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산타 없는거 알아요"
누가 나쁜 얜지 착한 얜지 다 안다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기위해 매년 크리스마스때마다 받고 싶은 선물을 소원이라며 빌곤 하던 아들이 드디어 사실(!)을 알아버렸단다. 허긴 아들내미가 내년이면 13살인데..산.빙.교 (산타를 빙자한 교육)의 약발이 떨어질 때가 지나긴 했다. 그나마 산타를 워낙 좋아하는 나라에 살다보니 이제까지 산빙교 효과덕을 많이 봤다. 너 그렇게 하면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을 수 있겠냐는 식으로. 그래도 이미 다 안다는 얼굴을 하면 너무 재미없잖는가. 해서 물었다.
산타가 없다구 누가 그러는데?
"누구형도 그러구 누구도 그러구 저랑 제이슨만 빌리브(believe)해요..."
그래..그럼 올 크리스마스엔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못 받겠네.
"그거 아빠 엄마가 주는거 다 알아요"
산타 할아버지 우리아들이 산타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 아셨으니까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 안 주시겠다.
"Who cares (상관없어요).."
그래? 선물 못 받는데도 후케얼즈라고 얘기하는 걸 보니 이미 다 알아버린게다.
허긴 며칠 전 학교 아파트에 사는 한국 이웃이 그랬다. 그 집 둘째가 어느 날 다짜고짜 산타가 없지요..하길래 누가 그러냐고 했더니 바로 우리집 아들내미 이름을 대면서 그 형아가 얘기해줬다고 하더란다. 아들내미는 확신에 차서 아직도 산타를 믿고 있는 동생들한테 얘기하고 다니는게다.
우리 집 아들내미를 비롯해 아이들한테 산타는 도깨비방망이같은 존재일게다. 어쩌면 그렇게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잘 알고 굴뚝도 없는 집에 그것도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다가 잠든 틈을 타서 들어와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가시는지 신기해하면서. 매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아침이면 그렇잖아도 잠이 없는 아들녀석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집안을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러다 선물을 발견하곤 와우..하며 놀라곤 하던 아들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이젠 산타가 없다고 얘기하고 다닌다니. 그럼 아빠 엄마의 이 하얀 거짓부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건지 알고는 있는 걸까..
이곳에 아이들은 한국에서 크는 아이들보다 순진한 구석이 더 많은 듯 하다. 한국말을 어눌하게 해서 그런건가..한국에서 갓 온 아이들의 말투는 마치 어른들의 것처럼 징그럽다 싶을 만큼 유창한데다가 생각도 어른들 빰칠만큼 영악해서 영 아이같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런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우리아들뿐만 아니라 여기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아이들처럼 보일 때가 많다. 대개가 동갑이거나 동생들인데도 한국에서 갓 온 아이들이 형이나 누나같이 보인다. 산타가 없다고 아들한테 귀뜸해줬다는 그 형아도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다는 두살 많은 형인데 아들내미왈 자기도 그 말을 듣고도 처음엔 아닐거라고 생각했단다. 허긴 산타에 대한 환상을 깨자니 산타가 있어야 받을 수 있다던 선물이 날라가는 것 같아 아쉽고 한편으로 그냥 있다고 하자니 그런건 없다고 하는 다른 친구들이랑 그 형아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는데 이젠 다 안단다...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그러고보니 산타랑 관련해서 한 한국이웃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자기 큰 딸애는 머리가 클수록 산타가 없다고 하면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선물때문인지 산타가 있다고 믿는 척 한다고. 그런 편리한 생각보다는 차라리 선물을 포기하더라도 산타가 없다는 알고 있다고 공표해버리는 아들내미가 마음에 들긴 했다.
아들이 산타의 존재에 대해 의심스런 눈길을 보냈던 적은 많았을게다. 몇년 전이었나. 산타가 놓고 갔다는 선물을 열던 아들, "엄마..산타할아버지도 우리집이랑 똑같은 종이(포장지)로 선물을 샀네요" 지은 죄도 없는데 그땐 말 그대로 헉..하고 맘이 덜컹해놓고 나중에 얼마나 웃었던지. 크리스마스 시즌용 포장지를 살까 하다가 포장지 한장에 삼사천원해서 그걸 아끼겠다고 집에서 쓰던 포장지로 선물을 싸면서 그렇잖아도 맘 한구석이 찜찜했는데..눈썰미 좋은 아들내미가 그걸 놓치지 않은게다. 그러곤 친구들한테 산타가 주고 간 선물 포장지가 우리집에서 쓰는 포장지랑 똑같더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양 두 눈을 동그래져서 얘기하는거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더라....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고..음..샅타할아버지도 아빠 엄마랑 같은 달라트리(Dollar Tree)에서 포장지를 사셨나보다..우리가 재활용(recycle)하듯이 산타할아버지도 쓰던 포장지 재활용하실 지도 모르는거 아니냐는 둥 내깐에는 그럴듯하다 싶어 능청스럽게 대답해줬고 아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또 한번은 산타를 만나보겠다며 기다리는 아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다 아들보다 먼저 잠들고 아들보다 늦게 일어난 덕에 선물을 갖다 줄 때를 놓친 적도 있었다. 해서 그 해엔 산타할아버지 대신 우리가 선물을 줬다. 아마도 그런게 모여서 결국 아들은 산타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게다. 이젠 크리스마스때마다 아들한테 치던 장난을 못 치게 되었구나..싶으니 서운하기까지 했다.
산타에 대한 남편과 나의 하얀(?) 거짓부렁중에 제일 압권(!) 것은 산타 할아버지는 전기로 돌아가는 장난감(electronic toy)은 취급하지 않으신다고 했던 것일게다. 그렇게 얘기한 것은 우리 유학생활의 얄팍한 주머니 탓이다. 그땐 남편이나 나 둘다 공부하느라 이래 저래 빠듯하던 초창기 시절이었다. 아들을 위해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할 여유가 없던 우리는 몇 지인들을 통해 구세군(Salvation Army)에서 저소득층(low income)들한테 공짜로 선물을 나눠준다는 얘기를 듣고는 귀가 솔깃했다. 남편의 조교월급이 수입의 전부인 우리야 당연히 저소득층이지 하고 찾긴 했지만 처음엔 주춤했었다. 그건 선물을 신청하려고 줄 서있던 대부분이 흑인인데다 하나같이 허름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차림새여서 그 영양가없는 자존심이 고갤 살짝 든게다. 허나 그런 자존심 슬쩍 누르면서 같이 간 한국 지인들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혹시나 우리아들이 시민권자가 아니라 선물을 안 줄지도 모르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 한번 신청해보자는 맘에 수업 중간에 없는 시간을 내서 그 대열에 낀게다. 다행히도(?) 아들의 출생을 증명하는 여권을 보자고 한 것 말고는 별탈없이 선물 신청서를 내밀었다.
선물은 3가지까지 신청할 수 있었다. 물론 3가지 다 주는 건 아니고 그 셋중에 하나 혹은 둘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대신 'electronic toy'는 취급 안 된다고 했다. 너무 크고 비싼 것을 적어내기가 그래서 첫 해엔 책이랑 아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장난감을 신청했다. 자전거나 썰매등을 신청하는 사람들을 슬쩍 슬쩍 넘겨다 보면서. 신청하고 와서도 설마 시민권자도 아닌데 우리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올까하는 궁금증하기도 하고 우리가 진짜 불쌍한 이웃이 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하기도 했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 연말이 되면 불우이웃을 도우라고 시청이나 시내한복판에 딸랑딸랑 두부종을 흔들면서 서있던 구세군 아저씨 아줌마들이 떠올랐고 그 안에 돈을 집어넣은 적이 있던가 싶을 만큼 인색했던 내가 선물을 받아도 되나..하는 따위의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며칠 후 선물을 받으러 오라며 그 약도가 그려진 편지가 도착했다. 차가 없던 그 때 난 집에 있었고 같이 선물을 신청했던 한국이웃들 중의 한집 차를 타고 다녀온 남편의 손엔 시커먼 쓰레기 봉투가 들려져있었다. 공짜로 받는데 선물답게 주길 바랬다면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그렇게 "쓰레기스럽게' 준 선물을 받아오려니 남편 역시 나처럼 맘이 좀 안 좋긴 하더라고 했지만.. 포장이 뭐 그리 대순가. 그 안엔 아들이 좋아하는 책들이랑 장난감 자동차들이 내가 신청한 그대로 들어 있었는데. 그덕에 가난한 유학생 아빠 엄마를 둔 아들은 진짜 산타랑 비슷한(?) 구세군 아저씨 아줌마가 보내준 장난감을 선물로 받고 마냥 즐거워 했었다. 공짜 선물에 맛들인 우린 그 다음 해에도 선물을 신청하겠다고 줄을 섰고 스케이보드를 아들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안겨줬다. 그때 아들이 갖고 싶은 선물로 게임기등 전기제품등을 얘기하면 농담삼아 산타할아버지는 전기로 움직이는 건 취급 안 한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는 아들은 한동안 산타할아버지가 전기제품은 선물로 취급하지 않으시는 걸로 오해(!)했었다.
어려운 시절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으로 남는다. 재작년에 그 동네를 방문했을 때 한바퀴 돌아보면서 그곳을 다시 찾으니 그때 길게 줄을 서서 선물 신청할 차례를 기다렸던 구세군 사무실은 자리를 옮겼는지 다른 가게가 대신 들어서 있었다. 그래...우리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아들한테 얘기해줄게다. 산타에 대한 이 웃지못할 오해에 대해 말이다. 이제는 구세군 종소리를 듣고 옛날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적은 돈이라도 보태게 된다. 어려울 때 그렇게 따뜻한 도움을 받았기에. 그리고 작은 도움이 모여 자식한테 제대로 된 선물을 해주지 못해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우리같이 가난한 가정들이 그 도움덕에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으니까.
*작년 (2008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쓰다. 크리마스때마다 그 시절이 떠오르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