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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0년 9월
평점 :
홍은전의 글힘은 ‘겪음’에서 나온다. ‘경험’이 아니라 ‘겪음’. 누구보다도 가까이 장애인들, 약자들과 함께 지내왔으면서도 온전히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사람. 나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치열한 삶을 살고, 만난 이들의 말과 삶을 글로 옮기고 있으면서도 늘 반성만 하는 사람.
글 속의 나는 현실의 나보다 더 섬세하고 더 진지하고 더 치열하다. 처음엔 그것이 가식적으로 느껴져 괴롭고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 힘든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약자들과 나눈 말들을 ‘고통과 희열, 자긍심이 알알이 박힌 따뜻하고 보드랍고 축축한 말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그가 소위 약자들을 만날 때 연민의 힘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의 존엄을 진정으로 존엄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런 존중의 마음에서 출발했으므로 그는 늘 겸손하다. 그러면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이기적으로 살기에도 바쁜 세상인데 그는 왜 늘 약자들,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하는 걸까.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맞서 싸우는 일에서 세상의 희망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 책을 읽는 일이 내게는 너무 힘겨웠다. 그의 글 때문에 책에 언급되는 박경준, 세월호 유가족, 송국현, 최옥란이 곁에 있는 사람들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의 삶 앞에서 내 삶은 너무 안이하게 느껴지고 이 사람의 글 앞에서 내 글은 너무 얄팍해 보인다.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그만 읽어야지, 그만 읽어야지 중얼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끝내 읽는 것은 이렇게 함께 읽는 것도 함께 싸우는 일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좀 뜬금없지만 내가 테이프를 붙였던 책 속 글귀에는 이런 것도 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살고 싶다.
작가처럼 아픈 죽음을 많이 바라봐야 했던 사람에게 저 화두는 피맺힌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저 글귀를 접하는 마음의 치열함은 그에 못 미치더라도, 그래도 나 역시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내 자리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내 미약한 글로나마 세상과 손잡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