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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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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문강현준의 [감각의 제국]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전에는 문화비평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저자의 인상 깊은 비평 때문에 이 책을 읽은 후로 문화비평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문화비평서로 두번 째로 읽은 [덕후감]은 문화비평 중에서도 좀 더 세분화해서 ‘대중문화’ 비평에 초점을 맞춘다. 흥미롭게도 [감각의 제국]과 [덕후감] 둘다 2012년부터 ‘한겨레’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다. [덕후감]은 거기에 다른 글들을 모아 테마를 6개로 압축해서 내용의 분량을 늘리고 더 깊이 있게 분석하고 다룬다. ‘덕후’가 ‘오타쿠’를 우리 식으로 달리 부르는 용어라는 것은 익히 알았기에 딱 봐도 덕후와 독후감을 합성한, 혹은 덕후의 감을 연상하게 하는 [덕후감]이라는 책의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TV와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발달과 늘어나는 1인 가구수와 문화의 상업화와 세분화 등의 요인이 점점 더 많은 덕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도 한 가지면에서는 덕후라고 할 수 있지만 TV도 안 보고 대중가요도 듣지 않고 명품도 짝퉁도 어떤 유행도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명품 가방 브랜드 구분할 줄도 모르고, EXO나 방탄소년단은 이름만 들어봤지 노래를 듣거나 얼굴도 모르고, 무한도전이나 개그콘서트, 비정삼회담도 본 적 없다는 말이다;;; 이런 내용을 책을 통해서 알고 책을 통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나는 오직 책덕후라고나 할까…^^; 대중문화를 즐기거나 동참하지 않는 탓에 이 책이 다루는 내용에서 내가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상 많지 않았다. 소시적에 연예인 잠깐 좋아했던 기억 조금, 사춘기 때 순정만화 보던 기억 조금,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글쓰기 위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집중적으로 보던 기억 조금, 게임 회사에서 글쓰기 위해 게임 좀 해보던 기억들을 끌어모아 최대 경험치를 축적해서 이 책을 읽을 때 배경지식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건 덕후의 자질이나 밀접한 경험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리두기’였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 비평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비평할 때는 ‘감정이입’보다는 차라리 ‘동정’이라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려면 공감보다는 다른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덕후감]도 대중문화에 대한 거리두기가 분명한 책이다.


이 책에 다루는 내용에는 여러가지 대중문화적인 전문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멤놀, 일코, 때팬, 걸크러쉬 같은 용어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1장의 ‘팬덤의 사회학’에 대거 몰려 있다. 6개의 장이 모두 대중문화의 이면과 속깊은 면면을 다루어줘서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나는 특히 1장이 인상 깊었다. 팬픽이 불러온 긍정적 동성애 효과와 팬아트가 불러온 성적 시선의 구도와 권력 관계의 전복 현상, ‘멤버놀이’의 동일시 메커니즘, 여덕 혹은 걸크러쉬라 불리는 여자 아이돌을 향한 여성팬의 열광의 의미와 삼촌 팬이라는 복잡다단한 현상의 함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치적 무의식이 대중문화 속에 얼마나 다층적으로 내재해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여겨졌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간 내가 대중문화에 무심했던 이유가 대중문화에 숨겨진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문강형준과 김성윤이라는 멋진 문화비평가들을 만났다. 두 저자의 책을 읽음으로써 대중문화를 즐기더라도 함몰되지 않고 적절한 거리두기가 가능해짐은 물론 균형 잡힌 시각까지 갖출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멋진 문화비평가들이 더 많이 출현해주면 좋겠다. 점점 더 문화비평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최근의 대중문화에 대한 덕후감도 서둘러 나와주길 기다려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한 사회에 모순이 있고 그 모순을 쉽사리 해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그 모순을 상상적, 상징적으로라도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때 동원되는 게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이야기다. 가요를 듣거나 영화를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사실은 거기서 현실을 파악할 프레임을 얻었거나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쾌락을 맛봤다는 뜻일 것이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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