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hard-boiled) : 무감각한, 정에 얽매이지 않는, 딱딱한, 일체의 감상이나 수식없이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본격 장르 소설인 추리 소설에서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일반인들이 흔히 말하는 '추리 소설'은 이 여러가지 종류의 추리 소설 중 '본격 추리 소설' 혹은 '수수께끼 풀이 위주의 추리 소설'에 해당한다. 포가 최초의 장르 문학으로서의 추리 소설인 <모르그 가의 살인>을 쓴 이래 100년 가까이 대부분의 미스테리는 이른바 '본격 미스테리'였다. 셜록 홈즈, 에르퀼 포와로, 파이로 반스, 엘러리 퀸 등의 많은 탐정들은 계급 문학으로서의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본격 미스테리의 명탐정들이다.

미국인 에드거 앨런 포에 의해 창시되었으나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더욱 발전되고, 발전된 형식이 역수입 돼서 미국내에서도 위세를 떨치던 즈음이던 1929년, 이러한 본격 미스테리의 비현실성과 유한 계급을 대변하는 계급 문학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사무엘 더쉴 해미트라는 젊은 작가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 이 역사적인 소설이 바로 <피의 수확>이다.

유한 계급의(혹은 유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탐정이 경찰의 갖은 협력과 떠받듦을 등에 업은 채 팔짱끼고 안락의자에 앉아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이러한 기존의 추리소설의 정형에서 탈피한, 그야 말로 피가 튀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범죄의 현장에서 사건과 몸으로 부딪치는 현실 속의 탐정을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묘사한 <피의 수확>은 최초의 '하드 보일드' 추리 소설이다. 이후 해미트가 발표한 <말타의 매>는 오늘날까지 소설로, 영화로 수없이 오마쥬 되고 재생산 되는 모든 "느와르"의 아버지이다.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들은 그 내용적 특성 때문에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 졌다. <말타의 매>는 존 휴스턴 감독,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느와르 영화의 고전이며, <피의 수확>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라스트 맨 스탠딩>등 여러 영화의 원작 혹은 모티브가 되었다.

해미트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하드 보일드 추리 소설'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작가중 하나가 '레이몬드 챈들러'이다.

해미트가 창시한 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을 완성시켰다고 평가 받는 작가인 레이몬드 챈들러는 뛰어난 문학성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문학도들이 대중 소설가였던 그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속 주인공인 '필립 말로'는 이후의 모든 탐정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고독하고 냉소적이고 우수에 찬 그의 캐릭터는 수많은 문학 작품과 헐리우드 영화에 차용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갖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챈들러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가이다. "챈들러는 나의 우상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던 하루키는 하드 보일드 추리소설의 열렬한 매니아이기도 하다.

도시의 비정함과 쓸쓸한 분위기를 탁월한 문장으로 그려낸 챈들러의 첫번째 장편 <빅 슬립>에서 독자들은 아직은 젊고 거친 필립 말로의 모습과 마법과도 같은 비유와 멋들어진 문장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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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0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필립 말로우한테서 하드보일드적인 냄새를 아직 못 맡았네요. 다들 좋다하는데 전 이상하게 정이 안 가더라구요...

oldhand 2004-07-0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실 저도 "추리소설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해미트나 맥도널드가 챈들러보다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는 사건의 서사적인 면에서 위의 두작가 보다 왠지 긴박감이나, 서스펜스가 좀 떨어진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렇지만, 추리 소설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책"이라고 놓고 봤을때, 추리 소설 매니아들이 아닌 사람들이 봤을때도 잘 읽히는 책은 역시 챈들러가 아닐까.. 라는게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들이 많더라구요. 물론 필립 말로라는 캐릭터를 창조한 것 만으로도 챈들러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겠지만요.

물만두 2004-07-0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성을 따지자면 레이몬드 챈들러가 한 수 위기는 하지요. 저도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