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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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소설에 대한 리뷰를 작성할 때면 은근히 긴장되어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짧은 필력으로 이렇게 써보고 저렇게 써보아도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들게 어필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책의 내용 속에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기분이 마침맞게 묘사되어 있었다. 오호라, 바로 이거였다!


레너드가 회복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려운 책을 읽는 경험과 비슷했다. 말년의 제임스의 작품이나 [안나 카레니나]의 토지 개혁에 관한 부분을 애써 읽어나가다가 별안간 다시 만족스러운 부분에 도달하고 점점 내용이 좋아지더니 결국 온통 마음을 빼앗겨 궁극적으로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는 이유로 이전의 따분했던 부분에 거의 감사할 지경이 되는 경험 말이다. <2권 p286>


위의 문장에 나오는 “이전의 따분했던 부분”이 이 책에도 존재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매들린과 레너드, 미첼은 브라운 대학교의 대학원생이다. 그런 배경 덕분에 그들의 전공과 관련한 수업(기호학, 종교학, 영문학, 생물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술적인 내용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음… 그들의 난해한 토론과 사색은 나에게 꽤나 버거운 내용이었다. 특히 기호학 수업 내용은 저자가 브라운 대학교를 다니면서 본인의 경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사가 소상하다. 이러한 연유로 1권 중반까지는 이야기에 속도가 붙지 않아서 인내심을 요한다. 이 고비를 잘 넘기고 매들린과 레너드가 교제를 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제법 급물살을 타며, 2권까지 읽고 책을 덮는 순간이 되면 이 책에 온통 빼앗긴 마음을 추스리느라 여념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의 영어 원제는 “The Marriage Plot”이다.(플롯이라는 단어가 한번에 쉽게 딱 와닿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소설”로 제목이 바꾸었으리라 짐작한다.) 소설이라는 문학 형식이 생긴 이래, 소설에서 결혼이라는 플롯의 자리매김은 변함없이 확고하다. 결혼을 하거나 안 하거나 결혼이라는 화두는 남녀관계에 맞물려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다.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관계를 통해 결혼이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나는 시종일관 매들린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레너드와 미첼을 저울질했다. 이미 멋모르고 결혼해서 애엄마인 내가 이제 와서 저울질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그런데 결혼은 원래 멋모르는 상태에서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매들린과 레너드도 그렇기에 결혼했다. 나 또한 그랬듯 아래와 같은 무모한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결혼에 관한 앨윈의 불만이 결혼 생활과 남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듯 매들린은 자신의 관계가 다른 모든 관계와 다르리라고, 전형적인 문제의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1권 p498>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에서 미첼은 변화했다. 그는 더이상 멋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형식이 사랑을 완성하지 않으며 사랑은 완성이 없고 완성의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그는 매들린을 레너드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고, 결국 다른 선택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레너드와 매들린의 사이가 파경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레너드의 심리 묘사였다. 작가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문장들은 이 책의 백미였다. 문장들이 폐부 깊숙이 찔러 들어와서 페이지마다 잠시 호흡을 골라야했다. 가령 이런 문장들….


“어머니는 널 안 좋아하셔.” 그 단어들이 물리적 타격처럼 레너드를 강타했다. 단지 매들린이 말한 내용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도 충분히 불쾌했지만 그 내용을 털어놓기로 한 매들린의 결정 때문이었다. 그런 말은 일단 언급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지금부터 레너드와 필리다가 한 방에 있을 때마다 그 말이 그곳에 도사리게 될 터였다. 그것은 매들린이 장차 그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고 예상하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1권 p136>


레너드는 바닥에 뿌리박힌 듯 서 있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지만 계속 아주 빠르게 깜박거리니 눈물방울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가 리튬을 증오하는 만큼이나 그 순간 그것은 그의 친구였다. 레너드는 자신에게 돌진하려고 기다리는 거대한 슬픔의 파도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슬픈 현실이 정통으로 그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마치 물이 가득 들어 있는 투명한 작은 비닐봉지를 꽉 쥐어짜 젖지는 않으면서도 그 액체의 모든 속성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최소한 그것만큼은 고맙게 여길 만했다. 엉망이 된 인생도 온전히 그의 것은 아니었다.  <1권 p140>


이 모든 경우에서,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미처 알기도 전에 상처는 이미 나 있었다. 최악인 점은 해가 감에 따라 이런 기억들이 머릿속 비밀 상자에 보관했다가 종종 뒤적거려 꺼내 보는 소중한 소지품처럼 되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것들을 불행이라는 문을 여는 열쇠였다. 그것들은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운 좋은 아이가 아니라면 나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꺠닫기 마련이다. 그러고 나서는 그것이 온 생각을 지배해 버리기 마련이다. <1권 p144>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복잡미묘하고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한 마음에 언어로 정확한 형상을 부여한다. 그의 정교하고 유려하고 우아한 문장을 읽노라면 거울에 비친 마음을 또렷이 마주보는 기분이 들었다. 레너드의 마음을, 레너드의 마음에 덧대어진 내 마음을. 긴말해서 뭐하겠는가. 난 그냥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지만 이렇게 말하면 임팩트와 설득력이 떨어질테니 이 책을 한마디로 소개할 수 있는 문장도 책 속 명문장을 빌려 말해볼 수밖에.

 

삶의 소음을 뚫고 도달해 와락 멱살을 움켜잡고 가장 진실된 것들에 관해 말해 주는 책이 몇 권 있다. <1권 p518>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보다는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더더욱 가슴 벅찼다. 문장들을 자꾸 곱씹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문장들이 자꾸 마음에 스며든다. 나는 매들린과 레너드와 미첼 때문에 얼마나 가슴 먹먹했는지. 하아— 나도 모르게 장탄식을 한다. 그리고 엄지를 치켜든다. 역시 제프리 유제니디스! 여러분도 기꺼이 이 책에 멱살 잡히시길. 우리들의 젊은 날에 가장 진실된 것들에 관해 말해주는 이야기를 만나고 발견하시길….




* 해당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이며 이 책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애정의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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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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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저자가 짧은 간격으로 책을 내면 괜스레 의심과 기우가 생긴다. 저자의 진정성과 열정이 상업성과 타협을 해서 변절된 것은 아닌지, 내용의 깊이가 떨어지고 구태의연한 글을 써내서 식상해진 건 아닌지…? 정여울은 내가 손에 꼽을만큼 좋아하는 국내 저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이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여울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이 책을 읽고도 유효하다는 것과 나는 또 이 저자의 책을 기다리겠구나 하는 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영재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때는 특목고와 자사고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교 때는 취업을 위해, 취업을 하면 승진을 위해, 재취업을 위한 재교육까지…. 대한민국의 공부는 끝이 없다. 이 땅에서 공부는 철저하게 생존을 위한 ‘의무’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평생에 걸쳐 공부를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열정은 고갈되고 정신은 피폐해지며 삶은 더 팍팍해진다. 이쯤되면 공부의 의무 따위는 떨쳐버리고 공부의 노예를 벗어나 자유인이 되라고 조언을 해주는 책이 나올 법한데 저자 정여울은 공부만이 잘 사는 길이라고 공부를 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다만 공부는 의무가 아닌 ‘권리’임을 내세우면서.


이 책은 저자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존엄을 지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문학과 철학과 역사, 심리학과 신화학에 관한 공부를 통해서 얻어낸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다. 책을 읽으면 저자가 걸어온 공부의 길에 새겨진 발자취가 오롯하게 드러난다. 그 길에는 그리스 고전과 비극과 신화도 있고, 심리학의 대가인 카를 구스타프 융과 아들러도 있으며, 성경이 인용되고, 마르크스와 장 뤽 낭시와 지그문드 바우만이 있고, 고전 문학 작품과 다양한 저자들의 책이, 그리고 영화들이 나온다.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깔려 있는 책이지만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독자라도 저자의 글은 조곤조곤 따뜻하게 공부의 길을 안내하기 때문에 읽기에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독자라면 저자가 가진 지식의 연결과 뜻밖의 조합들이 빚어낸 사유의 결과물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다루는 내용 중 심리학자 로버트 A.존슨의 [내면의 황금]이라는 책이 소개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은 대부 혹은 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증언하는데, 저자는 대모나 대부를 실제 세상에서 만나거나 찾지 못한다면 너대니얼 호손의 소설 [큰바위 얼굴]에서처럼 사물을 통해서 찾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면의 황금을 ‘큰바위 얼굴’이라는 이상적인 사물에서 찾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거대한 바위산일 뿐이지만 거기에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했지요. 즉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정수인 내면의 황금을 맡김으로써 큰바위 얼굴은 한 시대의 뜨거운 상징이자 인류 보편의 ‘내면의 황금’이 된 것이지요.

(p155)

저자의 책속에는 인류 보편의 ‘내면의 황금’이 된 여러 책들이 소개된다. ‘큰바위 얼굴’에서 사물을 통해 멘토를 찾은 것처럼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실제 세상에서 만나지 못한 진정한 공부의 멘토를 이 책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 또한 그런 멘토의 역할을 해주는 책으로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스스로 마취약도 없이 내 상처를 꿰매는 멋진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삶은 아직 더 살아야만 풀어지는 아름다운 신비’임을 깨닫게 한 것이 나에게는 공부였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이보다 더 가슴에 와닿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부할 권리는 살아갈 권리이고 행복할 권리이다.




* 해당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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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김중석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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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하는 책이라는 것도 있다. 어떤 내용인지 저자가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모양새가 예쁜 책이 그러하다. [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와 [과자로 맛보는 와삭바삭 프랑스 역사]가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내용에 묘하게 잘 어울리는 깜찍한 일러스트들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국기 색깔의 표지가 일단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책부터 갖고 싶게 만들었다. [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는 감사하게도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을 제공받았고, [과자로 맛보는 와삭바삭 프랑스 역사]는 내가 구입을 해서 두 권을 갖추었다. 두 권으로 끝나긴 아까운 시리즈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파스타에 대해서 메뉴판을 고를 때 말고는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파스타와 스파게티와 마카로니의 차이가 뭔지도 몰랐다. 간단히 구분하자면 파스타가 총칭인데, 파스타는 이 책에서 정의내린 바로는 ‘곡물 가루에 물을 섞어 반죽해 모양을 만든 다음 삶거나 쪄서 먹는, 탄력과 점착성이 있는 요리 재료’이다. 그 중에서 길고 가는 면의 형태로 생긴 종류가 스파게티, 작고 모양이 있는 종류가 마카로니(이 책에선 마케로니라고 부름)쯤 된다. (나만 헛갈렸나.. ㅎㅎ;;;)


본문에 나오는 다양한 파스타들 사진. 특히 1번 만두 파스타가 제일 신기했다.  


요즘은 흔하게 파스타 전문점을 찾아볼 수 있지만 내가 처음 파스타 전문점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다니던1992~3년이었다. 이 시기에 ‘소렌토’라는 스파게티 전문점이 생겼었고, 인스턴트 혹은 엉성한 분식 스타일의 미트소스 스파게티만 알고 있었던 내가 다양한 스파게티의 종류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그때만 해도 스파게티는 특별한 사람을 만날 때 가끔 먹는 음식이었다. 나는 아직도 파스타가 가끔 먹고 싶지 자주 먹고 싶은 입맛은 아닌데, 세대가 달라질수록 파스타를 먹는 빈도수가 늘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할 때면 아이들의 요구로 파스타 전문점을 빈번히 가게 된다. 갈 때마다 파스타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매번 시키는 파스타만 주문했다. 이 책을 보고서 이제 파스타에 대해 좀 알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있게 읽었다. 


저자가 일본인이고 번역서라서 책의 글머리에 ‘일본 최초의 파스타’나 ‘일본의 국수 문화와 파스타’와 같은 일본의 파스타 사정을 설명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한국의 파스타 사정도 내용을 추가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글머리를 읽고 나면 본격적으로 파스타를 통해 배우는 맛있는 미시사가 시작된다. 밀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발명한 건조 파스타의 이야기, 파스타 길드, 처음에는 독성으로 알려진 식물들과 비슷하다고 오해받아 받아들여지지 않은 토마토, 이탈리아 문학에 나오는 파스타 이야기 등. 읽는 재미가 아주 솔솔했다. 특히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온 파스타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이상향은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의 8일째 세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그곳은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 걸친 바스크 지방에 있다고 합니다. 근처 일대에는 윤이 나는 최상급 포도주가 강이 되어 흐르고, 포도나무에는 소시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며, 산 하나가 강판에 간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산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마케로니와 라비올리를 만들어 거세한 수탉 수프에 넣어 삶아 내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만든 파스타를 산 아래쪽으로 흘려 보내면 산기슭에 있는 사람 누구나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p129)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데카메론]에서 내용을 직접 찾아봤다.


중세 시대의 민중 사이에서는 파스타가 단연 최고의 ‘꿈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민중들은 가끔 파스타를 일품요리로 즐길 수 있었던 반면, 귀족들은 코스 메뉴 중 하나로 파스타를 곁들여 즐겼다고 한다. 중세를 지나 파스타와 이탈리아 역사 사이의 끈끈한 끈기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은 현대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말한다. “파스타는 이제 더 이상 이탈리아인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음식입니다. 이제부터 세계사의 어떤 전개와 발맞추며 진화해 갈까요? 설레는 가슴으로 파스타의 변신을 지켜보고 싶군요.” 그러고보니 한국식으로 변신한 파스타도 요즘 레시피로 꽤 눈에 띈다. 냉이 된장 파스타, 뚝배기고추장 파스타, 김치삼겹 파스타 등…. 후룩후룩. 오늘 저녁은 파스타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파스타 이야기를 들려줘볼까? 파스타와 세계사를 함께 좋아하게 만들어주는 깜찍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봉골레 냉이 된장 파스타 레시피 :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35070&memberNo=2657101&vType=VERTICAL

 

<이 글은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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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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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이 말했듯이, 문학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경험으로 바꿔서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생생한 느낌과 경험이야말로 내가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상처와 아픔에 대한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 ('작가란 무엇인가2'의 역자 후기 중) 


나는 역사책이나 지식인의 책을 통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나치 정권과 히틀러의 만행에 대해 알 수도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 지배 하에서 살아 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도 내가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러하다. 나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아직은 운 좋은 세대이고, 우리나라 독재정권 당시도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격동의 시대를 알지 못한 채 지나갔다. 그래서 내게는(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역사적 사건을 개인의 경험으로 바꿔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문학이 필요하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나치 정권 하에 산다는 게 무엇인지 , 제2차 세계대전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는지 등장 인물들을 통해서 아는 것을 넘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는 나치 정권의 피의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독일 소년 베르너와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인 프랑스 소녀 마리로르를 두 축으로 진행된다. (번역서를 두 권으로 분권한 것에 대해 유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긴 하지만, 나는 이 책만큼은 분권이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주된 서술자이자 비중을 차지하는 소년 소녀를 각각의 표지로  삼은 것이 원서의 표지보다 책의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려서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에 와닿았고, 게다가 분권은 가장 극적인 부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주 절묘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소설의 목차는 연도별로 구성되나 순차적이지 않고 시간을 넘나든다. 내용들은 주어진 연도 안에서 제목들을 달고 짧게 진행된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들이 교차하면서 스타카토처럼 짧고 빠르게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신기한 건 전혀 정신 사납거나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페이지마다 떨어져 있는 이야기들이 머리속에서 저절로 잘 이어졌다. 이게 바로 퓰리처상과 카네기 메달상을 동시에 받을 만한 작가의 능력인가 싶을 정도로. 처음 읽을 때는 이런 방식의 이야기 구조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읽을 때는 비로소 놓친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빛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문장들. 죄다 옮겨 쓰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그러면 서평이 아니라  필사 수준이 될테니까. (옮겨 쓰는 건 내 노트북엔 이미 다 했음.) 

이야기의 구조와 빛나는 문장들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소재다. ‘불꽃의 바다’라 명명한 보석과 라디오. 두 가지 소재가 얼마나 이 소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적절하게 제공하는지 이야기를 직조하는 작가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 예정이라고 들었다. 얼마나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가 될 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게 고민한 것은 소설의 제목이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주파수’였다. 주파수는 소리의 전파에 관한 개념으로 자주 언급하지만, 빛의 진동수를 나타내거나 측정하는 단위로써 주파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이란 주파수를 나타내는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베르너와 마리로르를 이어주는 라디오 방송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떠오른 것은 살아 남아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희망을 언제나 빛으로 인식한다. 절망을 어둠으로 인식하듯. 전쟁과 나치 치하에서도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빛이 나중에는 전쟁의 종식시키고 다시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게 만든다. 지금도 지구의 한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테러가 일어나고, 기아와 재해가 일어나지만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삶은 회복하고 지속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최종적으로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희망의 주파수라고 이해했다. 이 책이 내게 희망의 주파수를 보내었다면 나는 그것을 제대로 수신했다. 감동적으로. 


얼마 전에 읽었던 [황금방울새]의 서평을 쓸 때, 퓰리처상 수상작과 나의 기호가 맞지 않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런데 [황금방울새]에 이어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연달아 읽고 나니 그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가 없다. 올여름은 두 책으로 인해 최고의 여름으로 기억할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퓰리처상 수상작이 기대된다.



밑줄 그은 곳이 무진장 많지만, 하나만 올려봅니다.

p181
헛소리, 무시무시한 헛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곧장 도관을 뚫고 들어온다. 흡사 솜으로 꽉 찬 자루에 손을 뻗었다가 그 속에서 면도날을 발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한결같고 정도를 지키고 있는 줄 알다가, 너무도 예리해 살을 갈라도 미처 느낄 수 없는 어떤 위험한 것과 맞닥뜨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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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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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률 98.5%의 압도적 1위!’라는 말에 낚였다!? 이 문구가 아니었으면 지금껏 나의 소설적 취향과 퓰리처상의 궁합이 대부분 맞지 않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읽긴 읽겠지만 언제 읽을 지 모르는 책이었을 것이다.

두 권의 번역본으로 나온 이 책의 페이지수는 무려 1060쪽. 책소개나 추천사는 빠른 속도로 몰입이 가능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게 했다. 페이지수는 문제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초반 미술관 테러 사건 이후 <황금방울새>에 얽힌 사건이 이야기의 전면에 드러나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뭐랄까. 유화를 그리는 것처럼. 유화는 재료의 특성상 마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붓질 한 번 하고 그 붓질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 물감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고 또 붓질하고 기다리고…. 이야기도 그렇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더디게 느껴지는 데는 묘사가 한몫했다. 세심한 묘사가 정말 많다. 촘촘한 관계 묘사도 많다. 물론 이야기에 필요한 부분이다. 얼마만큼 필요한 지는 작가가 판단할 일이지만. 어쨌든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전개되길 기대한다면 이 책을 읽어내는 데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2권 중반부터는 그런 속도감을 기대해도 좋다). 나의 경우엔 한 가지 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사회적, 문화적 차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에는 내내 약물 복용이 나온다. 와~ (주인공 시오가 자주 쓰는 감탄사) 미국은 정말 이정도로 약물 복용이 심각한가? 어린 학생들까지도? 미국의 현대 소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이 이야기가 유화를 그리듯 진행되는 느낌을 받은 이유에는 약물 복용도 포함된다. 유화의 느린 작업속도 뿐만 아니라 유화물감에 섞어 사용하는 희석제인 테러빈유의 냄새가 진동하는 것처럼. 현기증이 났다. 난독증도 아닌데 중간에 몇 번이고 그만 읽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은 건 스티븐 킹의 딱 한 마디 때문이다. ‘중독적이며 삶의 버거운 슬픔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예술’. 이 한 마디를 발견하기 위해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결론은? 와~ 다 읽고 나면 진짜 괜찮은 책이라는 것. 다 읽고 나서야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

덧칠에 덧칠을 거듭한 결과 마지막에 완성한 그림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가슴 벅차고 뭉클하기까지 했다. 미술을 감상하는 내 세계관까지도 바꾸었다. 이 책을 다 읽은 내 손엔 벌써 미술서적들이 들려 있었다. 마구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권할 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압도적인 완독률 따위는 가라~ 테레빈유의 지독한 냄새를 맡으면서 유화 물감으로 오랜 시간 그리고 말리며 완성해야 하는 걸작같은 책이 왔다! 이 책은 미술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해줄 것이다.”라고. (끝까지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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