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잠자리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불을 깔기만 하면 제 자리인 줄 알고 흙 발로 파고드는 뻔뻔스러운 개와 함께 말이다.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개들은 종종 자기를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푹신하고 따뜻한 자리는 다 제 자린 줄 안다. 비오는 날 산책을 끝낸 진흙 발로 이불에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밀쳐내기라도 하면 왜 그러냐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도 뻔뻔해서 어떤 때는 밀어낸 내가 다 미안할 정도이다.


개들은 뻔뻔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1만 여년의 역사를 인간과 함께 했다 해도 개가 인간이 될 수는 없는 법. 우리 개 타잔은 잠들 기 직전 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말 그대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엉거주춤한 폼을 하곤 같은 곳을 뱅글뱅글 몇 번이나 돈다. 그리곤 이불에 레이스가 달렸거나 말거나 땅바닥을 파는 것처럼 발톱으로 이불을 벅벅 긁어댄다. 다음엔 그 축축한 코로 연분홍색 시트가 진분홍색이 되도록 이불의 냄새를 킁킁 맡는다.(그 소리 흉측하다--.) 그렇게 안전을 확인한 후에야 설날 떡만두국의 만두처럼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드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하는 모양이 영락없이 잡종개건만 타잔은 뻔뻔스럽게도 평생을 자기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살아가는 듯 싶다. 뿐이랴. 잠들기 시작할 땐 분명히 내 발 밑에 있던 개가 아침이면 늘 이불 한 가운데서 사람처럼 사지를 벌리고 잠들어 있다. 반면 공주처럼 우아하게 잠들기 시작했던 나는 춥고 딱딱한 이불 끝에서 개처럼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고… 아마 잠결에도 애써 개를 피해주느라 이불에서 쫓겨난 모양이다. 이런 아침이면 허리,다리,목 어디 하나 안 쑤신데가 없다. 그렇다고 개를 상대로 '나는 네 생각을 끔찍이도 하는데 너는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들은 민망하리만치 뻔뻔하다
   사실 개들이 사람처럼 벌렁 누워 자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북실북실 털이 달린 몸으로 견디기에는 집안이 너무 덥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그 사정까지 어른들이 봐 주실리 없고 어른들은 개의 이런 행동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쯧쯧, 도통 부끄러움을 몰라!!” 혀를 차시며 벌어진 개의 뒷다리를 슬며시 포개주곤 하신다. 하지만 개는 '아웅~ 자는데 왜 그래에~?' 하는 표정으로 다시 사지를 벌려 X등급 포르노를 연출한다. 호의를 무시당한 어른들은 "이 놈아 *** 보인다"고 호통을 치시며 개를 쫓아 버린다. 하지만 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뻔뻔스럽게도 자리만 조금 옮겨 또 다시 적나라한 포즈로 자다 만 잠을 청할 뿐이다.

   개가 뻔뻔스러운 일은 또 있다
   개들은 가끔 인간을 상대로 사랑에 빠진다.
   타잔은 마치 양반집 주인 아씨를 사모한 '벙어리 삼룡이' 만큼 열렬히 나를 사랑한다.   물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설령 그것이 개일지라도. 하지만 그걸 직접 받아본 소감을 말하라고 한다면 '개와의 연애'가 꼭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전봇대만 보면 품위 없이 뒷다리를 올리고 간혹 제 밥그릇에도 똥을 싸는 뻔뻔스러운 개가 바람난 앞집 암캐 '뽀삐'를 보는 것과 똑 같은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볼 때의 심정을. ㅜ.ㅜ 하지만 주인의 맘이야 어떻든 개들은 대개 자기 주인을 세상에서 가장 뻔뻔스러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일쑤다.
   언제 어디서든 밥 달라 사랑 달라 조르면 눈을 맞추자고 난리다. 문닫고 목욕이라도 잠깐 할라치면 그 짧은 이별이 타잔에게는 <견우직녀>의 그것처럼 무척이나 가슴 아픈 모양이다. 내가 욕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개는 발톱으로 문을 '박박' 긁어댄다. 저도 들어오겠다는 소리다. 내가 반응이 없으면 개는 애절하게 '끙끙' 어리광을 피워댄다. 제발 나를 들여보내 달라는 소리다. 그래도 내가 대답이 없으면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짝을 찾는 황야의 늑대처럼 처량하게 '워우우' 울부짖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집안은 난리가 난다. 나에게는 그 소리가 나를 위한 연가로 들리지만 나이 지긋한 노인들에게는 당신을 향한 곡소리로 들릴 테니까. '개가 지붕 위에 올라 앉으면 집안에 사람이 죽어 나간다' '개가 짖지 않고 울면 집안에 줄초상 난다'는 전통적인 믿음에 따라 노인들은 "이 놈의 개가 누굴 잡으려고 이 궁상이냐"며 반사적으로 몽둥이를 찾으신다. 그도 그럴 것이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고픈 노인들이야 그 개가 얼마나 밉살스러울 것이냐.
 
   개 뻔뻔스러운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할까.
   '방귀 뀌고 성낸다'는 속담이야 들어봤겠지만 방귀 뀌고 성낸다는 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주인을 찾아 몇 만리 길을 돌아왔다는 진돗개 이야기나 몸으로 불을 끄며 술에 취한 주인을 살렸다는 오수의 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길들인 개의 명석함을 확인하곤 흐뭇해 한다. 하지만 개들이 똑똑해봐야 개는 개일 뿐이지, 개들이 윈도우를 할 것인가, 니체를 논할 것인가. 컴퓨터와 철학 못지않게 개들은 생물학에도 문외한이어서 자기가 방귀를 뀐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
   우리 개는 본래 먹성이 좋아서 웬만한 개들은 냄새만 맡고도 도망가는 김치, 양파, 생마늘을 살점 붙은 갈비인 양 맛있게 먹어치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밥을 주면 밥그릇까지 먹어치우는 괴력을 지녔다. 하지만 제 아무리 무쇠팔 무쇠다리를 가진 '마징가 개'라고 해도 고무, 플라스틱, 나무 젓가락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데 위장이 좋을 리 없다. 때문인지 타잔은 시시때때로 방귀를 뀌어대곤 한다. 더 우스운 것은 자다가 제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집안에 도둑놈이나 피자 사나이라도 온 양 혼자 으르렁 댄다는 것이다. (그럴 땐 웃기는 거 반, 내가 이 개를 과연 끝까지 키워야 하느냐 반…그렇다 ㅜ.ㅜ)
   이 정도면 귀엽지 뭐가 뻔뻔스러우냐고?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개는 종종 방귀는 제가 뀌어놓고서 천연덕스럽게 냄새는 내게로 와서 맡기 때문이다. 저하고 나하고 둘이 있을 때에야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마는 손님이라도 앞에 앉혀 놓았는데 민망한 부위의 냄새를 맡으면 이건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손님이 눈치 채지 못하게 귀여운 척 쓰다듬으며 개의 머리를 '스윽' 민다. 하지만 눈치없는 우리 개. 십중팔구는 그럴수록 더 맹렬하게 달려든다. 다음 단계로 나는 갑자기 가스불 안 끈 게 생각났다는 듯, 일어서서 자리를 피하고 만다. 하지만 뚝심있는 우리 개. 끝까지 쫓아와 두 발로 기대 서서 냄새를 맡고야 만다. 잘못한 것 하나 없이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나. 어떻게 하든 위기를 모면해야겠기에 구차한 변명 한 마디를 던진다.
   "아유~ 어리광은..."
   하지만 내가 아무리 변명을 해본다 한들 손님이 바보 아닌 다음에야 이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보다 못한 손님. 전화 걸 데가 생각났다며 자리를 피해준다. 남겨진 나? 장롱 속에 처박혀 있던 꾀죄죄한 면티처럼 스타일 완전히 구기는 거다.


   개 뻔뻔스러운 것이 어디 그 뿐이랴
   개들은 방금 배달된 신문을 통째로 잘근잘근 씹어놓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다. 유학간 친구에게서 5년 만에 온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도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는 눈빛이다. 빨래 줄에 널어놓은 양말이 개집 쿠션 밑에서 나와도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는 듯 시치미다. 식탁 위에 준비해놓은 토스트를 슬쩍 먹어치우고도 아침 메뉴가 밥 아니라 빵이었냐는 듯 능청을 떤다. 비 온 다음날 신발을 물고 뛰어 들어와 온 방안이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버석버석 해지거나 말거나, 뼈다귀인줄 알고 줄줄 핥아 핸폰이 흥건하게 젖거나 말거나 뻔뻔스럽게도 개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개가 제일 뻔뻔스러워 보일 때는 자기가 정말 내 애인이라도 되는 양 내 입을 아이스크림 핥듯 줄줄 핥을 때이다. 방금까지 자신의 '그 곳'을 줄기차게 핥던 입으로 말이다. ㅜ0ㅜ

    그러나 나는 개같이 살고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들은 뻔뻔하다.
뻔뻔하기만 한가 하면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개가 좋다. 뻔뻔하기 때문에 개가 좋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느라 뻔뻔해지는 것에 비해 개들은 솔직하느라 뻔뻔해지기 때문이다. 신문을 찢거나, 함부로 짖거나, 아무데서나 ‘쉬’를 하거나, 비오는 날 흰 옷 입은 주인에게 달려들면 혼이 날 것을 개들은 안다. 하지만 놀고 싶고, 말하고 싶고, 싸고 싶고,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들은 그렇게 한다. 개들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
   개들의 걸러지지 않은 순수하고 맑은 감정을 나는 사랑한다. 개들은 끊임없이 감정을 표출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물론이고, 성가시다고 느낄 때에까지 그런 감정을 지체 없이 나타낸다. 어느 누가 주인을 본 개만큼 기쁨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는가?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개는 어떤 사람보다도 진실하다. 살아오면서 개만큼 솔직하게 기쁨을 표현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그래서 나는 개같이 살고 싶다.
뻔뻔스럽게 살고 싶다.
솔직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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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3-12-1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글 잘쓰시네요.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거, 연재 끝나면 책이라도 내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아래 글, 제가 추천 했어요. 물론 이것두요.^^

waho 2004-02-1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 키워 본 사람이라면 공감 할 내용이네요. 너무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