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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1 ㅣ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5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타고나는 것과 길러지는 것.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소설을 보면서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더 중요할까? 길러지는 것이 중요할까? 그보다는 각자 자신이 생겨먹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거기에 맞게 지금을 사는게 더 중요하겠지.
거부 개성상인 전처만의 장손녀로 태어난 태임, 그리고 그의 남편 종상, 그들의 딸 여란과 아들 경우, 그리고 대를 이어 이들과 얽히는 박승재. 그리고 태임의 이부 동생 태남이의 이야기다. 그들이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어내는 이야기다.
계급제도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질서와 변화가 도래하는 그 시기에 사람들이 아, 이렇게 변해가는 거구나,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난 그 모습을 읽어 나가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유리한 조건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타고난 그릇들이 있는 것 같다. 그 그릇을 각자 살아가면서 조금 모자라거나 아님 넘치게 부어 나갈 뿐 그릇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태임의 미망은 무엇이었을까? 종상의? 경우의? 여란의? 승재의? 태남의 아들 경국의 미망은 무엇이었을까?
태임의 미망은? 어린 종상.
어린 종상의 의미는? 악착같이 뭔가를 쫓아 가는 것. 무엇을? 자존심? 민족의식?
미망이 미망일 수 있는 건.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승재는 그것이 자신에게 없는 것이라고 중요했고, 태임에겐 그것이 옳기에 중요했다? 그러고보니 태임의 미망이 어느새 자신의 꿈에서 종상의 어린 시절에 대한 미망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태임이 마지막에 종상을 떠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태임은 어린시절 할아버지로부터 허난설헌과 같은 뛰어난 여자로 살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 세상이 여자로서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으나 결국 그 한계를 뛰어 넘는다는 것이 이부 동생 태남에 대한 애착 혹은 집착으로 밖에 되지 않았다. 태임이 자신의 인생 속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여란 역시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했으나 결국 상철과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개척의 여정을 끝낸다.
여자들에게는 민족이 중요했다. 그래서 태임은 어린 종상을 잊지 못했고, 태남을 지원했고, 여란은 상철에게 실망했던 것이다. 왜 그들 스스로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스스로 행하는 것이,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나의 미망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