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의 영화에는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참 많다. 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며 그 뒷맛이 영 '찝찝하다'고들 한다. 그런걸로 치자면 이 영화는 내가 본 그의 영화들 중에서 그 찝찝함의 '초절정'이라고 해도 가히 손색이 없을 듯 하다.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위좋은(?) 이몸도 보고 난 뒷맛이 개운치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난 김기덕의 영화를 즐긴다. 그런 뒷맛이 나쁘지 않다. 대부분 그의 영화가 우울하고 극단적이다 보니 어떤 이들은 그의 영화속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향해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냐..저런게 사랑이냐...고 끌탕을 할 만큼 그의 영화에서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떡일만한 공감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그의 영화에서 예를 들을 수 있을게다. 그의 영화에서 대부분의 사랑은 '소유'와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이다. 쉽게 말해 한번 찍힌(찍은) 사랑은 반드시 소유(당)해야만 하는 대상이고 종국에 가선 그 사랑은 극단에 이르는 집착으로 표현된다. 때론 남자가 여자한테('나쁜남자', '활'), 때론 여자가 남자한테 ('섬', '시간').

그의 영화에 그려지는 사랑법들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떠나가는 남자를 낚시 바늘로 자학해서 묶어두려 한다거나('섬'), 사랑한다면서 창녀촌에 묶어놓고 지켜본다거나 ('나쁜 남자'), 키워서 잡아먹는(?) 속내('활')로 표현되는 그네들의 사랑법들은 평범한 우리들이 이해하기엔 기형적인 것들이고 보니 그의 이름 뒤에 붙는 세간의 수식어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들이다. 특히 소위 페미티스트라고 분류되는 이들이 그의 영화에 던지는 시선은 곱지 않다. 그네들의 공통된 지적을 단순화시키자면 그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자들은 단순한 성(욕)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일게다. 이런 지적에 감히 내 얄팍한 생각을 얘기하자면 왜 영화가 굳이 일반적인 공감대를 얻어야만(must) 하는가에 대한 회의에서부터 나 역시 페미니스트적인 생각에 동의함에도 영화를 비롯한 작품에 대한 시각은 조금 다르다. 쉽게 말해 영.화.는 그냥 영.화.라는거다. 영화가 굳이 공통분모의 덕을 그려야 할 필요는 없잖은가. 거기다 특정 사회의 규범이나 관습의 잣대를 들이대고 재단하려 한다면 특유의 뒷맛 찝찝한 영화를 만드는 재주를 타고난 김기덕같은 감독이 설 자리는 현실적으로 거의 없게 될터. 누구나 결론을 예상할 수 있는 권선징악의 도덕 교과서같은 착한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다면 김기덕같이 자기만의 칙칙한 색조로 혹은 장진처럼 특유의 희화적인 말빨로 세상을 그려낼 수 있다면 우린 아주 다양한 영화 메뉴판을 들여다 보면서 풍.성.한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을텐데 하나같이 착하고 개운한 영화만을 봐야 한다는 건 너무 심한 고.문.이다. 모두가 좋아하고 사회통념에서 받아들일 만한 영화만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영화를 해부하려고 드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 입맛이 쓰다. 그런 모습에서 옛날의 '대한뉴스'처럼 (아니 요즘도 다시 만들고 있다는 얘기에 뜨악하게 했던)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류의...초지일관 반공과 애국심 모드였던 과거 시절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를 통해 표현된 생각들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짓들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게 장황하지만 간단한 이몸의 얕은 소견이다.  


 
 이 영화는 '야생동물보호구역', '악어', '파란대문'에 이은 그의 네번째 작품일게다. 아니..'수취인 불명'이 먼전가...정확하지 않지만 초반에 만들었다는 이 영화를 본 건 비교적 최근이다.  그때까지 난 이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었다. 제목이 비슷한 다른 영화(송일곤의 '꽃섬')랑 헷갈렸다는 것도 모르고. 보고 나서 역시 이 영화는 다른 영화랑 절대 헷갈릴 수 없는.. 보고 난 그 뒷맛의 찝찝함이 쉽게 가셔질 수 없는 영화임을 알았다. 고립된 공간을 좋아하는 김기덕의 취향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듯 하다. '나쁜남자'에서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유곽이 무대였고 '해안선'의 무대는 철책선 밖의 사회으로 부터 철저하게 단절된 '군대'였고, '빈집'에서는 그들만의 또 다른 세상이었던 '빈집'이었고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에서는 물위에 떠있는 세상에서 격리된 절간이었으니까. 특히 현실에서 뚝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 떠있는 '낡은 배'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최근 영화 '활'은  여기 저기 낚시배들이 둥둥 떠있는 이 영화의 주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단절된 공간에서의 삶들 역시 그 공간을 닮았다.  하나같이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사회에서 버려진 밑바닥의...비주류의 삶들이다. 그 삶들이란게 이 영화 '섬'에서는 낚시꾼을 상대로 커피와 몸을 파는 여자의 삶이였고 '봄.여름..'에서는 수행정진이라는 한곳만 응시하며 살려는 한 남자의 것이었고, '빈집'에서는 남의 빈집만 골라서 남의 삶을 자신의 것인양  살아가는 총각이었다. 하나같이 외골수고 폐쇄적인 이 캐릭터들은  외부의 작고 사소한 긁힘에 여지없이 금이 가버리는 면역결핍의 인생들이다. 이 '섬'낚시터 주인인 여자(서정)의 일상은 그곳을 찾은 낚시꾼들한테 음식과 함께 몸을 팔며 살아가는 그냥 '살아지는' 삶이다. 그런 별다를 것 없는 그녀의 일상은 애인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 온 한 남자(김유석)로 인해 달라진다. 그 남자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이 공간의 칙칙한 분위기 만큼이나 집요하고 어둡고 소름끼친다. 특히 낚시바늘이 쓰이는 장면들에 가선 우리가 몰랐던 낚시바늘의 다양한 용도(?)에 놀라게 되고 그 찝찝함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다.

그의 영화가 우릴 불편하게 하는 건 그게 영화임에도 왠지 우리의 이면에 영화에서 보여주는 사랑이란 이름을 걸고있는 이지러진 집착이나 사이킥하고 변태적인 본능이 숨어있을 것 같고 눈을 돌리면 우리 주변에도 왠지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현실적임에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개연성탓이 아닐까. 재밌는 것은 한편으론 그런 금기시된 본능이나 정상적인 사람들사이에선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해프닝들이 우리의 도덕성을 새삼스레 재무장시킨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끌탕을 하면서도 혹시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얼마나 달랐을까..하는  이런 반응을 혹 김기덕은 예상했을까..그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소재를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 방법도 불편한 구석이 있긴 마찬가지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주절 주절 늘어놓는 대신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말을 최대한 아낀다. 그런 그네들의 화법 이면엔  구태여 그럴 이유가 있냐는 불친절함이 깔려있다. 아니면 단절된 공간에서의 의사소통 기능에 장애를 지닌 듯한 여느 캐릭터들 처럼 이 영화에서 역시 여자(서정)는 몇번의 비명 소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사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 영화는 우울하고 찝찝하기 짝이 없지만 좋았다.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관심이 가는 건 상당히 나른한 톤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을 얘기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숨겨진 이면들을 드러내는 홍상수의 것과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우릴 불편하게 때론 우울하게(!) 하는 김기덕만의 극단적이게 노골적인 화법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거미숲'이나 '녹색의자'에서와는 전혀 다른 서정의 모습과 '가능한 변화들'에서 봤던 김유석을 만날 수 있다. 서정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분위기 탓인지..엊그제 그의 최근작  '시간'을 보고 있자니 국내영화시장에서 밀리고 있다는 김기덕감독이 그 타협점으로 그의 영화 매력인 찝찝함의 수위를 점점 낮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의 어느 작품보다 가장 '김기덕'스러웠던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이 영화를.  

* 2007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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