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전학생은 결투를 신청 받는다. 주먹이든 눈칫밥이든…. 결투에서 이기면 무난한 혹은 잘 나가는 학교생활이 될 것이고, 아니면 영원한 호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화산고에 전학온 무림고수 김경수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전학생들은 텃새에 눌려 조용히 지내기 마련인데, 여기 짐승 세계에는 어떤 텃새에도 아랑곳 않고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는 막가파들이 있었으니…
기즈모 이야기
기즈모는 남의 고양이이다. 처음 봤을 때, 곰팡이 배양액에 퐁당 담갔다 뺀 것처럼 온몸에 피부병이 아주 심했다. 어린 놈 앓는 게 가엾어서 잠깐 치료한다고 데리고 온 게 어언 6개월. 이 놈 덕에 우리 식구들 고생 좀 했다. 사람, 고양이 돌아가며 피부병 옮은 건 물론이요, 원래 고양인 똥오줌 잘 가리는데 앓느라 그랬는지 여기저기 볼일을 봐 대 그 뒷치닥거리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병 옮지 말라고 다른 방에 놨다가 날마다 혼자 갇혀 지내는 게 안돼서 “에라 모르겠다” 모두와 합방을 시켰다. 약 한 번 안 먹더라도 한 번 더 안아주고, 눈 맞춰주고, 놀아주는 것이 제 맘엔 더 좋았을까. 이제는 그럭저럭 나아서 병실로 쓰는 장 밖에서 뛰어 놀기까지 한다. 그러나 생전 처음 뛰노는지라 ‘우다다’ 설쳐대기 일쑤. 나머지 애들은 얘만 뜨면 모두 숨기 바쁘다. 그래도 제 녀석은 그 시간만 되면 놀자고 난리니… ^^ .
그러기를 1주일, 병이 다시 도져 지금은 병실 신세다. 그런데 하~ 이 놈이 제 업동이 신세도 모르고 시간만 되면 저를 안 꺼낸다고 난리다. 우리끼리 부엌에서 뭐라도 먹으면 “나 여기 있다”며 양양 대는 통에 동네 쫓겨날 판이다. 그 보채는 모양이 뻔뻔스러우면서도 눈치 없는 게 귀엽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우는 놈 젖 주려고 정작 내 새끼는 굶길지언정, 갇혀 떵떵거리는 업동이 녀석은 빨리 나으라고 맛난 것 골라 먹이고, 시간 없을 때 다른 놈은 몰라도 제 놈은 꼭 안아주고 출근을 하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차도 단단히 찬 셈이다. ^^
쩨리 이야기
쩨리는 고양이 중에서 ‘나홀로 개’인 타잔을 왕따 안 만들려고 들인 요크셔테리어 암컷이다. 워낙 영민해 처음부터 ‘쉬’도 잘 가리고, 밥도 양보해가며 아무 말썽 없이 지냈다. 뿐이겠는가. 맨날 헉헉대고 힘 좋은 돌쇠 타잔에 비해 여염집 낭자처럼 다소곳하고 예쁜 쩨리는 식구들에게 완전 인기만점 스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2개월짜리 강아지 한 놈을 더 들였다. 쩨리만큼 똑똑하진 않지만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배터지게 먹어대고, 신발 물어뜯었다고 혼내면 칭찬하는 줄 알고 좋아라 덤비는 어린 마로에게 온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쩨리는 비상이 걸렸다. 똥오줌 잘 가리던 놈이 소파에 쉬를 안 하나, 잘 뛰어내리던 데서 못 뛴다고 끙끙대지를 않나…급기야는 입에 부글부글 게거품을 물며 식음을 전폐하는 것이 아닌가. 아우 봤다고 장남 녀석 오줌 싼단 얘긴 들었어도 …@,@ 사랑, 관심 받고 싶은 것은 사람, 개 안 가리는 걸까. 상심한 얼굴로 게거품 무는 강아지 모습이란. 아~ 그 사진을 못 찍어 둔 것이 천추의 한이다. ^0^
개, 고양이 시중들며 키우는 타입 아닌 나. 입맛 까다롭게 굴면 3일 굶긴 후에 냉수에 밥알만 말아줘도 잘 먹는 게 개라는 생각으로 살지만, 이 녀석 샘 부리는 건 너무 귀엽고 우스워서 특별히 며칠을 예뻐하곤 했다. 지금은? 새로 온 마로와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늙은 타잔은 또 다시 왕따가 됐다. 하…그럼 또 다시 개를 들여야 하는 건가…ㅠ.ㅠ
낙서 이야기
낙서는 타잔 농장에 새로 들어온 고양이다. 원래 어른 고양이들은 설탕 마마님께서 너무 엄하게 구셔서 못 오곤 하는데 갈 데 없는 처지라 하루만 재운다고 데리고 왔다가 그냥 눌러앉게 되었다. 설탕이는 늘 그렇듯 경계를 하며 (발톱없는 발로) 고양이 펀치를 날리지만 이 놈은 그러거나 말거나다. 처음엔 귀머거린가 했을 정도다. 원래 하루 이틀은 ‘으르릉~”대며 세력싸움을 하기 마련인데 신경도 안 쓴다. 전의 없는 상대와의 싸움만큼 맥 풀리는 것이 있을까. 설탕이는 혼자 으르렁대다 머쓱~해서 제 가던 길을 가곤 한다.
처음 와서 이 놈은 꼭 고양이 아파트 3층 옥상에서만 잠을 잤다. 처음 온 곳이니까 제 눈에 제일 높고 좋은 자리를 ‘찜’한 것이다. 그런데 올라가기는 잘 하는 놈이 내려올 땐 못 내려온다고 막 투정이다. 그 꼴이 안돼보여 내가 한 번 내려 준다고 하니까 무섭다고 발톱을 세우고 난리를 펴더니 무사히 내려온 후, 내려올 때마다 날 부른다. --. 모른 척 하고 지나가면 고장난 라디오처럼 올 때까지 앵앵대고 얼마나 보채는지…. 다시 말하지만 애들 막 키우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이런 시중 들어주지 않는데…
그렇게 제 자리 ‘찜’하던 녀석이 이제는 식구대접을 받고싶은 모양이다. 밤에는 우리집 모든 개, 고양이가 나와 함께 침대에서 자는데, (내가 귀찮아서 작은방으로 도망가면 어느새 다 따라와서 자고 있다. ㅜ.ㅜ) 이 녀석이 이제 자기도 좀 침대에서 자겠다고 신호를 보낸다. 다른 애들 다 자고, 나만 혼자 비디오를 보는데 그 앞에서 왔다~ 갔다~ (꼬리만 보인다) ^^" 그러더니 ‘깡충’ 섰다, 앉았다 반복하며 눈치를 보는 거다. 올라오지 말라고 손사레를 치니까 계속 눈치를 본다. 포기하나보다 했더니 갑자기 큰 맘 먹었는지 눈 질끔 감고(하하, 그 표정이란) 침대 위로 휙 뛰어 오른다. 내가 재미 있어서 내려가라고 했더니 계속 눈치보다 또 휙! 또 내려보냈더니 밑에서 궁시렁궁시렁 대더니 결국 침대 밑에서 잠이 드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와서 주변만 빙빙 돌더니 저도 이제 식구 라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는 낙서가 얼마나 웃기던지. 어쩌다 굴러와 눌러앉은 돌, 뻔뻔한 낙서가 어떻게 우리 식구로 자기 자릴 잡아갈 지 기대된다. ^ ,^
<굴러온 돌 낙서는 그로부터 2년 후 일케 이쁜 아들을 낳았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