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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말대로 진짜 몇푼 안 되는 돈 달랑 들고 '대책없이' 유학이란 걸 떠나 왔을 때...잘 갔다 오라는 지인들의 격려 뒤에 숨은.. 과연 쟤네가 잘 해내고 올까.. 하는 걱정반 호기심 반 섞인 그들의 마음들을 모르지 않았었다. 허긴 그럴만도 할만큼 우리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으니까.

전세자금에서 남편 졸업작품 영화 찍고 남은 돈 달랑 들고 이곳에 왔을 때...우린 공부 다 마치기 전엔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맘이었다. 만에 하나 조교자리가 없으면 '뭐라도' 한다 굳게 맘먹고 왔으니까. 그런 우리한테 제대로 된 가구나 살림 살이를 돈주고 산다는건  거의 '사치'로 여겨졌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동네는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주에 있는 시골 주립대학이었다. 거기 도착했던 첫날이 기억난다. 배정받은 학교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 아니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대부분의 학교 아파트엔 다 있다는 냉장고와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오븐이 갖춰져 있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 당연한 것들인데 우린 그것만으로도 감사해했었다. 그것말고는 카펫도 안 깔린 휭한 거실 맨바닥에 아무 것도 없던 우린 며칠동안을 그렇게 차가운 바닥에 앉아 라면박스를 엎어 밥상으로 삼고 그 위에서 밥을 먹었다. 엠티온것마냥 들떠하면서 말이다.  

더군다나 운이 좋았던 건 그 즈음에 공부 다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 가족이 있어 그분들이 쓰시던 카펫, TV, 소파, 부엌 살림살이 등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는거다. 그렇게 살림을 물려주는 그림은 유학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차피 공부하러 잠시 머무는 뜨내기 삶들인지라 그렇게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게. 비록 오래 쓰시던 물건들이라 대부분이 많이 낡긴 했었지만..한국서 갖고 온 압력밥솥이랑 우리 세식구 수저랑 밥그릇이 전부였던 우리한테 그분들이 넘겨주고 간 살림살이는 한동안 너무 유용했음은 물론이다. 해서 그분들한테 감사한 마음을 늘 갖고 있던 우린 그분들이 공부하시면서 몸담고 계시던 한국 교회 식구들중에 아이가 있는 한집을 택해서 우리 아들이 작아서 못 입지만 그래도 쓸만한 옷가지들을 챙겨 주는 것으로 그때 받았던 고마운 맘을 표현했지만 정작 그 옷들을 드린 분들에게 이런 우리의 속내를 얘기한 적이 별로 없던터라 철이 바뀔 때마다 훌쩍 훌쩍 크는 아들의 옷들중에 입을 만한 것들을 챙겨서 갖다 드리는 이유를 그분들은 모르셨을게다. 

그곳은 풍족하지 않은 유학생들끼리 모여사는 곳이라 누가 이사를 가거나 한국에 들어갈 때 쓰던 살림살이나 가구들을 남은 이들한테 물려주거나 헐값에 팔곤 한다. 물론 가난한 학생들만 있지는 않다. 형편이 되서 좋은 가구 놓고 살다가 한국에 들어갈 때 다 싣고 가는 이들도 있으니까. 만일 쓸만한 살림인데 마땅히 줄 상대가 없을 때엔 쓰레기통옆에다 슬쩍 내다놓으면  필요한 누군가가 들고 가곤 한다. 지금이야 웬만한 것들은 다 있는데도 가끔 쓰레기통 옆을 지나칠라치면 주변에 나와있는 가구들을..굳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살펴보는 버릇은 여전하다. 그건 아마도 첫해 산책을 핑계로 열심히 동네 한바퀴를 돌아다니며 쓸만한 물건들이 나와있지 않나 탐색하던 그때의 버릇탓이다. 물론 제대로 된 물건을 찾는게 쉽진 않지만..그래도 운좋으면 제법 쓸만한 것들을 주워 쓸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이런 융통성(?)은 생각하지도 못 했을게다. 그게 다 거기서 배운 살아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돈을 주고 산 것 물건중에 제일 비싼 품목이 바로 '침대'다. 지금도 아주 잘 쓰고 있는. 그곳에 도착한 첫날 우리를 마중왔던 후배, 우리보다 그곳에 4년정도 먼저 와서 공부하고 있던, 다른 건 몰라도 침대는 괜찮은 걸 사야 한다는 그 후배의 충고대로 그때 거금 400불 가까이 주고 장만한 게 침대였으니까. 그게 500불 주고 넘겨받은 중고 자동차 다음으로 가장 큰돈(?)을 주고 산 살림이였다. 

초창기, 우리 세식구는 살림살이를 장만하러 틈틈이 동네 야드세일(Yard Sale)을 찾아다녔었다. 그덕에 두살배기였던 아들의 장난감이랑 비디오 테잎이나  마이크로 웨이브, 수납장, 의자같은 살림살이들을 아주 헐값에 장만할 수 있었다. Yard Sale을 그렇게 부지런히 찾아다닌 것은 물건 사는 재미보다도 기실 이네들이 판다고 내놓은 이런 저런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탓도 있다. 처음엔 차가 없었던 관계로 주변 아는 사람들, 특히 후배한테 적쟎은 민폐를 끼치긴 했지만...그 재미로 아침마다 부지런을 떨면서 찾아 다녔었다. 아침에 일찍 가야 그나마 살 물건도 구경할 물건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는 한동안 야드세일 대신 Good Will이라는 중고품 가게를 자주 갔었다. 대부분 개인들의 기부(Donation)한 물건들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팔던. 우린 그곳의 단골이었다.

8년을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참으로 많은 지인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몇몇은 졸업후 직장을 잡거나 다른 주에서 남은 공부를 계속한다고 다른 주로 떠나거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네들은 떠나면서 우리집 공간엔 그들이 넘겨주고 간 살람살이들이 하나 둘 채워져갔다. 해서 그곳을 떠나올 때 즈음 휭하니 텅 비어있던 우리집은 그네들이 남기곤 간 것들과 우리가 야금 야금 사들인 살림살이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런 살림들에 우리는 또 다른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맺었던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로써 말이다.  

한동안 유용하게 썼던 허나 몇년 후에 폐차장으로 보내졌던 니싼 스포츠 차, 아들이 좋아하던 감았다가 떴다 하던 라이트가 달린 그 차랑 의자, 라운드 테이블, 서랍장은 먼저 한국으로 들어간, 지금은 모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후배들을 떠올리게 하고

TV, VTR, 철제 수납서랍은 락을 좋아하는 남편과 절친했던 동생을, 아들이 좋아하는 물감, 색연필등의 문방구, 책상, 스탠드, 의자는 일본 친구를, 장식장과 촛대는 지금 한국에서 강의 하고 있는 덩치좋은 미국 친구를, 책장이랑 하얀색 테이블, 예준이 눈썰매는 한국에서 결혼했다는 한 친구를, 세탁기, 빨래건조대, 부엌살림들은 우리 아랫집에 살던 부산내기 갑장 친구를, 식탁 테이블이랑 지금 깔고 있는 카펫, 플레이스테이션은 루지애나로 이사간 남편 선배 가족들을 , 식탁 의자, 밥통, 장식 선반, 그리고 여름에 펼쳐놓곤 하던 커다란 파라솔(?)은 금속공예가 전공이던 예술쟁이 부부를, 컴퓨터와 아들이 좋아하는 파워레인저가 그려진 큰 타올은 별명이 우리집 딸이라는 씩씩한 처자를, 아들 공부하는 책상이랑 소파는 지금도 우리곁에 있는 두딸을 키우고 있는 씩씩한 젊은 엄마를, 거실에 있는 또 하나의 체크 무늬 소파랑 오디오는 엘에로 이사가 결혼한 한 커플을, 그리고 지금은 한 아기의 아빠 엄마가  된 친구들은 우리집 낡은 TV 장식장을 업그레이드 시켜놓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들 대부분은 언젠가..한국에 돌아가면 결국 만나야 할.. 여기서 맺은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네들이 남기고 떠난 물건들에 눈길이 머물 때마다..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그리고 여기서 함께 했던 즐거운 혹은 마음 아팠던 순간들까지 딸려 생각나게 한다.  주머니는 비록 얄팍하지만 그런 소중한 인연들이 많아 마음은 늘 부자라고 얘기하는 남편말 처럼 가난한 유학생이기에 겪게 되는 흔치 않은..따스한 경험임엔 분명하다. 먼후일에도....이런 그림들은 선명하게 우리의 추억속에 남겨져 있을게다. 해서 이곳을 떠올릴 때마다 꺼낼 법한... 따뜻한 추억거리들이 배어있는 그 물건들도 같이 떠오를터이니.... 참으로 남다른 경험이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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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의 흑백논리가 한창 극성을 부리고 있던 1950년대 미국은 Joseph McCarthy라는 일개 한 상원의원의 세치혀에 놀아나고 있었다. 미정부기관내에 공산분자가 있다는 그 초선의원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웅성댔으며 언론들은 저마다 설레발을 치며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시작된 이 희대의 마녀사냥은 당시 미국사회가 얼마나 Red Scare를 심하게 앓고 있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이런 비슷한 류의 집단적 광기와 다름 아닌 현상을 McCarthism이라는 부르게 되었으니 McCarthy라는 이 인물이 유일하게 기여(?)한 것은 그런 사회심리현상을 분석하는데 아주 적절한 용어를 제공했다는 것일게다. 이 마녀사냥의 칼날에 미국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희생양으로 바쳐졌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 사냥의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동료들의 공산당원 전력을 깨발겨야만 했던 해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할 수 밖에 없게 했던 비인간적인 사냥 방법탓이었다. 그런 폭풍우속에서 찰리 채프린은 미국을 등졌고 그 당시 동료를 밀고했던 이들은 동료를 팔아먹은 배신자라는 낙인으로 평생을 고개숙인 채 살아가야  했다. 기실 그런 와중에 양심을 지켜내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이 마녀사냥을 미국이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은 비단 그 원흉이 McCarthy라는 일개 또라이만이 아닌 그런 지경까지 몰고갔던 그 당시에 팽배했던 그네들의 집단적 광기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게다. 이 말도 안되는 마녀 사냥쇼에 언론이 아주 제.대.로.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 마녀 사냥꾼이 주도했던 비열한 굿판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저널리스트의 이상적인 아이콘으로 회자되고 있는 Edward R. Murrow라는 한 저널리스트와 Murrow's boys들이라 불리우는 그와 방송일을 같이 하던 동료들의 용기있는 비판 덕이었다.
  

그 당시 ED는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주로 다루던 CBS의 간판 뉴스쇼인 'See  It Now'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의 단짝인 Producer Fred W. Friendly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되고 있었던 McCarthy의 무분별한 마냥사냥에 제동을 건다. 그 발단은 신문에서 다뤄진 한 사건이었다. 한때 공산당원 모임에 연루된 적이 있었던 공군 장교의 그 과거 전력을 문제삼아 공군당국이 사상검증이라는 이유로 퇴역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군당국의 결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불거져 나온 ED와 그 동료들의 용기있는 비판은 억울하게 퇴역당했던 그 공군장교를 복직시키게 되었고 그동안 McCarthy의 칼날에 다치지 않으려고 저마다 숨죽이고 있던 양심의 목소리들이 그들의 비판에 힘을 실어주면서 결국 이 집단에로 벌이던 광기 쇼는 5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라는 빨간 딱지에 대한 지나친 경계가 이렇게 한 사회의 모든 뇌관을 마비시킬 만큼 강력했던게 불과 50여년전 이었다니 그리 먼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정치사에서 큰 오점으로 여겨지는 이 이야기를 새삼스레 영화의 화두로 들고 온 이는 다름아닌 잘 나가는 헐리우드 배우 George Clooney다. 그동안 헐리우드 배우중에서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전이 갖는 무모함과 전쟁으로 뭉개지는 인권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그의 정치색으로 미뤄 보건대 아마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당시 부시의 전쟁놀이 정당화를 위한 나팔수로써 부화뇌동하고 있는 미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확하게 짚어내고 비판하고 싶었던 속내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공산주의자면 전후사정에 대한 고려없이 무조건 적이라고 판단해 버리던 흑백논리가 판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빗대려는 듯 George는 흑백 톤의 영상으로 아주 군살없이 담백하게 담아낸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타리를 보고 난 느낌이다. 군데 군데 집어넣은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그 딱딱함을 누그러뜨리면서.그 재즈의 노랫말조차 흘려버리면 안 될 것같은 기분이 들만큼 하나 하나 귀 기울기에 했던 진지하기 그지없는 이 영화의 분위기에는 캐릭터들의 명암이 잘 드러나는 흑백 톤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싶다. 칼라로 찍었더라면 오히려 그 맛이 덜 했을 듯...뉴스 쇼를 마무리할 때 ED가 시청자들한테 던지는 클로징 멘트인 'Good Night and Good Luck'을 제목으로 달은 것은 그건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를 불안한 당시의 회상을 반영하려 한 듯 싶다. 우리말로 의역한다면 '밤새 안녕'정도 될까.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났는데 누군가에 의해 공산분자로 밀고되어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던 그 당시를 살아내던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의미심장한 인사로 들린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이전에 사회 심리학 수업에서 들었던 한 실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건 사람들의 '집단 심리'에 대한 실험이었는데 실험자는 비슷한 길이의 끈 몇개와 한눈에 봐도 길이가 짧은 끈 한개를 놓고는 실험 대상자들한테 보여줬다고 한다. 그 실험 대상자들은 한명만 제외하고는
이 실험의 의도를 알고 있는 연구원들이었다고 하니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딱 한명을 위한 실험이었던 셈이다. 그 여러개의 끈들을 보여주면서 어느 끈이 가장 짧아 보이냐는 간단한 질문이었고 이때 미리 입을 맞춘 다른 실험대상자 즉 연구원들 모두가 짧은 끈 대신 비슷한 길이의 끈들을 가리켰을 때 딱 한명의 진짜 실험대상자의 반응을 보려는 실험이었다. 헌데 그 결과가 참 씁쓸하게 재밌다. 누가 봐도 길이가 다른 끈들에 비해 짧았던 것을 가리키는 대신 80% 이상이 고만 고만한 길이의 끈을 가르킴으로써 다수의 의견을 쫓았다고 하니. 그 결과를 일반화시키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이 간단한 실험이 눈에 보이는 분명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의견에 거스리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사람들의 사회 심리를 보여주는 듯 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만의 판단을 접고 지배적인 의견을 쫓는 우리들의 유약한 심리말이다. 기실 여러 명이 한명을 바보 만들기는 아주 쉽다. 허나 중국집에 가서 남들 다 짜장하는데 혼자서 짬뽕을 달라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더군다나 그게 자신의 사상검증과 관련된 말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라면 혼자서 용감하게 짬뽕을 외치기는 더 더욱 쉽지 않은 법이다. 사회 전체가 집단몰이로 반공을 국시로 외쳐대던 그 때 웬만한 용기와 각오 아니면 그런 양심의 목소리를 내기란 목숨을 걸어야 했을터이니 말이다.  

이 영화 이야기의 대부분은 담배연기 자욱한 CBS Newsroom에서 이루어진다. 그 좁디 좁은 방안에 핵폭탄같은 뉴스를 준비하는 Murrow와 Fred(George Clooney)를 비롯한 Murrow's guys들이 겪을 숨가쁜 작업과 그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허나 언론인의 양심을 걸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총대를 매야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자신들의 판단에 불안해 하는 동료들의 약한 모습도 잡는다. 어찌보면 그건 그들의 양심과 함께 여지껏 받쳐온 저널리스트로서의 생명을 거는 일생 일대의 도박판과 다름없어 보이기 때문이다.만일 자신의 목소리가 저 거대한 지배 논리에 묻혀져 버린다면 혹여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게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들의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초록은 동색이라고 여지없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들의 동료인 Don의 삶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그럼에도 그들은 믿는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리라는 것을. 그러한 믿음은 자기가 딛고 있는 사회가 담보하고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일게다.

기실 이런식의 언론 조작을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도 그쪽으로는 남다르게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는 정부를 둔적이 있니 말이다. 언젠가 그 수업의 term paper 주제로 한국 언론들이 서로 암묵적으로 짜고 조작했던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군사 정부와 언론은 물론 제도권 교육에 의해 어떻게 확산되고 강화되었는지에 대해 썼던 적이 있었다. 그건 뒤늦게 이승복이라는 어린이가 외쳤다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가 조선일보가 만들어낸 조작된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를 사실 확인 없이 당시에 내노라하는 신문사들이 덩달아 춤을 춰댔다는 한 신문의 기사를 읽은 후였을게다. 그 기사는 무척 충격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듣고 자란 나같은 세대한테는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한 언론사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실화인양 미화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학교마다 운동장에 이승복 어린이 동상을 세우고 때가 되면 이승복 어린이 기념 글짓기 대회나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 나라의 언론과 교육이 한 통속이 되어 국민을 기만한 아주 희대의 사기극이다. 그 조작된 이야기는 반공교육에 아주 적절하게 이용된 셈이다. 나 역시 뭣모르고 그 대회에 나가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려 쪼간한 상 받고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림들을 떠올리니 참으로 입맛이 쓰고 기가 막혔다. 기억난다. 그때 우리가 포스터에 그렸던 공산당들은 하나같이 괴물의 형상이었다. 북한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괴뢰'라고 듣고 배우며 자랐으니까. 이곳에 와서 남편과 나는 우리보다 연배가 한참이나 어린 친구들의 입에서 '북한 괴뢰'라는 표현을 듣고 참 씁쓸해 했던 적이 있었다. 언론과 국가, 교육이 짜고 치는 그 판에서 보고 듣고 자라 온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싶으면서도 말이다. 헌데 만일 그때 누군가가 그 진실의 전모를 알고 있었을 그 누군가가 사실을 폭로했더라면...하고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가.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내심 부러웠다. 그래도 살아있는 양심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 소리에 힘을 모아 실어줄 수 있는 이들의 사회가 우리의 것보다는 훨씬 민주적인 그네들의 분위기가. 
 

ED를 연기한 David Strathairn은 그의 외모가 실제 Murrow와 비슷한 지 여부를 떠나 힘있고 굵은 선의 연기가 Murrow의 분위기를 제대로 잘 살려주고 있는 듯 하다. 자기가 만든 영화여서 웬만하면 자기가 ED역 욕심이 났을 법도 한데 George Clooney는 한발 물러서 있는 ED의 동반자 Fred Friendly를 연기했는데 아주 잘 한 선택인 듯 싶다. 그의 행적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미국 역대 저널리스트들중에서 본 받을 만한 언론인 상으로 꼽힌다는 Edward R. Murrow가 말했던 이 대목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해서 그의 어록을 뒤적여 올려본다. " If none of us ever read a book that was "dangerous," had a friend who was "differen," or joined an organization that advocated "change," we would all be just the kind of people Joe McCarthy wants." 물론 George Clooney의 의도와 상관없이 순진한 도덕 교과서같은 냄새가 나는 영화긴 하다. 그건 언론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파수꾼(gatekeeper)이라 던가 우리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기제로 역할 한다고 믿을 만큼 순진한 이가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걸보니. 그럼에도 부인 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언론의 최소한의 정기능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품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직은 언론이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세상의 구석 구석을 보여주는 세상을 향한 창구(window)로써의 역할한다는데 이의가 없으니 말이다. 그만큼 언론은 이제 우리한테 '필요악'인 셈이다. ED는 만일 TV(미디어)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즐겁게 하는데만 열심이고 현실로부터 단절시킨다면 말그대로 하나의 바보 상자로 남을 게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허나 그것에 대해선 회의가 먼저 생긴다. 과연.....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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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이 두 남정네간의 사랑을 그렸다는 이안의 'Brokeback Mountain'한테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국이 갖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잣대가 우리의 것 보다는 그 눈금이 훨씬 관대해서 그런가 '동성애'라는 소재보다는 최초로 동양인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아카데미의 변화에 더 관심을 보내는 듯 하나 그때 난 동양사람이 찍은 '동성애'영화란 대목에 더 흥미로워했다. 아마도 그때 우리나라 영화의 분위기 탓이었을게다. 논란의 여지가 늘 수북함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는 몇꺼풀이나 단단한 보수의 벽을 덮고 있는 한국에서 '왕의 남자'가 흥행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동성애' 코드가 조금씩 먹혀드는 걸까..하는 섣부를 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그냥 일시적인 붐인지는 이 영화로 힘받은 이후 영화들이 동성애를 담론으로 내세우고 뛰어들었을 때 그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대접을 보면 그게 일회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더 분명해 질 테지만. 허나 불과 몇년전 만해도..왕가위의 '해피 투게더'(1998)가 "국민정서에 反한다"는 되도 않는 정부의 딴지걸기로 수입이 되네 안되네..시끄러웠던 것을 기억하기에 설사 일시적이라고 해도 상당한 변화임에는 분명했다.  

그런 동성애 영화에 대한 소문들을 접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혹자는 이 영화를 '저주 받은 동성애'영화라고 한다.  그건 아마도 동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지금에 비해 동성애라는 코드를 받아들이기엔 준비가 안되었을 너무 이른 시기에 발표되어 흥행의 된서리를 맞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고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주제를 더욱 칙칙하고 무겁게 다룬 탓일 수도 있을게다. 완곡어법으로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는 해서 동성애 영화라고 보기엔 그 강도(?)가 그닥 세지않은 '왕의 남자'에 비해 이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두 남자의 솔직한 사랑 이야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린 동성애하면 우선 性적인 것 부터 떠올린다. 어떻게..남자끼리..여자끼리...그럴 수 있냐며 본능적으로 도덕적이냐 아니냐라는 시비의 잣대를 들이댄다.어떤 이는 그건 태초에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빚으신 하나님의 섭리에도 어긋나며 말세의 불길한 징조라고도 혀를 차는 이도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왕따 당해왔던  그들의 사랑도 우리들이 하고 있는 여느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제일 맘에 드는 점은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색칠하거나 관객의 비위(!)를 고려해서 들춰내기 거북스런 부분들을 은근 슬쩍 덮고 넘어가는 미덕(?)과는 거리가 먼..동성애 영화라고 하면서 다수와는 다른 그들의 '사랑'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다 빼버린 껍데기만 보여주는 내보기엔 적어도 그런 입에 발린 짓을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대신 감독은 부담스러우리만치 솔직하게 때론 거북하리만치 노골적이다 싶은 그림들로 두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대식(황정민)은 아내와 가족이 있는 제대로 된 집을 두고  거리의 부랑자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라는 견고한 테두리에서 터부시되는 남들과 다.른. 사랑으로 인해 아빠인 줄 알면서도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들과 더 이상 찾지 말라고 다짐하는 아내의 덤덤한 포기에 흐느낀다. 그와 석원(정찬) 사이를 비집고 좋아한다고 들이대는 술집 처자 일주(서진)와의 쉽게(!) 갈 수 있는 이성애 사랑의 가능성은 애초에 저만치 밀어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음에도 사회에서 허용된 사랑이 주는 온갖 특혜(!)도 포기한채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대식의 사랑을 보면서 궁금했다. 과연 동성애의 시작은 어떨까...대식처럼 처음부터 남자를 사랑하지는 않았으리라..혹 처음엔 모두가 우정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그러다 어느날 자기가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혹시 그 규정에 자기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타고 난 것 이라기보다는 그냥 스스로에 대한 암시 아닐까..하는. 이런 내 궁금증의 전제는  동성애가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기 보다는 후천척으로 '만들어졌다'는데서 출발하는 걸 보면 나 역시 그들의 사랑을 보는 시선에 편견과 호기심 위주였던 게다. 다만 심정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그 시작이 타고난 것에서 비롯된 것이든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그게 나라면 그런 남들과의 다.른. 사랑을 위해 대식처럼 서른 중반 넘게 살아온 그간의 삶을 내치지는 못했을 거라는거다. 그처럼 기실 이 영화에서 담아내고 있는 동성애자의 감성선을 따라 잡기란 쉽지 않다. 허나 이 영화는 아내와 가족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는 대식의 삶과 석원을 향한 변하지 않는 그의 사랑이 그에겐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타고난 운명이라는 공감을 끌어낸다.

허긴 어찌보면 사랑의 대상이나 방법에 사회의 테두리에서 허용되고 안된다는 기준이 있다는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긴 하다. 그건 이제껏 우리한테 익숙했던 통념에서 어긋나지 않는 익숙한 코드들이라는 것 말고 그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사회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만을 정상(normal)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간의 사랑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동성애 애인이 없는걸 부끄러워했었다니...혹 미래 언젠가..엔 대식의 사랑이 평범한 사랑의 유형이 될 수도 있잖을까. 동성간의 사랑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아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 왔을 유교적인 도덕관이나 동성애를 말세의 증후군으로 꼽고 있는 울 오마니의 기독교 시각, 거기다 에이즈라는 세기말 병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등이 마구 엉켜있어 기실 그런 편견을 거둬내기란 쉽지 않다. 허나 김인식은 영화로 그런 우리의 편견을 향해 한 소리를 내고 있다. 견고하고 두꺼운 보수와 도덕의 벽에 대고. 사회가 그어놓은 금 밖의 사랑 역시 금 안에 있는 우리들의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아니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금단의 사랑이 짊어지고 가는 천형으로  더 절절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큰 즐거움은 거칠지만 우직한 대식을 연기하는 황정민을 보는 데 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해서 아내와 아들까지 버리고 산을 떠나 노숙을 하며 떠도는 산 사나이 대식을 그는 제.대.로 보여준다. 이후 그가 맡았던 여느 캐릭터들보다도 황정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긴머리의 대식이다. 정찬 역시 처음엔 여느 사람처럼 동성애에 대해 완강하게 거부하던 남자가 한결같은 남자의 낯선 사랑이 버거워 갈등하는 석원의 역할에 아주 적격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누군가 영화 만드는데 드는 돈을 대고 누군가 그 영화를 극장에 걸었다는 것만로도 충분히 놀라워했었다. 너무 심하게 뒷북인지 몰라도. '저주받은 동성애'영화라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만일 조금 더 늦게 관객을 만났다면 관객들의 거부감이 조금은 덜 하지 않았을까..싶어 아쉬울 뿐이다.   

*2006년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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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살던 중부에서 살면서 오년 넘게 일주일에 삼일을 교회에서 만난 가까이 지내던 집사님 내외가 운영하시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죽 제품을 팔면서 구두와 가죽옷등을 수선하는 가게였다. 학교다니던 시절, 가정 가사 시간이랑 그리도 안 친했건만, 가정 가사가 오죽이나 하기 싫었으면 대입때 가정 가사 대신 제2 외국어 일본어를 선택했을 정도로 싫어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했던 몸이 어쩌다 보니 남의 나라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단추를 다는 수선 아르바이를 하게 된게다. 그런 거랑 거리가 먼 이몸을 당신들 가게에서 일하게 해주신 건 우리의 얇은 주머니 사정을 익히 아신 집사님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래도 집사님 두분이 교통사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런 수선일은 내몫이 아니었다. 그런 거에 별로 소질이 없는 걸 잘 아시는터라 내 할일은 가죽 제품을 팔고 수선이 된 물건을 찾으로 온 손님한테 돈을 받고 내어주는 게 다였다. 그러다 교통사고로 두분이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난 후 그분들 딸이 가게를 운영하게 되면서 부터 이전엔 두분이서 하시던 수선일을 혼자 도 맡아야 하는 그 친구한테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어 야금 야금 수선에 손을 대다 보니 어느새 가죽 재봉틀에 앉아 틀을 밟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단추달기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가 만난 손님들은 두 부류였다. 스피드를 즐기는 거칠지만 낭만적인 바이커 족 일명 폭주족과 새것을 사기보다 있는 것을 고쳐서 쓰는 알뜰 수선족.  

폭주족들이 주 단골 손님이었던 까닭은 그 가게에서 팔던 가죽제품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바이크(Bike)를 타는 이들을 타켓으로 한 제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늘 가게 앞은 차 한대 값보다 더 비싸다는 유명 브랜드의 폼나는 오토바이(여기선 바이크라고 부른다)들이 자동차 대신 즐비하게 주차해있었고 그 바이크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가죽 점퍼에서부터 챞(Chap)이라고 부르는 바지위에 덧입는 가죽 바지, 손목까지 덮는 장갑에 벽돌무게같이 묵직한 부츠랑 모자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죽을 두르고 싶어한다. 그 가게가 작은 규모임에도 그런대로 실하게 운영될 수 있었던 까닭은 폭주족이라면 누구나 사고 싶어하는 허나 너무 비싸서 못사는 바이커들 제품의 최고 유명 브래드인 할리 데이빗슨 (Harley Davidson) 제품 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대비 품질도 그리 나쁘지 않아 경제적인 가격에 나름 멋진 폭주족 세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에 특별히 광고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 바이크 매니아들이 주 고객층이었다.

폭주족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문제의 청소년이나 거리의 무법자들인 젊은 친구들이 아닌 내가 만난 폭주족들은 대부분이 연세가 제법 지긋하신 분들이 더 많았다. 걔중엔 스피드를 즐기기엔 너무나 연로해 보이는 분들도 있었고, 너무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아저씨 아줌마들도 있다. 대개 그런 분들은 평상시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에 오토바이를 끌고 멋지고 달리는 취미를 즐기시는 분들이고. 또 다른 한 부류는 한눈에도 가히 범상찮음을 알아 볼 만큼 험한 차림을 한 일명 전문(?) 폭주족들로 많은 분들이 몸 여기 저기에 그림을 그려넣으신 우락 부락한 인상들을 하신 까닥에 처음엔 가까이 하기에 상당히 저어했던 이들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단골 손님들중 한 아저씨는 지긋한 연세에도 불구하고 맨살에 가죽조끼 하나만 걸치고 등과 팔 여기 저기 한 문신들을 뽐내면서 검은 썬그라스까지 쓰고 나타나시곤 했는데 건축업을 하신다는 그 분의 연세는 60. 도저히 그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근육질의 몸이었고 여자친구도 올 때마다 바뀌곤 하던 그 아저씨가 어느날 평일에 정장차림을 하고 나타났을 때는 모두 놀랐었다. 근육질과 문신이 안 보인다고 해서 저리도 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게 놀라워서. 암튼 그분은 올 때마다 한보따리씩 사가는 단골중에 단골이었다. 

한 배짱한다는 나도 처음엔 그런 험한 하드웨어의 분들이 가게에 들어오면 말 붙이기도 조심스러웠다. 허나 얼마 안 되어 알게 되었다. 집사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거칠어 보이는 폭주족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가 의외로 신경쓸일이 별로 없다는 걸. 그건 거친 외모와는 달리 일단 친해지면 친절하고 특히 물건을 살 때도 가타부타 군말없이 말 그대로 화끈하게 한무더기의 물건을 사가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이것 저것 꼼꼼하게 체크 해보고 이것 저것 다 입어보고 나서도 그냥 빈손으로 나가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해서 집사님들이 그러셨다. 그래서 나같이 무뚝뚝한 성격으로도 물건을 팔 수 있는 가게라고. 맞는 말씀이었다. 손님이 들어왔다고 해서 뭘 사갈거냐 이것 저것 골라주는 대신 난 물건 구경하다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고 내 하던 일을 그냥 하곤 했으니까. 어찌보면 불친절한 점원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그네들은 별말없이 그것도 오래 걸리지도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고 나가곤 했으니 나한테는 더없이 제격인 손님들이었던게다. 

그렇다고 손님들한테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별말없이 있다가 도와달라고 하던가 자기가 입은 게 어때보이냐고 의견을 묻는 이들이 있으면 성의껏 대해줬으니까. 해서 어떤 손님은 내가 해주는 몇마디 충고에 혹해서 안 살 물건도 더 샀다며 내 장사수완이 좋다는 남편조차 믿지 않았던 칭찬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건 옷을 다 입고 나온 손님들한테 무조건 잘 어울린다고 하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그건 너한테 별로 안 어울린다고 솔직하게 얘기해주고 다른 대안이 되는 물건이 있으면 권하고 그게 아니면 다른 제품의 카달로그를 보여주고 주문해줄 수 있다고 제안을 하곤 한다. 그런 내 방법이 이네들의 정서에 맞았던 건지 몰라도 대부분이 내 말대로 갈아입어보거나 다른 걸 주문해서 구입하고는 잘 한 선택이었다고 평하는 이들이 많긴 했다. 어느 날은 가죽점퍼가 너무 사고 싶은데 수중에 있는 현찰이 이게 다라면서 지갑 안에 있는 현금을 다 보여주는 손님이 있었다. 계산을 해보니 모자라는 금액이 세금 (여기선 세금이 9.6%) 액수길래 세금을 안 붙이고 그 가격에 물건을 파는 대신 앞으로 필요한 모든 바이크제품은 여기서 사가라는 장담못할 약속을 받고 물건을 판 적이 있었다. 물론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이후로 그 아저씨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듯이 수시로 드나들며 크고 작은 물건을 사가기도 하고 자기의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물건을 팔아주는 단골이 되었다. 친구들한테 날 소개하기를 스윗 비지니스워먼(sweet business woman)이란다. 그렇게 폭주족들한테 바이크제품을 파는 아르바이는 재밌었다. 다른 세계에 사는 이들을 만나는 듯 해서 그곳에서 일하는 해가 거듭될 수록 난 손님들하고 수다를 떠는 재미,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네들이 다녔다는 이곳 저곳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크고 작은 허드렛일이 많은 수선에 비하면.  
 
동창 중에 한국에서 세탁소를 하는 한 친구한테 농담삼아 미국와서 세탁소를 하라는 얘길 했었다. 가죽옷이긴 하지만 단추 하나 달아주고 1불을 받는다고 했더니 요즘 한국 세탁소에서는 단추는 서비스로 그냥 달아주는 거라고 하길래 농반진반으로 그랬었다. 물론 한국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는 피해야한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주로 많이 하는 사업종들로 흑인들을 상대로 하는 뷰티 서플라이(가발을 비롯한 각종 소모품), 세탁소, 수선집, 식료품 등이 있는데 내 보기엔 재료비가 적게 드는 수선의 경우 인건비만 안 든다면 수입이 괜찮은 업종인 듯 싶다. 그건 우리나라처럼 여기 사람들은 바느질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 가사 시간에 놀았던(?) 나도 단추 달 줄을 알건만  여기 사람들은 단추 한 개에 일불씩 내고 달아 달라고 하니 되는 장사가 아닌가. 대신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없는 동네에다 사업을 해야지 수익성이 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보면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으로 번져 동네에 한국사람들이 하는 세탁소가 두 세군데 된다는 한 친구는 셔츠 다림질에 1불도 안 한다고 하기에 하는 소리다. 허니 한국사람도 많이 없고 기존의 수선가게도 별로 없다면 재료비도 적게 드는 수선이 괜찮은 업종이겠다 싶다. 지금 내가 사는 이 동네에선 뷰티서플라이는 한국사람들이 잡고 있는데 비해 수선은 베트남사람들이 잡고 있다. 동네마다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인종들이 다르다고 하니 이 또한 미리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수선집이 잘 되는 이유는 이네들의 알뜰함 때문이다. 가끔 대체 그 가격을 주고 고치느니 새것을 사는게 낫겠다 싶은 낡은 물건들을 갖고 와서 고쳐달라는 이들이 있다. 동네에서 소문난 부자도 유명인사도 수선이 필요한 물건들을 들고 들어온다. 유명한 상원의원 아저씨는 10년도 넘게 신었다는 구두들을 수시로 갖고 오신다. 닳은 굽을 갈아달라고. 색이 바래고 안감이 다 헤질 만큼 오래입은 가죽점퍼의 안감을 새로 달아달라고 갖고 오는 이들도 있다. 그 안감을 다는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우리 가게에서 파는 가죽점퍼 하나 사는게 낫다고 농담삼아 이야기해도 그네들은 그 옷이 자기한테 왜 중요한 가를 한참 설명하고 나서 만만챦은 가격임에도 해달라고 맡기곤 한다. 그런 이들의 검소함은 오래동안 몸에 밴 듯 하다. 수선때문에 일이 많고 가게안도 깨끗하지 않긴 하다. 내가 여기로 이사 온 후 그 딸은 수선을 그만두고 싶어하지만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하고 있다. 일이 많아 피곤하고 힘은 들지만 그런 수선으로 들어오는 푼돈이 꽤 큰 수입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덕에 반찬값을 해결 할 수 있어 우리의 얄팍한 가계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곳에 와서도 그곳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리면 입가에 슬쩍 웃음부터 말린다. 재봉틀을 처음 배워보겠다고 왠지 막해도 티가 안 날 것 같아 보이는 일감을 재봉틀로 들입다 박아대다 결국 잘못 박아 다시 뜯어내야 했던 일 (물론 그 실수 이후로 나의 재봉틀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내 자평), 값비싼 루비똥가방 안감을 원래 제품과 똑같은 감으로 해달라고 맡겼던 한 처자가 수선 된 물건을 보고는 자기 맘에 안 든다고 가방값을 100% 변상해달라고 떼쓴는 통에 변호사까지 오고 가야 했던 일, 특히 토요일 일을 끝내고 나면 온 가족이 그날 받은 주급으로 한국식료품 장을 보고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곤 하던 그림..몇해동안 변함없이 늘 똑같은 메뉴를 시킨 까닭에 어느순간부턴가 우리가 가면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음식을 내어주곤 하던 쥔장 아저씨..허긴 생각나는 그림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지금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힘들었다고 해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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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영화에는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참 많다. 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며 그 뒷맛이 영 '찝찝하다'고들 한다. 그런걸로 치자면 이 영화는 내가 본 그의 영화들 중에서 그 찝찝함의 '초절정'이라고 해도 가히 손색이 없을 듯 하다.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위좋은(?) 이몸도 보고 난 뒷맛이 개운치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난 김기덕의 영화를 즐긴다. 그런 뒷맛이 나쁘지 않다. 대부분 그의 영화가 우울하고 극단적이다 보니 어떤 이들은 그의 영화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향해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냐..저런게 사랑이냐...고 끌탕을 할 만큼 그의 영화에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떡일만한 공감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그의 영화에서 예를 들을 수 있을게다. 그의 영화에서 대부분의 사랑은 '소유'와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이다. 쉽게 말해 한번 찍힌(찍은) 사랑은 반드시 소유(당)해야만 하는 대상이고 종국에 가선 그 사랑은 극단에 이르는 집착으로 표현된다. 때론 남자가 여자한테('나쁜남자', '활'), 때론 여자가 남자한테 ('섬', '시간').

그의 영화에 그려지는 사랑법들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떠나가는 남자를 낚시 바늘로 자학해서 묶어두려 한다거나('섬'), 사랑한다면서 창녀촌에 묶어놓고 지켜본다거나 ('나쁜 남자'), 키워서 잡아먹는(?) 속내('활')로 표현되는 그네들의 사랑법들은 평범한 우리들이 이해하기엔 기형적인 것들이고 보니 그의 이름 뒤에 붙는 세간의 수식어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들이다. 특히 소위 페미티스트라고 분류되는 이들이 그의 영화에 던지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네들의 공통된 지적을 단순화시키자면 그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자들은 단순한 성(욕)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일게다. 이런 지적에 감히 내 얄팍한 생각을 얘기하자면 왜 영화가 굳이 일반적인 공감대를 얻어야만(must) 하는가에 대한 회의에서부터 나 역시 페미니스트적인 생각에 동의함에도 영화를 비롯한 작품에 대한 시각은 조금 다르다. 쉽게 말해 영.화.는 그냥 영.화.라는거다. 영화가 굳이 공통분모의 덕을 그려야 할 필요는 없잖은가. 거기다 특정 사회의 규범이나 관습의 잣대를 들이대고 재단하려 한다면 특유의 뒷맛 찝찝한 영화를 만드는 재주를 타고난 김기덕같은 감독이 설 자리는 현실적으로 거의 없게 될터. 누구나 결론을 예상할 수 있는 권선징악의 도덕 교과서같은 착한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다면 김기덕같이 자기만의 칙칙한 색조로 혹은 장진처럼 특유의 희화적인 말빨로 세상을 그려낼 수 있다면 우린 아주 다양한 영화 메뉴판을 들여다 보면서 풍.성.한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을텐데 하나같이 착하고 개운한 영화만을 봐야 한다는 건 너무 심한 고.문.이다. 모두가 좋아하고 사회통념에서 받아들일 만한 영화만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영화를 해부하려고 드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입맛이 쓰다. 그런 모습에서 옛날의 '대한뉴스'처럼 (아니 요즘도 다시 만들고 있다는 얘기에 뜨악하게 했던)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류의...초지일관 반공과 애국심 모드였던 과거 시절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를 통해 표현된 생각들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짓들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게 장황하지만 간단한 이몸의 얕은 소견이다.  


 
 이 영화는 '야생동물보호구역', '악어', '파란대문'에 이은 그의 네번째 작품일게다. 아니..'수취인 불명'이 먼전가...정확하지 않지만 초반에 만들었다는 이 영화를 본 건 비교적 최근이다.  그때까지 난 이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었다. 제목이 비슷한 다른 영화(송일곤의 '꽃섬')랑 헷갈렸다는 것도 모르고. 보고 나서 역시 이 영화는 다른 영화랑 절대 헷갈릴 수 없는.. 보고 난 그 뒷맛의 찝찝함이 쉽게 가셔질 수 없는 영화임을 알았다. 고립된 공간을 좋아하는 김기덕의 취향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듯 하다. '나쁜남자'에서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유곽이 무대였고 '해안선'의 무대는 철책선 밖의 사회으로 부터 철저하게 단절된 '군대'였고, '빈집'에서는 그들만의 또 다른 세상이었던 '빈집'이었고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에서는 물위에 떠있는 세상에서 격리된 절간이었으니까. 특히 현실에서 뚝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낡은 배'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최근 영화 '활'은  여기 저기 낚시배들이 둥둥 떠있는 이 영화의 주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단절된 공간에서의 삶들 역시 그 공간을 닮았다.  하나같이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사회에서 버려진 밑바닥의...비주류의 삶들이다. 그 삶들이란게 이 영화 '섬'에서는 낚시꾼을 상대로 커피와 몸을 파는 여자의 삶이였고 '봄.여름..'에서는 수행정진이라는 한곳만 응시하며 살려는 한 남자의 것이었고, '빈집'에서는 남의 빈집만 골라서 남의 삶을 자신의 것인양  살아가는 총각이었다. 하나같이 외골수고 폐쇄적인 이 캐릭터들은  외부의 작고 사소한 긁힘에 여지없이 금이 가버리는 면역결핍의 인생들이다. 이 '섬'낚시터 주인인 여자(서정)의 일상은 그곳을 찾은 낚시꾼들한테 음식과 함께 몸을 팔며 살아가는 그냥 '살아지는' 삶이다. 그런 별다를 것 없는 그녀의 일상은 애인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 온 한 남자(김유석)로 인해 달라진다. 그 남자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이 공간의 칙칙한 분위기 만큼이나 집요하고 어둡고 소름끼친다. 특히 낚시바늘이 쓰이는 장면들에 가선 우리가 몰랐던 낚시바늘의 다양한 용도(?)에 놀라게 되고 그 찝찝함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그의 영화가 우릴 불편하게 하는 건 그게 영화임에도 왠지 우리의 이면에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랑이란 이름을 걸고있는 이지러진 집착이나 사이킥하고 변태적인 본능이 숨어있을 것 같고 눈을 돌리면 우리 주변에도 왠지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현실적임에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개연성탓이 아닐까. 재밌는 것은 한편으론 그런 금기시된 본능이나 정상적인 사람들사이에선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해프닝들이 우리의 도덕성을 새삼스레 재무장시킨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끌탕을 하면서도 혹시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얼마나 달랐을까..하는  이런 반응을 혹 김기덕은 예상했을까..그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소재를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 방법도 불편한 구석이 있긴 마찬가지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주절 주절 늘어놓는 대신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말을 최대한 아낀다. 그런 그네들의 화법 이면엔  구태여 그럴 이유가 있냐는 불친절함이 깔려있다. 아니면 단절된 공간에서의 의사소통 기능에 장애를 지닌 듯한 여느 캐릭터들 처럼 이 영화에서 역시 여자(서정)는 몇번의 비명 소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사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 영화는 우울하고 찝찝하기 짝이 없지만 좋았다.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관심이 가는 건 상당히 나른한 톤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을 얘기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숨겨진 이면들을 드러내는 홍상수의 것과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우릴 불편하게 때론 우울하게(!) 하는 김기덕만의 극단적이게 노골적인 화법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거미숲'이나 '녹색의자'에서와는 전혀 다른 서정의 모습과 '가능한 변화들'에서 봤던 김유석을 만날 수 있다. 서정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분위기 탓인지..엊그제 그의 최근작  '시간'을 보고 있자니 국내영화시장에서 밀리고 있다는 김기덕감독이 그 타협점으로 그의 영화 매력인 찝찝함의 수위를 점점 낮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의 어느 작품보다 가장 '김기덕'스러웠던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이 영화를.  

* 2007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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