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무르는 무적의 불패신화! 온 국토를 붉게 물들인 뜨거운 함성!
전국이 승리의 기쁨으로 들썩거릴 무렵, 독서실처럼 고즈넉하고 병원처럼 차분하게 월드컵을 시즌을 보내는 조용한 가족이 있었으니… 타잔 농장 가족이었다. 도대체 왜???
강아지 안전요원
타잔은 용맹스런 용모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국가대표 겁쟁이이다.
얼마나 겁이 많으냐 하면, 쇠, 플라스틱 안 가리고 먹어댈 정도로 먹을 거라면 사죽을 못쓰는 양반이 추석과 생일 파티에는 절대 참석을 안 하신다. 왜냐! 집 안 팎에서 ‘뻥뻥’ 쏘아 올리는 쥐불놀이 및 생일축하 폭죽이 너무 무서우시기 때문이다.
어느 생일 파티, 축포 소리에 놀라 화장실에 숨어 피오줌을 싼 이후, 어느 추석 날 아이들 쥐불놀이에 놀라 행방불명 됐다 돌아온 이후, 집안의 모든 생일축가는 모깃소리만 하게 불러야 하고 현란한 축포는 사라져 버렸다. (점점 개에 맞춰지는 집안 분위기 ㅜ.ㅜ)
그런 대표 겁쟁이 선수 타잔이 광란의 월드컵 첫 승의 밤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는 떠나가라 승리의 함성으로 들썩이고, 차들은 “대~한민국”에 맞춰 “빵빵빵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환희의 순간!! 못난 아들은 또 혼자 가슴 ‘굼쩍’ 놀라 화장실에서 피오줌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애앵~” 식구들은 경계경보를 울리며 소음차단을 위해 창문을 꽉꽉 닫고, 골이 들어가도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좋은 척 한 번 못하면서 집안에 내일, 모레 하는 암환자 모셔 놓은 듯 고요하게 월드컵을 시청한 것이다.
아들의 안전을 위해 경기도 제대로 관람 못하고, 기뻐도 소리 한 번 못 지르며 집안 팎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엄마!! 승리의 기쁨 뒤안 길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안전요원들의 노고가 생각나는 밤이었다. ㅜ.ㅜ
고양이 안마사
그러나 타잔 뿐일까. 집에는 소심한 고양이 님들이 ‘많이’ 계시지 않는가.
더구나 우리 ‘서운이’(얼굴이 서운하게 생겨서) 는 월드컵 시즌 중에 새끼를 낳았다. 고양이는 다산 동물. 줄줄이 새끼가 나오면 히딩크, 선홍이, 상철이, 정환이… 자랑스런태극전사들의 이름을 지어주려고 기다리는데… 첫째 히딩크가 나온 뒤 3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뱃속에 들은 아가는 달랑 하나.
이렇게 서운할 데가! 이름대로 된다더니 이름을 다산이로 바꿔야 하나…
이렇게 고양이 축구단을 만들려던 엄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1마리만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데 또 다시 우리 히딩크 군단이 이태리전에서 승리를 해버린 것이다. 남들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있을 무렵, 소심한 고양이님들 엄마의 가슴에는 희비가 교차한다…
”이기지 말랄 수도 없고, 집안에 겁쟁이들은 또 줄줄이 앓아 누울 거고… “
일단 한 번 겪은 일이기에 불상사 방지를 위해 집안은 화생방 훈련에 들어간다. 함성소리 새 들어올까 창문 꼭꼭 닫고, 불꽃놀이 놀랄 새라 커튼 확확 내리고… 만반의 준비를 끝낸 뒤, 오늘은 꼭 길거리 응원이라도 나서기 위해 붉은 머리띠 질끈 묶는데!!!
“끼야아아앙~ 끼야아아앙~”
애기 고양이가 울어대는 것이 아닌가. 출산 직후 고양이들은 예민한 상태. 이미 히딩크 엄마 서운이는 500만 시민의 함성을 감지하고 쇼크를 먹은 것이었다. 갑자기 새끼를 밀쳐내고 집 밖으로 나오겠다고 ‘냥냥’대며 떼를 쓰니 새끼가 놀라 자지러지게 울 수 밖에. 병원에 얘기 했더니 어미가 놀랐는데다 한 마리만 낳아서 젖을 충분히 빨아주지 못해 젖몸살이 났으니 스팀 타올로 젖마사지를 해주란다.
…오늘같이 기쁜 날, 나는 또 고양이 젖을 주무르며 밤을 지새야 한단 말인가. 경기 후 히감독님 인터뷰도 보고, 길거리 응원도 나가야 되는데…ㅜ.ㅜ
그렇게 그 날밤도 나는 애국행렬에 가담하지 못하고 고양이 젖을 주무르며 , 짜가며 또 다시 변태의 밤을 지샌 것이었다. 제길헐~ 소젖은 짜면 우유로 팔 수나 있지…ㅜ.ㅜ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경기에 이겨도 걱정, 져도 걱정이다. 이 젊은 가슴에도 붉은 함성과 애국의 열정은 활활 타오르건만… 아~ 부디, 집안의 개, 고양이 님들이여! 엄마를 매국노로 만들지 말지어다! ㅜ0ㅜ
<강아지 붉은 악마들....01 월드컵 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