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가브리엘 루아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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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쓴 사람의 많은 것을 반영하지만 글쓴이가 나고 자라며 경험한 '땅'의 기억만큼 깊고 넓고 큰 세계를 반영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대자연을 경험하고 태어났으며, 걸핏하면 영감을 위해 자연 속으로 숨어들지 않는가.) 같은 땅에서 씌어진 글들이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가브리엘 루아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경험하는 캐나다 작가지만 두 사람 모두 여성에 교사였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넓고 추운 땅이 주는 순응적이고 사색적인 느낌만큼은 공통적이라고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새롭고 여리고 부서지기 쉬운 어린 아이들을 맡게 된 신참내기 여선생. 가난과 외로움, 때이른 노동 속에 방치된 조숙한 아이들. 그들의 우정이 빚어내는 축복의 순간과 마법같은 사건들. 길고 한눈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던 번역 문장이 매우 정겹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건 작가에게나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한 경험인 것 같다. 곁에 있어서 놓치고 지내기 쉬운 것들을 다시 한 번 눈여겨 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똑같은 사람들이 자연에 순응해가는 저마다의 방식을 체험하면서 얻는 감동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닐 것이란 기대도 있기 때문에. 단 두 달간의 여행 체험을 통해 내가 얻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앤 전집을 읽으면서도 또 이 작품을 접하면서도 내내 캐나다의 광활한 땅내음과 그곳의 혹독한 눈보라를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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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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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에는 영 흥미도 소질도 없어보이는 친구가 샀을 정도라니 꽤나 호응이 좋은 책인 듯 싶어 빌려보았다. 이국적인 배경, 간결한 문체, 풍족하고 고급스런 취향 묘사-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책인 것 같다. 독후감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뭔지 모를 씁쓸한 것은, 일본문학이라곤 미시마 유키오의 몇몇 단편을 제외하고는 하루키밖에 접해본 적 없는 나같은 사람에겐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평가는 도무지 매혹적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긴 하지만 세상에는 하루키가 너무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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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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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방법에 '정석'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살아오는 동안에 누군가에게 '그게 사랑이야'라거나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는 말을 더러 해왔던 것 같다. 사랑은 항상 고운 것만 보여주고 아프고 괴로운 것은 겉으로 내어놓지 않는 거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나를 억압해왔던 모양이다. 나는 그것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렇게 사랑해왔다.

열네 살 아니, 열 살 모모는 예쁜 것, 즐거운 것, 기쁜 것만 사랑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추하고 늙었고 괴로움을 떠올리게 하는 아줌마. 그 곁에서 어린아이의 '행복'을 일찌감치 달관해버린 모모. 그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사못 다르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실을 두려워하며, 함께 있어준다.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모모의 사랑은 아이답지 않으면서도, 가장 아이답다. 어릴 땐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사랑이지만, 자라고나면 하기 쉽지 않은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수백가지 정의를 읽었다. 수백가지 이야기를 읽고,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었다.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인 것 같으면서도 그 모든 것들이 가짜인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무얼까 하고 물으면 대답할 용기도 없었지만 그보단 몰라서 대답할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있음'이라고. 존재함. Being. 있어주는 것. 존재 그 자체. 물리적인 실재가 아니라해도, 굳이 내 '곁'에 머물러주는 게 아니라 해도 그 사람 혹은 그것이 존재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랑의 완전한 충분조건이라고. 스물여섯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이 지점에서야 비로소 나는 그걸 알게 되었노라고. 그렇지만 다행히 지금도 늦은 것 같지는 않다고.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하던 모모의 질문엔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 존재 자체가 이미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걸 실천해내고 있던 꼬마의 머리를, 나도 한 번 지그시 쓸어주고 싶다. 모모는 지겨워 투덜거리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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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분석 입문 한나래 시네마 9
프랑시스 바느와 / 한나래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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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봄에 읽었던 책인데, 얇아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에 만만할 것 같아 다시 집어들었다. 쉬운 이야기를 어려운 말로 써놓은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기억해 둘만한 신선한 관점들이 있어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던 '안개속의 풍경'이나 영화광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는 히치콕의 '레베카'같은 작품 분석의 예는 흥미진진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정작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영화 분석'과 관계된 말이 아니다. 그것은 글쓴이의 에필로그 중 한마디였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재능이란 것이 흔히는 어떤 방법적인 작업 덕에 쌓이고 작동된다는 점만은 지적하고 싶다. 재능은 방법을 제쳐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다.」

영화 분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꾸준히 보고 분석해내는 작업 이후에야 '인상적'인 감상의 차원을 넘어 '분석적' 감동에까지 다다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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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피네 (양장본)
법정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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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순수한 글을 읽고있으면 꼭 내 마음도 그렇게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법정 스님의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 주변의 작은 생명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자신에 대한 통제력 등, 세상에서 닮아가고 싶은 몇 안되는 '어른' 중 한 분이다. 특히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 '하나를 가졌을 때 다른 하나를 더 가지려고 애쓰지 마라. 처음의 하나마저 하찮아진다.'는 말씀은 책장을 덮고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말씀이다. 안에 담긴 내용처럼 표지도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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