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이 두 남정네간의 사랑을 그렸다는 이안의 'Brokeback Mountain'한테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국이 갖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잣대가 우리의 것 보다는 그 눈금이 훨씬 관대해서 그런가 '동성애'라는 소재보다는 최초로 동양인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아카데미의 변화에 더 관심을 보내는 듯 하나 그때 난 동양사람이 찍은 '동성애'영화란 대목에 더 흥미로워했다. 아마도 그때 우리나라 영화의 분위기 탓이었을게다. 논란의 여지가 늘 수북함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는 몇꺼풀이나 단단한 보수의 벽을 덮고 있는 한국에서 '왕의 남자'가 흥행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동성애' 코드가 조금씩 먹혀드는 걸까..하는 섣부를 수도 있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그냥 일시적인 붐인지는 이 영화로 힘받은 이후 영화들이 동성애를 담론으로 내세우고 뛰어들었을 때 그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대접을 보면 그게 일회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더 분명해 질 테지만. 허나 불과 몇년전 만해도..왕가위의 '해피 투게더'(1998)가 "국민정서에 反한다"는 되도 않는 정부의 딴지걸기로 수입이 되네 안되네..시끄러웠던 것을 기억하기에 설사 일시적이라고 해도 상당한 변화임에는 분명했다.
그런 동성애 영화에 대한 소문들을 접할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혹자는 이 영화를 '저주 받은 동성애'영화라고 한다. 그건 아마도 동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지금에 비해 동성애라는 코드를 받아들이기엔 준비가 안되었을 너무 이른 시기에 발표되어 흥행의 된서리를 맞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고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주제를 더욱 칙칙하고 무겁게 다룬 탓일 수도 있을게다. 완곡어법으로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는 해서 동성애 영화라고 보기엔 그 강도(?)가 그닥 세지않은 '왕의 남자'에 비해 이 영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두 남자의 솔직한 사랑 이야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린 동성애하면 우선 性적인 것 부터 떠올린다. 어떻게..남자끼리..여자끼리...그럴 수 있냐며 본능적으로 도덕적이냐 아니냐라는 시비의 잣대를 들이댄다.어떤 이는 그건 태초에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빚으신 하나님의 섭리에도 어긋나며 말세의 불길한 징조라고도 혀를 차는 이도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왕따 당해왔던 그들의 사랑도 우리들이 하고 있는 여느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제일 맘에 드는 점은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색칠하거나 관객의 비위(!)를 고려해서 들춰내기 거북스런 부분들을 은근 슬쩍 덮고 넘어가는 미덕(?)과는 거리가 먼..동성애 영화라고 하면서 다수와는 다른 그들의 '사랑'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다 빼버린 껍데기만 보여주는 내보기엔 적어도 그런 입에 발린 짓을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대신 감독은 부담스러우리만치 솔직하게 때론 거북하리만치 노골적이다 싶은 그림들로 두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대식(황정민)은 아내와 가족이 있는 제대로 된 집을 두고 거리의 부랑자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라는 견고한 테두리에서 터부시되는 남들과 다.른. 사랑으로 인해 아빠인 줄 알면서도 자신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들과 더 이상 찾지 말라고 다짐하는 아내의 덤덤한 포기에 흐느낀다. 그와 석원(정찬) 사이를 비집고 좋아한다고 들이대는 술집 처자 일주(서진)와의 쉽게(!) 갈 수 있는 이성애 사랑의 가능성은 애초에 저만치 밀어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음에도 사회에서 허용된 사랑이 주는 온갖 특혜(!)도 포기한채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대식의 사랑을 보면서 궁금했다. 과연 동성애의 시작은 어떨까...대식처럼 처음부터 남자를 사랑하지는 않았으리라..혹 처음엔 모두가 우정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그러다 어느날 자기가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혹시 그 규정에 자기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타고 난 것 이라기보다는 그냥 스스로에 대한 암시 아닐까..하는. 이런 내 궁금증의 전제는 동성애가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기 보다는 후천척으로 '만들어졌다'는데서 출발하는 걸 보면 나 역시 그들의 사랑을 보는 시선에 편견과 호기심 위주였던 게다. 다만 심정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그 시작이 타고난 것에서 비롯된 것이든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그게 나라면 그런 남들과의 다.른. 사랑을 위해 대식처럼 서른 중반 넘게 살아온 그간의 삶을 내치지는 못했을 거라는거다. 그처럼 기실 이 영화에서 담아내고 있는 동성애자의 감성선을 따라 잡기란 쉽지 않다. 허나 이 영화는 아내와 가족을 뒤로 하고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는 대식의 삶과 석원을 향한 변하지 않는 그의 사랑이 그에겐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타고난 운명이라는 공감을 끌어낸다.
허긴 어찌보면 사랑의 대상이나 방법에 사회의 테두리에서 허용되고 안된다는 기준이 있다는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긴 하다. 그건 이제껏 우리한테 익숙했던 통념에서 어긋나지 않는 익숙한 코드들이라는 것 말고 그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사회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만을 정상(normal)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성간의 사랑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동성애 애인이 없는걸 부끄러워했었다니...혹 미래 언젠가..엔 대식의 사랑이 평범한 사랑의 유형이 될 수도 있잖을까. 동성간의 사랑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아직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 왔을 유교적인 도덕관이나 동성애를 말세의 증후군으로 꼽고 있는 울 오마니의 기독교 시각, 거기다 에이즈라는 세기말 병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등이 마구 엉켜있어 기실 그런 편견을 거둬내기란 쉽지 않다. 허나 김인식은 영화로 그런 우리의 편견을 향해 한 소리를 내고 있다. 견고하고 두꺼운 보수와 도덕의 벽에 대고. 사회가 그어놓은 금 밖의 사랑 역시 금 안에 있는 우리들의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아니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금단의 사랑이 짊어지고 가는 천형으로 더 절절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큰 즐거움은 거칠지만 우직한 대식을 연기하는 황정민을 보는 데 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해서 아내와 아들까지 버리고 산을 떠나 노숙을 하며 떠도는 산 사나이 대식을 그는 제.대.로 보여준다. 이후 그가 맡았던 여느 캐릭터들보다도 황정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긴머리의 대식이다. 정찬 역시 처음엔 여느 사람처럼 동성애에 대해 완강하게 거부하던 남자가 한결같은 남자의 낯선 사랑이 버거워 갈등하는 석원의 역할에 아주 적격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누군가 영화 만드는데 드는 돈을 대고 누군가 그 영화를 극장에 걸었다는 것만로도 충분히 놀라워했었다. 너무 심하게 뒷북인지 몰라도. '저주받은 동성애'영화라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만일 조금 더 늦게 관객을 만났다면 관객들의 거부감이 조금은 덜 하지 않았을까..싶어 아쉬울 뿐이다.
*2006년에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