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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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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문강현준의 [감각의 제국]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전에는 문화비평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저자의 인상 깊은 비평 때문에 이 책을 읽은 후로 문화비평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문화비평서로 두번 째로 읽은 [덕후감]은 문화비평 중에서도 좀 더 세분화해서 ‘대중문화’ 비평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롭게도 [감각의 제국]과 [덕후감] 둘다 2012년부터 ‘한겨레’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다. [덕후감]은 거기에 다른 글들을 모아 테마를 6개로 압축해서 내용의 분량을 늘리고 더 깊이 있게 분석하고 다룬다. ‘덕후’가 ‘오타쿠’를 우리 식으로 달리 부르는 용어라는 것은 익히 알았기에 딱 봐도 덕후와 독후감을 합성한, 혹은 덕후의 감을 연상하게 하는 [덕후감]이라는 책의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TV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발달과 늘어나는 1인 가구수와 문화의 상업화와 세분화 등의 요인이 점점 더 많은 덕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도 한 가지면에서는 덕후라고 할 수 있지만 TV도 안 보고 대중가요도 듣지 않고 명품도 짝퉁도 어떤 유행도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명품 가방 브랜드 구분할 줄도 모르고, EXO나 방탄소년단은 이름만 들어봤지 노래를 듣거나 얼굴도 모르고, 무한도전이나 개그콘서트, 비정삼회담도 본 적 없다는 말이다;;; 이런 내용을 책을 통해서 알고 책을 통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나는 오직 책덕후라고나 할까…^^; 대중문화를 즐기거나 동참하지 않는 탓에 이 책이 다루는 내용에서 내가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상 많지 않았다. 소시적에 연예인 잠깐 좋아했던 기억 조금, 사춘기 때 순정만화 보던 기억 조금,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글쓰기 위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집중적으로 보던 기억 조금, 게임 회사에서 글쓰기 위해 게임 좀 해보던 기억들을 끌어모아 최대 경험치를 축적해서 이 책을 읽을 때 배경지식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건 덕후의 자질이나 밀접한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리두기’였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 비평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비평할 때는 ‘감정이입’보다는 차라리 ‘동정’이라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려면 공감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덕후감]도 대중문화에 대한 거리두기가 분명한 책이다.


이 책에 다루는 내용에는 여러가지 대중문화적인 전문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멤놀, 일코, 때팬, 걸크러쉬 같은 용어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1장의 ‘팬덤의 사회학’에 대거 몰려 있다. 6개의 장이 모두 대중문화의 이면과 속깊은 면면을 다루어줘서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나는 특히 1장이 인상 깊었다. 팬픽이 불러온 긍정적 동성애 효과와 팬아트가 불러온 성적 시선의 구도와 권력 관계의 전복 현상, ‘멤버놀이’의 동일시 메커니즘, 여덕 혹은 걸크러쉬라 불리는 여자 아이돌을 향한 여성팬의 열광의 의미와 삼촌 팬이라는 복잡다단한 현상의 함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치적 무의식이 대중문화 속에 얼마나 다층적으로 내재해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여겨졌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간 내가 대중문화에 무심했던 이유가 대중문화에 숨겨진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문강형준과 김성윤이라는 멋진 문화비평가들을 만났다. 두 저자의 책을 읽음으로써 대중문화를 즐기더라도 함몰되지 않고 적절한 거리두기가 가능해짐은 물론 균형 잡힌 시각까지 갖출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멋진 문화비평가들이 더 많이 출현해주면 좋겠다. 점점 더 문화비평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최근의 대중문화에 대한 덕후감도 서둘러 나와주길 기다려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한 사회에 모순이 있고 그 모순을 쉽사리 해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그 모순을 상상적, 상징적으로라도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때 동원되는 게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이야기다. 가요를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사실은 거기서 현실을 파악할 프레임을 얻었거나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쾌락을 맛봤다는 뜻일 것이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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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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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 전공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입문]을 6년 전에 호기있게 펼쳤다가 다방면으로 부족한 배경지식 때문에 다시 봉인해둔 기억이 난다. 언제고 다시 읽으리라 절치부심은 했지만 내 깜냥의 가능성만 타진하면서 계속 미루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테리 이글턴의 신간 소식을 접했고 이 책이 초보자도 문학 작품의 분석 기술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수준의 입문서로, 혹은 이미 문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여가 시간에 문학을 즐겨 있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술한 책이라는 소개를 읽었다. 나의 목적에 딱 맞는, 내가 원하던 그런 내용이었다. 이제 [문학이론입문]에 다시 도전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일단 준비운동으로 이 책부터 읽고!


이 책은 ‘도입부, 인물, 서사, 해석, 가치’라는 키워드로 구성되는 다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진다. 각 챕터의 첫 부분에서 키워드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을 한 후, 해당 키워드에서 뽑은 몇 가지의 소주제를 가지고 좀 더 구체적으로 문학 작품의 분석을 시도한다. 여기서 다루는 문학 작품은 대부분 많이 알려지고 우리가 읽어보거나 들어봄직한 책들이라 접근하기 용이했다. 물론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번역이 안 된 책들도 몇 권 있었으나 작품 전체를 읽어보지 않아도 작품 소개와 발췌만으로도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자는 진지한 어조로 문학 전반에 걸쳐서 강의하듯 독자를 가르치지만, 센스있는 비유와 시의적절한 농담을 섞어서 자칫 딱딱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는 설명들을 부드럽고 유쾌하게, 심지어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준다. 문학 비평의 기본적인 방법 뿐만 아니라 문학 비평가가 되는 법을 배우는 자세부터 왜 문학 비평이 필요한지, 문학의 가치는 어디에 있으며, 위대하고 훌륭한 문학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언급한다. 여기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답이 없다는 것은 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모더니즘과 사실주의 같은 문학 사조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이는 작품이라는 나무만 보아왔던 독자에게 나무가 속한 숲에 대해 더 크고 넓은 시야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까지....


점차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자신이 아무리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상상하더라도 실은 스스로를 창조하지는 않았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거의 통제할 수 없고 또한 거의 알지 못하는 역사가 우리를 어떤 특정한 위치에 처하게 합니다. 이 유산은 우리의 사회적 상황뿐 아니라 우리의 살과 피, 뼈와 기관에도 섞여 들어가지요. 우리의 생존 및 자유와 자율성 그 자체도 같은 종족의 다른 개인들과 사건들에 달려 있고, 그것은 완전히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뒤엉켜 있습니다. 모종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끼어들 수 있을지 알기 어렵습니다. 자아의 근원에는 우리가 아닌 것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난제와 더불어 사는 법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p289)


우리는 문학을 통해서 이러한 난제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더 나아가 문학 비평까지 관심을 기울인다면 비평의 기법이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문학 비평이 그렇듯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 책은 문학을, 나와 타인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다양하게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런저런 비평의 방법과 이론에 관심이 없더라도 읽었던 책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통찰과 해석의 발견만으로도 충분한 기쁨과 만족을 준다. 테리 이글턴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서서 문학을 읽어보시라. 더 멀리 있는 행간의 의미까지 내다 보게 될 뿐만 아니라 문학 비평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도 비평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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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30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신비평’에 관한 내용이 책 속에 나옵니까? 최근에 신비평을 자세히 알고 싶어져서 관련 책을 찾고 있는 중이거든요. ^^

원더북 2016-03-30 14:30   좋아요 2 | URL
부분적으로 신비평을 통해 다루는 텍스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신비평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건 아니었어요. 신비평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로이스 타이슨의 `비평이론의 모든 것`에서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cyrus 2016-03-30 15:03   좋아요 2 | URL
추천도서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월은 책을 몇 권 읽지 못해 우울한 한 달이었습니다. 구정 연휴며 아이 졸업식에 봄방학 등등 2월이 짧기도 하고 일도 많았지만 그런 핑계는 대지 않으려고 합니다;;; 같은 2월을 보내어도 서재에 다른 분들은 척척 읽고 글도 슥슥 잘 올리시던데...^^; 3월은 더 부지런하고 더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추천 페이퍼를 작성해봅니다.




1.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반비/2016-2-11)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알게 되면서 주목하게 된 리베카 솔닛의 신간을 가장 먼저 추천해봅니다.

저의 관심사를 대변해주는 듯한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라는 부제부터 마음을 설레게 하는군요. 내밀한 회고록이지만 읽기와 쓰기가 지닌 공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웅변하는,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기의 힘'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로 엮은 저자의 글이 기대됩니다. 정희진과 정여울의 찬사가 없더라도 덥썩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랄까요.




2.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 (조한별/바다출판사/2016-2-15)

미국의 컬럼비아대와 시카고대,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세인트존스 대학은 '그레이트북스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성공한 대학으로 유명하지요. 그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세이트존스에 재학하면서 4년동안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인트존스의 고전 공부법을 소개해준다고 합니다.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깨닫고 고전 공부에 대한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3.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현암사/2016-2-2)

신간평가단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인 [도덕적 불감증]을 한번 읽었지만, 2월달에도 신간이 두 권이나 나왔습니다. 그중 한 권을 추천해봅니다. 이 분의 저서는 마르지 않는 샘 같아서 읽을 때마다 깨달음이 솟아오르는 경험을 합니다^^; 지난번에 읽었던 [도덕적 불감증]의 연장선에서 소비사회와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 분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를....




4. 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사회평론/2016-2-29)

이 책이 러셀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러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책소개 때문에 더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러셀은 이 책에서 개인의 가장 내밀한 감정인 사랑이 어떻게 사회의 필수적 요소로서 기능하게 되는지를 추적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사랑으로 사회의 기초를 세우고자 합니다. 결혼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고 점검하기 위해 이 책을 펼쳐보고 싶습니다.




5. 10퍼센트 인간 (앨러나 콜렌/시공사/2016-2-15)

지난달 신간평가단 도서였던 리사 랜들의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가 우주와 물리의 스케일에 대해 논했다면 이번달에는 생물과 인간의 스케일에 대해 논하여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책은 마이크로바이옴, 즉 인체 내부와 표피에 살고 있는 1만종 이상의 미생물들의 군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마다 지문이 다르듯 사람마다 미생물의 군집에도 차이가 있어서 이를 제2의 게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군요. 우리 몸의 90%를 차지하는 미생물들의 정체가 심히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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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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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력과 기술 등의 조건 불일치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늘면서 실업률은 더욱 올라갔고, 이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강박장애를 겪는 사람도 2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은 역대 최대 인원인 22만2650명이 지원해 5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현상은 이 나라에서 공무원이 아니고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반증이며 공무원을 하지 않고는 먹고 살기 어려운 정책을 펼치는 정부라는 뜻이다. 


이 책은 심각한 실업 사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무업’의 단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직을 하면서 입사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거나 구직에 성공해도 ‘열정페이’라는 명분으로 착취만 당하고, 간신히 정규직이 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정리 해고되는 경험을 거듭하다보면 자신감을 상실하고 몸도 마음도 무기력해지면서 무업의 단계에 빠지게 된다. 일본 사회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를바 없다. 있다면 일본보다 더 열악한 최저임금제와 더 부실한 사회안전망이라는 더 나쁜 조건? 


저자는 우선 ‘청년 무업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서부터 글을 시작한다. 

‘무업자’라는 단어는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줄 것만 같은 불순한 사회구성원을 떠올리게 한다. 일이 없어서 안 하는게 아니라 편한 일, 좋은 일만 찾아하려고 이것저것 가리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게(특히 나이드신 어른들) 일반적이다. 여기에 ‘청년’이라는 단어까지 결합해서 ‘청년 무업자’라는 어휘가 형성되면 오해는 몇배로 증폭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청년 무업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왜 생기는지 알고 싶게 하거나 사회 문제로 분석하게 만들기 보다는 오직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 개인을 탓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선입견과 편견에 맞서 [청년 무업자 백서]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 대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일본 사회가 청년 무업자 문제에 대해 감정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모두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사회적 과제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청년 무업자 백서]에서 조사한 통계는 일하지 못하는 청년들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근거로써 이 책의 1부 3장에서 인용된다. 그러나 통계 수치와 분석만으로 청년 무업자들을 이해시키려 했다면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어쩌다가 잘못된 선택’을 했거나, ‘좌절’과 ‘실패’가 인생의 분기점이 되어 무업 상태로 전락해 버린 ‘일을 할 수 없는 청년들’의 이력서들이 1부 2장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나온다. 통계 수치가 아닌 개인의 사례라는 점에서 청년 무업자들의 고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4장의 ‘무업 사회’의 등장 배경과 5장의 ‘무업 사회’와 미래에 관한 내용은 일본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 부분 아쉬웠다. 한국을 배경으로 이런 공론을 일으켜서 실태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이슈화 해줄 수 있는 저자가 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6장의 청년 무업자를 지원하는 바람직한 사회 시스템과 7장의 NPO의 역할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무업 사회에 대한 1부의 내용이며 2부는 무업을 벗어난 청년들이 다시 일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2부의 내용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유용할 수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책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 들어간 내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부의 내용이 더 보강되거나 외부 전문가들을 섭외해서라도 무업 사회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이끌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책의 부제가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이긴 하지만, 청년부터 쭉 무업으로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버린 중년까지 감안한다면, 또 그 중년이 노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악순환의 고리까지도 예측한다면 청년 무업자의 문제는 청년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무업 사회’의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누구나 무업자가 될 수 있는 사회임을 인식하고 청년 무업 실태가 세대에 대한 문제가 아닌, 국가적인 문제로써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는데 얼마간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현재의 정책이나 안전망이 만들어진 기원이 전후 또는 고도경제성장기, 즉 청년 세대가 풍요로웠던 시대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에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현재 발생되고 있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과거에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은 적합하지 않다. (p34)

청년 무업자가 발생하는 구조적 요인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일본의 기업 사회와 인사 전략 또는 사회보장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육도 그 안에 포함될 것이다. 이처럼 상당히 광범위한 분야에 주목해 봄으로써, 각 분야의 기능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 무업자를 양산하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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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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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빅뉴스로 ‘중력파 발견’이라는 과학계의 소식을 접했다. 2014년에 개봉했던 ‘인터스텔라' 이후로 우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에서 ‘중력파’의 개념을 처음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의 고문을 담당했고 이번 발견으로 노벨상 1순위로 주목받고 있는 킵 손 교수는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인터스텔라 덕분에 고무된 과학적 호기심으로 킵 손 교수의 책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의욕적으로 읽었으나 어려워서 중도 포기했다. 뼛속까지 문과 출신에다가 미술 쪽에 발을 살짝 담갔다 꺼낸 내가 과학을, 그것도 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할 때는 대단한 각오와 인내가 필요하다. [인터스텔라의 과학]은 나의 각오와 인내를 가혹하게 시험하는 책이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도 그런 부류의 책이라고 짐작했지만, 전작 [숨겨진 우주]에 대해 가졌던 호감의 기억 덕분에 선뜻 독서 의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작년 겨울에 앞서 읽었던 [인터스텔라의 과학]이 너무 딱딱하고 건조했기에 그 다음으로 읽었던 [숨겨진 우주]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어조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분위기의 책이라 읽기가 더 나았다. 방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적재적소의 명료한 그림 자료와 함께 이해를 돕는 저자의 구성 솜씨와 문장력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쉬운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생소한 개념들은 어쩔 수 없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숨겨진 우주]를 [인터스텔라의 과학]과는 달리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는 전작에서 보여준 능력이 더 극대화된 듯하다. 일단 다루는 내용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고 책의 컨셉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영화로 따지자면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작인 [숨겨진 우주]의 오리지날 스토리이며 전작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숨겨진 우주]를 먼저 읽고 나중에 나온 이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이 책을 먼저 읽고 [숨겨진 우주]를 읽으면 한층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한, 그중에서도 입자 물리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다져주고 과학과 과학적 사고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심지어 나 같은 과학 초짜의 이해도 도와준다. 리사 랜들의 글쓰기가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리사 랜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과학도가 되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라고 (문과 출신에 예술가적 기질이 미세하고 불량하게 있는) 내 뼛속을 갈아엎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이다.


책을 펼치면 목차가 나오기 전에 바로 ‘책을 시작하며’라는 글이 나온다. 책 전반에 대한 소개와 안내가 감탄스러울 정도로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이 글만 잘 읽는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본문을 읽으면서 종종 이 글로 돌아와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상기하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갔다. 나 같이 기억력 나쁜 독자가 있을까봐 저자는 본문에서도 내용을 요약해서 마무리해주거나 다음에 나올 내용을 요약해서 알려주기도 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길잡이를 해준다.

이 책의 전체에 걸쳐서 반복 등장하고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핵심 개념은 ‘스케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사용한 스케일의 개념이 주로 미술에서 쓰는 용도의 개념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 나는 과학적 스케일과 더 나아가 삶의 전반에 대한 통찰적인 스케일까지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물리학자에게 있어서 특정한 연구에 관련된 크기나 에너지 영역을 가리키는 스케일이라는 개념은 우리 세계의 여러 측면뿐만 아니라, 과학적 진보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잘 작동되던 물리 법칙들이라고 하더라도 우주를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크기로 나누는 순간 잘 작동하지 않는 영역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스케일에서 잘 적용되던 개념이 다른 스케일로 넘어가자마자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개념을 쓸모 있게 만드려면 새로운 스케일에서 더 유용한 개념과 관련을 맺어야 한다. 크기나 길이에 따라 세계를 기술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스케일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를 스케일에 따라 구별할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일관된 관점에 따라 합쳐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 수 있다. (p28)

책의 전반에 걸쳐 LHC도 비중있게 다룬다. LHC란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의 약자로 대형 강입자 충돌기라고도 한다. 2008년 9월 10일에 역사적인 첫 시험 가동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주 엉뚱한 감정으로…. LHC의 가동으로 작은 크기의 인공 블랙홀이 생성될 수 있다며, 이 블랙홀이 주변을 삼키기 시작하면서 연구소 전체와 유럽 대륙, 심지어 지구까지 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부 과학자들이 제시해서 언론이 떠들석했었고 그때문에 나도 당시에 쫄았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해명을 해주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이 책의 2부과 3부에 걸쳐서 LHC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중요한 실험과 작동 원리 및 실제 가동에 대해 깊이 살펴 보고, LHC에서 발견된 것들을 과학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도 알려준다. 길이가 무려 26.6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LHC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라는 사실이 묘하게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수많은 분야를 차용해서 입자 물리학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과학 이론만 다루는 책보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나 같이 과학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독자에게는 장점이겠지만 반대로 과학적인 배경지식이 많은 독자들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양쪽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 책이 과학적 지식으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통해 삶과 문학과 예술과 사회에 대한 통찰까지 가능할 수 있었던 나의 독서 경험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이제 리사 랜들의 글쓰기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암흑 물질과 공룡들]이여, 어서 번역되길~



덧붙이는 기타 등등


/ 이 책은 번역보다는 교정이 상당히 아쉽다. 탈락된 글자나 오타로 여겨지는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과학을 다루기 때문에 더더욱 정확성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책이다. 적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독자들과 [사이언스 클래식] 시리즈를 아끼는 독자들을 위해서 출판사는 더욱 분발해주시길 바란다.  


/ 본문에 나오는 그림12의 작은 스케일로의 여행(p122)과 그림70의 커다란 스케일로의 여행(p486)을 연결하면 멋진 스케일 인포그래픽이 만들어진다. 이 그림들을 커다랗게 만들어서 벽면 하나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붙여두면 멋지리라.


/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제목이다. 과학 서적에 붙일 만한 제목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에. 왜 이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하면 103페이지부터 찾아보면 된다.


/ 작년 겨울에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구입하느라 정작 [숨겨진 우주]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이번에 [숨겨진 우주]도 구입했다. 다시 읽어보면 [숨겨진 우주]에 숨겨진 의미를 더 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건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라 여기 적을 필요도 없는 글이지만 입이 근질근질…;;;;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소개 페이지에서 발견했는데 리사 랜들의 생일이 나와 같다! 게다가 띠동갑이다!! 입자 물리학 스케일의 인연이라도 이어져 있다고 믿고 싶다~ㅎㅎ;;;;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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