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나이'는 또 다른 이름의 이데올로기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나이'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서열'을 매기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어디에 가면 자기 나이를 한 살이라도 줄이고 싶어하는가 하면 어딜가면 빠른 생일을 운운하며 한살이라도 더 붙일려고 한다. 전자는 젊어지고 싶은 심리일테고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후자의 경우엔 인간관계에서 한살이라도 나이가 적다는 것은 처음부터나이때문에 밀리는게 부당하다는 심리에서 연유한게 아닌게 싶다. 기실 나이에 한해 한해 보태어지면서 '나이값'하고 산다는게 참 어렵다고 절감하는 본인으로서는 왜 그렇게 자기 나이를 부풀리려고 하는지 조금 의아하긴 하다. 농담으로 '나이가 깡패'라고 하지만 기실 밥그릇 순서대로 매길 수 있는 건 태어나는 순서뿐..그 다음부터는 각자의 환경에 맞게 돌아갈 수 도 있고 빨리 갈 수도 있으니 굳이 '나이'를 따지는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을 때도 많다.

공부하러 온 이곳에서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건 이곳 역시 '나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무시할 수 없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내 보기엔 좀 심한 경우도 있다. 그건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살아온 각자의 배경에 대해 서로 잘 모른다는 점과 공부하기 위해 몇년간 머무르다 가면 된다는 한시적인 관계라는 생각탓인지 몰라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중에 가끔 자기의 진짜 나이에 몇해를 보태거나 빼는 이들도 있다. 재밌는 것은 그런 경우의 대부분이 실제 나이보다 많게 보태지 결코 어려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해서 그 나이때문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실제로 이곳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을 많이 겪어 본 남편은 농반진반으로 나이가 미심쩍은 사람한테 얘기끝에 '민증(?) 까자'며 생년월일이 적힌 신분증을 들이 밀기도 하지만 선뜻 같이 보여주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모른 척 하고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얘기했던 나이보다 신분증에 나온 나이가 왜 더 적은 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쓴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그런 해프닝의 원인이 태어난 순서에서 벗어난 '예외' 에 있다는 것이다. 그건...한국사회의 또 다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옛날말로..'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라는 식의 생각들을 아직도 많이 갖고 있다는데 적쟎이 놀라곤 한다. 하여 똑 같은 나이라 해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은근한 선입견이 바로 그 예외의 근거가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자기 나이가 더 어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먼저 결혼했다는 이유로 자기보다 손 윗사람들을 '형'이나 '언니'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거나 심지어 그네들을 손위사람으로 대접해야 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기의 나이에 몇년을 보태기까지 한다. 그건..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상투틀고 쪽지면.. 어른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는..생각탓인게다. 혹은 아무리 자기 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라고 해도 그 남편이 자기 남편보다 어리면 결코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누구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누구 누구 엄마'라고 은근히 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건 자기의 독자적인 관계가 아니라 남편을 통해 관계를 맺는여자들의 경우에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나이 대신 자신이 결혼한 지 몇년 되었고 자기 아이들이 몇살인지 부터 얘기한다. 해서 이곳에는 어떤 이는 진짜 그 사람의 나이가 몇살인지 정확하게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다. 내가 만난 한 친구도 몇년생이냐는 질문에 자기의 진짜 나이를 얘기하는 대신 자기보다 두 서너살 많은 누구를 가리키며 그 집 얘들이랑 자기얘가 동갑이라는 등, 결혼한 지 몇 년 되었다는 식으로 돌려서 대답하는 이도 있다. 동문서답이 따로 없다.

내가 입에다 자주 달고 다니는 말중에 하나가 '태어나는 것만 밥그릇 순서'라는 말이다. 그건 태어난 순서랑 우리네 인생살이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어떤 이는 몇살에 졸업-취직-결혼-출산이란 정해 놓은 흐름대로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정해진 틀과 상관없이 결혼 대신 공부나 일을 선택해서 살거나 나중에 늦깎이로 공부하거나 결혼해서 사는 나같은 뒷북형 인간들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헌데 같은 나이인데도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늦게 했다는 이유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그렇게 하대를 받는다면 아직도 우리의 생각이 상투틀고 쪽을 올려야.. 대접받는 그 시대의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살다보면 다 알게 되는 건 실상 사람관계에서 물리적인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렇게 나이로 인해 엮어지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건 아니 우선시 하다 못해 자기 제조 연월일(?)까지 속이면서까지 인생 선배이고 싶어하는 건 '나이'가 어느새 사람관계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버렸다는 의미일게다.  그럼에도 우린 안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친구들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기 마련인 것을. 그네들이 결혼을 언제 했건간에...아이가 몇이냐..얘들 나이가 몇살이냐..여자냐 남자냐도 결국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온...삶의 단계...순서..다시 말해 나이 스물엔 이래야하고..서른엔 어떠해야 한다..결혼 적령기는 언제라는 식의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참...그노무 나이가 뭔지.
남의 나라 땅에 와서도 그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그 뿌리는 징하게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