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1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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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등단한 박완서의 작품들 가운데 1975년까지의 작품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세모

가난했다가 살만해진 한 여자의 이야기, 아들의 사립학교 자모회에서 겪은 이질감...

 

어떤 나들이

살만한 한 여자가 아침 댓바람부터 소주한병을 마시고 거리를 헤메고 다니는 이야기... 살만한데, 아무 걱정 없는데, 아무 할 일도 없는데, 그래서 여자는 종이짝 같다. 툭하면 찢어질 것 같은.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말단 공무원인 남편과 넉넉하진 않으나 그저 그런 살림을 꾸려 나가다 북에 갔던 오빠 때문에 곤란함을 겪는 여자가 뒷 집 여자와 만난다. 뒷 집 여자, 그 여자는 화가 남편과 시어머니와 장애를 가진 딸과 산다. 그 여자와 공감도 아닌, 질투도 아닌, 위로도 아닌 뭔가를 나눈다. 나누는 것이 이것 밖에 안 되나... 인생이 왜 맥빠지는 지 알것도 같다. 이렇게 마음을 다해 하는 것이 없으니.

 

부처님 근처

한국전쟁때 아버지와 오빠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했던 주인공...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그저 무작정 빌라는 대로, 절하는 대로 하고 돌아오던 길. 어머니의 편한 죽음을 지켜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자유함을 느낀다. 결국 죽어야 해결되는 문제였던가.

 

지렁이 울음소리

이것도 살만한 여자의 이야기다. 잘나가는 남편, 무던한 아이를 둔 주부가 욕쟁이라고 불리던 여고 선생님을 만나, 일탈을 꿈꾼다. 그 꿈꾸던 일탈마저 무탈로 끝나던 날, 여자는 지렁이 울음소리를 떠올린다. 여자가 원했던 건 뭘까. 마음으로 사는 것? 여자에게 삶은 그저 '물'에 머물렀다.

 

주말농장

살만한 여자들과, 살만한 여자들을 거칠게 바라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 여자들은 왜 이토록, 수다와 비교와 드러냄에 집착하는가. 여자들과 만득을 비교하면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다 허망하고 허망할 뿐이다?

 

맏사위

가난한 동네에서 살만한 삶을 추구하는 엄마가 딸에게 부가한 의무. 의사사위를 만나 살만하게 살 것. 딸은 미술을 전공한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에게 살만한 삶을 강요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엄마는 눈 앞에서 찌그러진 남편을 목도한다. 아, 도대체 살만한 삶이란 무엇인가. 내가 살만해서 이런 악다구니들이 덧없어 보이는가. 작가는 또한 이 시절을 겪었기에 그것이 덧없음을 이야기 하는 건가.

 

연인들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치던 젊은이가 공권력앞에 무참히 자존심을 짓밟히고 '병신'이 된다. 무력한 자존심.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특히나 공권력에 맞닥뜨렸을 때 겁먹지 않는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것도 같다. 음모의 톱니바퀴. 적당히 위축되고, 한없이 고분고분한 인간으로 만드는 그 톱니바퀴로부터 나 역시 자유롭지 않다.

 

이별의 김포공항

이 나라. 떠나는게 수인 나라가 되어 버렸나. 그들은 살만한 세상을 찾아 이 나라를 떠나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생의 끝자락에 있는 노파마저 이 나라를 뜨려 한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그 이륙의 순간에 노파는 울음을 터뜨린다. 무엇이 문제인가. 떠난 그들, 남아있는 이들, 그리고 비행기에 있는 그..... 모두들 어떤 삶을 살고 싶어했나. 살만하다는 건 뭘까?

 

어느 시시한 사내 이야기

시시한 사내가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을 다 까먹고 변두리에 집한채 사서 이사를 간다. 그 사이 남자는 아이들이 부담스러워 피임수술을 했고, 두 아이가 죽었고, 여자는 상상임신을 한다. 남자의 앞집 남자 김복록은 부자인데다가 약자를 짓이기는 데서 오는 쾌감을 즐기는 탐욕스런 인간이다. 남자는 늘 사는 데 멀미를 느낀다. 삶에 대한 무력감, 혐오감, 신물, 이골..... 뭐가 됐든 그 역시 살만하면서도 살만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김복록 역시 너무나 물적이기에 허망한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멀미 없는 삶이 살만한 삶이겠지.

 

닮은 방들

단독주택 살다가 독립해서 이사간 아파트에서 앞집 여자를 사귀고, 앞집과 비슷하게 인테리어 하고, 앞집과 똑같이 장봐다가 밥해 먹고, 닮은 방에서 닮은 삶을 산다. 살만해 졌는데도, 마음은 늘 허전하다. 살만한 모든 것들에, 닮아 있는 모든 것들에 신물이 난다. 앞집여자가 없는 어느 날 밤, 여자는 앞집남자의 옆에 눕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던 주인공은 여차저차해서 세번 결혼을 한다. 성실한 농부와 대학강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업가. 세번의 결혼 생활에서 여자는 마치 부유하듯 한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심지어 그것이 남의 삶인지, 내 삶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채.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진정 부끄러운 일을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것이어야 할텐데. 진정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재수굿

부잣집 과외를 시작한 주인공. 그 부잣집에서 부자에 대한 기존의 편견과 아무 상관없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 점차 적응해 가던 주인공이 한순간 의외의 장면을 목격한다. 부잣집에서 벌어지는 굿을 본 것이다. 부자들도 불안하다. 왜? 지금의 살만함이 뿌리가 없다. 지금의 살만함이 너무 좋아서, 그게 언제 무너질지 늘 불안하다. 더 나아가지 못 해 불안하다?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다.

 

카메라와 워커

어렸을 때 부모를 잃은 조카를 고모는 끔찍히 아낀다. 자기 자식보다도 더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고모와 할머니의 꿈은 하나다. 조실부모한 그 조카가 일요일날 카메라를 메고 야외로 놀러갈 수 있을만큼만 사는거다. 그러나 조카는 심드렁하다. 사는 건 또 뭔가? 어린 그에게나 나이든 고모와 할머니에게 살만한 건 또 뭔가.

 

도둑맞은 가난

너무나 가난하다. 한 때 살만했으나 좀 더 살만한 걸 추구했던 엄마 덕분에 집안형편은 더할나위 없이 쪼그라들었고 더이상 살만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할 대목에 엄마는 살려고 노력하는 딸만 제껴놓고 죽음을 선택했다. 남아 있는 딸은 살려는 노력과 더불어 한남자를 선택했다. 그 남자가 함께 살려고 노력할 수 있는 동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러나 알고보니 그 남자는 아주 살만해도 넘치게 살만한 남자였다. 가난을 놀이로 체험학습으로 여기는.

남자는 떠나고, 남자가 던져준 살만한 제안도 버리고, 여자는 살맛나는 가난을 잃어버렸다. 가난이 사라진게 아니라 자신이 애틋하게 여겼던 가난을 잃어버린 것이다.

 

 =70년대가 그랬던 것 같다. 모두들 살만해지려고 노력하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아직 살만하려면 멀었던 사람도 있었고, 이미 살만해진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너도 나도 곁눈질 해가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던 그 시절. 이미 살만해진 사람들은 마음 속에 멀미나 따분함, 혹은 자기 혐오, 신물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그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뭔가 어설픈 구성인 듯 보여지는 대목도 군데군데 있었다. 주말농장의 만득이 캐릭터를 잘 이해할 수 없었고, 이별의 김포공항에서 소녀에서 할머니로 화자가 바뀌는 듯한 대목도 따라가기에 조금 껄끄러웠다. 닮은 방들, 카메라와 워커, 그 밖의 많은 작품들에서 그래서 뭐? 이렇게 소리치며 잡아 흔들고픈 그런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살만하다는 게 과연 뭘까? 물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정신적으로 많이 부족한 삶을 사는 듯 하다. 만족이 없으니. 정신적 만족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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