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순종 ‘섭’할진 몰라도 똥개, 똥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잡종강세의 허황된 믿음이래도 좋다. 잡종 개들은 아파트 사는 요즘 개 같지 않게 지금보다 더럽게 똥도 먹고 흙도 먹지만 한번 아픈 적이 없었다. 새끼를 낳아도 요즘 것들은 말티즈가 새끼 낳으면 두말 할 것 없이 말티즈지만 똥개들이야 어미는 점박이여도 누렁이, 검둥이, 흰둥이 골고루 나와 이번엔 어떤 놈 나올까, 애비가 누굴까…두근두근 하는 재미도 꽤 쏠쏠했는데….
똥개, 연애하다
꿍꿍이는 똥개였지만 그 당시 똥개치고 꽤 호강을 했다.
저녁에 고기라도 구우면 5남매 손 10개가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식탁 위에선 차마 못 주고) 고기를 던져대니 녀석은 따로 밥을 안 먹어도 늘 배가 불렀으며, 밤이면 서로 끼고 자겠다고 싸우는 통에 한 여름에도 명주 이불 아니면 잠을 안 잤다. 물론,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개비린내 난다’고 혼줄이 났지만 애들은 늘 부모 말을 어기기 마련 아닌가. 그 자식은 평생 그렇게 호강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꿍꿍이가 비단 이불 마다하고 외박을 했다. 바람이 난 것이다.
시험이 내일 모래거나 말거나 온 동네 찾아다니다 마침내 발견한 곳은 생선가게 암캐 순자네 집!!! 오호~ 통재로다! 귀하디 귀한 똥개가 예쁜 개 다 마다하고 하필이면 빌어먹다 걷어차일 점박이 ‘순자’랑 바람이 날 것이 다 무어란 말이냐.
똥개와 연적을~
순자로 말할 것 같으면 생선가게 남은 내장 처리반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모자라 온 동네 쓰레기통이란 쓰레기통은 죄 후비고 돌아다니는 ‘그야말로’ 똥개였다. 이불 속에서 애지중지 크던 우리 꿍꿍이가 옆집 순자 따라 쓰레기통에도 들어가고, 생선 내장도 물어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 소녀 주인은 영 못마땅해 수캐를 집에 꽁꽁 가두고 말았다.
그러나 바람난 수캐를 누가 말릴까. 그 못난 똥개 순자를 못 잊어 밥도 안 먹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꼴이 가관도 아니었으나, 그 꼴을 보고 가슴 아파 우는 어린 것 꼴은 부모가 보기에 더 가관도 아니었으리라. ^^;; (그 때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며 그것이 바람난 연인을 향한 질투 비슷한 감정이었는지, 제 멋대로 뛰쳐나가 도둑장가 간 아들 둔 엄마의 한 같은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다)
결국 개는 풀어주고, 이듬해 봄에 순자는 새끼를 줄줄이 5마리 낳았는데 저 똑 닮은 점박이 셋에 우리 귀한 똥개 닮은 누렁이 하나였다. 동네 사람 모두 박장대소를 해대며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어쩜 저리도 제 애비 판박이냐”고 하는 소리가 얼마나 듣기 싫던지…. 마치 우리 귀한 큰 언니가 윗동네 ‘어버버’ 오빠와 바람났다는 소리인 양 그 얘기가 그리도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느 혹은 모든 똥개의 최후
이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나의 꿍꿍이는 그 사랑만큼 백로해로 한 것이 아니고, 그 당시 모든 개의 운명이 그러하듯, 개 장수 내지는 보신탕 집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내 눈으로 확인하지야 않았지만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어느 날, 바람도 안 난 개가 집에를 안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날 따라 녀석 좋아하는 카레를 맛나게 비벼 놨건만 오지 않아 엄마에게 물어보니 낮에 볼일 보러 나갈 때 없길래 안 부르고 그냥 문 잠그고 나가셨다는 것이다. 네 발 달린 털짐승이 저 좋아 나가 안 들어오는 게 어찌 엄마 탓이랴만은 어린 마음에 어른들이 그 개를 갖다 버린 거라고 저 혼자 단정을 짓고선 (단서도 전혀 없었다) 밥도 안 먹고, 방에 쳐박혀 심통을 부렸다. 그렇게 나는 사춘기가 시작됐다.
그 날부터 한달 보름을, 학교 파하면 가방 팽개치고 시장 구석구석 ‘개장국’집을 뒤지고 다니는 게 내 일이었다. 생각하면 버스 정거장 20개도 더 되는 길을 어린 애가 타박타박 그냥 걷기도 힘들었을텐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애타는 마음으로 찾아대니 비록 어린 애지만 상심으로 살이 다 쪽쪽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보신탕집에서 고기 갈은 것을 보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곤, 그 동안 참았던 그리움과 설움과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와 시장 바닥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었다. 그 헛된 모험을 끝내려고 그랬는지 때마침 그 곳을 지나던 고모가 날 보곤,
"어머 , 너 아무개 아니니? 니가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왜 혼자 울고있어?"
"우에에엥~~~~ 꿍~~~훌쩍훌쩍~~~잡아~~~울먹울먹~~~ 보신~~~아앙~~"
지금은 20년이 지나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 당시는 이별의 아픔에 참 많이 울었다. 어찌나 슬퍼했는지 엄마는 애 잡는다며 “다시는 개 안 키운다”고 맹세를 했으니까. 그러나 그 후에도 우리 집엔 늘 개가 끊이질 않았고, 소녀는 자라 어른이 되었고 지금도 개, 고양이 10여 마리를 끼고 살아간다. 그 여름, <보신탕집 찾아 삼만리> 사건이 명절 때마다 화투판과 함께 식구들 웃기는 우스개 소리로 등장하는 건 물론이고.
PS. 잡종개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순종만 키우냐고 지인들이 가끔 묻는다. 사실 순종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잡종개, 고양이 새끼를 분양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였는데… 다리 짧고, 허리 길고, 사나워서 때로는 할퀴
고, 품위 없이 왈왈 짖는 우리 똥개, 똥고양이들의 새끼를 서로들 받아가겠다고 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어느 집 마당에든 있던 뻘건 색 고무다라이와
아부지가 런닝 셔츠 바람으로 뚝딱뚝딱 아무 슬레이트 조각 엮어 만든 개집!!
~ 우리네 멋진 똥개님들은 저렇게 살아오셨다!!!>
PS. 이 사진도 빛과 소금님의 페이퍼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