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바~ 멈멍이 (멍멍이) ….”
“안돼! 더러웟!”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 엄마가 개를 만나면 십중팔구는 이 반응이다. 문득, 엄마들 때문에 애들이 개를 더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아가들은 처음엔 개, 고양이를 그림이건, 진짜건 아주 좋아하는데 개와 처음 마주친 순간, 엄마의 반응을 보고 겁을 먹게 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가 돌보기는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지만 개가 꼭 더럽고 사나운 것만은 아니지 않나…^^; 친구로 만들어 주는 것이 개는 둘째 치고, 아이에게 더 좋을텐데.

소년,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를 줍다
‘따르릉~’
“여보세요. 나 회의 중이야, 왜?”
회의란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조카는 숨 넘어가는 소리로 계속 조잘댄다. 약간 짜증스러워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말 한마디.
“고양이가 숨을 안 쉬어. 어떻게 해?”
허걱. 자칭 동물해결사의 약점이 잡힌 것이다. 이렇게 되면 회의는 뒷전.
“저, 집에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데요”(어머니, 죄송합니다 ㅜ.ㅜ)
재빨리 빠져 나와 얘기를 들어본 즉, 조카의 친구가 길에서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를 주웠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살려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처지. 이러저러하라고 대충 일러줬지만 어린 애들이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 나중에 들으니 시킨 대로 새끼용 젖병을 사다가 우유를 데워 먹여 고양이는 무사히 살아났다고 한다.
그런데, 얘들이 어디서 새끼는 어미가 자꾸 혀로 핥아줘야 된다는 얘길 들은 모양이다. 혀로 하자니 도저히 못하겠고, 안 하자니 가엾고. 고민하던 아이들의 방법이 기발하다. 비닐 랩을 혀에 씌우고 아가를 쭐쭐 핥아줬대나, 뭐래나. 손으로 살살 만져줘도 될 것을. ^^.그 날, 새끼 고양이는 우유보다도 아이들의 따뜻한 체온과 사랑으로 살아난 것이리라

소녀, 보신탕 집에서 개를 구출하다
“아저씨, 이 개 훔쳤죠?”
“뭐라카노! 썩 집에 가라, 마!!”
시장통을 지나다 안 그래도 마뜩찮던 보신탕집 앞에서 아이가 아무 물증 없이 따졌다. 제 생각에는 묶여있는 개가 털도 복슬복슬한 것이 여느 똥개와는 확연히 달라서 주인이 개장국용으로 판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신탕집 주인은 뜬금없는 꼬마 형사의 혐의에 꾸중으로 응수하고 말았지만, 어린 형사의 집요함이란. -, - 그 길로 소녀는 칼을 사다 줄을 끊고 개를 탈출시키고 말았다. 
주인이 볼 새라 비린내 질펀한 시장바닥에 엎드려 50원짜리 면도칼로 두꺼운 끈을 썰기를 30여분, 안타깝게도 줄은 개 목 바로 위에서 잘렸고, 덩치 큰 개를 끌고 열 정거장이나 되는 길을 오느라 아이는 개를 끄는 것이 아니라 끌려오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개를 구했다는 뿌듯함이랴. 집에 와 ‘보신탕 탈출사건’의 영웅행세를 하려고 하니 애 아버지 曰,
“정신나갔냐? 이건 도둑질이야. 그 아저씨가 훔치는 거 네가 봤어? 다시 데려다 주고 와!!”
목숨 하나 살리려는 아이의 마음이 왜 기특하지 않았겟느냐먀는 남의 재산 손대는 거 아니란 걸 가르치려는 아버지의 호통에 아이는 그저 서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그 아버지, 호통은 쳤지만 밥이라도 한 끼 먹여 보내라며 고깃국에 밥 말아 내왔더니 뚝딱 한 그릇을 해치우는 개. 굶주린 거 가엾다고 다음엔 오뎅 볶은 기름에 밥을 비벼 내왔더니 이것이 웬 일이냐. 입맛 까다로운 똥강아지, 살아난 게 어딘데 고기 안 들었다고 두번째 밥은 물리는 것이 아닌가.-.-;  . 아이 아버지 다시 曰.
“아, 안 데려다 줘!!”
그러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개는 계속 음식타박을 해가며 아이 집에서 잘 컸다고 한다. 아이는 아직도 동물에 미쳐 ‘자칭 동물해결사’칼럼니스트가 돼 있고. ^^

애와 동물에 관한 진실
요즘 애들 삭막하네, 정이 없네…해도 아이들은 늘 해맑고, 살아있는 한 인간은 따뜻하다. 아이들은 해맑은 본성과 따뜻한 마음을 베풀고 싶어도 베풀 곳이 없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분명 자기보다 연약한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주고 싶어한다. 그들이 사랑을 하고 싶을 때, 그 마음을 받아줄 작은 친구가 곁에 있으면 그들이 조금 더 크게 자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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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3-12-0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신탕집에서 용감하게 개를 구한 소녀가 타잔님이신가요?
사진에 보이는 소녀는 타잔님 어릴적 모습인가요?

늙은 개 책방 2003-12-0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캬, 보신탕을(?) 구한 건 20년 전의 저 맞고요, 사진의 아가는 제 조카예용 ^^ (8살)
캬캬...또 그녀가 한 엽기하야...앞으로 그녀의 활약상을 많이 기대해주세욧~
저 글을 쓸 때만 해도 그녀가 어릴 때라 얘깃거리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아주
개, 냥이와 함께 저희 식구들을 느무느무 웃겨 준답니당 *^^*

ceylontea 2003-12-0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항... 그렇군요... 장난기 가득한 조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기대해볼께요...
음... 방명록에는 하루에 조금씩만 올려달라 썼는데...
앙.. 몰것다...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눈빠지게 읽지요 머.... 쓰는 타잔님보다 힘들기야 하겠어요?

sooninara 2003-12-0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편의 소설이군요..
밤새는 타잔님이야 괴롭지만 글읽는 저희는 즐겁습니다..
타잔님이 이름만 타잔이 아니군요..
정글의 왕..타잔님의 동물사랑..활약상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가을산 2003-12-10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어렸을 때 (5-6살?) 길에서 귀에 상처 입어서 피흘리는 개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골드 리트리버나 무슨 하운드 정도 되는, 당시의 제 어깨정도 오는 개였는데, 무척 순하고 불쌍했습니다. 다가가서 등을 쓰다듬어주니까 제 얼굴을 핥아주더라구요. 그런데, 그 개를 본 엄마는 깜짝 놀라서 제가 물리지 않은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그 개 귀에 묻은 피만 닦아주고는 경찰에 신고했어요.. ㅜㅜ
그당시만 해도 그렇게 무정한(?)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제가 너무 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늙은 개 책방 2003-12-1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그렇지요. 사실 길에 유기되는 개는 위험하기도 하고, 물릴 수도 있는데
어릴 때는 저런 일 있음 "어른들은 다 나뽓~~ >_< " 막 일구 반항하잖아요
(것두 맘 속으로만 -_- ) 캬캬...저두 저런 경험 무지 많았어유.
글고 지금도 저희 조카가 개를 너무 좋아해서 큰 개가 지나가두 막 겅중겅중 안구
이래서 저두 가슴 굼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
 

이 세상 모든 전학생은 결투를 신청 받는다. 주먹이든 눈칫밥이든…. 결투에서 이기면 무난한 혹은 잘 나가는 학교생활이 될 것이고, 아니면 영원한 호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화산고에 전학온 무림고수 김경수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전학생들은 텃새에 눌려 조용히 지내기 마련인데, 여기 짐승 세계에는 어떤 텃새에도 아랑곳 않고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는  막가파들이 있었으니…   


기즈모 이야기
기즈모는 남의 고양이이다. 처음 봤을 때, 곰팡이 배양액에 퐁당 담갔다 뺀 것처럼 온몸에 피부병이 아주 심했다. 어린 놈 앓는 게 가엾어서 잠깐 치료한다고 데리고 온 게 어언 6개월. 이 놈 덕에 우리 식구들 고생 좀 했다. 사람, 고양이 돌아가며 피부병 옮은 건 물론이요, 원래 고양인 똥오줌 잘 가리는데 앓느라 그랬는지 여기저기 볼일을 봐 대 그 뒷치닥거리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병 옮지 말라고 다른 방에 놨다가 날마다 혼자 갇혀 지내는 게 안돼서 “에라 모르겠다” 모두와 합방을 시켰다. 약 한 번 안 먹더라도 한 번 더 안아주고, 눈 맞춰주고, 놀아주는 것이 제 맘엔 더 좋았을까. 이제는 그럭저럭 나아서 병실로 쓰는 장 밖에서 뛰어 놀기까지 한다. 그러나 생전 처음 뛰노는지라 ‘우다다’ 설쳐대기 일쑤. 나머지 애들은 얘만 뜨면 모두 숨기 바쁘다. 그래도 제 녀석은 그 시간만 되면 놀자고 난리니… ^^ .
그러기를 1주일, 병이 다시 도져 지금은 병실 신세다. 그런데 하~ 이 놈이 제 업동이 신세도 모르고 시간만 되면 저를 안 꺼낸다고 난리다. 우리끼리 부엌에서 뭐라도 먹으면 “나 여기 있다”며 양양 대는 통에 동네 쫓겨날 판이다. 그 보채는 모양이 뻔뻔스러우면서도 눈치 없는 게 귀엽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우는 놈 젖 주려고 정작 내 새끼는 굶길지언정, 갇혀 떵떵거리는 업동이 녀석은 빨리 나으라고 맛난 것 골라 먹이고, 시간 없을 때 다른 놈은 몰라도 제 놈은 꼭 안아주고 출근을 하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차도 단단히 찬 셈이다. ^^

쩨리 이야기
쩨리는 고양이 중에서 ‘나홀로 개’인 타잔을 왕따 안 만들려고 들인 요크셔테리어 암컷이다. 워낙 영민해 처음부터 ‘쉬’도 잘 가리고, 밥도 양보해가며 아무 말썽 없이 지냈다. 뿐이겠는가. 맨날 헉헉대고 힘 좋은 돌쇠 타잔에 비해 여염집 낭자처럼 다소곳하고 예쁜 쩨리는 식구들에게 완전 인기만점 스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2개월짜리 강아지 한 놈을 더 들였다. 쩨리만큼 똑똑하진 않지만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배터지게 먹어대고, 신발 물어뜯었다고 혼내면 칭찬하는 줄 알고 좋아라 덤비는 어린 마로에게 온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쩨리는 비상이 걸렸다. 똥오줌 잘 가리던 놈이 소파에 쉬를 안 하나, 잘 뛰어내리던 데서 못 뛴다고 끙끙대지를 않나…급기야는 입에 부글부글 게거품을 물며 식음을 전폐하는 것이 아닌가. 아우 봤다고 장남 녀석 오줌 싼단 얘긴 들었어도 …@,@ 사랑, 관심 받고 싶은 것은 사람, 개 안 가리는 걸까. 상심한 얼굴로 게거품 무는 강아지 모습이란. 아~ 그 사진을 못 찍어 둔 것이 천추의 한이다. ^0^
 개, 고양이 시중들며 키우는 타입 아닌 나. 입맛 까다롭게 굴면 3일 굶긴 후에 냉수에 밥알만 말아줘도 잘 먹는 게 개라는 생각으로 살지만, 이 녀석 샘 부리는 건 너무 귀엽고 우스워서 특별히 며칠을 예뻐하곤 했다. 지금은? 새로 온 마로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늙은 타잔은 또 다시 왕따가 됐다. 하…그럼 또 다시 개를 들여야 하는 건가…ㅠ.ㅠ

낙서 이야기
낙서는 타잔 농장에 새로 들어온 고양이다. 원래 어른 고양이들은 설탕 마마님께서 너무 엄하게 구셔서 못 오곤 하는데 갈 데 없는 처지라 하루만 재운다고 데리고 왔다가 그냥 눌러앉게 되었다. 설탕이는 늘 그렇듯 경계를 하며 (발톱없는 발로) 고양이 펀치를 날리지만 이 놈은 그러거나 말거나다. 처음엔 귀머거린가 했을 정도다. 원래 하루 이틀은 ‘으르릉~”대며 세력싸움을 하기 마련인데 신경도 안 쓴다. 전의 없는 상대와의 싸움만큼 맥 풀리는 것이 있을까. 설탕이는 혼자 으르렁대다 머쓱~해서 제 가던 길을 가곤 한다.
처음 와서 이 놈은 꼭 고양이 아파트 3층 옥상에서만 잠을 잤다. 처음 온 곳이니까 제 눈에 제일 높고 좋은 자리를 ‘찜’한 것이다. 그런데 올라가기는 잘 하는 놈이 내려올 땐 못 내려온다고 막 투정이다. 그 꼴이 안돼보여 내가 한 번 내려 준다고 하니까 무섭다고 발톱을 세우고 난리를 펴더니 무사히 내려온 후, 내려올 때마다 날 부른다. --. 모른 척 하고 지나가면 고장난 라디오처럼 올 때까지 앵앵대고 얼마나 보채는지…. 다시 말하지만 애들 막 키우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이런 시중 들어주지 않는데… 
그렇게 제 자리 ‘찜’하던 녀석이 이제는 식구대접을 받고싶은 모양이다. 밤에는 우리집 모든 개, 고양이가 나와 함께 침대에서 자는데, (내가 귀찮아서 작은방으로 도망가면 어느새 다 따라와서 자고 있다. ㅜ.ㅜ) 이 녀석이 이제 자기도 좀 침대에서 자겠다고 신호를 보낸다. 다른 애들 다 자고, 나만 혼자 비디오를 보는데 그 앞에서 왔다~ 갔다~ (꼬리만 보인다) ^^" 그러더니 ‘깡충’ 섰다, 앉았다 반복하며 눈치를 보는 거다. 올라오지 말라고 손사레를 치니까 계속 눈치를 본다. 포기하나보다 했더니 갑자기 큰 맘 먹었는지 눈 질끔 감고(하하, 그 표정이란) 침대 위로 휙 뛰어 오른다. 내가 재미 있어서 내려가라고 했더니 계속 눈치보다 또 휙! 또 내려보냈더니 밑에서 궁시렁궁시렁 대더니 결국 침대 밑에서 잠이 드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와서 주변만 빙빙 돌더니 저도 이제 식구 라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낙서가 얼마나 웃기던지. 어쩌다 굴러와 눌러앉은 돌, 뻔뻔한 낙서가 어떻게 우리 식구로 자기 자릴 잡아갈 지 기대된다.  ^ ,^


<굴러온 돌 낙서는 그로부터 2년 후 일케 이쁜 아들을 낳았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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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하나. 늦잠을 자건, 외박을 하건, 밤새 술을 퍼먹건, 비디오를 보건! 이불을 안 개건, 머리를 안 감건, 세 끼 내내 라면을 먹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은? 정답. 독신의 즐거움. 때로는 ‘왕왕’대는 사람 소리 그리워TV 켜는 고독이 있을지언정 누구 눈치 하나 볼 것 없는 독립만세 선언이 어언 1년! 그러나 한번도 마음 편히 외박 해본 적 없었으니 이게 웬일이냐고? 타잔 농장에는 어떤 종가집 보다 무시무시한 개, 고양이 시어머니 11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고양이 시어머니’눈치보기
이 세상 모든 고양이들은 시어머니시다. 얼마나 알고싶고 먹고싶은 게 많으신지 밥하면 밥 한다고 오두마니 밥통 위에 앉아 냥냥, 청소할 땐 난짝 등에 업혀 갸릉갸릉, 똥 눌 땐 폴짝 무릎에 앉아 콤콤 …아주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뿐인가. 집안에 걸레질 좀 하려고 스팀 청소기 ‘쉭쉭’ 대면 무슨 소리냐며 한 줄로 졸졸 가는 데마다 쫓아오신다. 130도 고열 스팀이라 델 세라, 다칠 세라 아주 가슴이 조마조마해 죽겠다. 혼내고 발길질해도 사람 무서운 줄 몰라 도망도 안 가니 그저 옥체보존 하시도록 눈치 보며 살살 미는 수 밖에….
그렇다고 집안일에만 참견 하시는 건 아니다. 며느리는 사생활도 없다.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어디 살며, 부모님은 뭐하시고, 결혼은 했는지 물어보기라도 하시는 양 오신 손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냄새 맡으며 철두철미 검사를 하신다. 주머니에 무슨 비린내 나는 과자라도 들었으면 그걸 꺼내라고 발톱으로 난리시다. 조금만 더 훈련시키면 마약 탐지견으로 써도 될 판이다. 뿐이냐. 밖에 나갔다 뭐라도 들고 오면 봉지에 든 물건은 물론이요, 바스락 거리는 비닐봉지인지, 들어가 앉았기 좋은 종이봉투인지까지 간섭하신다. 봉지를 치우려다 안에서 고양이들이 뚝 떨어져 가슴 ‘굼적’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고양이들은 왜 그리도 서랍, 상자, 봉투에 들어가길 좋아하는지…. ^^;

‘강아지 시아버지’ 봉양은 괴로워
그래도 고양이들은 집안에서만 잘 모시면 되니 좀 낫다. 강아지 시아버님들은 안팎에서 불편 없이 봉양을 해드려야 한다. 일단, 그 놈의 배꼽 시계는 한번도 죽는 일이 없으셔서 월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영락없이 7시면 기침을 하신다. 늦잠 좀 자려고 모르는 척 이불을 뒤집어 써보지만 눈치는 또 빨라서 조금이라도 깬 티를 내면 나가자는 성화에 잠옷 바람에 바로 진지 차려 드리고 산책 나가야 한다. 새벽까지 술 먹고 들어온 날은 잠들자마자 ‘부시시’ 새둥지 머리로 동네 한바퀴를 돌아야 하니 내 몰골이 너무 흉해 적당히 들어왔으면 싶지만 웬 걸! 한번 나가시면 우체통->전봇대->암캐네 집 대문->가겟집 소주 박스는 꼭 지나셔야 하는 필수코스다. 어느 개가 지나갔는지, 밤새 누가 빵 부스러기라도 흘렸는지…아주 꼼꼼히 살펴보신다. 아~ 남들 곱게 꽃 단장하고 출근하는 시간에 개 줄에 끌려 폐인처럼 강남 한복판을 도는 꼴이라니. (더구나 나는 한창 때의 과년한 처녀가 아니란 말인가 ㅜ.ㅜ)
뿐만 아니다. 시아버지 모시고 사는 며느리는 내 집에서 맘 편히 과자 한 봉지도 못 먹는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TV 광고에 나오는 불독처럼 잽싸게 조건반사 하시기 때문이다. 한 두 개 줘도 그만이지만 3마리가 덤비면 내 입에 들어가는 건 하나도 없다. 더구나 과자 값이 500원 넘어갈 땐 사랑하지만 진짜 아깝다. 때문에 <강쥐에게 들키지 않고 과자 먹는 법>이 동원되는데 1차. 손 대신 가위로 소리 안내고 봉지 뜯기 -> 2차. 씹는 소리 안 나게 입에서 우물우물 녹여 먹기 -> 3차. 잽싸게 들고 전력질주로 방에 숨기이다. 모두 성공했을 땐 내 자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혼자 사는 집에 숨어서 과자를 먹고 앉았으면 내 돈 내고 얻은 집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ㅜ.ㅜ. 이 밖에도 공 180번 던져 드리기, 산책할 때 100미터 11분에 전력질주, 뼈다귀 드실 때 납작 엎드려 인간방석 되기, 오줌 마려워도 끝까지 무릎 위에서 잠드신 거 깨우지 않기 등 아~ 정말 강아지 시집살이는 ‘이조여인수난사’가 따로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집살이
짐승 땜에 집 얻어 나오고, 인생 저당 잡힌 나를 보고 어떤 이들은 왜 사서 고생이냐고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못난 며느리는 똥 치고, 밥 주고, 옷에 붙은 털 떼는 것이 세상 가장 큰 즐거움인 것을. 아침에 일어나서 아가들 변 상태가 좋으면 아침이 상쾌하다. 밤에 가득 채워놓은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어 있으면 밥값 무서우면서도 가슴이 뿌듯하다. 어제까지 못 오르던 계단을 오르게 된 강아지, 햇살 아래 뒹굴다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평화롭기 때문이다. 그들이 매일매일 개다워지고, 고양이다워질 때 이 세상 무엇보다 행복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 매일 23명의 천사와 살고 있다. ^^;


<천사냐 웬수냐 -_-;;;  (인간은 오갈데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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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개 책방 2003-12-09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들은 3년 전 쯤 쓰여졌던 글이라 식구 수가 아직 11마리 였네요. ^^;;
저도 몰랐는데...3년 동안 2배로 늘었구나...어흐흑...ㅠ_ㅠ

sooninara 2003-12-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후에는...세상이 이런일이에 나가시는거 아닙니까???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했던가. 원치 않는 감투 노릇만큼 괴로운 게 있을까. 무슨 소리냐고? 회의내용 잘 듣지도 않았는데 발표자로 지목된 괴로움을 아는가? 야유회 때 개중 젤 젊다는 이유로 선택의 여지없이 무반주 서태지랩을 불러야 했던 슬픔은? 매달 공과금 까먹기 일순데 단지 남방단추 끝까지 채웠다는 이유로 동기모임 회비 걷는 총무가 되는 건 어떻고? 하자니 성미 안 맞고 안 하자니 욕먹을 것 같은 울며 겨자 먹기 식 감투…그 괴로움을 아는 사람은 알리라. 그런데…옴머나…고양이도 알더라.

발톱 빠진 대장 고양이
집에 발톱 빠진 고양이 한 놈이 있다. 사람 문에 발가락 껴서 거멓게 죽다가 새로 나려고 빠지듯 빠진 것은 아니고, 처음 데려왔을 때 너무 어린 조카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발톱 제거 수술을 시킨 것이다. 이 수술은 적잖이 시키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반대인 편이다. 시술 이유란 게 애들 할퀴거나, 소파 뜯는다는 건데 이건 잘만 교육시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30여분 동안 생 발톱을 잘라내는 시술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나로서는 너무 미안해서 뒤꿈치로 발등을 찧도록 후회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무지가 죄라고 결국 발톱 빠진 고양이가 된 설탕이. 이것도 모자라 이후 그녀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다. 친구 만들어 준답시고 동생 고양이 7마리를 줄줄이 들임으로써 설탕이는 어쩌다 최고 연장자가 되어 발톱 빠진 상태로 ‘대빵’이 된 것이다. 대장이라는 권력만 주고 왕 발톱이라는 무기는 안 준 허수아비 노릇이랄까….쩝~


그녀의 딜레마
설탕이는 발톱도 없거니와 성격도 그다지 권위적인 놈이 아니다. 고양이들도 모두 성격이 달라서 나이 들고도 순하게 져주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어려도 절대 지고 못사는 권위의 화신들이 있다. 그녀는 원래 누굴 부릴 생각도 부림을 당할 생각도 없이 유유자적하는 강호 스타일인데 줄줄이 밑으로 부하들이 생긴 것이 그녀의 딜레마였다. 대장 노릇을 하자니 심지가 약하고, 안 하자니 버릇없는 천방지축 어린 것들이 자기 멸치며, 난로 옆자리 등 좋은 것을 염치불구 빼앗는 것이 아닌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 순한 설탕이도 이제는 제법 대장노릇을 한다. 자기가 밥 먹기 전에 누군가 주둥일 대면 예외 없이 고양이 펀치를 ‘퍽퍽’ 날리고, 화장실 청소를 해 주면 제일 먼저 들어가 제일 먼저 ‘찜’을 한다. 나름대로 그녀가 이뤄낸 부단한 자기 트레이닝의 결과에 박수를 ‘짝짝’ 보내고 싶지만 문제는 그녀가 발톱 없는 고양이라는 점. ㅜ.ㅜ. 이것이 진정 그녀의 딜레마인 것이었다.

솜방망이 펀치의 슬픔
고양이들은 높은 자리 올라가기, 밥에 먼저 입대기, 여기저기 자기 냄새 묻히기 정도로 권위를 행사한다. 이 법칙을 어긴 놈은 가차없이 고양이 펀치를 맞게 되는데 그게 비록 코딱지만한 고양이 발이지만 꽤 멀리서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파워 있다. 더구나 버릇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경고를 할 때는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그야말로 위엄 ‘짱’이다.
그러나 발톱 없는 설탕이의 헛발질이 무서울 리는 만무. 동생 고양이들은 자기 마음  좋을 때면 대장을 무서워해주고, 기분 나쁘면 그냥 무시하곤 한다. ㅠ.ㅠ   솜방망이 펀치가 ‘팩팩’와도 그냥 ‘뭐가 지나갔나…’ 하는 표정을 지을 뿐. 심지어 어떤 막가파는 으르렁대며 맞공격을 해대 설탕이의 털을 한 웅큼씩 뽑아낸다. 한 밤중 이 소동이 나면 집안은 삽시간에 으르렁 소리로 ‘나이트 사파리’가 되어 버려 버스 몰고 집안이라도 한바퀴 돌고싶은 심정이다. 허울뿐인 대장은 서지 않는 권위에 광분하다가 최후의 수단을 선택한다. 냄새 묻히기 작전 돌입! -_-+ 오줌을 싸는 것이다.

오줌싸개 대장 고양이
좀 볼품 없지만 오줌이라도 싸서 제 체면이 좀 선다면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벗뜨, 고양이의 배설은 영역표시! 영역싸움은 금싸라기 땅부터 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언제나 좋은 자리 - 높거나  따뜻하고 포근한 자리에만 용변을 보신다. 생각해보라, 집안에서 그런 곳이 과연 어디일지? 발판, 소파, 침대 되겠다. 어떨 땐 내 무릎에 오줌을 싸는 적도 있다.(나를 가구로 보는 걸까, 단순한 소유욕일까?)  세워지지 않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 밤낮으로 오줌을 싸대는 우리들의 허수아비 대장 설탕이! 그러나 어쩌랴. 이는 권력만 주고 무기는 주지 않은 이 못난 어미가 져야 할 십자가인 것을.
오늘도 설탕이는 오줌을 싼다. 빨래라도 해서 제 냄새가 지워지기만 하면 기를 쓰고 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빨래를 한다. 이불, 침대시트, 방석…가리지 않고 빨래를 한다. 이불 빨래가 하도 잦아 옆집에서 애 키우는 새댁인줄 알거나 말거나, 날 좋으면 놀러 갈 생각 대신 이불 빨래 생각만 드는 아줌마가 되거나 말거나 발톱 빠진 대장 고양이, 설탕이의 권력투쟁을 위해 오늘도 밤낮 없이 빨래를 한다!!
설탕이가 하야하고 노후를 편안히 보낼 그 날까지 나는야 신명나게 빨래를 한다!!


<뚱보를 혼내는 대장고양이 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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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개 책방 2003-12-09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때만 해도 설탕이 약발이 먹혔는데...ㅋㅋ
 

개와 잠자리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불을 깔기만 하면 제 자리인 줄 알고 흙 발로 파고드는 뻔뻔스러운 개와 함께 말이다.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개들은 종종 자기를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푹신하고 따뜻한 자리는 다 제 자린 줄 안다. 비오는 날 산책을 끝낸 진흙 발로 이불에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밀쳐내기라도 하면 왜 그러냐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도 뻔뻔해서 어떤 때는 밀어낸 내가 다 미안할 정도이다.


개들은 뻔뻔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1만 여년의 역사를 인간과 함께 했다 해도 개가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법. 우리 개 타잔은 잠들 기 직전 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엉거주춤한 폼을 하곤 같은 곳을 뱅글뱅글 몇 번이나 돈다. 그리곤 이불에 레이스가 달렸거나 말거나 땅바닥을 파는 것처럼 발톱으로 이불을 벅벅 긁어댄다. 다음엔 그 축축한 코로 연분홍색 시트가 진분홍색이 되도록 이불의 냄새를 킁킁 맡는다.(그 소리 흉측하다--.) 그렇게 안전을 확인한 후에야 설날 떡만두국의 만두처럼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드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하는 모양이 영락없이 잡종개건만 타잔은 뻔뻔스럽게도 평생을 자기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살아가는 듯 싶다. 뿐이랴. 잠들기 시작할 땐 분명히 내 발 밑에 있던 개가 아침이면 늘 이불 한 가운데서 사람처럼 사지를 벌리고 잠들어 있다. 반면 공주처럼 우아하게 잠들기 시작했던 나는 춥고 딱딱한 이불 끝에서 개처럼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고… 아마 잠결에도 애써 개를 피해주느라 이불에서 쫓겨난 모양이다. 이런 아침이면 허리,다리,목 어디 하나 안 쑤신데가 없다. 그렇다고 개를 상대로 '나는 네 생각을 끔찍이도 하는데 너는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들은 민망하리만치 뻔뻔하다
   사실 개들이 사람처럼 벌렁 누워 자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북실북실 털이 달린 몸으로 견디기에는 집안이 너무 덥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그 사정까지 어른들이 봐 주실리 없고 어른들은 개의 이런 행동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쯧쯧, 도통 부끄러움을 몰라!!” 혀를 차시며 벌어진 개의 뒷다리를 슬며시 포개주곤 하신다. 하지만 개는 '아웅~ 자는데 왜 그래에~?' 하는 표정으로 다시 사지를 벌려 X등급 포르노를 연출한다. 호의를 무시당한 어른들은 "이 놈아 *** 보인다"고 호통을 치시며 개를 쫓아 버린다. 하지만 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뻔뻔스럽게도 자리만 조금 옮겨 또 다시 적나라한 포즈로 자다 만 잠을 청할 뿐이다.

   개가 뻔뻔스러운 일은 또 있다
   개들은 가끔 인간을 상대로 사랑에 빠진다.
   타잔은 마치 양반집 주인 아씨를 사모한 '벙어리 삼룡이' 만큼 열렬히 나를 사랑한다.   물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설령 그것이 개일지라도. 하지만 그걸 직접 받아본 소감을 말하라고 한다면 '개와의 연애'가 꼭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전봇대만 보면 품위 없이 뒷다리를 올리고 간혹 제 밥그릇에도 똥을 싸는 뻔뻔스러운 개가 바람난 앞집 암캐 '뽀삐'를 보는 것과 똑 같은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볼 때의 심정을. ㅜ.ㅜ 하지만 주인의 맘이야 어떻든 개들은 대개 자기 주인을 세상에서 가장 뻔뻔스러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일쑤다.
   언제 어디서든 밥 달라 사랑 달라 조르면 눈을 맞추자고 난리다. 문닫고 목욕이라도 잠깐 할라치면 그 짧은 이별이 타잔에게는 <견우직녀>의 그것처럼 무척이나 가슴 아픈 모양이다. 내가 욕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개는 발톱으로 문을 '박박' 긁어댄다. 저도 들어오겠다는 소리다. 내가 반응이 없으면 개는 애절하게 '끙끙' 어리광을 피워댄다. 제발 나를 들여보내 달라는 소리다. 그래도 내가 대답이 없으면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짝을 찾는 황야의 늑대처럼 처량하게 '워우우'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집안은 난리가 난다. 나에게는 그 소리가 나를 위한 연가로 들리지만 나이 지긋한 노인들에게는 당신을 향한 곡소리로 들릴 테니까. '개가 지붕 위에 올라 앉으면 집안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 '개가 짖지 않고 울면 집안에 줄초상 난다'는 전통적인 믿음에 따라 노인들은 "이 놈의 개가 누굴 잡으려고 이 궁상이냐"며 반사적으로 몽둥이를 찾으신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고픈 노인들이야 그 개가 얼마나 밉살스러울 것이냐.
 
   개 뻔뻔스러운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할까.
   '방귀 뀌고 성낸다'는 속담이야 들어봤겠지만 방귀 뀌고 성낸다는 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주인을 찾아 몇 만리 길을 돌아왔다는 진돗개 이야기나 몸으로 불을 끄며 술에 취한 주인을 살렸다는 오수의 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길들인 개의 명석함을 확인하곤 흐뭇해 한다. 하지만 개들이 똑똑해봐야 개는 개일 뿐이지, 개들이 윈도우를 할 것인가, 니체를 논할 것인가. 컴퓨터와 철학 못지않게 개들은 생물학에도 문외한이어서 자기가 방귀를 뀐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
   우리 개는 본래 먹성이 좋아서 웬만한 개들은 냄새만 맡고도 도망가는 김치, 양파, 생마늘을 살점 붙은 갈비인 양 맛있게 먹어치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밥을 주면 밥그릇까지 먹어치우는 괴력을 지녔다. 하지만 제 아무리 무쇠팔 무쇠다리를 가진 '마징가 개'라고 해도 고무, 플라스틱, 나무 젓가락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데 위장이 좋을 리 없다. 때문인지 타잔은 시시때때로 방귀를 뀌어대곤 한다. 더 우스운 것은 자다가 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집안에 도둑놈이나 피자 사나이라도 온 양 혼자 으르렁 댄다는 것이다. (그럴 땐 웃기는 거 반, 내가 이 개를 과연 끝까지 키워야 하느냐 반…그렇다 ㅜ.ㅜ)
   이 정도면 귀엽지 뭐가 뻔뻔스러우냐고?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개는 종종 방귀는 제가 뀌어놓고서 천연덕스럽게 냄새는 내게로 와서 맡기 때문이다. 저하고 나하고 둘이 있을 때에야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마는 손님이라도 앞에 앉혀 놓았는데 민망한 부위의 냄새를 맡으면 이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손님이 눈치 채지 못하게 귀여운 척 쓰다듬으며 개의 머리를 '스윽' 민다. 하지만 눈치없는 우리 개. 십중팔구는 그럴수록 더 맹렬하게 달려든다. 다음 단계로 나는 갑자기 가스불 안 끈 게 생각났다는 듯, 일어서서 자리를 피하고 만다. 하지만 뚝심있는 우리 개. 끝까지 쫓아와 두 발로 기대 서서 냄새를 맡고야 만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이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나. 어떻게 하든 위기를 모면해야겠기에 구차한 변명 한 마디를 던진다.
   "아유~ 어리광은..."
   하지만 내가 아무리 변명을 해본다 한들 손님이 바보 아닌 다음에야 이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보다 못한 손님. 전화 걸 데가 생각났다며 자리를 피해준다. 남겨진 나? 장롱 속에 처박혀 있던 꾀죄죄한 면티처럼 스타일 완전히 구기는 거다.


   개 뻔뻔스러운 것이 어디 그 뿐이랴
   개들은 방금 배달된 신문을 통째로 잘근잘근 씹어놓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다. 유학간 친구에게서 5년 만에 온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도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는 눈빛이다. 빨래 줄에 널어놓은 양말이 개집 쿠션 밑에서 나와도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는 듯 시치미다. 식탁 위에 준비해놓은 토스트를 슬쩍 먹어치우고도 아침 메뉴가 밥 아니라 빵이었냐는 듯 능청을 떤다. 비 온 다음날 신발을 물고 뛰어 들어와 온 방안이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버석버석 해지거나 말거나, 뼈다귀인줄 알고 줄줄 핥아 핸폰이 흥건하게 젖거나 말거나 뻔뻔스럽게도 개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개가 제일 뻔뻔스러워 보일 때는 자기가 정말 내 애인이라도 되는 양 내 입을 아이스크림 핥듯 줄줄 핥을 때이다. 방금까지 자신의 '그 곳'을 줄기차게 핥던 입으로 말이다. ㅜ0ㅜ

    그러나 나는 개같이 살고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들은 뻔뻔하다.
뻔뻔하기만 한가 하면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개가 좋다. 뻔뻔하기 때문에 개가 좋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느라 뻔뻔해지는 것에 비해 개들은 솔직하느라 뻔뻔해지기 때문이다. 신문을 찢거나, 함부로 짖거나, 아무데서나 ‘쉬’를 하거나, 비오는 날 흰 옷 입은 주인에게 달려들면 혼이 날 것을 개들은 안다. 하지만 놀고 싶고, 말하고 싶고, 싸고 싶고,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들은 그렇게 한다. 개들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
   개들의 걸러지지 않은 순수하고 맑은 감정을 나는 사랑한다. 개들은 끊임없이 감정을 표출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물론이고, 성가시다고 느낄 때에까지 그런 감정을 지체 없이 나타낸다. 어느 누가 주인을 본 개만큼 기쁨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는가?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개는 어떤 사람보다도 진실하다. 살아오면서 개만큼 솔직하게 기쁨을 표현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래서 나는 개같이 살고 싶다.
뻔뻔스럽게 살고 싶다.
솔직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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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3-12-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글 잘쓰시네요.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거, 연재 끝나면 책이라도 내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아래 글, 제가 추천 했어요. 물론 이것두요.^^

waho 2004-02-1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 키워 본 사람이라면 공감 할 내용이네요. 너무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