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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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방법에 '정석'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살아오는 동안에 누군가에게 '그게 사랑이야'라거나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는 말을 더러 해왔던 것 같다. 사랑은 항상 고운 것만 보여주고 아프고 괴로운 것은 겉으로 내어놓지 않는 거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나를 억압해왔던 모양이다. 나는 그것만 사랑인 줄 알았다. 그렇게 사랑해왔다.

열네 살 아니, 열 살 모모는 예쁜 것, 즐거운 것, 기쁜 것만 사랑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추하고 늙었고 괴로움을 떠올리게 하는 아줌마. 그 곁에서 어린아이의 '행복'을 일찌감치 달관해버린 모모. 그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사못 다르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상실을 두려워하며, 함께 있어준다. 쉬운 말처럼 보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모모의 사랑은 아이답지 않으면서도, 가장 아이답다. 어릴 땐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사랑이지만, 자라고나면 하기 쉽지 않은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수백가지 정의를 읽었다. 수백가지 이야기를 읽고,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들었다.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인 것 같으면서도 그 모든 것들이 가짜인 것 같기도 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이 무얼까 하고 물으면 대답할 용기도 없었지만 그보단 몰라서 대답할 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있음'이라고. 존재함. Being. 있어주는 것. 존재 그 자체. 물리적인 실재가 아니라해도, 굳이 내 '곁'에 머물러주는 게 아니라 해도 그 사람 혹은 그것이 존재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랑의 완전한 충분조건이라고. 스물여섯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이 지점에서야 비로소 나는 그걸 알게 되었노라고. 그렇지만 다행히 지금도 늦은 것 같지는 않다고.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하던 모모의 질문엔 굳이 대답이 필요하지 않다. 존재 자체가 이미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걸 실천해내고 있던 꼬마의 머리를, 나도 한 번 지그시 쓸어주고 싶다. 모모는 지겨워 투덜거리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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