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들이야 발에 흙 안 묻히고, 사료 먹고, 낯선 사람 만나도 매너 좋게 살랑살랑 꼬리치고 산다만야 옛날 개들이야 어디 그런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독대 옆 개 집에서 찌그러진 냄비 지키고 앉아, 삶고 삶아 진국 다 빠진 소 정강이 뼈 하나면 호사였다. 그러다 신문 소년이나, 생선가게 아주머니만 눈에 띄어봐라. 물으락말락 덤벼대며 사납게 제 집을 지키는 똥개…그것이 우리네 개였다. 나의 첫 사랑, 나의 첫 개도 바로 그런 누렁이였다.

 

장터에서 만나다
“개 쌈니다. 오천원”
늦여름의 동대문 시장. 제대로 된 문패 하나 없이 골판지 찢은 간판에 매직도 아니고
사인펜으로 몇 자 끄적인 노점상 앞에서 아이는 큰 소리로 조르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어미는 오천원이 없어서는 아니고 끼니마다 밥 챙겨 먹이는 거며, 똥오줌 치워낼 것들이 귀찮아 아이의 눈빛을 뒤로 하곤 장독 씌우는 망이라든지, 마른 미역 따위를 고르며 볼 일만 보는 것이었다.
뉘엿뉘엿 해는 넘어가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이의 해진 운동화 위로 빗물이 ‘툭’ 떨어진다. 비가 오시나 손으로 가리개를 하고 하늘을 보니 가을 하늘 맑고 공활하기만 하니 이게 웬일. 버스 타면 이제 끝인가 보다 아쉬움에 목구멍이 막혀 하늘도 못 보고 제 발만 쳐다보던 아이의 눈물이 낡은 운동화를 적신 것이었다.
보다 못한 젊은 어미가
“그래, 가자. 가”
아이의 손을 끌고 개 장수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기쁜 걸음에 줄달음쳐 간 아까 그 자리에는 호박잎, 고구마순, 붉은 콩 조물조물 다듬어 파는 할머니만 남았으니, 개 장수는 오늘은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벌써 장을 파하고 누렁이며 바둑이며 검둥이며 흰둥이들이 제각기 궁둥이와 얼굴을 파묻고 잠든 박스를 손수레에 켜켜이 싣고 떠난 뒤였다.

똥개 꿍꿍이
“아저씨이~~ 잠깐만요오, 우리 애 개 좀 사주게”
안 사주마 내심 모른 척 하던 어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장바구니를 아이에게 맡기곤
꽃무늬 고무줄 스커트 나풀거리고 개 장수를 좇고, 어느 새 점심 반주에 취한 개 장수는 부르던지 말던지 제 갈 길만 가는데… 겨우 붙잡은 개 장수 상자 속에는 꼬물꼬물 귀여운 털복숭이 놈들이 새로 만날 주인에게 잘 보이려는 듯 콩장같이 까만 눈을 반짝반짝 뜨고 쳐다본다.
그런데 얄궂어라! 아이는 건강하고 토실토실한 검둥이, 바둑이 모두 제끼고 왜 하필 에미 젖도 제대로 못 먹은 초라한 누렁이에게 첫정을 줬을까. 젊은 어미 애간장 타 비실거리는 놈은 앓거나 죽는다며 소리소리 질러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이 고집은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 와중에 개 장수는 젊은 어미를 연신 흘끔거리면서도 마지막 매상 올려 그 값으로 대폿집이나 얼른 가려는지
“ 아,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이쁘긴 매한가진데 뭘 그랴~. 지 좋을대로 하라구 햐” 아이 편을 들고 나선다.

그렇게 오게 된 나의 첫 개는 이름하야 ‘꿍꿍이’.
누렁이, 메리, 쫑은 흔하고 유치한 똥개 이름이라고 나름대로 특이하게 진다고 진 이름인데 지금 보니 그다지 세련되지도 않다. ^^;;; 게다가 이 놈, 이름처럼 귀엽게 꿍꿍대기는 커녕 집집마다 안 건드리는 암캐가 없고, 동네 밖 큰 길까지 ‘찜’하지 않은 전봇대가 없으며, 가겟집 해피, 문방구집 아롱이는 왜 그리도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지 두 녀석 꿍꿍이 만 뜨면 오줌도 못 누러 나오곤 했다. 뿐인가. 힘은 또 얼마나 좋은지 동네사람 모여있는 곳에만 가면 영락없이 우리 개가 앞발로 쥐를 잡아 이빨로 숨통 끊고 ‘탁’ 던져 놓고는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책가방 맨 나를 보곤, 주인 만나 반갑다며 방금까지 쥐 잡고 흔들던 그 입으로 내 손을 줄줄 핥는다. 그럴 때면 용맹스런 우리 개가 자랑스러운 거 반, 입에 피가 안 묻었을까 더럽고 무섭던 거 반…그렇게 우물쭈물 군중 속에 끼어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이렇듯 꿍꿍이는 개 비린내 풀풀 풍기고, 건강한 돼지 마냥 궁둥이 위로 난짝 꽁지 말려 올라간 흔하디 흔한 ‘똥개’였고, 그 때는 모든 개들이 그렇게 ‘멋졌다’.

To be continued…

























<어때유~ 잘난척하는 서양개들보다 훨씬 이쁘쥬? ^^" >
: 이 사진은 빛과 소금님께서 칼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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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3-12-12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잔님의 과거 고백...꿍꿍이라니..정말 멋진 이름이네요..
어디가도 똑같은 이름이 없을겁니다..
메리,해피는 한번 부르면 동네에서 열댓마리씩 꼬리 흔들면서 뛰어날올걸요..
요즘은 조금 다르게 짓지만 20년~30년 전만 해도 메리,해피,쫑의 시대였죠

늙은 개 책방 2003-12-1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조기 위에 흰둥이 사진 눈이 털에 가려서 웃는 것 같지 않으세여?
개가 눈웃음 치냐아~

늙은 개 책방 2003-12-1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지금 보니 뒤에 누렁이도 입이 웃는다!!!!! ^_________^

가을산 2003-12-1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익은 이름이 있네요! '쫑'!
우리 외가집의 개들은 이름이 죄다 쫑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