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에서 십년넘게 살다 보니 자주 혼잣말로 나오는 푸념이 있다. '이건 영어도 안 되는데 한국말도 안 된다'는. 얼핏 들으면 이해가 안 가는 아니 오해받기 딱 좋은 대목이라 그냥 혼잣말로 혹은 동변상련인 이들끼리 농담삼아 하는 푸념이다. 허긴 나도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누군가의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영어가 안 되는거야 그렇다치고 아무리..한국말이 안 될라고.대체 한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몇년인데 여기서 고작 몇년을 살았다고 한국말을 버벅거리게 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지 않았으니까. 같은 한국사람인 줄 알면서 영어로 얘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한 거부증세를 보였으니까. 헌데 여기 살아온 햇수가 늘어나면서 그런 엄격했던 잣대의 눈금은 점점 헐거워져갔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맘에 의식적으로 삼사년동안 영어만 쓴다면 한국사람들하고 섞이지 않고 지내는 이들한테서 흔히 보여지는 모습인 우리말 할 때 엄..엄..할 수 있겠구나...하는 정도까지 이해하게 된 건 학교가는 시간에만 영어에 노출되어있는,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이랑 늘 한국말을 하는 나 자신조차도 언제부턴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랑 통활할 때 적당한 우리말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더듬거나 그게 뭐지..그거 있잖아...로 상대방의 도움을 받는 증세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 대해 짜증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특히 영어를 전혀 모르는 팔순넘으신 나의 오마니랑 통화할 때 전처럼 주고 받던 표현들로 얘기하려고 할 때 마땅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이탓인가...여기 산 짠밥탓인가..하다가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어와 우리 말을 적당히 버무려 쓰는데 많이 길들여져있구나. 한국에서 삼십년넘게 살았고 여기선 겨우 10년 살았는데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 걸 보니 이젠 남한테 뭐라고 할 주제가 아니다 싶어진다.  

기실 미국에서 오래 된 사람들은 대화에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의식적을 하는 이들이 더 많은 지도 모른다. 기억나는 그림이 몇개 있다. 미국 온 첫해였나. 그때 살던 가족 기숙사 빨래방에서 들었던 한 한국 아주머니가 아이들한테 하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얘들아..too late이야.. hurry up해야지.." 그때 한국에서 갓 온 내 반응은 도대체 영어야 우리 말이야...였다.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우리말도 아닌 표현들은 여기선 많이 들을 수 있다. 어떤 분들은 한문장을 말씀하실 때 조사를 빼고 다 영어단어로 채우시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이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던 탓도 있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우리 (남편과 나)는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집에서 우리말만 쓰게 하는 아들내미한테도 제대로 된 한글을 가르쳐주고 싶은 맘에서다. 그럼에도 가끔 서로에게 그런 증상이 보이면 넘어가지 않고 서로 지적해준다. 그런 증세는 부끄럽게도 남편보다는 내가 더한 듯 싶다. 무심결에 우리 말을 찾기 보다는 그냥 영어단어를 집어 넣어 얘기하는. 아들한테 그러지 말라고 해놓고 어느새 내가 그러고 있는게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게 된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물건이 떨어지면 '에구머니" "어머나"가 아니라 "읍쓰"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싶다.  

영어와 한글을 적당히 버무려 쓰는 것에는 나보다 여기서 자라고 공부하는 아들이 몇수 위다. 처음 학교보낼 때 (여기의 유치원 전 과정, pre-school) 알파벳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그냥 학교에 보냈는데도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은 탓인지 영어로 말하는게 훨씬 편한 아들과 친구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알게 된다. 심할 때는 가령 "game에서 attack했는데.. win했어요" 라던가 "thirsty한테 water drink되요?"라는 식으로 조사만 빼놓고 영어단어로 문장을 채우던 어느 교포분의 화법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럴 때마다 우린.. 아들의 표현을 제대로 된 표현으로 바꿔서 얘기해주고.. 고쳐서 다시 말하도록 한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그런 교정(?) 절차는 아주 일상적인 것인 우리집 그림이다. 허나 맘 한편으로 이렇게 자꾸 고쳐주는게 오히려 우리말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게 아닌가 은근 걱정을 하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하길 한글공부를 시작한 4살 이후부터여서 그런지 아들은 바로 잡아 주면 고쳐서 얘기하곤 한다. 물론 한번에 고쳐지지는 않는다.  

기실 재밌는 건 그런 교정을 아들만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아들도 엄마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얘기해주곤 하기에 하는 말이다. 언젠가 신호등을 보며 얘기하는데 듣고 있던 아들이 하는 말, "엄마..저건 초록색인데.. 왜 맨날 파란색이라고 하세요?" 그러고보니 내 아주 오래된 습관중에 하나다. 모르긴 해도 나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특히 사십이 넘어가는 나이의 사람들은 같은 증세가 아닐까 싶다. 아들의 지적에 그래..맞어..왜 신호등 색은 초록이 아니라 파란색이라고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또 한번은 바깥에서 논다고 나가는 아들한테 문 닫고 나가라고 하니까 신발을 신던 아들이 날 쳐다본다. 알고 보니 도대체.. 문닫고 어떻게 나가라는 거냐는 게다. 그렇게 한 두번 지적하던 아들, 엄마의 그런 표현들이 쉽게 고쳐질 증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자기도 익숙해졌는지..요즘은 별로 토를 안 단다. 혹 나중에..우리 아들도 누군가에게.. 문닫고 나가라는 앞 뒤 바뀐 말을 엄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면 이 또한 스스로 자꾸 경계해야 하는 말 습관중에 하나다.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우리 말을 제대로 쓰는 것에 대해 좀더 철저하게 의식적일 필요가 있음을 자주 깨닫는다. 더우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라면...더 더욱. 영어와 한글을 그렇게 섞어서 쓰곤 하는 우리들의 무의식적인 표현들이...아이들로 하여금 영어보다 우리 말에 대해 둔감해지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기실 여기서 생활하는 아이들한테는 우리말보다 영어가 편한 건 당연할게다. 아들이 또래 친구들하고 놀 때 보면 알 수 있다. 어릴적엔 그렇게 익숙해진 뒷끝에 집에 돌아와서도 자기도 모르게 아빠, 엄마한테도 영어로 얘길 할 때도 있으니까. 그럴 때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다시 우리 말로 얘기하도록 지적하곤 했다. "아들, 아빠 엄마가 미국사람으로 보이냐??"..며 장난을 섞어 유도하기도 하고. 그럴라치면 그제서야 아차하는 얼굴로 씩 웃고는... 우리말로 다시 얘기하곤 했다. 물론 요즘은 그런 과도기가 지났으니 집에서는 확실하게 우리말로 얘기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 사는 친구들에 비하면 아직은 많이 서툴다. '요'자를 빠뜨린다거나..했을 때도.."어른하고 얘기할 때 붙이는 거는 존댓말써야지" 하고 지적해 주면 아들은 잊어 버렸던 '요'자를 끝에다 붙여 다시 얘기 한다. 가끔은 어미를 바꾸지 않은채로...그냥 끝에다 '요'만 달랑 붙인 덜된 말로. 예를 들어 "엄마..가자요" 라던가.."모모 했다요"처럼 말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12살인데도. 아들..뭐뭐했다요..는 언제 졸업할래..하고 물으면 그냥 씩 웃는다. 우리말이 많이 어렵다면서. 매일 매일 저녁시간에 하는 30분 한글 공부 때마다 아들은 어려워요..를 입에 달고 한다.  

그래도 기특한 것은 어려워도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게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좀 쉬자고 해도 아들은 그냥 하겠단다. 그 이유는 자기가 '한국사람'이니까..한글을 모르면 안 된다는게다. 내 아들이지만 참으로 기특하다. 주변 사람들중에 우리가 너무 엄하다고 하지만...말하는 습관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 자신한테나.. 아이한테나.. 좀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싶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나 우리 모습에 관대하게 넘어 간다면 먼후일 아이들은 영어로 얘기하고 아빠 엄마는 우리말로 얘기하다가 결국 최소한의 대화만 나누게 되는 '의사소통 불능'의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그게 흔하게 보아온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게다. 더군다나 그 나라의 말을 능숙하게 잘 한다고 해서 그 나라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끔 여기서 지내다보면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마치 미국사람이라도 된양 처신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혹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온 유학생들에겐 '영어'가 목적일게다. 허나 영어가 다가 아닌 것을, 모르고 있는 듯 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우린 그렇게라도 일상적으로 '길들여 질수 있는' 말들에 민감해지고 익숙해 지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것이 남의 나라 땅에 살면서 우리의 아이한테..그리고 우리 자신한테 뿌리가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다. 우리 자식을 영어만 잘 하고 자기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모르는 속칭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로 키우지 않기 위해 부모로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 경계의 끈을 놓치 않으려 하는 게다. 그래야...우리아들이 남의 나라땅에서 소수인종으로 살게 되더라도 주류와의 '다름'에 대해 움추리기 보다는 그 '다름'을 자부심을 갖고 장점으로 받아들일 줄 알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건 남의 나라땅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심어줘야 하는 자존감의 뿌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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