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 늦잠을 자건, 외박을 하건, 밤새 술을 퍼먹건, 비디오를 보건! 이불을 안 개건, 머리를 안 감건, 세 끼 내내 라면을 먹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은? 정답. 독신의 즐거움. 때로는 ‘왕왕’대는 사람 소리 그리워TV 켜는 고독이 있을지언정 누구 눈치 하나 볼 것 없는 독립만세 선언이 어언 1년! 그러나 한번도 마음 편히 외박 해본 적 없었으니 이게 웬일이냐고? 타잔 농장에는 어떤 종가집 보다 무시무시한 개, 고양이 시어머니 11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고양이 시어머니’눈치보기
이 세상 모든 고양이들은 시어머니시다. 얼마나 알고싶고 먹고싶은 게 많으신지 밥하면 밥 한다고 오두마니 밥통 위에 앉아 냥냥, 청소할 땐 난짝 등에 업혀 갸릉갸릉, 똥 눌 땐 폴짝 무릎에 앉아 콤콤 …아주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뿐인가. 집안에 걸레질 좀 하려고 스팀 청소기 ‘쉭쉭’ 대면 무슨 소리냐며 한 줄로 졸졸 가는 데마다 쫓아오신다. 130도 고열 스팀이라 델 세라, 다칠 세라 아주 가슴이 조마조마해 죽겠다. 혼내고 발길질해도 사람 무서운 줄 몰라 도망도 안 가니 그저 옥체보존 하시도록 눈치 보며 살살 미는 수 밖에….
그렇다고 집안일에만 참견 하시는 건 아니다. 며느리는 사생활도 없다.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어디 살며, 부모님은 뭐하시고, 결혼은 했는지 물어보기라도 하시는 양 오신 손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냄새 맡으며 철두철미 검사를 하신다. 주머니에 무슨 비린내 나는 과자라도 들었으면 그걸 꺼내라고 발톱으로 난리시다. 조금만 더 훈련시키면 마약 탐지견으로 써도 될 판이다. 뿐이냐. 밖에 나갔다 뭐라도 들고 오면 봉지에 든 물건은 물론이요, 바스락 거리는 비닐봉지인지, 들어가 앉았기 좋은 종이봉투인지까지 간섭하신다. 봉지를 치우려다 안에서 고양이들이 뚝 떨어져 가슴 ‘굼적’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고양이들은 왜 그리도 서랍, 상자, 봉투에 들어가길 좋아하는지…. ^^;

‘강아지 시아버지’ 봉양은 괴로워
그래도 고양이들은 집안에서만 잘 모시면 되니 좀 낫다. 강아지 시아버님들은 안팎에서 불편 없이 봉양을 해드려야 한다. 일단, 그 놈의 배꼽 시계는 한번도 죽는 일이 없으셔서 월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영락없이 7시면 기침을 하신다. 늦잠 좀 자려고 모르는 척 이불을 뒤집어 써보지만 눈치는 또 빨라서 조금이라도 깬 티를 내면 나가자는 성화에 잠옷 바람에 바로 진지 차려 드리고 산책 나가야 한다. 새벽까지 술 먹고 들어온 날은 잠들자마자 ‘부시시’ 새둥지 머리로 동네 한바퀴를 돌아야 하니 내 몰골이 너무 흉해 적당히 들어왔으면 싶지만 웬 걸! 한번 나가시면 우체통->전봇대->암캐네 집 대문->가겟집 소주 박스는 꼭 지나셔야 하는 필수코스다. 어느 개가 지나갔는지, 밤새 누가 빵 부스러기라도 흘렸는지…아주 꼼꼼히 살펴보신다. 아~ 남들 곱게 꽃 단장하고 출근하는 시간에 개 줄에 끌려 폐인처럼 강남 한복판을 도는 꼴이라니. (더구나 나는 한창 때의 과년한 처녀가 아니란 말인가 ㅜ.ㅜ)
뿐만 아니다. 시아버지 모시고 사는 며느리는 내 집에서 맘 편히 과자 한 봉지도 못 먹는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TV 광고에 나오는 불독처럼 잽싸게 조건반사 하시기 때문이다. 한 두 개 줘도 그만이지만 3마리가 덤비면 내 입에 들어가는 건 하나도 없다. 더구나 과자 값이 500원 넘어갈 땐 사랑하지만 진짜 아깝다. 때문에 <강쥐에게 들키지 않고 과자 먹는 법>이 동원되는데 1차. 손 대신 가위로 소리 안내고 봉지 뜯기 -> 2차. 씹는 소리 안 나게 입에서 우물우물 녹여 먹기 -> 3차. 잽싸게 들고 전력질주로 방에 숨기이다. 모두 성공했을 땐 내 자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혼자 사는 집에 숨어서 과자를 먹고 앉았으면 내 돈 내고 얻은 집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ㅜ.ㅜ. 이 밖에도 공 180번 던져 드리기, 산책할 때 100미터 11분에 전력질주, 뼈다귀 드실 때 납작 엎드려 인간방석 되기, 오줌 마려워도 끝까지 무릎 위에서 잠드신 거 깨우지 않기 등 아~ 정말 강아지 시집살이는 ‘이조여인수난사’가 따로 없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시집살이
짐승 땜에 집 얻어 나오고, 인생 저당 잡힌 나를 보고 어떤 이들은 왜 사서 고생이냐고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못난 며느리는 똥 치고, 밥 주고, 옷에 붙은 털 떼는 것이 세상 가장 큰 즐거움인 것을. 아침에 일어나서 아가들 변 상태가 좋으면 아침이 상쾌하다. 밤에 가득 채워놓은 밥그릇이 깨끗하게 비어 있으면 밥값 무서우면서도 가슴이 뿌듯하다. 어제까지 못 오르던 계단을 오르게 된 강아지, 햇살 아래 뒹굴다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는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평화롭기 때문이다. 그들이 매일매일 개다워지고, 고양이다워질 때 이 세상 무엇보다 행복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 매일 23명의 천사와 살고 있다. ^^;


<천사냐 웬수냐 -_-;;;  (인간은 오갈데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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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개 책방 2003-12-09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들은 3년 전 쯤 쓰여졌던 글이라 식구 수가 아직 11마리 였네요. ^^;;
저도 몰랐는데...3년 동안 2배로 늘었구나...어흐흑...ㅠ_ㅠ

sooninara 2003-12-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후에는...세상이 이런일이에 나가시는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