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의 흑백논리가 한창 극성을 부리고 있던 1950년대 미국은 Joseph McCarthy라는 일개 한 상원의원의 세치혀에 놀아나고 있었다. 미정부기관내에 공산분자가 있다는 그 초선의원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웅성댔으며 언론들은 저마다 설레발을 치며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시작된 이 희대의 마녀사냥은 당시 미국사회가 얼마나 Red Scare를 심하게 앓고 있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 이후 이런 비슷한 류의 집단적 광기와 다름 아닌 현상을 McCarthism이라는 부르게 되었으니 McCarthy라는 이 인물이 유일하게 기여(?)한 것은 그런 사회심리현상을 분석하는데 아주 적절한 용어를 제공했다는 것일게다. 이 마녀사냥의 칼날에 미국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희생양으로 바쳐졌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 사냥의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동료들의 공산당원 전력을 깨발겨야만 했던 해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할 수 밖에 없게 했던 비인간적인 사냥 방법탓이었다. 그런 폭풍우속에서 찰리 채프린은 미국을 등졌고 그 당시 동료를 밀고했던 이들은 동료를 팔아먹은 배신자라는 낙인으로 평생을 고개숙인 채 살아가야  했다. 기실 그런 와중에 양심을 지켜내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으리라. 이 마녀사냥을 미국이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은 비단 그 원흉이 McCarthy라는 일개 또라이만이 아닌 그런 지경까지 몰고갔던 그 당시에 팽배했던 그네들의 집단적 광기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게다. 이 말도 안되는 마녀 사냥쇼에 언론이 아주 제.대.로.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 마녀 사냥꾼이 주도했던 비열한 굿판을 접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저널리스트의 이상적인 아이콘으로 회자되고 있는 Edward R. Murrow라는 한 저널리스트와 Murrow's boys들이라 불리우는 그와 방송일을 같이 하던 동료들의 용기있는 비판 덕이었다.
  

그 당시 ED는 굵직한 사회적 이슈를 주로 다루던 CBS의 간판 뉴스쇼인 'See  It Now'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의 단짝인 Producer Fred W. Friendly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되고 있었던 McCarthy의 무분별한 마냥사냥에 제동을 건다. 그 발단은 신문에서 다뤄진 한 사건이었다. 한때 공산당원 모임에 연루된 적이 있었던 공군 장교의 그 과거 전력을 문제삼아 공군당국이 사상검증이라는 이유로 퇴역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군당국의 결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불거져 나온 ED와 그 동료들의 용기있는 비판은 억울하게 퇴역당했던 그 공군장교를 복직시키게 되었고 그동안 McCarthy의 칼날에 다치지 않으려고 저마다 숨죽이고 있던 양심의 목소리들이 그들의 비판에 힘을 실어주면서 결국 이 집단에로 벌이던 광기 쇼는 5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라는 빨간 딱지에 대한 지나친 경계가 이렇게 한 사회의 모든 뇌관을 마비시킬 만큼 강력했던게 불과 50여년전 이었다니 그리 먼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정치사에서 큰 오점으로 여겨지는 이 이야기를 새삼스레 영화의 화두로 들고 온 이는 다름아닌 잘 나가는 헐리우드 배우 George Clooney다. 그동안 헐리우드 배우중에서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전이 갖는 무모함과 전쟁으로 뭉개지는 인권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그의 정치색으로 미뤄 보건대 아마도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당시 부시의 전쟁놀이 정당화를 위한 나팔수로써 부화뇌동하고 있는 미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확하게 짚어내고 비판하고 싶었던 속내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공산주의자면 전후사정에 대한 고려없이 무조건 적이라고 판단해 버리던 흑백논리가 판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빗대려는 듯 George는 흑백 톤의 영상으로 아주 군살없이 담백하게 담아낸다. 마치 한편의 다큐멘타리를 보고 난 느낌이다. 군데 군데 집어넣은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그 딱딱함을 누그러뜨리면서.그 재즈의 노랫말조차 흘려버리면 안 될 것같은 기분이 들만큼 하나 하나 귀 기울기에 했던 진지하기 그지없는 이 영화의 분위기에는 캐릭터들의 명암이 잘 드러나는 흑백 톤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싶다. 칼라로 찍었더라면 오히려 그 맛이 덜 했을 듯...뉴스 쇼를 마무리할 때 ED가 시청자들한테 던지는 클로징 멘트인 'Good Night and Good Luck'을 제목으로 달은 것은 그건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를 불안한 당시의 회상을 반영하려 한 듯 싶다. 우리말로 의역한다면 '밤새 안녕'정도 될까.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났는데 누군가에 의해 공산분자로 밀고되어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던 그 당시를 살아내던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의미심장한 인사로 들린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이전에 사회 심리학 수업에서 들었던 한 실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건 사람들의 '집단 심리'에 대한 실험이었는데 실험자는 비슷한 길이의 끈 몇개와 한눈에 봐도 길이가 짧은 끈 한개를 놓고는 실험 대상자들한테 보여줬다고 한다. 그 실험 대상자들은 한명만 제외하고는
이 실험의 의도를 알고 있는 연구원들이었다고 하니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딱 한명을 위한 실험이었던 셈이다. 그 여러개의 끈들을 보여주면서 어느 끈이 가장 짧아 보이냐는 간단한 질문이었고 이때 미리 입을 맞춘 다른 실험대상자 즉 연구원들 모두가 짧은 끈 대신 비슷한 길이의 끈들을 가리켰을 때 딱 한명의 진짜 실험대상자의 반응을 보려는 실험이었다. 헌데 그 결과가 참 씁쓸하게 재밌다. 누가 봐도 길이가 다른 끈들에 비해 짧았던 것을 가리키는 대신 80% 이상이 고만 고만한 길이의 끈을 가르킴으로써 다수의 의견을 쫓았다고 하니. 그 결과를 일반화시키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이 간단한 실험이 눈에 보이는 분명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의견에 거스리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사람들의 사회 심리를 보여주는 듯 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만의 판단을 접고 지배적인 의견을 쫓는 우리들의 유약한 심리말이다. 기실 여러 명이 한명을 바보 만들기는 아주 쉽다. 허나 중국집에 가서 남들 다 짜장하는데 혼자서 짬뽕을 달라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더군다나 그게 자신의 사상검증과 관련된 말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라면 혼자서 용감하게 짬뽕을 외치기는 더 더욱 쉽지 않은 법이다. 사회 전체가 집단몰이로 반공을 국시로 외쳐대던 그 때 웬만한 용기와 각오 아니면 그런 양심의 목소리를 내기란 목숨을 걸어야 했을터이니 말이다.  

이 영화 이야기의 대부분은 담배연기 자욱한 CBS Newsroom에서 이루어진다. 그 좁디 좁은 방안에 핵폭탄같은 뉴스를 준비하는 Murrow와 Fred(George Clooney)를 비롯한 Murrow's guys들이 겪을 숨가쁜 작업과 그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허나 언론인의 양심을 걸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총대를 매야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자신들의 판단에 불안해 하는 동료들의 약한 모습도 잡는다. 어찌보면 그건 그들의 양심과 함께 여지껏 받쳐온 저널리스트로서의 생명을 거는 일생 일대의 도박판과 다름없어 보이기 때문이다.만일 자신의 목소리가 저 거대한 지배 논리에 묻혀져 버린다면 혹여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게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들의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초록은 동색이라고 여지없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들의 동료인 Don의 삶처럼 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그럼에도 그들은 믿는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리라는 것을. 그러한 믿음은 자기가 딛고 있는 사회가 담보하고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일게다.

기실 이런식의 언론 조작을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도 그쪽으로는 남다르게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는 정부를 둔적이 있니 말이다. 언젠가 그 수업의 term paper 주제로 한국 언론들이 서로 암묵적으로 짜고 조작했던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군사 정부와 언론은 물론 제도권 교육에 의해 어떻게 확산되고 강화되었는지에 대해 썼던 적이 있었다. 그건 뒤늦게 이승복이라는 어린이가 외쳤다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가 조선일보가 만들어낸 조작된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를 사실 확인 없이 당시에 내노라하는 신문사들이 덩달아 춤을 춰댔다는 한 신문의 기사를 읽은 후였을게다. 그 기사는 무척 충격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듣고 자란 나같은 세대한테는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한 언론사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실화인양 미화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학교마다 운동장에 이승복 어린이 동상을 세우고 때가 되면 이승복 어린이 기념 글짓기 대회나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 나라의 언론과 교육이 한 통속이 되어 국민을 기만한 아주 희대의 사기극이다. 그 조작된 이야기는 반공교육에 아주 적절하게 이용된 셈이다. 나 역시 뭣모르고 그 대회에 나가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려 쪼간한 상 받고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림들을 떠올리니 참으로 입맛이 쓰고 기가 막혔다. 기억난다. 그때 우리가 포스터에 그렸던 공산당들은 하나같이 괴물의 형상이었다. 북한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괴뢰'라고 듣고 배우며 자랐으니까. 이곳에 와서 남편과 나는 우리보다 연배가 한참이나 어린 친구들의 입에서 '북한 괴뢰'라는 표현을 듣고 참 씁쓸해 했던 적이 있었다. 언론과 국가, 교육이 짜고 치는 그 판에서 보고 듣고 자라 온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싶으면서도 말이다. 헌데 만일 그때 누군가가 그 진실의 전모를 알고 있었을 그 누군가가 사실을 폭로했더라면...하고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가.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내심 부러웠다. 그래도 살아있는 양심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 소리에 힘을 모아 실어줄 수 있는 이들의 사회가 우리의 것보다는 훨씬 민주적인 그네들의 분위기가. 
 

ED를 연기한 David Strathairn은 그의 외모가 실제 Murrow와 비슷한 지 여부를 떠나 힘있고 굵은 선의 연기가 Murrow의 분위기를 제대로 잘 살려주고 있는 듯 하다. 자기가 만든 영화여서 웬만하면 자기가 ED역 욕심이 났을 법도 한데 George Clooney는 한발 물러서 있는 ED의 동반자 Fred Friendly를 연기했는데 아주 잘 한 선택인 듯 싶다. 그의 행적에 논란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미국 역대 저널리스트들중에서 본 받을 만한 언론인 상으로 꼽힌다는 Edward R. Murrow가 말했던 이 대목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해서 그의 어록을 뒤적여 올려본다. " If none of us ever read a book that was "dangerous," had a friend who was "differen," or joined an organization that advocated "change," we would all be just the kind of people Joe McCarthy wants." 물론 George Clooney의 의도와 상관없이 순진한 도덕 교과서같은 냄새가 나는 영화긴 하다. 그건 언론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파수꾼(gatekeeper)이라 던가 우리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는 기제로 역할 한다고 믿을 만큼 순진한 이가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걸보니. 그럼에도 부인 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언론의 최소한의 정기능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품을 수 밖에 없다는 게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직은 언론이 우리가 미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세상의 구석 구석을 보여주는 세상을 향한 창구(window)로써의 역할한다는데 이의가 없으니 말이다. 그만큼 언론은 이제 우리한테 '필요악'인 셈이다. ED는 만일 TV(미디어)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즐겁게 하는데만 열심이고 현실로부터 단절시킨다면 말그대로 하나의 바보 상자로 남을 게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허나 그것에 대해선 회의가 먼저 생긴다. 과연.....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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