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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나이'는 또 다른 이름의 이데올로기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나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서열'을 매기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어디에 가면 자기 나이를 한 살이라도 줄이고 싶어하는가 하면 어딜가면 빠른 생일을 운운하며 한살이라도 더 붙일려고 한다. 전자는 젊어지고 싶은 심리일테고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후자의 경우엔 인간관계에서 한살이라도 나이가 적다는 것은 처음부터나이때문에 밀리는게 부당하다는 심리에서 연유한게 아닌게 싶다. 기실 나이에 한해 한해 보태어지면서 '나이값'하고 산다는게 참 어렵다고 절감하는 본인으로서는 왜 그렇게 자기 나이를 부풀리려고 하는지 조금 의아하긴 하다. 농담으로 '나이가 깡패'라고 하지만 기실 밥그릇 순서대로 매길 수 있는 건 태어나는 순서뿐..그 다음부터는 각자의 환경에 맞게 돌아갈 수 도 있고 빨리 갈 수도 있으니 굳이 '나이'를 따지는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을 때도 많다.

공부하러 온 이곳에서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건 이곳 역시 '나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무시할 수 없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내 보기엔 좀 심한 경우도 있다. 그건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살아온 각자의 배경에 대해 서로 잘 모른다는 점과 공부하기 위해 몇년간 머무르다 가면 된다는 한시적인 관계라는 생각탓인지 몰라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중에 가끔 자기의 진짜 나이에 몇해를 보태거나 빼는 이들도 있다. 재밌는 것은 그런 경우의 대부분이 실제 나이보다 많게 보태지 결코 어려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해서 그 나이때문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실제로 이곳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많이 겪어 본 남편은 농반진반으로 나이가 미심쩍은 사람한테 얘기끝에 '민증(?) 까자'며 생년월일이 적힌 신분증을 들이 밀기도 하지만 선뜻 같이 보여주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모른 척 하고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얘기했던 나이보다 신분증에 나온 나이가 왜 더 적은 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쓴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그런 해프닝의 원인이 태어난 순서에서 벗어난 '예외' 에 있다는 것이다. 그건...한국사회의 또 다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옛날말로..'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라는 식의 생각들을 아직도 많이 갖고 있다는데 적쟎이 놀라곤 한다. 하여 똑 같은 나이라 해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선입견이 바로 그 예외의 근거가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자기 나이가 더 어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먼저 결혼했다는 이유로 자기보다 손 윗사람들을 '형'이나 '언니'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거나 심지어 그네들을 손위사람으로 대접해야 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기의 나이에 몇년을 보태기까지 한다. 그건..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상투틀고 쪽지면.. 어른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는..생각탓인게다. 혹은 아무리 자기 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라고 해도 그 남편이 자기 남편보다 어리면 결코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누구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누구 누구 엄마'라고 은근히 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건 자기의 독자적인 관계가 아니라 남편을 통해 관계를 맺는여자들의 경우에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나이 대신 자신이 결혼한 지 몇년 되었고 자기 아이들이 몇살인지 부터 얘기한다. 해서 이곳에는 어떤 이는 진짜 그 사람의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하게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다. 내가 만난 한 친구도 몇년생이냐는 질문에 자기의 진짜 나이를 얘기하는 대신 자기보다 두 서너살 많은 누구를 가리키며 그 집 얘들이랑 자기얘가 동갑이라는 등, 결혼한 지 몇 년 되었다는 식으로 돌려서 대답하는 이도 있다. 동문서답이 따로 없다.

내가 입에다 자주 달고 다니는 말중에 하나가 '태어나는 것만 밥그릇 순서'라는 말이다. 그건 태어난 순서랑 우리네 인생살이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어떤 이는 몇살에 졸업-취직-결혼-출산이란 정해 놓은 흐름대로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정해진 틀과 상관없이 결혼 대신 공부나 일을 선택해서 살거나 나중에 늦깎이로 공부하거나 결혼해서 사는 나같은 뒷북형 인간들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헌데 같은 나이인데도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늦게 했다는 이유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그렇게 하대를 받는다면 아직도 우리의 생각이 상투틀고 쪽을 올려야.. 대접받는 그 시대의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살다보면 다 알게 되는 건 실상 사람관계에서 물리적인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렇게 나이로 인해 엮어지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건 아니 우선시 하다 못해 자기 제조 연월일(?)까지 속이면서까지 인생 선배이고 싶어하는 건 '나이'가 어느새 사람관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버렸다는 의미일게다.  그럼에도 우린 안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친구들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기 마련인 것을. 그네들이 결혼을 언제 했건간에...아이가 몇이냐..얘들 나이가 몇살이냐..여자냐 남자냐도 결국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온...삶의 단계...순서..다시 말해 나이 스물엔 이래야하고..서른엔 어떠해야 한다..결혼 적령기는 언제라는 식의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참...그노무 나이가 뭔지.
남의 나라 땅에 와서도 그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그 뿌리는 징하게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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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인사회의 중심엔 교회가 있다. 특히 유학생들사이에서 한인 교회의 역할은 지대하다. 미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은 제대로 정착하기까지 한인 교회와 그 교회 식구들한테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처음 와서 아파트를 구하고 은행 계좌를 열고 전화나 케이블과 인터넷을 개설하는 등 사는 준비를 하고 살림살이 장만을 위해 여기 저기 들려야 할 곳이 한 두곳이 아니기에 그분들의 도움은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이들한테는 "은혜의 단비"와 다름없다. 해서 한국에선 전혀 교회랑 안 친했던 이들도 그분들의 도움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주일예배를 참석하고 예배후에 늘 제공되는 한국음식으로 차려진 맛난 점심식사까지 같이 하면서 자연스레 어울려 같은 교회의 '믿음의 식구'가 되기 마련이다.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 때 갈 곳없는 이방인들에게 한인교회는 떡국과 송편등 함께 만들어 먹고 한국스러운 놀이들을 하며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터를 제공한다. 다 같이 모여 이방인으로 사는 서러움들을 한국에 대한 그리움들을 그렇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한국 명절 뿐아니라 땡스기빙이나 할로윈 같은 미국 명절이나 휴일에도 미국스러운 음식과 놀이 등을 제공하면서 미국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또한 그 지역의 대부분 한글학교들은 지역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가 일주일에 한번 뿐이긴 하지만 당신 아이들한테 한글을 접하게 해주고 싶은 부모들은 그게 무료든 유료든 한글 프로그램이 있다면 아이 손을 데리고 찾는다. 하여 일단 교회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주일예배에서 만나니 적게는 일주일에 한번 많게는 목장모임이다 수요예배다 해서 일주일에 서너번씩 모이게 되니 이만하면 한인 교회에서 맺는 사람관계가 유학생활에서 맺게 되는 인연들의 중심이 되기 마련이다.

아마 예비 유학생들이 유학생활에 관해 듣게 되는 조언들 중에 하나가 미국에 가면 그동네 한인교회를 찾아라..일게다. 그건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믿음생활말고도 교회를 통해 얻게 되는 부가적인 '득'이 많은 탓이다. 혼자서 심심한 유학생활을 견뎌야 하는 미혼의 청춘들은 교회라는 공간에서 같이 유학생활에서의 힘든 것들을 얘기하고 힘이 되어 줄 만한 또래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데다가 주중엔 햄버거나 시리얼등으로 연명(!)해야 하는 청춘들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서 제공되는 한국 음식들은 그네들이 교회를 찾는 중요한 '동기'중에 하나다. 내가 아는 어떤 청춘들은 밥을 먹기 위해 주일예배시간을 견딘다고 해서 자긴 '밥신자'라는 우스갯 소리를 할 만큼 교회에서 제공되는 점심이 주는 유혹은 그들에게나 결혼한 이들에게도 강력하다. 기혼자의 경우 더구나 아이들이 있는 경우 교회를 통한 인간관계에 더 의지하게 된다. 특히 공부하는 자기를 뒷바라지를 위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의 나라 살이를 견뎌야 하는 상대 배우자한테 그리고 미국아이들 틈에서만 지내다 보면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를 한국사람들간의 정서를 자식한테 되새겨주기 위해 교회를 찾는 이들도 많다. 생각해 보라. 당신과 자녀가 학교 가고 난 종일동안 배우자가 한국에다 두고온 가족과 친척들을 그리워하고 새로운 동네에서 사람들도 제대로 섞이지도 못 한다면, 집에서만 지내면서 오로지 공부하는 자기만을 바라보고 산다면, 그거야 말로 부부 서로에게 더 없이 피곤한 일이다. 허니 교회랑 전혀 안 친했던 이들 주로 남정네들이라고 해도 배우자를 위해 주일예배나 교회행사에 참석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물론 본인들도 그안에서 엮어지는 인연들과 어우러져 잘 지내면서. 허나 그네들은 말한다. 그 대부분의 이유는 배우자와 자녀들이 낯선 미국땅에서 지내는 동안을 무탈하게 그리고 즐겁게 지내게 해주고 싶은 맘이 가장 큰다고. 

이 정도되면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에서 교회는 이방인의 삶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해서 교회를 다니지 않고 버티는(!) 이들은 스스로를 변방 혹은 주변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한국 음식이 고파도 버티거나 자기들끼리 뭔가를 만들어 먹거나 우리 주변에 있던 청춘들이 그렇듯이 슬그머니 가족있는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섞이고 맛을 본다. 허나 그것도 결혼하지 않을 때 얘기일 수도 있다. 결혼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날라 온 우리가 아는 한 후배부부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기실 교회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단다. 허나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를 또래와 같이 놀게 하고 아이의 교육과 관련된 정보등을 얻으려니 한인교회를 다닐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란다. 교회를 안 다니고는 그런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 필요에 의해 한인 교회에서 섞여 사는 이들이 많은게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 명절이건 미국 명절이건 불러주는 이 없이 심심하게 지내거나 필요한 정보를 얻는 길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교회를 믿음이 아닌 사람관계때문에 다니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독실한 믿음이 생겨 한국에 돌아가서도 교회를 꾸준히 다니고 자기의 믿음을 잃지 않는 이들도 있을게다. 허나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람 관계때문에 교회를 다닌 이들한테 실제 교회에서나 생활에서 보여주는 믿는 자들의 삶들이 그리 좋은 본이 되지 못한 탓이 제일 크지 않을까.        


그렇게 교회가 '본'이 되게 하기 위해선 다시 말해 제대로 한인사회에서 '정'기능을 하기 위해선 전제가 필요한 듯 싶다. 적어도 내보기엔. 여기서 얘기하는 지역은 한인교회가 수백군데가 된다는 대도시 얘기가 아니다. 그런 동네야 살아본 적이 없으니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가 전부니 열외로 치고 내가 언급하는 지역은 한인의 숫자가 이백에서 삼백정도되는 아주 없진 않지만 그 규모가 크지 않는 동네다. 그런 동네에서 교회가 한인사회에 제대로 중심에 서기 위해선 우선 그 지역에 한인교회가 한군데여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몇 안되는 한인들이 서로 담을 쌓지 않고 한군데에 모여 서로 부딪끼면서 제대로 된 교제를 나눌 수 있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아쉽게도 한인 사회의 규모가 중간정도만 되는 도시들엔 한인교회가 적어도 두개 이상 있다. 교회의 갯수를 들었을 때 이 동네에 한인교회가 그렇게 많아..라고 할 정도의 숫자말이다. 물론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닌다고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 힘들기에 하는 소리다. 대체로 보기 드문 현상이기에. 차라리 한인교회의 숫자가 수백개가 된다는 엘에이나 뉴욕, 휴스턴같은 큰 도시들에서는 워낙 많으니 그게 가능할 수도 있을게다. 경쟁자(?)들이 많으니 신경쓰지 않고 자기 교회 식구들만 잘 챙기면 되니까. 허나 이번 학기엔 누가 새로 이사왔고 어느 집이 공부마치고 어디로 들어갔고 하는 동네소식들이 며칠도 안되서 주변인에 속했던 내귀에 들어올 정도로 두서너명만 건너면 서로 다 알게 되는 정도 규모의 한인사회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모든 교회들이 그렇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중소규모 도시의 한인교회, 특히 유학생들이 많은 학교 타운의 한인교회들은 저마다 '분리'의 역사를 (내 맘대로 갖다 붙인 말이다) 갖고 있다. 여기서 '분리'의 역사란 처음엔 하나여서 사이좋게 지내던 한인교회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 교회의 일부교인들이 나와서 다른 한인교회를 만들면서 싹트는 갈등들이 원래 교회의 정기능에 제동을 건다. 예를 들어 새로 이사오는 이들을 각기 다니는 교회로 인도하기 위한 물밑 경쟁부터 시작해서 자기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한테 등을 보이는 사실 개인들간의 갈등의 골들이 결국은 교회들간의 갈등의 골로 이어지곤 한다. 그나마 보기에 아름다운 것은 그런 갈등의 씨앗에도 불구하고 가급적이면 서로를 위하고 헐뜯지 않고 배려해주는 참으로 '크리스챤'다운 마음씨들이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씨들은 교회들이 서로 연합해서 한인사회의 대소사를 챙길 때 드러난다. 내가 지금 사는 이 동네 한인가족들이 교통사고라는 큰일을 당했을 때 세개의 한인교회들은 맘을 합해 그 가족들을 돕는데 힘을 모았고 지난번에 살던 동네에서도 한인학생 총격사고 뒷수습을 위해 평소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교회가 힘을 모았다. 허나 그런 큰일들이 아닌 사소한 일들에 대해 교회들은 각기 자기 식구부터 챙기는 모습이 대부분이고 학기초만 되면 새로운 신자를 영입하는데 온 신경을 모으는게 여기선 흔히 볼 수 있는 교회의 모습들이다.  

가벼운 예를 들어 볼까나. 설교시간에 목사라는 분이 누군가 라이드(차없는 이들을 태워주는)를 요청했을 때 우리교회 사람들부터 챙기라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질 않나 자기의 교회사람을 한인학생 회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은근한 물밑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윤즉 그 교회의 식구가 한인회장이 되는 해엔 그 교회 신자 숫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인학생회장이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들을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인도하는게 인지상정인고로. 심한 경우엔 '갑' 교회식구가 한인학생회장이 되서 일년에 두번있는 한인학생회를 주관하는 경우 한인학생회에서 상대편 교회인 '을'교회 식구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해서 차라리 아예 아무 교회랑도 상관없는 이가 한인학생회장이 되는 게 낫다는 얘기들을 하기도 한다. 글쎄다..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하는 세력은 내가 보기엔 교회를 이끄는 목자들이나 학생들이 아니다. 그런 교회 '분리'의 역사는 공부하는 동안만 지내다 가는 뜨내기 유학생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오랜 시간동안 터를 잡고 사는 교민들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 삶의 터를 잡고 오랜세월동안 생활하신 교민들 생활의 중심은 한인교회다. 대부분의 교민들이 주로 교회에서 만나 교제를 한다. 도시에 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그분들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분들도 있고 비지니스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이 지내신 세월은 유학생들의 길어봤자 오육년 세월에 비하면 참으로 긴 세월이 아닐 수 없다. 그 오랜시간동안 크지 않은 동네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다보니 유학생들이 감히 모르는 오래된 개인적인 혹은 교회간의 앙금과 간극이 많을 수 밖에 없을게다. 해서 인지 교회를 한군데로 합치고자 하는 마음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분들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한테 교회는 남의 나라 살이에서 풀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당신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사회 공간이기에 양보하기 힘든 공간이기 때문일게다. 가끔 듣는다. 다니시는 교회에서 뭔가가 안 맞아하시는 교민분들이 그럼 우리끼리 나가서 예배보자..는 말씀들을. 그땐 그게 서운한 맘에 그냥 하시는 말씀이겠지 하다가 어느날 그게 구체화되면서 몇분들이 주도해서 교회를 새로 만드셔서 두개 있던 교회가 세개가 되는 경우를 목격한 적이 있기에. 교회 하나를 세우는게 별로 어렵지 않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던. 그 분들한테 교회가 갖는 의미는 우리같은 뜨내기 유학생이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이라서 그렇게 까지 무리를 하시는 걸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당신이 맘편하게 다닐 교회를 갖고 싶으신 게다.

남편은 교회랑 전혀 안 친하지만 속칭 나이론이긴 하지만 친정가족이 크리스챤이었던 난 유학생활 초반에 미국교회를 참 열심히 다녔었다. 영어랑 친해지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오기전부터 들었던 한인교회에 대한 이런 저런 부정적인 얘기탓에 처음부터 멀리했었다. 그럼에도 감사하게도 그 교회에서 좋은 한국분들을과 미국 친구들을 만났다. 해서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 지역 한인교회들간의 크고 작은 갈등으로 불거진 이런 저런 일들을 한발 비껴서 누군가에게 듣기도 하고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아쉬운 점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교회랑 전혀 친하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서 교회를 다니게 되고 그 교회식구들하고 서로 섞여 살다 공부를 끝내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도 여기 있었던대로 교회를 다시 찾게 할 만큼 '본'이 되기엔 한인사회에서의 교회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이다. 아마도 그건 교회라는 공간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서로 너무 가까이 지내다보니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사소한 갈등들이 쌓이다 보니 겪게 되는 '좁은 한인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이 교회안에서도 교회들 사이에서도 여전하기 때문아닐까. 허긴 누구말대로 내가 교회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탓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만일 나랑 친한 누군가가 유학을 간다면 그리고 한인교회를 다니고 싶어 한다면 어떤 교회인지 잘 알아보고 교회문을 두들기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유학 생활에서의 첫 단추를 어느 교회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교회에 대한 인식이 180도 달라질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교회문을 두드리기 보다는 차라리 한인학생회 게시판에 들어가 도움을 청하고 그분들한테 도움을 받아 자리를 잡으면서 한인 교회가 많다면 과연 어떤 교회가 맞을 지 교회들을 찾아 예배도 보고 사람들하고 관계도 맺으면서 충분히 생각하고 나서 정하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는 누구들처럼 한인교회들에 대한 안 좋은 경험들때문에 아예 교회를 더욱 멀리 하게 될 수 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 여긴 또 땡볕이 내리 꽂히고 있다. 팔월도 이제 거의 끝나간다. 그러면 이 땡볕도 사그러들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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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올 때 채 두 살도 안 되었던 아들이 커갈수록 남편과 나는 남의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몇 년전에, 한인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던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의 조승휘군을 NBC에 그가 보냈다는 동영상을 통해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져오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대체 저 젊은 친구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선택을 했을까.. 설사 그게 그의 선택이 아니라고 해도..그를 그런 지경까지 몰고 간 그 뭔가를..그런 아들을 지켜보며 감내해야 했을 그의 부모 무너지는 맘이 어떨지..다는 모르더라도 조금은 알 듯해서.

그런 자식을 지켜봤을 부모의 고통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그 분들처럼 공부가 아니라 살러 오신 분들한테 자식이 어떤 의민지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어떤 이유에서건 생활터전을 미국으로 통째로 옮기신 교포분들은 삶의 목표가 자식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있다. 세탁소를 하고, 야채가게를 하고, 구두 수선일을 하면서 그분들은 자식들이 당신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기를..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와 미국사회의 주류로 자리잡고 살게 되기를.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아메리카 드림, 지금은 옛말이 되었다고 해도, 그런 걸게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가방끈이 길어 혹은 체면 때문에 한국에서 였다면 꿈도 못 꾸었을 일들을 하려고 남의 땅에 와서 소매를 걷는다. 고시에 계속 낙방한 남편이 선택한 미국이민길에 오른 지 20년이 지난 내 친구 역시 여기 온지 10년넘게 아침 6시에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밤 12시에 닫고 들어오는 생활을 주일날도 쉬지 않고 일한 결과 지금은 경제적 여유를 맘껏 누리고 산다. 그런 모습에 가끔 궁금했었다. 만일 한국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비슷한 정도로 결국엔 누리면서 살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 기회의 나라긴 나라긴 하다..부분적이긴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식들을 키우기가, 더군다나 소수인종으로 자긍심을 잃지 않고 키우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순간 순간 깨달으면서 우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우리의 방향은 정해져있었지만 여기서 만난 허나 몇년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두분과 그 자식들의 삶을 통해 그 방향은 좀 더 확고해졌다. 힘든 시절을 다 겪고 안정권에 접어들어서야 그분들은 깨달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당연한 것들을 남의 나라 세상살이에 너무 지쳐 간과하셨다고. 자식 키우는데 필요한 건 넉넉한 돈도 아니고 영어를 잘 하고 학점을 All A를 받아 학교에서 자랑스런 부모로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결코 자랑할 게 아니라는 것을. 당신들은 아침 부터 밤까지 일을 하시는 동안 그 자식들은 자신들이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점점 잊어버리고 부모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턴가 아이들은 영어로 얘기하고 아빠 엄마는 한국말로 대화하는 모습은 그분들뿐아니라 여기 한국가정들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그림이다. 오히려 집에서 철저하게 우리말을 시키는 우리같은 이들이 당연함에도 그리 많지 않은 셈이니까. 네살부터 매일저녁을 한글공부를 시킨 덕에 아들은 그런 대로 한국말을 무리없이 한다. 물론 어휘실력도 딸리고 어설프긴 해도. 허나 내가 만난 많은 교포분들은 당신의 아이들이 우리말을 잃어가는 걸 미국시민화되는 과정으로 간주하시는 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듯하다.

한국말을 못하던 아이들은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대학을 갈 즈음엔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 있는 좋은 학교로 떠났지만 그곳에서 그들이 만난 세계는 자신이 자랐던 예전 고향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그들한테 얼굴색이 뭔 상관이었겠는가. 허나 새로 만난 곳에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이 끼리 끼리 다닌다는 것을. 잠시 섞이긴 해도.. 결국 피부색이 같은 무리들이 서로 어울린다는 것을. 그제서야 자신이 한국사람도 아니고 미국사람도 아닌 바나나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얀)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그는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겹쳐 결국 자살을 시도해서 부모맘에 못을 박았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일들을 겪고 나서야 깨달으셨지만 이미 머리가 다 큰 자식들을 잡고 앉혀서 우리말이랑 문화를 너는 한국사람이라고 가르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셨다.

그런 면에서 남편과 난 아들한테 참 많이 미안하다. 아빠 엄마때문에 차별같은 거 겪지 않고 주류로 살수 있는 우리나라를 떠나 이렇게 소수인종으로 살아가게 해서. 남의 나라에서 잘 키우고 싶다는 우리는 아들이 반듯하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 하면 좋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어딜가서도 자기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가끔 우리의 교육효과가 지나치게(?) 나타날 때가 있긴 하다. 7살 때였던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하는 말.."엄마 미국얘들은 쫌 실리(silly) 해요" '실리'라는 단어를 어리석다로 바꾸기엔 어휘수준이 딸린다는 걸 아는터라 그냥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걔들은 영어 밖에 못하잖아요.." 아들의 대답에 남편하고 얼마나 웃었는지. "엄마..ㅇㅇ는 자기가 미국사람이래요" 여기서 ㅇㅇ는 아들하고 단짝으로 붙어다니던 미국에서 태어난 친구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그렇게 생각하나보다..했더니 "태어났어도 블러드(blood)는 코리안이잖아요" 하며 힘주어 얘기한다. 또 한가지가 더 떠오른다. "엄마 제가 north korea에서 왔어요..south korea에서 왔어요?"하고 묻는다. 그건 왜냐고 물으니 같은 반 친구가 미국은 "north korea"를 싫어한다고 했다면서 그 이유를 묻는다. 잠시 난감했지만..아주 단순화시켜서 얘기해줬었다. 그건 "north Korea"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미국 말을 잘 안 들어서 그런거라고. 만일 어떤 힘쎈 친구가 자기보다 힘이 약한 다른 친구들은 다 말 잘 듣고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는데 보기엔 별로 힘도 안 쎈데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그 힘쎈 친구가 그 친구를 좋아할까..안 좋아할까..하고 물었더니 아들은 잘못한게 없는데 그러냐고 다시한번 묻고는 엄마의 설명만으로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갤 주억거렸던게 기억난다. 좀 더 크면 알게 될거라고..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었다.

미국에서 자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우리아들은 지나치게 '한국적'인지도 모른다. 햄버거나 치즈대신 김치찌게랑 고추장을 좋아하고 학교에서 빵말고 밥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니. 학교에서는 실수로라도 누가 먹던 컵도 안 만지고 섞지도 않으려는 녀석이 집에 오면 엄마 아빠랑 먹는거니 괜찮다며 가끔은 슬쩍 우리컵에 물을 따라 마시기도 하고 가운데 놓인 된장찌게를 같이 떠먹는다. 아이들끼리는 영어로 놀다가다 한국 어른들께는 우리말로 존대하면서 대답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학교에선 미국식이고 집이나 한국이웃들을 만나면 한국식으로 완전 적응이 된 우리아들..지금까지는 남의 나라땅에서 참 잘 자라주어 남편과 나는 많이 고맙다. 

작년 여름, 미국온 지 처음으로 그러니까 9년만에 아들은 남편과 한국에 다녀왔다. 그동안 당신 손자가 코쟁이들처럼 한국말도 못해 버벅대고 매운 한국 음식도 잘 못 먹을거라고 예상하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랑 친척들은 우리아들의 너무나 한국적인 모습에 놀라워하시며 칭찬해 주셨단. 남편이 아들덕에 기분이 좋았다며 칭찬들은 얘기들은 전해줬다. 한국을 다녀온 후 놀라운 건 겨우 한달 남짓 있었는데도 아들의 한국어 어휘실력이 놀라울 만큼 유창해졌다. 예를 들어 "오히려" "아마도" "당연하지" "역시" 같이 쉽지 않은 부사들을 어찌 그리 적절하게 잘 넣어 구사하는지. 그런 아들의 유창한 우리말 실력에 적응이 덜 된 난 연신 감탄을 해댔다. 물론 그 유창함에 큰 발전은 없었다..그 이후로. 그로부터 일년이 지난 지금 아들의 한국말 실력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 그때 물었다. 한국에서 가 본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재밌고 좋았냐고 물었더니..아들은 뜻밖에도 목욕탕이랑 찜질방이 너무 재밌었단다. 처음엔 이상했는데..다음에 또 가보고 싶을만큼. 엄마도 꼭 같이 찜찔방을 가보잔다. 
 
남편과 나는 안다. 아직 한국은 아들한테 낯설거라는 걸. 물론 오랫동안 아빠 엄마한테 들은 것들로 어색한 정도는 벗어났을지 모른다. 귀로 들어 마치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막연하게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이전이랑 한달 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느낀 한국은 우리아들이 기대했던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있을게다. 낯선 곳이어서 오는 불편함도 있었을테고.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건 우리 아들은 모르지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랑 친척들이 살고 있는 그 곳이 종국엔 우리 가족 모두가 돌아갈 곳이라는 것을. 해서 열에 여섯번은 마지 못해 하는 한글공부지만 매일 매일 시키지 않아도 저녁 시간이 되면 자기가 한글공부책을 핀다. 만일 한국이 아닌 여기서 계속 살게 된다면 우리아들이 부딪혀야 할 것들이 많을게다. 이제 조금 더 크면 지금보다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신 해줄 수 없는. 해서 소망한다. 그렇게 힘들어서 부대낄 때 아빠 엄마가 아들한테 이제껏 심어 준 것들이 든든하게 우리아들을 잡아주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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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에서 십년넘게 살다 보니 자주 혼잣말로 나오는 푸념이 있다. '이건 영어도 안 되는데 한국말도 안 된다'는. 얼핏 들으면 이해가 안 가는 아니 오해받기 딱 좋은 대목이라 그냥 혼잣말로 혹은 동변상련인 이들끼리 농담삼아 하는 푸념이다. 허긴 나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누군가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영어가 안 되는거야 그렇다치고 아무리..한국말이 안 될라고.대체 한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몇년인데 여기서 고작 몇년을 살았다고 한국말을 버벅거리게 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지 않았으니까. 같은 한국사람인 줄 알면서 영어로 얘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한 거부증세를 보였으니까. 헌데 여기 살아온 햇수가 늘어나면서 그런 엄격했던 잣대의 눈금은 점점 헐거워져갔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맘에 의식적으로 삼사년동안 영어만 쓴다면 한국사람들하고 섞이지 않고 지내는 이들한테서 흔히 보여지는 모습인 우리말 할 때 엄..엄..할 수 있겠구나...하는 정도까지 이해하게 된 건 학교가는 시간에만 영어에 노출되어있는,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랑 늘 한국말을 하는 나 자신조차도 언제부턴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랑 통활할 때 적당한 우리말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더듬거나 그게 뭐지..그거 있잖아...로 상대방의 도움을 받는 증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 대해 짜증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 영어를 전혀 모르는 팔순넘으신 나의 오마니랑 통화할 때 전처럼 주고 받던 표현들로 얘기하려고 할 때 마땅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이탓인가...여기 산 짠밥탓인가..하다가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어와 우리 말을 적당히 버무려 쓰는데 많이 길들여져있구나. 한국에서 삼십년넘게 살았고 여기선 겨우 10년 살았는데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 걸 보니 이젠 남한테 뭐라고 할 주제가 아니다 싶어진다.  

기실 미국에서 오래 된 사람들은 대화에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의식적을 하는 이들이 더 많은 지도 모른다. 기억나는 그림이 몇개 있다. 미국 온 첫해였나. 그때 살던 가족 기숙사 빨래방에서 들었던 한 한국 아주머니가 아이들한테 하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얘들아..too late이야.. hurry up해야지.." 그때 한국에서 갓 온 내 반응은 도대체 영어야 우리 말이야...였다.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우리말도 아닌 표현들은 여기선 많이 들을 수 있다. 어떤 분들은 한문장을 말씀하실 때 조사를 빼고 다 영어단어로 채우시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이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던 탓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우리 (남편과 나)는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집에서 우리말만 쓰게 하는 아들내미한테도 제대로 된 한글을 가르쳐주고 싶은 맘에서다. 그럼에도 가끔 서로에게 그런 증상이 보이면 넘어가지 않고 서로 지적해준다. 그런 증세는 부끄럽게도 남편보다는 내가 더한 듯 싶다. 무심결에 우리 말을 찾기 보다는 그냥 영어단어를 집어 넣어 얘기하는. 아들한테 그러지 말라고 해놓고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는게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게 된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물건이 떨어지면 '에구머니" "어머나"가 아니라 "읍쓰"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싶다.  

영어와 한글을 적당히 버무려 쓰는 것에는 나보다 여기서 자라고 공부하는 아들이 몇수 위다. 처음 학교보낼 때 (여기의 유치원 전 과정, pre-school) 알파벳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학교에 보냈는데도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은 탓인지 영어로 말하는게 훨씬 편한 아들과 친구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알게 된다. 심할 때는 가령 "game에서 attack했는데.. win했어요" 라던가 "thirsty한테 water drink되요?"라는 식으로 조사만 빼놓고 영어단어로 문장을 채우던 어느 교포분의 화법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럴 때마다 우린.. 아들의 표현을 제대로 된 표현으로 바꿔서 얘기해주고.. 고쳐서 다시 말하도록 한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그런 교정(?) 절차는 아주 일상적인 것인 우리집 그림이다. 허나 맘 한편으로 이렇게 자꾸 고쳐주는게 오히려 우리말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게 아닌가 은근 걱정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하길 한글공부를 시작한 4살 이후부터여서 그런지 아들은 바로 잡아 주면 고쳐서 얘기하곤 한다. 물론 한번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기실 재밌는 건 그런 교정을 아들만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아들도 엄마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얘기해주곤 하기에 하는 말이다. 언젠가 신호등을 보며 얘기하는데 듣고 있던 아들이 하는 말, "엄마..저건 초록색인데.. 왜 맨날 파란색이라고 하세요?" 그러고보니 내 아주 오래된 습관중에 하나다. 모르긴 해도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특히 사십이 넘어가는 나이의 사람들은 같은 증세가 아닐까 싶다. 아들의 지적에 그래..맞어..왜 신호등 색은 초록이 아니라 파란색이라고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또 한번은 바깥에서 논다고 나가는 아들한테 문 닫고 나가라고 하니까 신발을 신던 아들이 날 쳐다본다. 알고 보니 도대체.. 문닫고 어떻게 나가라는 거냐는 게다. 그렇게 한 두번 지적하던 아들, 엄마의 그런 표현들이 쉽게 고쳐질 증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자기도 익숙해졌는지..요즘은 별로 토를 안 단다. 혹 나중에..우리 아들도 누군가에게.. 문닫고 나가라는 앞 뒤 바뀐 말을 엄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 이 또한 스스로 자꾸 경계해야 하는 말 습관중에 하나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우리 말을 제대로 쓰는 것에 대해 좀더 철저하게 의식적일 필요가 있음을 자주 깨닫는다. 더우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라면...더 더욱. 영어와 한글을 그렇게 섞어서 쓰곤 하는 우리들의 무의식적인 표현들이...아이들로 하여금 영어보다 우리 말에 대해 둔감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기실 여기서 생활하는 아이들한테는 우리말보다 영어가 편한 건 당연할게다. 아들이 또래 친구들하고 놀 때 보면 알 수 있다. 어릴적엔 그렇게 익숙해진 뒷끝에 집에 돌아와서도 자기도 모르게 아빠, 엄마한테도 영어로 얘길 할 때도 있으니까. 그럴 때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다시 우리 말로 얘기하도록 지적하곤 했다. "아들, 아빠 엄마가 미국사람으로 보이냐??"..며 장난을 섞어 유도하기도 하고. 그럴라치면 그제서야 아차하는 얼굴로 씩 웃고는... 우리말로 다시 얘기하곤 했다. 물론 요즘은 그런 과도기가 지났으니 집에서는 확실하게 우리말로 얘기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 사는 친구들에 비하면 아직은 많이 서툴다. '요'자를 빠뜨린다거나..했을 때도.."어른하고 얘기할 때 붙이는 거는 존댓말써야지" 하고 지적해 주면 아들은 잊어 버렸던 '요'자를 끝에다 붙여 다시 얘기 한다. 가끔은 어미를 바꾸지 않은채로...그냥 끝에다 '요'만 달랑 붙인 덜된 말로. 예를 들어 "엄마..가자요" 라던가.."모모 했다요"처럼 말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12살인데도. 아들..뭐뭐했다요..는 언제 졸업할래..하고 물으면 그냥 씩 웃는다. 우리말이 많이 어렵다면서. 매일 매일 저녁시간에 하는 30분 한글 공부 때마다 아들은 어려워요..를 입에 달고 한다.  

그래도 기특한 것은 어려워도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게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좀 쉬자고 해도 아들은 그냥 하겠단다. 그 이유는 자기가 '한국사람'이니까..한글을 모르면 안 된다는게다. 내 아들이지만 참으로 기특하다. 주변 사람들중에 우리가 너무 엄하다고 하지만...말하는 습관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 자신한테나.. 아이한테나.. 좀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싶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나 우리 모습에 관대하게 넘어 간다면 먼후일 아이들은 영어로 얘기하고 아빠 엄마는 우리말로 얘기하다가 결국 최소한의 대화만 나누게 되는 '의사소통 불능'의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그게 흔하게 보아온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게다. 더군다나 그 나라의 말을 능숙하게 잘 한다고 해서 그 나라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끔 여기서 지내다보면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마치 미국사람이라도 된양 처신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혹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온 유학생들에겐 '영어'가 목적일게다. 허나 영어가 다가 아닌 것을, 모르고 있는 듯 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우린 그렇게라도 일상적으로 '길들여 질수 있는' 말들에 민감해지고 익숙해 지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것이 남의 나라 땅에 살면서 우리의 아이한테..그리고 우리 자신한테 뿌리가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다. 우리 자식을 영어만 잘 하고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모르는 속칭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로 키우지 않기 위해 부모로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 경계의 끈을 놓치 않으려 하는 게다. 그래야...우리아들이 남의 나라땅에서 소수인종으로 살게 되더라도 주류와의 '다름'에 대해 움추리기 보다는 그 '다름'을 자부심을 갖고 장점으로 받아들일 줄 알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건 남의 나라땅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심어줘야 하는 자존감의 뿌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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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게 없는 말이지만 여기서 산 짠밥이 한해 한해 보태어질 수록 절감하는 건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는 거다.

다른 나랏말을 배우는데 있어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수준의 표현들은 반복적인 'practice'로 익혀질 수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달하게 되면 누구나 부딪히는 벽이 바로 '문화차이'일게다.

물론 우리같이 머리가 다 굳은 후에..쉽게 말해..늙어서 남의 나라에 온 이들한테는
그나마 연습만으로 해결 될 초급표현들도 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지만..

미국대학은 외국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TOEFL 점수를 요구한다.
이 시험이 수업을 따라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듣고, 말하고, 쓰기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허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 시험은  'listen and comprehension', 'written expression', 'reading'이었는데
최근 시험의 형식이 Internet으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도대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 문법(writeen expression)이 빠지고 'writing'이랑 'speaking'으로 바뀌었다.

평소 나 역시 ETS의 독점과 횡포에 침을 튀기는 이들 중에 하나지만  이전 시험형식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시험형식의 변화엔 긍정적이다.  그건 과연 이전의 시험형식으로 그 사람의 영어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엔
문제가 많다데 생각이 같기 때문이다. 그건 여기서 토플은 고득점이라는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표현조차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에 하는 얘기다.
그에 비해 점수가 낮아도.. 별 무리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기에..

허니 학생을 뽑는 학교 입장에서 보면 높은 토플점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된거고 
그런 학교의 요구에 따라 ETS는 아시아 권 국가들의 점수밭인 문법을 빼고
취약지구라고 할 수 있는 '말하기'를 필수로 집어넣은게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얘기하자면 
듣고 쓰고 읽기의 경우...기실 어느정도 짠밥이 되면 저절로 귀가 뚫리게 마련이다.
처음엔 연음(slur)때문에 안 들리던 말들이 들리게 되고 그러기 위해 제일 좋은 교재가 바로 TV다.
나같이 TV랑 안 친한 사람도 온 신경을 집중시켜가며 봤으니까..결국 그 버릇 남 못 줘서 오래 못 간 나에 비해
TV랑 상당히 많이 친한 남편의 경우 지금은 나보다 훨씬 잘 듣게 된 게 TV 교재(?)덕이라는 건 인정한다.
읽고 쓰기의 경우도 학생이라면 질리도록 읽게 되는 페이퍼나 교재들덕에  
점점 더 매끄럽고 다양한 표현들로  페이퍼를 쓸 수 있게 될게다.

물론 writing 역시 speaking만큼이나 쉽지 않지만.
그러나 말하기의 경우... 
더군다나 쉬운 일상의 표현들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문종합영어 세대인 나는 여전히 문법이나 '쓰기영어'에 익숙해있어서 그런지
처음 여기 왔을 때.. 제일 어려웠던게..presentation할 때였다.
 

그때 긴장한 나는 페이퍼에다 썼던 표현들을 그대로 읽다시피 했었다. 그때 듣던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하는 그런 얼굴들을 쳐다보면서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랐었다.
그 다음부터는 문어체들을 구어체로 옮겨 발표도 가능한  일상적인 쉬운 표현으로 하려고 했었다. 
제일 어려운 건 토론(discussion)이다. 특히 미국 젊은 친구들이랑 토론할라치면...
그네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그 암호같은 slangs을 이해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물론 얼굴의 두께가 만만찮은터라... 겉으론 전혀 동요하지 않은 척...
니들 하는 말.. 다 이해한다는 느긋한 표정의 포카 페이스를 하고 앉아 있긴 했지만...
머릿속은 그네들의 속사포같은 영어가 엉켜....토론의 갈피를 잡는데.. 진땀을 빼기 일쑤였으니까.

그런 우리 노땅들에 비해...아이들의 영어 익히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누구말대로 그네들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그대로..따라하고...더듬거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아무한테나.. 어설픈 영어를 주절대기 일쑤인..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 '자세'들을 알 수 있다.

우선... 아이들은 영어에 대해 '무식'하다면
무엇보다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새삼스런 진리(!)를 환기시켜준다.
여기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한번쯤은 겪어보았을게다.  
자기 아이가 또래 미국얘나 미국 사람들한테 보란듯이 덜된 영어를 떠들어대는 것을
그때.. 무슨 얘긴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미국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괜히 그네들의 부모들 얼굴이 더 화끈거릴데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그림은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기 이전에 아이들이 거치는 필수과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아이들은 또래얘들과 어울리는데 필요한 표현들을 익히게 되고
아주 짧은 시일안에 미국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된다.
시행착오를 쪽 팔려하지 않는 이 배짱... 부럽기 짝이 없는 덕목아닌가...
지금이 만으로 12살인 아들이 어렸을 때 친구나 어린 또래얘들이랑 놀 때
녀석들이 쏟아내는 엉터리 영어를 듣고 있다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네들은 자기네들이 문법적으로 옳은 표현을 써야 한다는 거나
자기의사를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모든 단어를 다 알아야 한다는 식의
어른스런 강박관념 같은건 별로 키우지 않는듯이 잘 모르는 표현들은 거침없이 우리말로 대신 쓴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그 말을 들은 미국얘들은 그런 broken 표현들을 알아 듣는다. 별 무리없이.. 
 

몇가지 예로...단어가 딸리는 한국 꼬마들은
Can you 묶어 this?,
where is my 신발?,
Are you going to 산책?,
I'm gona 달려...
등과 같은 되도 않는.. 웃지 못할 표현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럼에도 미국얘들은 이를 별개 단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하나의 context속에서 이해하기 때문인지..
그네들의 질문과 요구를 다 이해하고..끈을 묶어주고..신발을 찾아주고.. 고개를 끄떡인다. 
 

그래서..우린 짠밥영어를 무시할 수 없는거다.
이곳에서 짠밥이 오래되다 보면.. 하나하나.. 그 낱낱의 표현들이 다 들린다기 보다는
맥락속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대화를 짐작하게 되는 능력이 쉽게 눈치밥에 관한한
고수가 되기 때문일게다.

남편의 지론...
영어를 포기하니 들리더라는 얼핏 듣기엔 '선문답'같은 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우린 모든 표현들을 다 들으려고 개개의 단어들에 집착하다  
결국 그 말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그의 말대로 디테일을 적당히 포기하고 들으면...
오히려 굵은 줄기들을 잡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얼핏듣기엔 잘난 척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듯 싶지만
한편으로는 공감가는 대목이다. 나 역시 소소한 표현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한 발자욱 물러나 전체 맥락을 이해하면 진짜 잘 들린 적이 있기에 하는 얘기다.

허나 우리처럼 머리굳은 어른들의 말하기는 어찌되었건간에 쉽지 않다.
아이들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틀려도... second language니까 그럴 수 있다는
느긋함을 갖고 열심히 떠들어 대다보면...언젠가는 삼박자가 골고루 갖추어진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I hope so..)

이제 우리 아들내미는 영어에 제법 익숙해져서인지
가끔 우리의 한국 본토배기 발음을 교정해주기에 이르른다.
요즘들어 조예준은 엄마의 r과 l 발음이 틀리다며 엄마의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교정해준다.
내 귀엔 별 차이가 없구만... 구신같이 잡아내는 녀석이 처음엔 신통하다
요즘은 귀찮아 지기에 이르렀다.
아마.. 이 녀석도 적어도 영어 '발음하기'에 관한 한... 엄마보다 자기가 한수 위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난 아이들은 점차.. 그 수준이 높아질수록 문화적 코드의 차이를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십년을 살았다고 해도 native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런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게다.

그럼에도 그런 차이만 어려울 정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아마도 내 수준을 볼 때 여길 뜨는 그 순간까지도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는게 쉽지 않을거라는 걸 안다.
물론 글쓰기의 경우.. 자꾸 읽고 쓰니까..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끼겠지만
더더욱 집으로 돌아가면 한국말만 써야 하는 결혼한 사람의 경우...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건.. 요원한 '희망사항'으로만 남을 듯 싶다.

그럼에도...가끔 내가 영어를 못 하지 않는다는(?) 착각이 드는 건......
이건 순전히 짠밥탓이고.. 적당히 두꺼운 내 얼굴탓일게다...
말그대로 착각임에도 불구하고...영어 표현 공부를 접은 게 얼마나 오래되엇던가.
해서 매번 방학 계획에 난 새삼스럽게.. 영어 말하는 연습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난 안다. 그게 단순한 표현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얘네들이 쓰는 표현들과는 다른 어딘가 어색하다는 걸....그리고 그게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왔다는게
가장 큰 이유라는 걸...그걸... 깨기는 쉽지 않다는 걸...여길 뜰 때까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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