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챈, 커튼 뒤의 비밀 세계추리베스트 19
얼 데어 비거스 지음, 김문유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국일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세계추리 베스트> 시리즈는 그 의의에 비해서 너무 관심도가 낮은것 같다. 처음 시리즈를 시작하며 나왔던 책들이 당시 한창 인기리에 판매되던 홈즈와 뤼팽의 중복 출판이어서 였을까. 추리 소설 매니아들에게서도 버림 받은 비운의 문고가 되어버렸다. 정태원씨의 충실하고 다채로운 해설만으로도 충분히 그 값을 가름하는거 아닌가? DMB의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국내 실정에도 맞지 않는) 해설들에 비하면 국일 추리 문고가 성의 있게 추리 소설들을 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오탈자도 적은 편이다) 적어도 "찰리 챈"을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였다는 업적만이라도 인정 받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찰리 챈이 탐정으로서의 매력이 부족했는지, 초창기 소개되었던 비거스의 작품들의 경향이나 수준이 국내 추리소설 매니아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이래 저래 최악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국일 출판사와 모종의 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국일의 시도가 꺾여서 새로운 소설들이 더이상 번역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운 것이다.)

사실 <열쇠없는 집>이나 <중국 앵무새>가 정통 추리소설에 익숙한 노회한 추리 독자들이나 셜록 홈즈를 갓 뗀 초보 추리 독자들 모두에게 좀 어중간했던 것은 사실이다. 뭔가 박진감도 좀 부족하고, 탐정의 개성도 좀 부족하고, 독창적인 트릭이나 기상천외한 반전 같은 것들도 없으니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게 당연할지도. 그러나 <열쇠없는 집>과 <중국 앵무새>가 나름대로 찰리 챈을 소개하는 정도의 소설이었다면, <커튼 뒤의 비밀>은 이제 찰리 챈이 본격적으로 사건을 진두 지휘하여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전작들에 비해서 훨씬 탄탄하고 스피드한 전개와 완성도 높은 구성을 이루고 있다. 찰리 챈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느낌이다.

짙은 밤안개가 낀 샌프란시스코, 16년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과 15년 전에 일어났던 젊은 여성의 행방 불명 사건이라는 아득한 과거의 미제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건너온 은퇴한 영국의 전직 형사 프레데릭 경이 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 휴가중인 찰리 챈과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과거의 사건, 그 이면에 감추어진 "커튼 뒤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 장막을 서서히 걷어가는 찰리 챈의 활약과 더불어 찰리 챈 시리즈의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인 두 청춘 남녀의 로맨스가 펼쳐진다. 전작 두편에 비하면 훨씬 뛰어난 작품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페어 플레이에 좀 미진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반전이나 트릭은 없지만,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찰리 챈의 수사 방법과 유려하게 묘사되는 미국의 그 시절 풍광등은 이 시리즈 만의 매력이다.
 
P.S. 찰리 챈 시리즈는 동양인에 대한 백인의 편견을 100% 걷어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여성들에게 투표권 조차 없던 1920년대의 당시 시대상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작가의 시각이 동양인, 특히 중국인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것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그래봤자 백인의 시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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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27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합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그들은 나아진 게 없네요...

oldhand 2004-07-2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인종 문제>에 시대적 지역적 상황을 고려.. 운운 하는것은 한가한 소리겠지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은 만고 불변의 법칙이니까요. 백인 우월주의 만큼 나쁜 우리나라 사람들의 후진국에 대한 멸시와 인종 차별적 시각도 큰 문젭니다. 어쨌든 비거스가 욕을 뒤집어 쓰기엔 그 당시의 그의 "선의"가 좀 느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panda78 2004-08-0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 권 읽고 실망해서 안 봤더니... 이런... ㅡ..ㅡ;;;

oldhand 2004-08-0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의 두편 보다는 나을거에요. 물론 취향의 차이가 있겠지만. 판다님도 추리소설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미스테리 매니아분들을 만날때마다 반가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