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거리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르고 읽어서 다행이다. 덕분에 어... 어? 어!!!라는 감탄사의 삼단 변화를 오롯이 경험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리뷰를 읽으려는 이들에게 먼저 솔직히 밝혀둬야 할 점이 있다. 내가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09년에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으면서였다. 거기서 인용된 대단한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앨리스 먼로의 단편 <덜스>의 첫 단락을 만났을때 나는 고작 몇 줄 만에 작가에게 반해버렸다. 그 후로 앨리스 먼로를 좇는 열성 팬이 되었고, 가장 최근에 번역된 [거지 소녀]의 출간에 또 한 번 환호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 리뷰는 전적으로 편애와 편견이 가득하다는 것을 고백한다.

 

 

인생을 한편의 소설 같다, 라고 말할 때 여기서 소설이란 매끄럽게 이어지는 장편보다는 단편들의 연작이 더 어울린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인생을 돌이켜볼 때 기억이란 불완전하고 불연속적이며 분절되기 때문이다. 제임스 설터도 말하지 않았던가.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 있을 뿐이라고. 앨리스 먼로는 섬세한 필치로 그 조각들을 열편의 단편 소설로 복원하여 로즈라는 여성의 삶을 연작의 형태로 그려낸다. 내가 기대하던 형식의 소설로, 감탄에 마지않게.  

 

 

작가는 책의 제목이자 단편 소설 중 하나인 '거지 소녀'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어린 시절부터 중년의 여인이 되기까지 로즈가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겪었던 경험과 자의든 타의든 선택과 결단이 필요했던 삶의 중요한 시기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어떤 플롯도 없고 기대와 호기심도 유발하지 않는다. 때때로 읽기 불편한 내용도 있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재미라는 요소를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앨리스 먼로의 글은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나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재미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소설을 읽고 난 감상을 즉각적으로 재미있다라는 가장 흔하고 단순한 말로 뭉뚱그려 표현한다. 재미의 층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소설들은 대체로 사건과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전혀 그려지지 않는 다른 종류의 소설도 우리는 재미있다라는 말로 평가할 때가 있다. 특정할 만한 사건도 없고 인상적인 장면도 없이 시종일관 밋밋한 소설인데도 그렇다. 이유는 소설에 보이지 않는 요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철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다. 다만 마음으로 만져질 뿐이다. 우리는 눈먼 사람처럼 점자를 읽듯 마음으로 문장을 찬찬히 더듬어 가야만 그것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런 문장들은 형상이 없는 마음의 결을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해서 자신에게 그런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해준다. 삶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감동하고 전율하고 각성하게 만들면서. 이 책이,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내겐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염두에 둔 단어는 단편의 제목이자 책의 제목이기도 한 거지 소녀이다. 패트릭과 로즈의 대화에서도 언급된다.

 

--------

 패트릭이 말했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누구?”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알잖아. 그림 말이야. 그 그림 몰라?” (p144)

--------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는 아프리카의 민요에서 전래하고 시인 테니슨에 의해 시로 쓰였으며, 화가 번 존스의 회화로 유명하다거리를 지나가던 코페투아왕이 가련하고 헐벗은 거지 소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순간을 표현한 그림이다. 신분의 격차를 초월한 사랑을 그린 낭만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내게는 이 그림이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문장을 빌어 이 그림을 다시 보면 그러하다. 존 버거는 그림 속에서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역시 이상적인 관객이 남성으로 가정되어 있어서 거지 소녀는 남성의 이상적인 여성향으로 묘파 되어 있다. 이는 패트릭과 로즈의 권력 관계로 상징되고, 가부장제 아래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확장된다. 이 그림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거지 소녀가 들고 있는 아네모네 꽃이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속절없는 사랑, 비극적인 사랑이다. 번 존스가 아네모네 꽃말을 염두에 두고 이 그림을 그렸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앨리스 먼로는 충분히 그것을 인지하고 소설을 썼다. 패트릭과 로즈의 사랑은 낭만적이지 않으며 아네모네의 꽃말과 같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로즈가 그렇게 깨닫는 부분이 있다


--------

사랑은 세상을 지워버린다고, 사랑이 잘되어갈 때만이 아니라 망가지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놀라울 것도 없는 생각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중략)  둘 중 어떤 경우라도 결국엔 뭔가를, 자신만의 균형추이건 진실성의 작고 메마른 알맹이이건, 빼앗기게 된다.(p308)’

--------

 

그렇다면 로즈의 삶은 아네모네의 꽃말처럼 불행하기만 하고, 이 소설은 비극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 로즈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담담한 문체가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힘이 있으므로. 그 힘이 불행 이외의 것들을 로즈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해주므로.

 

 

[거지 소녀]의 많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러면 소설만큼 긴 리뷰를 써야 할 것 같다. 그중에 고르고 골라서 나는 이야기 중에 로즈가 소중한 십 달러를 몸속에 꽁꽁 간직한 채, 처음으로 토론토에 혼자 기차를 타고 가는 날에 대해서 짧게 적어본다. 로즈는 기차의 옆좌석에 앉은 선량하게 생긴 목사에게 교묘하게 성추행을 당한다. 플로의 경고와 주의에도 불구하고 로즈는 변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친절하고 선한 사람과 친절을 가장한 악한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다. 겪어보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그는 정말 목사였을까, 아니면 말로만 그런 것일까? 플로는 목사가 아니면서 목사처럼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말했었다.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닌 것처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혹은 더욱 이상하긴 하지만, 목사가 아닌데 목사인 척하면서 목사가 아닌 것처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쨌든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사태에 그토록 가까이 갔다는 사실은 유쾌하지 않았다로즈는 유니언 역을 통과해 걸어가며 십 달러가 든 조그만 주머니가 피부에 닿는 것을 느꼈고, 계속 피부에 스치며 교훈을 상기시키는 그 주머니를 하루종일 느끼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p121)

--------

 

산다는 건 소중한 십 달러가 든 주머니를 깊숙이 간직한 채, 처음으로 혼자 기차를 타고 가는 경험과 다름없다. 나는 로즈의 십 달러가 든 주머니가 피부에 닿는 것을 느끼듯 이 책이 마음 깊숙이 닿는 것을 느꼈고, 계속 마음에 스치며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상기시키는 이 책을 생의 순간마다 느끼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로즈의 삶을 읽는다는 것은 내 삶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사건'이고 '과정의 시작'이라는 것까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각종 수상 기록과 화려한 타이틀을 내걸고 나오는 소설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때문에 읽어보기도 전에 독자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 역시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기대감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소감은…….


그전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흑인 노예제에 대한 미비한 배경지식부터 반성해야겠다. 미국사 책을 완독한 경험없이 조금씩 주워섬기기만 하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게다가 흑인 노예제에 관련해서 읽은 문학책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 밖에 없다. [노예 12년]은 영화로 나왔기에 보았고. 오래도록 집에 모셔둔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손도 대지 않은채 책장에서 박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뭐랄까, 흑인 노예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마음이 힘들어서 유난히도 손이 안 간다. 특별한 동기가 없다면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났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도 삐까번쩍한 후광이 없었다면 언제 읽을지 기약할 수 없는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불허전이다. 일단 배경지식 다 필요없고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이 소설의 가장 바람직한 미덕은, 차마 눈뜨고, 아니 눈감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흑인 노예들과 그들을 돕는 자들의 비극적인 참상으로 인해 읽기 힘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꽉 짜여진 플롯을 좇아가느라 책장을 덮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정말 순식간에 읽었다. 문학상 수상작 중에 이만큼 잘 읽히는 소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나다를까 영화 제작한단다. 이런 이야기라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지 싶다.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문체나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현학적이거나 묵직하거나 장엄하지 않고도, 이 소설은 충분히 커다란 울림과 여운을 준다. 내러티브의 명료함과 문장의 영리함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내가 노예제에, 미국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책들을 당장 찾아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도 나에게서 올리지 못한 개가이다.


영화 [노예 12년]에서도 상영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노예 탈출 비밀 조직 ‘지하철도(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노예 해방 조직의 이동경로와 조직원들을 지하철도에 은유하고 구성한 명칭을 작가는 실제 지하철도로 상상해서 이야기를 자아냈다. 다른 사람들은 지하철도 픽션을 호평했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글쎄, 노예제라는 지극히 사실적인 배경 안에서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핍진성이 떨어진다고 생각이 들긴 했다. 굳이 지하철도를 통한 탈출이 아니었다해도 이 책의 평가가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필요한 이유와 의미는 뭘까. 책 속 문장에서 그 이유와 의미를 찾아본다. “때로는 쓸모 있는 착각이 쓸모 없는 진실보다 낫습니다.(p319)”라고 랜더가 연설한 말에서. 그 당시에 비밀 지하철도가 땅속에 존재한다는 설정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분명 영화에서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이고, 독자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강력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내 마음에도 이미 비밀스러운 역 하나가 생겼고 그 역에는 흑인 노예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노력하는 내가 역장으로 서 있다.

진실은 당신이 보지 않을 때 누군가에 의해 뒤바뀌는 상점 쇼윈도의 진열과 같았다. 그럴싸하고 결코 손에 닿지 않는. (p136)

“백인이 목화를 따는 건 본 적이 없는데요.” 코라가 말했다.
“나도 노스캐롤라이나에 돌아오기 전까지는 군중이 사람의 사지를 찢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틴이 말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같은 것에는 입을 다물게 돼.” (p186)

“주인님이 총을 든 검둥이보다 더 위험한 게 딱 하나 있다고 말씀하셨지.” 그가 말했다. “책을 든 검둥이. 그러다가 분명 커다란 검은 화약고가 된다고 했어!” (p3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에 드는 소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할 때면 은근히 긴장되어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짧은 필력으로 이렇게 써보고 저렇게 써보아도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들게 어필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책의 내용 속에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기분이 마침맞게 묘사되어 있었다. 오호라, 바로 이거였다!


레너드가 회복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려운 책을 읽는 경험과 비슷했다. 말년의 제임스의 작품이나 [안나 카레니나]의 토지 개혁에 관한 부분을 애써 읽어나가다가 별안간 다시 만족스러운 부분에 도달하고 점점 내용이 좋아지더니 결국 온통 마음을 빼앗겨 궁극적으로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는 이유로 이전의 따분했던 부분에 거의 감사할 지경이 되는 경험 말이다. <2권 p286>


위의 문장에 나오는 “이전의 따분했던 부분”이 이 책에도 존재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들린과 레너드, 미첼은 브라운 대학교의 대학원생이다. 그런 배경 덕분에 그들의 전공과 관련한 수업(기호학, 종교학, 영문학, 생물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술적인 내용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음… 그들의 난해한 토론과 사색은 나에게 꽤나 버거운 내용이었다. 특히 기호학 수업 내용은 저자가 브라운 대학교를 다니면서 본인의 경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사가 소상하다. 이러한 연유로 1권 중반까지는 이야기에 속도가 붙지 않아서 인내심을 요한다. 이 고비를 잘 넘기고 매들린과 레너드가 교제를 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제법 급물살을 타며, 2권까지 읽고 책을 덮는 순간이 되면 이 책에 온통 빼앗긴 마음을 추스리느라 여념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The Marriage Plot”이다.(플롯이라는 단어가 한번에 쉽게 딱 와닿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소설”로 제목이 바꾸었으리라 짐작한다.) 소설이라는 문학 형식이 생긴 이래, 소설에서 결혼이라는 플롯의 자리매김은 변함없이 확고하다. 결혼을 하거나 안 하거나 결혼이라는 화두는 남녀관계에 맞물려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다.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를 통해 결혼이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나는 시종일관 매들린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레너드와 미첼을 저울질했다. 이미 멋모르고 결혼해서 애엄마인 내가 이제 와서 저울질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그런데 결혼은 원래 멋모르는 상태에서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매들린과 레너드도 그렇기에 결혼했다. 나 또한 그랬듯 아래와 같은 무모한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결혼에 관한 앨윈의 불만이 결혼 생활과 남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듯 매들린은 자신의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와 다르리라고, 전형적인 문제의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1권 p498>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에서 미첼은 변화했다. 그는 더이상 멋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형식이 사랑을 완성하지 않으며 사랑은 완성이 없고 완성의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그는 매들린을 레너드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고, 결국 다른 선택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레너드와 매들린의 사이가 파경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레너드의 심리 묘사였다.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문장들은 이 책의 백미였다. 문장들이 폐부 깊숙이 찔러 들어와서 페이지마다 잠시 호흡을 골라야했다. 가령 이런 문장들….


“어머니는 널 안 좋아하셔.” 그 단어들이 물리적 타격처럼 레너드를 강타했다. 단지 매들린이 말한 내용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도 충분히 불쾌했지만 그 내용을 털어놓기로 한 매들린의 결정 때문이었다. 그런 말은 일단 언급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지금부터 레너드와 필리다가 한 방에 있을 때마다 그 말이 그곳에 도사리게 될 터였다. 그것은 매들린이 장차 그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고 예상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1권 p136>


레너드는 바닥에 뿌리박힌 듯 서 있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계속 아주 빠르게 깜박거리니 눈물방울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가 리튬을 증오하는 만큼이나 그 순간 그것은 그의 친구였다. 레너드는 자신에게 돌진하려고 기다리는 거대한 슬픔의 파도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슬픈 현실이 정통으로 그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마치 물이 가득 들어 있는 투명한 작은 비닐봉지를 꽉 쥐어짜 젖지는 않으면서도 그 액체의 모든 속성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최소한 그것만큼은 고맙게 여길 만했다. 엉망이 된 인생도 온전히 그의 것은 아니었다.  <1권 p140>


이 모든 경우에서,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미처 알기도 전에 상처는 이미 나 있었다. 최악인 점은 해가 감에 따라 이런 기억들이 머릿속 비밀 상자에 보관했다가 종종 뒤적거려 꺼내 보는 소중한 소지품처럼 되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을 불행이라는 문을 여는 열쇠였다. 그것들은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운 좋은 아이가 아니라면 나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꺠닫기 마련이다. 그러고 나서는 그것이 온 생각을 지배해 버리기 마련이다. <1권 p144>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복잡미묘하고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한 마음에 언어로 정확한 형상을 부여한다. 그의 정교하고 유려하고 우아한 문장을 읽노라면 거울에 비친 마음을 또렷이 마주보는 기분이 들었다. 레너드의 마음을, 레너드의 마음에 덧대어진 내 마음을. 긴말해서 뭐하겠는가. 난 그냥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지만 이렇게 말하면 임팩트와 설득력이 떨어질테니 이 책을 한마디로 소개할 수 있는 문장도 책 속 명문장을 빌려 말해볼 수밖에.

 

삶의 소음을 뚫고 도달해 와락 멱살을 움켜잡고 가장 진실된 것들에 관해 말해 주는 책이 몇 권 있다. <1권 p518>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보다는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더더욱 가슴 벅찼다. 문장들을 자꾸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문장들이 자꾸 마음에 스며든다. 나는 매들린과 레너드와 미첼 때문에 얼마나 가슴 먹먹했는지. 하아— 나도 모르게 장탄식을 한다. 그리고 엄지를 치켜든다. 역시 제프리 유제니디스! 여러분도 기꺼이 이 책에 멱살 잡히시길. 우리들의 젊은 날에 가장 진실된 것들에 관해 말해주는 이야기를 만나고 발견하시길….




* 해당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이며 이 책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애정의 고백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우스갯소리로 고전이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 다양한 단체와 기관의 권장도서 목록에 수록되고 저명 인사들이 추천하지만 어렵거나 지루해서 읽어보지도 않고 훌륭한 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책이 고전이다. 읽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 감히 다른 의견이나 비판을 하면 비난을 받을까봐 입을 다물게 만드는 책 역시 고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벌거벗은 임금님’을 모시는 신하나 백성처럼 읽지도 않은 고전 앞에서 박수치고 찬사를 보낼 때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체를 큰 소리로 외치는 아이 같은 존재가 바로 이 책, [책의 정신]이다.


이 세상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 하나의 편견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뿐 아니라 쓰고 싶은 것만 쓴다. (p8)


재작년에 출간되어 지금도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책 중에 아들러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쓴 책이 있다. 지인 중에 자신의 감정을 제때 표현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던 순간을 상처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베스트셀러로 팔리던 그 책을 읽고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고는 그때 그때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며 살기로 했다고 말하며 사람들과의 작은 갈등과 오해에도 여과없이 감정을 즉홍적인 말로 쏟아버려 물의를 빚곤 했다. 위에 인용한 저자의 말처럼 지인은 '하나의 편견인 책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것'이다. 독서란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주관성, 즉 편견을 강화했던 것이다. 순간에 머무는 베스트셀러도 이럴진데 오랜 시간동안 화자되어온 고전에서 강화된 편견은 거의 철옹성에 가깝지 않을까...


편견은 수많은 편견을 접함으로써 해소된다. (생략)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내가 가진 편견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 함께 살아가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다. (p9)


한 권의 책만 읽고 그 책을 맹신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책의 정신’은 고전이 위대하고 무조건 옳다는 편견에 다른 편견을 제시해서 고전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책에 맞서는 책을 제시한 책이자 책에 대한 책, 즉 ‘메타북’이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철옹성 같은 믿음의 체계를 무너뜨리고 독서의 체계를 새롭게 쌓아올릴 수 있는 안목을 갖출 수 있도록 우리의 정신에 일침을 가하는 다섯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 세상이 좋은 책을 통해 진보해왔다면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이었는지에 대해 묻는다. 여기서 로버트 단턴의 [책의 혁명]이 언급된다. 로버트 단턴은 프랑스대혁명을 가능케 했던 책이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유명한 계몽사상가들의 저작물이 아니라 포르노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권의 발명]의 저자인 린 헌트 또한 포르노소설이 인권의 발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여기서 우리의 편견은 와르르 무너진다. 포르노소설이 당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하나의 공감대로 묶어주는 획기적인 매개체였다는 것, 자연스럽게 즐기고 읽던 포르노소설이 어느 날 갑자기 그런 것을 만들어 배포하면 범죄라고 규정하면서 ‘포르노그래피’라는 부정적인 개념의 발명으로 금지법까지 만들어졌던 이유가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포르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이해를 제시해준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고도 세상을 바꾸었던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와 갈릴레오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가 있다. 이 책들은 지구 중심의 우주관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신의 선택을 받은 왕이 국가를 다스린다는 전제군주제를 크게 뒤흔들었다. 당시 우주의 조화를 의심하는 것은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해하기 그지 없어서 한 줌도 안 되는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해설판으로 먼저 출간했던 프랑스가 오랜 경쟁 상대였던 영국을 제치고 과학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와 뉴턴이 연금술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만유인력의 발견도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 번째 이야기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불리는 플라톤의 저작물에서 시작해서 공자의 [논어]로 이어진다. 소크라테스에 관해 남겨진 저작물 중 플라톤의 저작물만 고전이 되고 크세노폰의 저작물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를 완성했던 페리클레스나 노예제를 없애려 했으며 민주주의에 초석을 놓은 솔론과 달리 독재정치를 지지했다는 사실, 마찬가지로 공자의 [논어]도 성인의 독재를 이상적인 정치로 보았으며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책이며 민주주의에 가까운 생각을 펼친 사람은 묵자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보수적인 내용을 담은 [논어]와 공자에 대한 이야기가 줄어야 진보적인 [묵자]에 대한 관심이 생겨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하며 묵자를 우리 삶속에서 살려내려면 묵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심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고.


네 번째 이야기는 ‘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본성인가 양육인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의 역사와 내용을 다룬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과히 그 분량만큼이나 편견에 지진이 일어나고 수많은 편견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편견을 해소하는 충격을 맛볼 수 있는 장이다. 마거릿 미드의 [사모아의 청소년]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부터 시작해서, 8개원 된 남자 아기가 포경 수술을 받다가 성기를 잃는 사고 때문에 존 머니의 극단적인 양육론에 따라 여자로 길러지는 사건, 배다른 사촌형인 찰스 다윈의 저작물에서 받은 영향을 받아 ‘우생학’을 탄생시킨 프랜시스 골턴과 존 왓슨의 ‘아기 앨버트 실험’,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는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읽었던 과학책의 지식이 유발하는 편견의 위험성을 소름 돋을 정도로 깨닫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책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학살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단적인 정권들은 자신과 신념이 다른 사상을 없애는 방법으로 책의 학살을 자행해왔다. 여기서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라는 책이 나오는데 나치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책을 불태웠다는 소식을 들은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각을 없애려면 사람도 불태워야지.” 프로이트의 말처럼 책의 학살은 홀로코스트와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며 책의 학살은 인종말살 사건의 전조로 먼저 일어나기도 하고, 함께 벌어지기도 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이 책의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제대로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가 아니라 독후감을 끝낼 때다.(p7)라는 저자의 말 때문에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고전에 대한 편견을 수많은 편견으로 해소해주고 있지만 이 책 역시 하나의 편견이기도 하다. 세상은 그렇게 수많은 책들이 이루는 편견이 모여서 진실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헤세의 [데미안] 속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Abraxas).” 책의 정신은 바로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기 위해 투쟁하는 압락사스의 정신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5-0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에 대한 감상이 정리되지 않으면, 안 읽는 걸로 칩니다. 그러면 몇 달 지나고 나서야 다시 읽습니다. 그러다가 읽다가 마는 경우가 있는데, 다시 처음부터 읽어요. 이렇게 무한 루트에 빠지게 됩니다. ㅎㅎㅎ

원더북 2016-05-01 16:50   좋아요 0 | URL
모든 책에 감상을 다 정리하진 못하지만 메모라도 정리하지 않은 책은 저도 안 읽은 걸로 치게 되더라구요. 몇 달 지나면 정말 거짓말처럼 홀랑 잊어버려서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 해요 ㅎㅎ;; 근데 정말 좋은 책은 감상을 정리해도 거기서 끝나지 않고 무한 루트로 읽게 만드는 것 같아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