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깨끗이 난 책읽기가 좋아
강무홍 글, 정순희 그림 / 비룡소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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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창>-정아 이야기 

<좀 더 깨끗이>-용이 이야기 

<기적>-봉주 이야기 

세 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정아의 창이야기. 창호지 바른 물에 작은 유리로 만든 뙤창. 난 알겠는데 우리 아이들은 좀 고개를 갸웃거릴것 같다. 먼데 일 다니는 아빠와 놀고 싶은 아이. 한 겨울 창호지 바른 문에 뜨개질에 바쁜 엄마, 뜨뜻한 방바닥, 시린 얼굴, 바람소리, 발자국 소리, 옛날엔 그렇게 안과 밖의 구분이 덜했던 듯 싶다. 그래서 마음도 더 열렸으려나? 창호지 바른 문이 달린 방에 바람소리, 발자국 소리 귀 기울여 가며, 지글지글 방바닥에 이불 뒤집어 쓰고 뒹굴뒹굴 해 본적이 있는 어른들이 도 좋아라 할 것 같은 이야기다.  

 용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요즘) 아이들이 제일 공감할 듯 하다. '좀 더 깨끗이' 때문에 좌절하는 용이. 난 아무 설명 없이 글씨가 아니라 그림 때문이라고 이야기 해 주지 않은 선생님 때문에 분노한다. 그 이야기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모든 사람들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유만 알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선생님, 다음 부터는 꼭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왜 그랬는지. 

봉주 이야기는 고개가 갸웃 거려 진다. 물건이 너무 흔한 요즘 아이들이 옥스포드 천으로 엄마가 만들어준 방석이 그리도 귀하고 자랑스러운지 공감할 수 있을까? 뙤창처럼 경험과 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맥락상 충분히 이해가 간다면 공감도 되겠지만..... 봉주 성격으로 본다면 대 놓고 자랑도 못하는 누군가 그저 먼저 알아 주길 바라는 소극적인 성격이다. 소극적인 봉주가 바깥조회시간에 모두가 다 보는 앞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어가며 방석을 들고 서 있을 때, 봉봉봉, 기쁨이 퍼져 나갔을까? 좀 더 양가적이었을 것 같다. 마냥 기쁘기보다는 부끄러우면서도 살짜기 기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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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곰에게 뽀뽀를 난 책읽기가 좋아
엘세 홀메룬 미나릭 글, 모리스 샌닥 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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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를 이렇게 전할 수 있구나... 뽀뽀를 전한다는 생각이 재미있다. 거기다가 연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들... 글작가 미나릭에 대한 소개는 없고 그림작가 모리스 샌닥에 대한 소개만 있다. 둘이 꽤 여러 작품을 함께 했던데, 둘은 어떤 사이였을까? 일반적인 그림책 보다는 작은 사이즈. 그래서 그림이 조금은 비중이 작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섬세하지만 스토리를 반영하는데 더 비중을 둔 듯.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처럼 그림이 스토리를 주도하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달라서 이다. 모리스 샌닥은 전작들에서 글과 그림 모두를 결합하는데 발군의 실력을 보였는데 이렇게 그림만 그리는 걸 한작가와 여러 권에 걸쳐 작업했다면 그만큼 글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 귀여운 동물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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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곰 난 책읽기가 좋아
엘세 홀메룬 미나릭 글, 모리스 샌닥 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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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입지? 생일 수프. 달나라에 간 꼬마곰. 꼬마곰의 소원.  

네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꼬마 곰은 그냥 대여섯살의 어린아이. 근데 곰이다.  

뭔가를 계속 요구하지만 의외로 단순한 데에서 풀리는 아이. 

스스로 뭔가를 하려는 아이. 

재미있는 놀이를 계속 생각해 내는 아이. 놀이 세계에 빠져 있는 듯 하다가도 놀이와 현실의 경계에서 능청맞게 모든 걸 다 알면서 모른척 하는 아이. 

자신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 

이 아이 옆에는 언제나 아이에게 박자를 맞춰주고, 아이를 기다려주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나 휘둘리지 않는 엄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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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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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죽 읽고 나서 책장을 덮으니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난다. 그 영화에 나왔던 그 강의 이미지, 그 영화에 나왔던 왼손잡이 동생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참 잔잔하다. 그냥 물흐르듯, 감정의 꾸밈도, 내세움도 없이 아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하며 잔잔히 고개 끄덕이게 만든다.

 할아버지가 리버보이였던 것이 웬 유체이탈, 마지막 가면서 왜 굳이 손녀더러 함께 가자고 한 건지, 우리 식으로 하면 이거 같이 저승 가자는 얘기 아냐, 하며 솔직히 저항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 강의 비유는 참 맘에 든다.

 인생이 그런거지. 태어나 한평생 구불 구불 흐르다가 결국 끝나는 것. 요즘 들어 인생에 달리 뭐 그리 대단한 건 없다 싶다. 그냥 각자 자신의 그릇을 갖고 태어나 그 그릇대로 살다가 떠나는 것. 

 또하나, 주인공이 리버보이를 비밀로 남기는 그 대목. 성장의 단계에 비밀을 간직하는 건 거의 필수적인 통과제의다.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왜 성장과 직결되는 것일까? 남과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 것이기에? 성장이란 결국 자신만의 세계를 일구어 나가는 것?

 비밀의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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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내 동생
빌리 슈에즈만 지음, 김서정 옮김, 민은경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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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나 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리며 미간을 좁히며 눈물을 참아야 했는지 모릅니다. 9살 나이에 세상을 뜨게된 벤야민, 벤야민의 죽음은 모두에게 너무나 갑작스럽습니다. 죽은 벤야민 자신조차도 자신의 죽음이 낯설면서 한편으로는 자연스럽습니다. 몸은 낯선 곳에 누워 있지만 영혼은 여전히 이전의 자신의 공간을 떠나지 않고 있으니까요.

사후세계는 어떨까? <타나토노트>에서는 누구나 한번 가면 또 가고 싶은 매혹적인 곳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과연 그럴까? 예전에는 사후 세계 같은 건 절대 없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습니다. 엄마의 영혼이 내 옆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벤야민의 이야기가 더욱 슬프고 더욱 절절합니다. 떠난 이를 사랑하지만 남은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삶을 꾸려 갈 수 밖에 없는 것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투명해진 뒤의 벤야민은 어떻게 될까요?

뭔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되 그 슬픔 때문에 너의 현재의 생활을 망치지 말아라. 먼저 떠난 사람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슬프다는 이유로, 떠난 사람이 그립다는 이유로 그저 넋놓고 사는 것을 그 어떤 영혼도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너무 빨리 잊는 것은 슬픕니다.

떠나고 남는 것, 그것은 시간차이일 뿐입니다. 나도 가고, 이 글을읽는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떠납니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가게 될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난 사람들은 그 길에 대해 두려움이 적어 집니다. 떠나는 것이 어쩌면 또 다른 만남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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