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러울게 없는 말이지만 여기서 산 짠밥이 한해 한해 보태어질 수록 절감하는 건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는 거다.
다른 나랏말을 배우는데 있어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수준의 표현들은 반복적인 'practice'로 익혀질 수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수준에 달하게 되면 누구나 부딪히는 벽이 바로 '문화차이'일게다.
물론 우리같이 머리가 다 굳은 후에..쉽게 말해..늙어서 남의 나라에 온 이들한테는
그나마 연습만으로 해결 될 초급표현들도 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많지만..
미국대학은 외국학생들의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TOEFL 점수를 요구한다.
이 시험이 수업을 따라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는 듣고, 말하고, 쓰기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허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 시험은 'listen and comprehension', 'written expression', 'reading'이었는데
최근 시험의 형식이 Internet으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도대로
흔히 우리가 말하는 문법(writeen expression)이 빠지고 'writing'이랑 'speaking'으로 바뀌었다.
평소 나 역시 ETS의 독점과 횡포에 침을 튀기는 이들 중에 하나지만 이전 시험형식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시험형식의 변화엔 긍정적이다. 그건 과연 이전의 시험형식으로 그 사람의 영어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엔
문제가 많다데 생각이 같기 때문이다. 그건 여기서 토플은 고득점이라는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표현조차
쉽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에 하는 얘기다.
그에 비해 점수가 낮아도.. 별 무리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기에..
허니 학생을 뽑는 학교 입장에서 보면 높은 토플점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된거고
그런 학교의 요구에 따라 ETS는 아시아 권 국가들의 점수밭인 문법을 빼고
취약지구라고 할 수 있는 '말하기'를 필수로 집어넣은게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얘기하자면
듣고 쓰고 읽기의 경우...기실 어느정도 짠밥이 되면 저절로 귀가 뚫리게 마련이다.
처음엔 연음(slur)때문에 안 들리던 말들이 들리게 되고 그러기 위해 제일 좋은 교재가 바로 TV다.
나같이 TV랑 안 친한 사람도 온 신경을 집중시켜가며 봤으니까..결국 그 버릇 남 못 줘서 오래 못 간 나에 비해
TV랑 상당히 많이 친한 남편의 경우 지금은 나보다 훨씬 잘 듣게 된 게 TV 교재(?)덕이라는 건 인정한다.
읽고 쓰기의 경우도 학생이라면 질리도록 읽게 되는 페이퍼나 교재들덕에
점점 더 매끄럽고 다양한 표현들로 페이퍼를 쓸 수 있게 될게다.
물론 writing 역시 speaking만큼이나 쉽지 않지만.
그러나 말하기의 경우...
더군다나 쉬운 일상의 표현들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문종합영어 세대인 나는 여전히 문법이나 '쓰기영어'에 익숙해있어서 그런지
처음 여기 왔을 때.. 제일 어려웠던게..presentation할 때였다.
그때 긴장한 나는 페이퍼에다 썼던 표현들을 그대로 읽다시피 했었다. 그때 듣던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하는 그런 얼굴들을 쳐다보면서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랐었다.
그 다음부터는 문어체들을 구어체로 옮겨 발표도 가능한 일상적인 쉬운 표현으로 하려고 했었다.
제일 어려운 건 토론(discussion)이다. 특히 미국 젊은 친구들이랑 토론할라치면...
그네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그 암호같은 slangs을 이해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물론 얼굴의 두께가 만만찮은터라... 겉으론 전혀 동요하지 않은 척...
니들 하는 말.. 다 이해한다는 느긋한 표정의 포카 페이스를 하고 앉아 있긴 했지만...
머릿속은 그네들의 속사포같은 영어가 엉켜....토론의 갈피를 잡는데.. 진땀을 빼기 일쑤였으니까.
그런 우리 노땅들에 비해...아이들의 영어 익히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누구말대로 그네들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그대로..따라하고...더듬거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아무한테나.. 어설픈 영어를 주절대기 일쑤인..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 '자세'들을 알 수 있다.
우선... 아이들은 영어에 대해 '무식'하다면
무엇보다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새삼스런 진리(!)를 환기시켜준다.
여기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한번쯤은 겪어보았을게다.
자기 아이가 또래 미국얘나 미국 사람들한테 보란듯이 덜된 영어를 떠들어대는 것을
그때.. 무슨 얘긴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미국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괜히 그네들의 부모들 얼굴이 더 화끈거릴데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그림은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기 이전에 아이들이 거치는 필수과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아이들은 또래얘들과 어울리는데 필요한 표현들을 익히게 되고
아주 짧은 시일안에 미국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된다.
시행착오를 쪽 팔려하지 않는 이 배짱... 부럽기 짝이 없는 덕목아닌가...
지금이 만으로 12살인 아들이 어렸을 때 친구나 어린 또래얘들이랑 놀 때
녀석들이 쏟아내는 엉터리 영어를 듣고 있다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네들은 자기네들이 문법적으로 옳은 표현을 써야 한다는 거나
자기의사를 표현하는데 사용되는 모든 단어를 다 알아야 한다는 식의
어른스런 강박관념 같은건 별로 키우지 않는듯이 잘 모르는 표현들은 거침없이 우리말로 대신 쓴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그 말을 들은 미국얘들은 그런 broken 표현들을 알아 듣는다. 별 무리없이..
몇가지 예로...단어가 딸리는 한국 꼬마들은
Can you 묶어 this?,
where is my 신발?,
Are you going to 산책?,
I'm gona 달려...
등과 같은 되도 않는.. 웃지 못할 표현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럼에도 미국얘들은 이를 별개 단어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하나의 context속에서 이해하기 때문인지..
그네들의 질문과 요구를 다 이해하고..끈을 묶어주고..신발을 찾아주고.. 고개를 끄떡인다.
그래서..우린 짠밥영어를 무시할 수 없는거다.
이곳에서 짠밥이 오래되다 보면.. 하나하나.. 그 낱낱의 표현들이 다 들린다기 보다는
맥락속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대화를 짐작하게 되는 능력이 쉽게 눈치밥에 관한한
고수가 되기 때문일게다.
남편의 지론...
영어를 포기하니 들리더라는 얼핏 듣기엔 '선문답'같은 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우린 모든 표현들을 다 들으려고 개개의 단어들에 집착하다
결국 그 말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그의 말대로 디테일을 적당히 포기하고 들으면...
오히려 굵은 줄기들을 잡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얼핏듣기엔 잘난 척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듯 싶지만
한편으로는 공감가는 대목이다. 나 역시 소소한 표현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한 발자욱 물러나 전체 맥락을 이해하면 진짜 잘 들린 적이 있기에 하는 얘기다.
허나 우리처럼 머리굳은 어른들의 말하기는 어찌되었건간에 쉽지 않다.
아이들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틀려도... second language니까 그럴 수 있다는
느긋함을 갖고 열심히 떠들어 대다보면...언젠가는 삼박자가 골고루 갖추어진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I hope so..)
이제 우리 아들내미는 영어에 제법 익숙해져서인지
가끔 우리의 한국 본토배기 발음을 교정해주기에 이르른다.
요즘들어 조예준은 엄마의 r과 l 발음이 틀리다며 엄마의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교정해준다.
내 귀엔 별 차이가 없구만... 구신같이 잡아내는 녀석이 처음엔 신통하다
요즘은 귀찮아 지기에 이르렀다.
아마.. 이 녀석도 적어도 영어 '발음하기'에 관한 한... 엄마보다 자기가 한수 위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난 아이들은 점차.. 그 수준이 높아질수록 문화적 코드의 차이를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십년을 살았다고 해도 native를 따라가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런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게다.
그럼에도 그런 차이만 어려울 정도의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아마도 내 수준을 볼 때 여길 뜨는 그 순간까지도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는게 쉽지 않을거라는 걸 안다.
물론 글쓰기의 경우.. 자꾸 읽고 쓰니까..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끼겠지만
더더욱 집으로 돌아가면 한국말만 써야 하는 결혼한 사람의 경우...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건.. 요원한 '희망사항'으로만 남을 듯 싶다.
그럼에도...가끔 내가 영어를 못 하지 않는다는(?) 착각이 드는 건......
이건 순전히 짠밥탓이고.. 적당히 두꺼운 내 얼굴탓일게다...
말그대로 착각임에도 불구하고...영어 표현 공부를 접은 게 얼마나 오래되엇던가.
해서 매번 방학 계획에 난 새삼스럽게.. 영어 말하는 연습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난 안다. 그게 단순한 표현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얘네들이 쓰는 표현들과는 다른 어딘가 어색하다는 걸....그리고 그게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왔다는게
가장 큰 이유라는 걸...그걸... 깨기는 쉽지 않다는 걸...여길 뜰 때까지...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