. 늙었음에 욕망만 살아 있다면, 그것이 과연 추한 것인가? 나의 늙음이 멀지 않은 일인데, 난 여전히 그것을 남의 일처럼만, 나이들어 가지는 나의 욕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생각은 않는다.

 

추적자

그 자를 추적하는 것이 삼형제에게 각각 다른 의미였지만, 무엇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강력하게 끌려가는 것도, 혹은 스스로 그를 추적하는 것도 쉽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허무한 일인 듯 싶다. 쫓는 자나, 쫓기는 자나 쫓는 다는 거, 그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한다는 건 허망하고 허망할 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여자의 삶, 그것을 박완서는 음모라고 했다. 그렇다면 음모를 꾀하는 자는 누구인가? 여자와 남자. 모두 이다. 음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음모를 만천하에 밝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모르지. 나 역시 그 음모의 피해자일 수 있으니. 칼을 벼리고 사는 일이 어렵다. 그저 파란 약을 먹고, 모른체 살아가는 수 밖에.

 

육복

남자의 해외 근무가 계속 반복되는 걸 보니 가까이 그런 경험이 있었던 듯 싶다. 그 때 그랬지. 남자들이 외화를 벌겠다고 외국에서 일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벌어준 외화를 알뜰살뜰 모으거나, 혹은 흥청망청 쓰거나, 그랬지. 행복이란 뭘까? 남자도, 여자도, 행복하고는 거리가 먼데, 여자가 이쁜 양옥에 살면서 남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긴 걸까?

 

침묵과 실어

그는 끊임없이 의미를 묻게 한다. 늙음, 병듦, 그리고 가족, 살아 있음, 혹은 죽어감. 명예, 돈,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참 많은 걸 겪어내고, 많은 게 필요하다. 화자에게 필요했던 건 뭘까? 나름의 인정, 명예. 화자가 윤상하를 보면서 느꼈던 건 뭘까? 그게 편집회의에서 자신이 했던 그 비릿한 행위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천변풍경

늙어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퇴직한 노교수. 백수회라는 지난 세월의 명예와 물질을 배경으로 큰 소리치며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어울리지 못하지도 못하는 배교수.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허망하고 참담하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가 중요한 이유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허망하고 참담한 이유는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 외로움을 떨치는,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쥬디 할머니

자식 다섯을 너무나 잘키워 동네의 부러움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쥬디 할머니. 그 할머니가 알고보니 누군가의 세컨드였다는 것. 할머니는 다시 이사를 꿈꾸고, 그의 사랑을 온전히 받던 쥬디의 앨범이 방바닥에 뒹구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렇다. 모든 사랑은 그렇듯 이기적이다. 자기에게 소용 닿는 한, 의미가 있을 뿐!

 

꽃지고 잎 피고

심심답답증! 아무것도 열정을 가지고 덤빌 일이 없는 심심답답증의 주부의 이야기다. 훈이 엄마가 남편의 친구의 부인에게 느꼈던 건 뭘까? 자신을 찾고, 스스로 당당하며, 자신의 일을 즐기며 사는 것이 그저 부러울 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를 찾아서, 스스로 당당하게 살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실을 보는 빨간약이다.

 

로열박스

모든 게 다 갖추어져도 마음과 마음이 닿지 않으면, 한없이 슬프고 처량한 게 우리 인생이다. 황금으로 발라진 집에 산다고 해도, 그 곳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것의 중요함!

 

무중

고급 맨션 1층에 사는 나. 어느날 안개를 보던 옆집 남자를 보고, 알 수 없는 쫓김에 늘 쫓기던 여자는 옆집 남자를 쫓는다. 쫓기는 자였던 그는 여자의 쫓음에 견딜 수 없어 자수를 했고, 여자! 사람은 늘 쫓고, 쫓기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에 쫓기는 건가? 왜 편안할 수 없는 건가? 무엇때문에 불안한가? 내가 쫓는 건 무엇인가? 무중이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광고 회사에 다니던 그. 우연한 성공으로 승승장구. 아파트를 마련해 아내와 단란히 살고 있다. 그의 아파트에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곧 아파트의 안락함에 길들어지고, 아내는 집을 나간다. 그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 줄 것은 무엇인가?

 

아저씨의 훈장

아저씨는 자기 자식 대신 집안의 장손을 데리고 피난을 간다. 그리고 자기 자식 대신 조카를 돌보며 살았다. 조카는 성공했고 아저씨는 내쳐졌다. 그리고 쓸쓸히 죽어간다. 그 아저씨의 마지막 말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저씨의 의무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자식을 찾는 건, 본능, 조카를 살린 건 교육받은 건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후회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

 

무서운 아이들

학교 교사인 나. 반 아이들은 을희라는 아이를 따돌린다. 세상에 차갑게 마음을 닫고 있었던 나, 을희를 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뭔가 움트는 마음으로 을희를 보듬는다. 상처를 사랑으로 씻을 수 있는 건가? 장발장이 코제트를 맡으면서 느꼈던 그 사랑으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처럼.

 

소묘

갓 결혼한 새댁. 완벽한 시어머니 밑에서 완벽한 시집살이를 한다. 그 시어머니는 오로지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다. 보여지는 것이 왜 중요한가? 실제는 그러하지 않은데, 보여지는 것 때문에 불행하고, 쓸쓸한데..... 나보다 남이 주인이 삶을 사느라 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주로 79년부터 83년까지의 작품들이다. 경제개발의 광풍이 지나가고 난 뒤의 허망함, 쓸쓸함, 노쇠함들이 다루어진다. 전작에서 주로 살만한 집, 혹은 살려고 노력하는 집의 주부들의 이야기가 다수였다면 이 작품집에서는 좀 더 다양한 화자들이 나온다. 독신녀, 은퇴남, 시어머니, 혹은 갓 취업한 취업남, 새댁, 그리고 늙은이들. 며느리에 얹혀 사는, 혹은 누군가의 세컨드로 살았기에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신경쓰는, 그리고 또 누군가의 젊은 세컨드. 그들은 모두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묻고 있다. 이대로 살기에는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고 허망하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열정과 열망으로 달아오를 수 있는 그런 삶이 중요한 게 아니냐고,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 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하다. 아니,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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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여름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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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들이

이북에 노부모와 아내를 남겨두고 어린 딸하나만 업고 내려온 빈털터리 화가와 사는 아내는 딸의 초상을 그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울컥하여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만난 며느리와 시어머니, 화자는 그들을 통해 자신이 헛살지 않았음을 확인받는다. 두 고부의 맞잡은 손 위에 화자가 자신의 손을 보태면서 느꼈던 것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난 격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남남이지만 이렇게 한 마음으로 얽히는 것? 핏줄보다는 함께 한 시간이 주는 연민?

 

저렇게 많이!

가발을 쓰고 화려한 외출을 한 날에 만난 대학때의 연인. 그 연인은 돈 잘보는 역술인의 남편이 되었고 나는 과외선생이 되었다. 다들 돈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을 꿈꾸며 헤어졌던 가난한 연인들은 돈은 없지 않으나 마음이 허한 그런 삼십대가 되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확인한 것은 자기와 같은 인간들이 저렇게나 많이 있다는 것. 그게 위안이 될까? 절망이 될까?

 

어떤 야만

푸세식에서 수세식으로 화장실이 바뀌던 그 시절. 먼저 앞서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그들을 쫓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야만이라고 몰아세웠고 그 몰아세움이 그들을 더욱특별하게끔 만드는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돈! 자본주의가 우리의 온 몸과 세포에 낱낱이 스며들어 자본주의로 팽창했던 그 시절이었다.

 

포말의 집

돈벌로 미국간 남편. 남겨진 아내는 무료하다. 한가하다. 답답하다. 싫증난다. 그러다 건축전이 열리는 한 전시회에서 포말의 집이라는 집을 설계한 청년과 달달한 만남. 그러나 그것역시 포말처럼 사라진다. 포말이란, 결국 그렇게 꺼져 버리는 것, 사라지는 것 아닌가. 남편이 없는 빈집에서 병든 시어머니와 말없는 아들과 사는 아내는 아마 그렇게 스스로 포말이 되어 가는 것 아닌가.

 

배반의 여름.

무언가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어찌 그리 맥없는 짓인가. 아버지의 세번의 배반. 물, 수위, 그리고 전구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건 뭘까? 스스로를 믿어라! 진실을 본다는 건 그만큼 고되고도 고독한 일이 될 것이다.

 

조그만 체험기.

억울함. 억울해서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 억울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힘없는 자가 주인이 되면, 아니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구분이 사라지면... 그럼 힘은 어디서 생기지? 돈! 돈! 그렇구나. 돈이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이 와야 할텐데....

 

흑과부.

박완서 소설의 치명적인 매력은 인간의 이중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다. 그의 그런 파헤침을 따라가다보면 나의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참, 이렇게도 낱낱이 들여다보며 사는 삶도 힘들었겠다 싶다. 표피만 보고, 표피에만 머무르며, 표피적인 생각만 하며 사는 사람들.... 왜 그럴까? 능력의 한계일까? 그것이 편해서일까?

 

돌아온 땅

월북한 삼촌 때문에 유학이 좌절된 딸과 함께 고향을 다녀오다 버스에서 한 취객을 보다. 그 취객은 젊은 여인에게 노래를 시키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취객을 나무랐던 다른 승객에게 '너도 빨갱이지?' 삿대질 하던 그 순간에 승객은 모두 얼어 붙는다. 뭘까? 이런 공포. 취한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모두를 빨갱이라 몰아 부치는 그 취객. 박정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안에 그 공포. 공포. 공포. 그저 멀미나 하는 수 밖에. 그 공포에 무너지는 자신을 차마 보지 못해.

 

상.

상을 받고 일그러지기 시작한 감초선생. 상이란 뭘까. 인정받고 드러냄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인정받고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가. 인정을 위해 비교를 하고 경쟁을 한다. 하지만 비교하고 경쟁해서 이기고 하는 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인정은 아닐테다. 시기심, 질투심 그 근원은 뭘까? 모두가 인정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꼭두각시의 꿈.

재수생, 그리고 그의 친구 성길이와 그 누나. 그들은 모두 욕망의 꼭두각시였다. 성길의 누나는 상처로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깨달았고, 그 사건은 성길과 재수생 모두 자신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욕구를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욕구의 주인이 되는 것.

 

여인들.

해외 파견 근무를 하는 남편들의 아내들의 이야기. 아내들과 남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단기간의 안정, 돈! 말라 비틀어져 딱딱하게 굳어가는 여인들의 심장.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두 할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미군에게 자신을 바치러 갔던 할머니와 숫총각 딱지를 떼어 주었던 할머니. 그들이 했던 행위의 의미는?

 

낙토의 아이들

지질학과 시간강사 남편과 부동산 투자를 하는 아내. 남편은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되었던 답사와 강의를 아내와 아내의 사업 파트너인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빼앗긴채 스스로 위축된다. 비교하고 경쟁하며 순수를 잃어버리는 아이들. 무엇인가에 정신을 계속 홀리며 산다. 그렇게 꼭두각시처럼 수분을 잃어간다.

 

집 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남편이 갑자기 연행되었다. 아내는 병든 시어머니와 아이들과 남편의 부재를 견뎌야 한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뿐, 그 부재의 시간은 오히려 자신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그 동안의 질서와 화평과 교양을 깨뜨리는 시간이 되었다. 아내가 기대했던 살맛은 무엇일까?

 

꿈과 같이.

대학때의 전적 때문에 취업을 위한 서류 준비를 구비할 수 없었던 한 실업자의 이야기다. 그의 전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지갑과 주머니에 손을 대는 장면이 섬찟하긴 했지만, 그 내면에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

공항에서 무대소 아줌마를 만나다. 나름의 자존심. 자존심에도 정답이 있는가? 스스로 자존하고 지존하면 되는 것이지. 무대소 아줌마는 그런 자존을 스스로 찾아 지켜 나가는 삶을 산 것으로 화자는 말한다. 우리의 삶을 생동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찾는 것 뿐이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 사이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애달픈 몸짓들이 나온다. 저렇게 많이! 포말의 집. 낙토의 아이들. 여인들.

=진정한 살맛이란 무엇인가? 집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 흑과부.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찾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배반의 여름. 꼭두각시의 꿈.

=인간의 비릿한 이중성. 차마 눈 뜨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 밖에 없는. 돌아온 땅. 어떤 야만. 흑과부. 상.

=그리고 분단의 아픔. 돌아온 땅. 겨울 나들이.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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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1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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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등단한 박완서의 작품들 가운데 1975년까지의 작품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세모

가난했다가 살만해진 한 여자의 이야기, 아들의 사립학교 자모회에서 겪은 이질감...

 

어떤 나들이

살만한 한 여자가 아침 댓바람부터 소주한병을 마시고 거리를 헤메고 다니는 이야기... 살만한데, 아무 걱정 없는데, 아무 할 일도 없는데, 그래서 여자는 종이짝 같다. 툭하면 찢어질 것 같은.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말단 공무원인 남편과 넉넉하진 않으나 그저 그런 살림을 꾸려 나가다 북에 갔던 오빠 때문에 곤란함을 겪는 여자가 뒷 집 여자와 만난다. 뒷 집 여자, 그 여자는 화가 남편과 시어머니와 장애를 가진 딸과 산다. 그 여자와 공감도 아닌, 질투도 아닌, 위로도 아닌 뭔가를 나눈다. 나누는 것이 이것 밖에 안 되나... 인생이 왜 맥빠지는 지 알것도 같다. 이렇게 마음을 다해 하는 것이 없으니.

 

부처님 근처

한국전쟁때 아버지와 오빠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했던 주인공...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그저 무작정 빌라는 대로, 절하는 대로 하고 돌아오던 길. 어머니의 편한 죽음을 지켜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자유함을 느낀다. 결국 죽어야 해결되는 문제였던가.

 

지렁이 울음소리

이것도 살만한 여자의 이야기다. 잘나가는 남편, 무던한 아이를 둔 주부가 욕쟁이라고 불리던 여고 선생님을 만나, 일탈을 꿈꾼다. 그 꿈꾸던 일탈마저 무탈로 끝나던 날, 여자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떠올린다. 여자가 원했던 건 뭘까. 마음으로 사는 것? 여자에게 삶은 그저 '물'에 머물렀다.

 

주말농장

살만한 여자들과, 살만한 여자들을 거칠게 바라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 여자들은 왜 이토록, 수다와 비교와 드러냄에 집착하는가. 여자들과 만득을 비교하면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다 허망하고 허망할 뿐이다?

 

맏사위

가난한 동네에서 살만한 삶을 추구하는 엄마가 딸에게 부가한 의무. 의사사위를 만나 살만하게 살 것. 딸은 미술을 전공한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에게 살만한 삶을 강요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눈 앞에서 찌그러진 남편을 목도한다. 아, 도대체 살만한 삶이란 무엇인가. 내가 살만해서 이런 악다구니들이 덧없어 보이는가. 작가는 또한 이 시절을 겪었기에 그것이 덧없음을 이야기 하는 건가.

 

연인들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치던 젊은이가 공권력앞에 무참히 자존심을 짓밟히고 '병신'이 된다. 무력한 자존심.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특히나 공권력에 맞닥뜨렸을 때 겁먹지 않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것도 같다. 음모의 톱니바퀴. 적당히 위축되고, 한없이 고분고분한 인간으로 만드는 그 톱니바퀴로부터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이별의 김포공항

이 나라. 떠나는게 수인 나라가 되어 버렸나. 그들은 살만한 세상을 찾아 이 나라를 떠나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생의 끝자락에 있는 노파마저 이 나라를 뜨려 한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그 이륙의 순간에 노파는 울음을 터뜨린다. 무엇이 문제인가. 떠난 그들, 남아있는 이들, 그리고 비행기에 있는 그..... 모두들 어떤 삶을 살고 싶어했나. 살만하다는 건 뭘까?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시시한 사내가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을 다 까먹고 변두리에 집한채 사서 이사를 간다. 그 사이 남자는 아이들이 부담스러워 피임수술을 했고, 두 아이가 죽었고, 여자는 상상임신을 한다. 남자의 앞집 남자 김복록은 부자인데다가 약자를 짓이기는 데서 오는 쾌감을 즐기는 탐욕스런 인간이다. 남자는 늘 사는 데 멀미를 느낀다. 삶에 대한 무력감, 혐오감, 신물, 이골..... 뭐가 됐든 그 역시 살만하면서도 살만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김복록 역시 너무나 물적이기에 허망한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멀미 없는 삶이 살만한 삶이겠지.

 

닮은 방들

단독주택 살다가 독립해서 이사간 아파트에서 앞집 여자를 사귀고, 앞집과 비슷하게 인테리어 하고, 앞집과 똑같이 장봐다가 밥해 먹고, 닮은 방에서 닮은 삶을 산다. 살만해 졌는데도, 마음은 늘 허전하다. 살만한 모든 것들에, 닮아 있는 모든 것들에 신물이 난다. 앞집여자가 없는 어느 날 밤, 여자는 앞집남자의 옆에 눕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던 주인공은 여차저차해서 세번 결혼을 한다. 성실한 농부와 대학강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업가. 세번의 결혼 생활에서 여자는 마치 부유하듯 한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심지어 그것이 남의 삶인지, 내 삶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채.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진정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어야 할텐데. 진정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재수굿

부잣집 과외를 시작한 주인공. 그 부잣집에서 부자에 대한 기존의 편견과 아무 상관없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 점차 적응해 가던 주인공이 한순간 의외의 장면을 목격한다. 부잣집에서 벌어지는 굿을 본 것이다. 부자들도 불안하다. 왜? 지금의 살만함이 뿌리가 없다. 지금의 살만함이 너무 좋아서, 그게 언제 무너질지 늘 불안하다. 더 나아가지 못 해 불안하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다.

 

카메라와 워커

어렸을 때 부모를 잃은 조카를 고모는 끔찍히 아낀다. 자기 자식보다도 더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고모와 할머니의 꿈은 하나다. 조실부모한 그 조카가 일요일날 카메라를 메고 야외로 놀러갈 수 있을만큼만 사는거다. 그러나 조카는 심드렁하다. 사는 건 또 뭔가? 어린 그에게나 나이든 고모와 할머니에게 살만한 건 또 뭔가.

 

도둑맞은 가난

너무나 가난하다. 한 때 살만했으나 좀 더 살만한 걸 추구했던 엄마 덕분에 집안형편은 더할나위 없이 쪼그라들었고 더이상 살만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할 대목에 엄마는 살려고 노력하는 딸만 제껴놓고 죽음을 선택했다. 남아 있는 딸은 살려는 노력과 더불어 한남자를 선택했다. 그 남자가 함께 살려고 노력할 수 있는 동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러나 알고보니 그 남자는 아주 살만해도 넘치게 살만한 남자였다. 가난을 놀이로 체험학습으로 여기는.

남자는 떠나고, 남자가 던져준 살만한 제안도 버리고, 여자는 살맛나는 가난을 잃어버렸다. 가난이 사라진게 아니라 자신이 애틋하게 여겼던 가난을 잃어버린 것이다.

 

 =70년대가 그랬던 것 같다. 모두들 살만해지려고 노력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아직 살만하려면 멀었던 사람도 있었고, 이미 살만해진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너도 나도 곁눈질 해가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던 그 시절. 이미 살만해진 사람들은 마음 속에 멀미나 따분함, 혹은 자기 혐오, 신물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뭔가 어설픈 구성인 듯 보여지는 대목도 군데군데 있었다. 주말농장의 만득이 캐릭터를 잘 이해할 수 없었고, 이별의 김포공항에서 소녀에서 할머니로 화자가 바뀌는 듯한 대목도 따라가기에 조금 껄끄러웠다. 닮은 방들, 카메라와 워커, 그 밖의 많은 작품들에서 그래서 뭐? 이렇게 소리치며 잡아 흔들고픈 그런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살만하다는 게 과연 뭘까? 물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정신적으로 많이 부족한 삶을 사는 듯 하다. 만족이 없으니. 정신적 만족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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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1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5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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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타고나는 것과 길러지는 것.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소설을 보면서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더 중요할까? 길러지는 것이 중요할까? 그보다는 각자 자신이 생겨먹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거기에 맞게 지금을 사는게 더 중요하겠지.

거부 개성상인 전처만의 장손녀로 태어난 태임, 그리고 그의 남편 종상, 그들의 딸 여란과 아들 경우, 그리고 대를 이어 이들과 얽히는 박승재. 그리고 태임의 이부 동생 태남이의 이야기다. 그들이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내는 이야기다.

계급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질서와 변화가 도래하는 그 시기에 사람들이 아, 이렇게 변해가는 거구나,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난 그 모습을 읽어 나가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유리한 조건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타고난 그릇들이 있는 것 같다. 그 그릇을 각자 살아가면서 조금 모자라거나 아님 넘치게 부어 나갈 뿐 그릇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태임의 미망은 무엇이었을까? 종상의? 경우의? 여란의? 승재의? 태남의 아들 경국의 미망은 무엇이었을까?

태임의 미망은? 어린 종상.

어린 종상의 의미는? 악착같이 뭔가를 쫓아 가는 것. 무엇을? 자존심? 민족의식?

미망이 미망일 수 있는 건.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승재는 그것이 자신에게 없는 것이라고 중요했고, 태임에겐 그것이 옳기에 중요했다? 그러고보니 태임의 미망이 어느새 자신의 꿈에서 종상의 어린 시절에 대한 미망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태임이 마지막에 종상을 떠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태임은 어린시절 할아버지로부터 허난설헌과 같은 뛰어난 여자로 살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 세상이 여자로서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으나 결국 그 한계를 뛰어 넘는다는 것이 이부 동생 태남에 대한 애착 혹은 집착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태임이 자신의 인생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여란 역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했으나 결국 상철과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개척의 여정을 끝낸다.

여자들에게는 민족이 중요했다. 그래서 태임은 어린 종상을 잊지 못했고, 태남을 지원했고, 여란은 상철에게 실망했던 것이다. 왜 그들 스스로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스스로 행하는 것이,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나의 미망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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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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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꽃

환갑을 앞둔 여자가 버스에서 만난 남자와 연애를 한다. 그러나 이미 겪을 걸 다 겪었기에 결혼은 할 수 없다. 나이든 혼자 남은 남자는 며느리에게 짐이다. 여자는 자신도 낯설어질 만큼 간사스러운 연애를 하다 결국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여자가 자신의 몸을 보는 장면의 묘사가 은교의 첫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옳다. 두번 할일은 아니다. 좋아하는 남자랑 매일 살 맞대고 사는 일.

 

환각의 나비.

친정 엄마랑 살면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방대 교수로 일하는 주인공. 친정 엄마는 알뜰살뜰 살림을 보아 주다 치매에 걸렸다. 그리고 그리운 아들네를 찾아 집을 나간다. 치매에 걸린 이들은 뭔가 반복적인 특이한 행동들을 보인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 뭔가가 될 것이다. 그러면 살면서 아주 맺힌 게 없는 그닥 기억에 남는 뭔가가 없다면 치매도 무서울게 없는 건가?  치매걸린 엄마가 마금이와 행복하게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본다면 나라도 그저 망연히 돌아설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비밀.

하영이 스스로 만들어 낸 덫이었을까. 세준의 죽음의 그늘. 그런데 마지막 부재중 전화 메시지의 의미는 뭘까? 뭔가 비밀스런 저주 같은게 자욱히 깔린 하영의 인생처럼 소설도 알 수없다. 결국 그게 저주인지, 허난설헌의 생가는 왜 나오는지, 남편과 여행은 언제 한 건지 비밀을 풀려면 한참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소설들은 이렇게 헷갈리게 하는 건 없었는데, 이건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한번 읽어야 할지 그냥 접어야 할지 고민한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산다는 게 참으로 엄중하다가도 진짜로 별볼일없는 것 같아 질 때가 있다. 죽음이라는게 인생을 뒤흔들고 끝장내는 아주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사람이 죽음으로 일상이, 평화가, 안정이 기다릴 때가 있다. 죽음이, 대놓고 칭얼댈 수는 없었으나 기다렸던 수순인 것처럼 될때가.... 모두가 기다리는데 죽는게 오로지 나만 몸서리치게 싫고 무서울 때, 그 땐 어쩌나.

 

너무도 쓸쓸한 당신

가끔 박완서의 소설 속에 이런 여자들이 나온다. 이렇게 좀 뭐랄까, 대책없으면서도, 여우같고, 조금은 이기적인 듯 하면서, 감성적이고, 계산적이면서도 여리고, 세속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그런 여자, 초라하고 쓸쓸한 남편을 앞세워 모텔로 들어가 잠자는 남편의 모기 물린 자국을 보고 뜨거운 연민을 느끼는 그런 여자. 그 여자가 연민을 느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꽃잎 속의 가시

언니가 그랬었구나. 그런데 언니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다른 좀 더 그럴듯한 장치는 없었을까? 수의가 뭐라고. 그게 그렇게 집착할 만한, 아님 피할 만한 무엇이었던가? 하기야, 할머니도 그랬지. 수의를 해놓은게 엄청난 자랑이고 자부였었지. 죽음에 대한 터부와 죽음에 대한 수용, 수의는 둘 다 였던 것 같다.

 

공놀이하는 여자

여자의 행운이 불행으로 끝날까 가슴 졸였다. 정말이지 꼭 그럴것 같이 이야기를 몰아가는 통에, 저절로 긴장했다. 여자가, 얻은 행운의 정체는 뭘까? 여자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여자가 궁금하다.

 

J-1 비자

살다보면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한 일도 많다. 요령도 편법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자연 이런 일들은 다반사이다. 다 같이 원칙을 원칙대로, 합리를 합리 그 자체로 실천하자, 그런 약속과 실행이 왜 안 되는 걸까? 안 되겠지? 왜 안될까? 이런 일을 당한다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웬수 덩어리

사람들은 딱 자기 경험만큼만 생각한다. 이 기계를 이용해 글을 쓰는게 직업이라우. 그 말을 타자 알바로 알아듣는 그 시점에서, 갑자기 나는 내가 못 보는, 내가 못 알아듣는 그 너머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나 혹시 트루먼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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