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테르 Green Tomato(그린 토마토) - 30ml
데메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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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향기를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데메테르의 그린토마토 향은 연두와 진초록 사이 어디쯤에 있는 푸른색일 것만 같다. 너무나 달콤하고 풋풋해서, 어린 시절에 솜사탕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나던 그 달콤한 설탕 알갱이가 절로 떠오른다.

두어 달 전에 알라딘에서 처음 데메테르 향수를 보고 너무 신기해서 친구 생일에 토마토 향을 사준 적이 있었다. 심플한 용기 속에 담긴 달콤한 토마토 향을 내내 킁킁거리며 향수 하나가 사람의 기분을 참 좋아지게 한다, 신기해했다. 토마토 향이 가지에 주렁주렁 잘 익은 토마토의 달콤하고 완숙한 느낌을 준다면 그린토마토는 한창 햇볕을 받으며 탱탱하게 여물어가고 있는, 초여름 햇살을 가득 품은 덜익은 토마토의 풋풋한 느낌이다.

아쉬운 점이 두 가지 있다면 향이 그닥 오래 가지는 않는다는 것인데, 아마도 데메테르의 향수들은 향기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기보단 뿌리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는 데 더 주안점을 둔 제품들이 아닌가 싶다. 또 한 가지는, 이전에 친구와 어머니에게 토마토와 프리지아 향을 선물하면서 샘플로 받은 웨트가든이나 허니서클 등과 비교할 때 그린토마토는 알콜 냄새가 좀 심했다는 점이다. 처음 두껑을 열자마자 별 생각없이 코를 갖다대고선 코가 매워서 아찔했다. 그린토마토 향 자체로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데메테르의 여러 향들을 조금씩이나마 경험해본 사람으로선 그린토마토보다는 토마토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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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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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라면 영화 <스모크>와 소설 <달의 궁전> 정도를 접해봤을 뿐이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설가라는 점은 작품 하나만 읽어봐도 누구나 공감할 듯.

뉴욕에 살고 있고 대학 교수이기까지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무명시절 지지리 궁상떨던 얘기라니, <달의 궁전>에서 그 리얼한 노숙자 생활 묘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이제 알겠다. 글쓰는 일로만 먹고살 수가 없어 카드게임 한벌로 대박을 꿈꾸던 시절의 간절함. 이제 가난과 곤궁에서 벗어난 작가는 그때 그 시절의 꿈과 상처를 이렇게 풀어내고 보다듬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 가난과 곤궁 속에서 숨쉬는 작가지망생이라 그런지 이 모든게 마냥 부럽기만 할 뿐. ^ㅠ^

우리말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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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뱃속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 2009년 3월 고도원의 아침편지 추천도서
이케가와 아키라 지음, 김경옥 옮김 / 샨티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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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이나 어떤 일이든 이 사람이 하는 거라면 믿을 수 있다!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는 건 매우 커다란 축복이다. 나한테는 그런 출판사가 하나 있는데 '샨티' 출판사가 그렇다. 여기서 내는 책은 무엇에 관한 책이든 다 내 마음에 들었고, 들고, 앞으로도 들 거다.

이케가와 아키라, 라는 일본의 산부인과 의사가 우연한 기회에 어린 아이들의 기억을 조사하다가 아기들이 의외로 출산 당시의 기억을 많이 갖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은 평범하게 서구식 의료 교육을 받은 의사가 아기들의 기억에서 힌트를 얻어 점차 자연 출산과 자연 치유의 힘을 믿게 된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은 것이다.

나만 해도 갓난쟁이 때 할머니와 고모가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나를 목욕시키던 기억이 있다. 사자 모양으로 생긴 노오란 베이비샴푸통(뚜껑은 빨간색)과 매콤한 샴푸 냄새, 할머니가 나를 들어 통 안에 앉히던 기억, 코에 물이 들어와서 괴롭던 기억 등등. 가끔 나조차믿기 힘들 정도로 놀랍긴 하지만, 그것은 엄연히 내 기억의 일부이다. 그래서 출생 당시를 기억한다는 아이들이 얘기가 결코 거짓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뱃속의 아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태어나자마자 곧장 안아주라는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또 아이가 부모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를 선택해서 온다는 얘기, 환생한다는 얘기도 감동적이었다.

첫 임신을 한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샀다가 내가 먼저 읽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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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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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데뷔 25년을 맞는다는 하루키의 신작소설이다.
오후 11시 56분부터 다음날 오전 6시 52분까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이 소설의 내용. 그리고 그 형식은 다분히 영화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독자는 영화의 관객과 같은 입장이 되어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소설 속 인물들을 따라다닌다. 소설을 읽고 있는건지,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영상문법에 의지한 부분이 많은 글이다. 시나리오를 써서 밥을 먹겠다는 내 입장에선 다소 불쾌 내지는 불안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맘에 안드는. ㅋㅋ

3년 전 배낭여행에서 만난 일본 친구가 침이 마르도록 하루키 얘길 하기에 돌아와서 <상실의 시대>, <빵가게 재습격>, <먼 북소리> 장편, 단편, 에세이 각각 한 편씩을 읽었다. 말을 다루는 재주가 아주 탁월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지나치게 도회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감동까지 받았던 여행기 <먼 북소리>는 아마 내가 여행한 곳에 대한 추억이 덧붙어 그런것이려니 하고 그의 글에 대해서는 이유없이 그저 시큰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제 오늘 <어둠의 저편>을 읽고나선, 하루키에 대한 내 생각이 상당히 바뀌었다. 그는 대단하다. 실로 굉.장.한.작.가.임에 틀림없다. 한 우물을 25년 파는 걸로만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기만 하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루키는, 모든 대가들이 그렇듯 자기 작업을 통해 신의 영역으로 다가가려는 장인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한때 이 땅의 젊은 작가들이 동경과 흠모를 담아 아류로 쏟아내던 쿨하고 키취한, 현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장에 고급하고 난삽한 취향을 제멋대로 늘어놓고 자뻑하는, 반짝하다 곧 사라져버릴 불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이제서야 알아봤다.

<어둠의 저편>은 중년을 지나 이제는 생물학적인 노년에 접어들고 있는 하루키가 바라본 현대 사회의 이면이다. 물질과 소비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인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현대인에 대한 애달픈 연민이며, 자그마한 위로다. 어쩌면 에리처럼, 어쩌면 시라가와처럼, 우리는 자신의 몸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수용하느라 지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있는 마리나 다카하시를 왕따시키고, 외롭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관찰과 묘사보다 대단한 하루키의 통찰은, 욕망의 주체인 마리나 욕망의 객체인 에리의 삶이 결코 따로 유리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의 '緣'이나 힌두의 'indranet'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전혀 별개처럼 보이는 이들의 삶도 결국은 깊은 곳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가지'라고나 할까.

이건 사족같은 말이지만 하루키, 하면 언제나 청바지에 셔츠 차림의 젊고 쿨한 젊은이일 것만 같았는데 오늘 보니 우리 아버지랑 동갑이었다! 하루키와 아버지라... 욕망의 객체가 된다는 건, 그 객체를 욕망하는 이들로부터 약간의 실망과 놀라움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포함한다. 이미 내게는 욕망의 객체가 되어버린, 하루키 그 자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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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스 - 매와 소년
배리 하인즈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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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팅팅한 재생지, 그 흔한 작가 사진 한 장 안박힌 겉표지, 너도나도 양장본을 미친듯이 찍어내는 세상에 오천 원 짜리 소설이라니, 겉모양도 내용도 다소 시대착오적(?)인 이 책. 하지만 읽고나면 가슴 언저리가 훈훈하게 뎁혀지는 책.

밤낮으로 괴롭히기만 하는 의붓형, 가정을 돌보지 않는 어머니, 가출해버린 아버지... 가족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동거인들과 지내면서 '야생'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빌리. 어느 날 빌리에게 야생 새매 한 마리가 생기고 그 새매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통해 빌리 또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내용이 줄거리.

번역이 산만하고 문장이 어지러운 것을 제외하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다. 특히 빌리가 루어를 날려 케스를 훈련시키는 장면이나, 이기적인 석덴 선생과의 축구 장면, 버려진 극장에서 아버지와 영화보던 옛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시각적 형상화가 아주 뛰어나서 영화로 만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영국에선 이미 TV영화로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광산촌에서 자라나 탄광관리, 대장간 조수 등을 거쳐 체육교사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역시 삶이 글을 쓴다. 내가 지금 어떤 삶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 다음에 내가 쓸 글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하루하루가 아주 아깝고 귀하고 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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