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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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면서 내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부러워했다. 우리에게 이런 거대한 미술관이 있나, 더듬어보면서. 작고 사랑스러운 미술관들이야 많지만 보물을 무궁무진 품은 것 같은, 언제라도 달려가 못 본 구석구석을 다시 보고 싶은 그런 미술관, 가령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같은 곳이 서울에 있던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가 본 적 없지만 만약 내가 뉴욕에 사는 주민이라면 시간이 날 때 종종 가 보고 싶을 것 같다.

 

나에게 그때 국박은 숨통이었다

1994, 오래전이긴 하지만 첫 직장을 접고 서울에 와서 두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세 살밖에 안 된 아기와 투병 중인 시부모를 모시고 박봉과 야근에 시달리며 직장을 다녔다. 그런 무리수를 둔 이유는 경력 단절의 걱정 때문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결혼한 여자들이 다 하는 걱정일 터. 하루에 4, 5시간밖에 못 자던 시절, 숨 막힐 것 같던 그 시절.

그나마 다니던 회사가 마감이 아닐 때는 취재라는 명목으로 대낮에 서울 시내 여기저기를 다닐 수 있었다. 심지어 마감 직후에는 서점이나 박물관에 가는 일이 취재 거리를 찾는 합법적인 행위였다. 그때 한낮에 당시에는 경복궁 옆에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끔 갔다. 사람이 거의 없는 박물관에 남긴 나만의 발자국 소리가 겨우 나를 숨 쉬게 했다. 잠이 모자라 로비에 앉아 깜빡 잠이 들기도 했던가.

 

홀로 작품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거대한 미술관에서 경비를 서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볼까? 작가가 경비를 서면서 홀로 마주한 작품은 그 긴 시간은 오롯이 작품 감상만의 시간이었겠는가? 온갖 상념, 자신에 대한 성찰, 과거에 대한 슬픔과 미래에 대한 계획들로 가득 찼을 것. 그때 떠오른 생각들은 글이 되었을 터. 나는 그, 홀로 생각에 잠겼을 작가의 시간에 공감한다. 세사로부터 도망치듯 혼자 유물과 작품을 마주하던 나의 고독함과 어딘가 닮은 듯하여.

 

친절하고 인정 많은 어머니와 소박하지만 진정한 예술의 가치를 알았던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저자는 품성이 따뜻한 사람인 듯하다. 미술관에서 만나는 다양한 관람객을 손님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도 그러하지만 내가 그를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해서도 작품에 대해서도 편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과 출신으로 구성된 매트의 경비원 동료들에 대해 그가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어떤 삶의 경험을 지녔든 하나의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한다. 그림에 대해서도 중국이나 이집트 그리스와 유럽을 망라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 읽는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형을 잃었지만, 그 충격으로 소위 잘나가는 직업을 버리고 스스로 박봉의 경비원이 되기를 선택했지만 신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미술관 앞뜰에 앉아 1달러짜리 핫도그를 먹으면서 이 직업과 삶에 대해 만족해하고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외지인 무리 사이에 끼어 앉아 나 혼자 유일하게 이곳에 속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즐긴다. 계단에 편히 자리를 잡은 나는 재킷 단추를 열고 클립으로 부착하는 넥타이를 떼고, 공중에서 이런 나를 내려다보면 얼마나 멋진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일까 생각한다. 이 위대한 도시의 심장부에 있는 위대한 미술관의 계단에 작은 경비원 하나가 앉아 있다. 작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는 아니다. 앉은 자리는 편안하고, 근무복은 몸에 잘 맞는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예술이어야

월급은 어떨지 몰라도,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직업이 힘들지는 몰라도 이 미술관 경비들이 부러운 지점이 있다. 직원들의 가족이 미술관 휴무일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 그들만의 작품 전시회를 열어준다든지, 그러니까 직원의 복지를 의 개념이 아니라 배려와 예술적 관점으로 베푸는 것. ‘메트는 경비원들이 투고하고 편집한 미술 작품, , 산문 등을 실은 <스와이프>라는 매거진을 발행했단다. 그리고 가끔 일반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전시회를 열고 직원들이 작품을 출품할 수 있도록 했단다.

예술 작품이 거하는 곳에 예술 쫌 아는 사람들이 근무한다는 것을 회사도 인정하는 것 아닌가. 작가는 나무의 뿌리는 그 나무의 가지만큼 뻗어나간다고들 한다. 그건 미술관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이 세상은 모두, 특히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곳일수록 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매트에도 경비원이 600명쯤 된다고 했던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인가.

 

남은 하나의 소원은 다른 이를 위해

글의 맥락과 상관은 없지만 책 속에서 가슴에 남는 말이 하나 있었다. 소원을 비는 아이에게 한 어머니가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빌라 했단다. 최근의 나에게도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 소원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부끄러워지곤 한다. 내 자식 잘 되게 해달라는 기원은 얼마나 말초적이고 어리석은가. 그러나 간절한가. 그래서 자식이 무엇을 얻게 해달라는 말 대신 그들이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노력에 합당한 결과를 누리게 해달라, 부당하게 삶에서 좌절을 맛보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정말 좋은 모성애를 지니고 있다면 이 땅의 모든, 열심히 사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지. 그러나 현실의 나는 초라하고 나약한 어미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기도는 부끄럽기도 했다. 기복은 기복이더라도 다른 하나는 간절한 다른 누군가 소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리라.

 

예술관,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 역사관

저자가 관람객에게 르네상스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누구든 가장 쉽게 설명하는 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이고,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이다. 겉모습은 경비원이되 그 안에 예술을 이해하는 지성과 교감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그림을 사진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들은 보통 천사나 성인 같은 소재를 그렸는데 그것들을 거의 상징적 기호에 가까운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잘 묘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두초의 이 그림은 르네상스 초기에 그린 거예요. 그때는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시기였어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그들의 삶과 꿈은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그 이전에는 인간이란 지구에서 짧은 생을 보낸 후에 내세로 나아가는 죄 많고 타락한 생명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건 상당히 새로운 견해였어요.

그러다 보니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 내야 했어요. 만물을 보는 방식을 말이죠... 그들이 발견한 만물 간에 균형을 맞추고 우연과 영원을 조화시키는 방법은 오늘날 당신과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도 작용하고 있고 수많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죠.

 

그리고 미켈란젤로에게 배우는 오늘

작가는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예술사 최고의 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날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 더없이 전념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시대의 거장이 얼마나 자신에 대한 번뇌하는 사람이었는지 보여준다. 그는 제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예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예요.’라며 오늘날 우리가 하이 르네상스,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 부르는 자신의 시대에 대해 고뇌했단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사소한 실수로 성 베드로 성당의 완공이 늦어지게 된 일로 크게 자책하며 수치심과 슬픔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단다. 그 위대한 미켈란젤로도 하물며 그렇게 옹송거리며 살았거늘.... 나같은 평범한 사람의 고뇌와 부끄러움 따위라니.... 묘하게 위로가 되는 대목......

 

예술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나리자는 세상에 한 점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어디를 가나 바라볼 가치가 있는 얼굴들은 많이 있다.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들어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이 예술, 어떤 이에게는 그 자체가 목적인 예술. 그게 없었다면 단지 이 생명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알까. 그의 글도 내게 삶에 힘을 준 예술작품 중 하나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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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발견 - 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고명섭 지음 / 그린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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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발견 고명섭

 

작가 고명섭에 대해 경탄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학자도 아니면서 방대한 독서와 집핍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그, 시간을 내어 연구해 몰두해도 다다르기 쉽지 않은 통찰의 안목을 보여주는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게다가 잘 읽히는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읽고 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사람들의 저작과 사상을 정리해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삶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 업적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통찰한다. 이렇게 깊이와 넓이, 5차원에 가까운 통찰, 그것을 표출하는 에너지와 기법 모두를 갖춘 저자를 정말 오랜만에 본다. 그의 책은 나를 다른 독서로 이끈다. 이렇게 한 권의 책에서 감자 캐듯 새로운 정보를 얻는 책은 보물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계몽의 변증법>으로 나아간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전반적으로 <계몽의 변증법>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보인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으니(구해놓았다) 저자가 요약해 놓은 부분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고명섭은 이 책에 대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그렇게 자기반성이 결여된 이성을 도구적 이성이라 일컬음. 계몽은 인간을 신화의 세계에서 구출해 냈지만 그 자신이 다시 신화가 됨이라고 요약하였다. 그렇게 신화가 된 계몽을 비판하기 위한 <계몽의 변증법>과 보폭을 맞추면서 고명섭은 <파우스트>, <니체>, 한나 아렌트와 도올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은 <계몽의 변증법> 필터링으로 읽는 현대 철학(의 일부)이라 할 수 있다. 니체나 도올은 제대로 읽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깊은 생각으로 여러 번 읽었던 파우스트에 대한 글, 그리고 내게 다른 시선을 안겨주는 똘레랑스 편이 유용했다.

 

나는 <파우스트>가 오만한 인간주의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방대함, 고민의 깊이를 찬탄하면서도 가리키고 있는 방향성은 무엇인 걸까 읽을 때마다 궁금해했다. 그에 대해 작가는 파우스트야말로 계몽주의 시대를 대변하는 작품이었다 말한다. 파우스트의 이성을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스스로를 계몽하지 않는 계몽이라 부르면서 그런 계몽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한다. 파우스트 작품에 담은 주제 의식은 괴테 개인의 것이라기보다 시대의 것이었나 보다,

내가 파우스트를 읽으면 막연히 느꼈던 불편함을 이렇게 해명해주다니... 이렇게 계몽의 변증법 feat. 파우스트는 오래 묵은 나의 답답함에 대한 설명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 진보 진영에게 한때 중립적이고 이상적인 유토피아의 토핑같이 사랑받던 똘레랑스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관점을 제시한다. ‘진정한 톨레랑스는 냉정한 계산이나 적절한 선에서의 타협이 아니라 정의와 연대를 강조하는 뜨거운 이성이라면서 미국의 톨러런스는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톨레랑스가 아니라 타협을 말한다고. 그래, 미국 사회 특유의 너그러움이 프랑스식 톨레랑스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겠다. 진정한 톨레랑스는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부정이 전제조건이고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극단을 거부하는 태도이며

폭력을 거부하는 이성적인 토론과 설득. 비폭력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 하지만 이 관용의 정신도 사실 제국주의와 싸우지 않았고 서구인, 기독교인들끼리만 통하는 원리였다는 점도 지적한다. 톨레랑스가 구현되려면 토론이 중요한데, 이는 교육받은 이들끼리나 가능한 것이라 사회적 약자가 누리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는 것도.

80년대 진보주의 운동에서 많이 나오던 지식인주의의 오류와 맥이 통하는 지적이다. 오류라기보다 한계가 맞는 말이겠지만.

 

그리고 <계몽의 변증법> 뿐 아니라 부르디외 책을 산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성과에 넣는다. 고명섭 기자, 땡큐. 나는 당신의 다음 저작으로 건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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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서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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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글과 책이 넘쳐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도 빛나는 것들은 있고 배울 점도 많지만 때로는 아무나 글을 쓸 수 없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적어도 출간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검증된 글들, 고뇌를 거듭하고 문장을 벼려 세상에 내보낸 글들을 읽는 고마움... 그런 기쁨과 고마움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서정이라는 분은 도대체 뭐하는 이일까? 경력을 보니 자유 영혼을 지닌 이인가 보다.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고 많은 이들을 만나며 살아온 것은 그의 기질 탓일까. 외국어를 여럿 할 줄 알고 이렇게 필력이 좋은 이라면, 그리고 낯선 곳에 가서도 잘 살아낼 정도의 에너지가 있는 이라면 소위 잘나가는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재능이 뛰어나도 세속에서 추구하는 돈과 명예를 좇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렇게 살 수 있어도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가 그런 삶을 선택하게 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도 그런 사람일까...

 

베네수엘라에서의 작가가 보낸 일상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그의 글에는 많은 경험과 에피소드보다 사유가 앞선다. 문학적 감성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예술을 보는 안목이 있다. 소설을 쓰는 이일까? 평범한 사람이지만 남들은 못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을 받은 걸까?

 

당신의 사진 속 텅 비어 있는 공간들에는 어둠과 빛이 공존합니다. 먼지 속에 반짝이는 것들이 보입니다. 가슴이 내려앉는 이유는 거기에 달아놓은 5, 10불짜리 가격표를 당신이 똑바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악한 상인들이 득실거리는 가차없는 시장에 삶이 통째로 팔려 나온 우리의 처지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의 사진으로 비로소 알았어요. 내 물건, 내 공간에 깃든 별 것인 시간의 가치를요. - 마릴리 콜 사진 전시회에 대한 작가의 글

 

마릴리 콜의 사진을 놓고 화면을 붙잡은 이의 의도 따위는 없다. ...프레임 안을 들여다봄으로써 프레임 밖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 프레임 안의 고요가 프레임 밖의 곡소리를 심화한다는 것.’이라 평했다. 평범한 비평이 아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요즘 내가 공부하고 있는 스페인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다루고 있는 남미의 현실과 미술은 잘 모르지만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좀 생각했다. 그가 언급한 노래들을 찾아 들어 보았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지평 넓히기보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영혼을 지녔기에 고난이 예상되는 곳에 기꺼이 찾아가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내가 영혼이라 표현한 이유도 그가 관심갖는 문화적 영역이 관심의 영역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이라 느껴져서이다.

그러나 이렇게 깊은 영혼과 재능도 자신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상품화하여 세상에 내놓지 않는 한 쓸쓸하고 아름다운 작은 별로 떠돌다 언젠가 사라지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좀 아리다. 우리 중 궁극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이 없겠지만, 정도 차이이겠지만, 그래도 세속적 안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서정, 그는 도대체 무엇을 좇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궁금한, 이런 책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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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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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결이 잘 맺는 것이 좋은 글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박경리 선생 이야기로 맺는다. 가장 고독한 존재로 글을 마주하는 자기 자신 이야기로 맺는다. 외로움은 문학의 필연이라고 선언한다. 아팠지만, 아팠기에 글이 될 수 있었노라고,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성 소설가일 것 같아 보였던 공지영은 그렇게 자신의 문학을 토로한다.

 

그가 박경리는 아닐 것이다. 비견하려고 그렇게 맺은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존경하는 선생만큼의 삶과 문학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려 그렇게 맺는 것이리라. 그리고 어쩌면 훗날 공지영은 그런 이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다 간 길이 아니니까.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공지영을 질시한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유명세를 치르는 그녀를 보면서 나의 삶이 초라해 보였던 적 있다. 그가 세 권쯤의 책을 가졌을 때였던 것 같다. 그의 유명한 이름이 부러웠던 것이 아니라 세 권의 책이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는 책 대신 제자들이 있었다. 그런 비교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그녀에겐 없고 나에게만 있는 제자들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에게는 세상이 알아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이 중요했고, 나에게도 그런 의미 있는 삶이 있()다는 것이 참 안심이 되었다.

 

물론 그녀나 나나, 우리가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도 그 누구의 삶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잣대는 성취 중심적 가치관을 가진 속물들의 잣대일지도 모른다. 하긴, 아무래도 나는 속물인 게 맞다고 생각된다면 그런 잣대로 그녀를 평가해 보자.

그 자신의 말대로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움직여야 하는 열정 덩어리로 살아온 그 사람이라면 글재주를 타고 나지 않았더라도 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좌충우돌할지라도 누군가 억울한 사람 편을 들면서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이의 글은, 그저 잘 쓴 글, 말빨이 좋아 재미있는 글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열심히 살았기에 생겨난 많은 이야기들로 채워졌기에 더욱 좋은 글이 되었으리라. 그러니까 그 사람의 복잡다단하고 화려한 삶에 입방아를 찧고 질시하고 미워하면서도 은근히 선망하고 몰래 매혹될 일이 아니라 가감 없이, 순수하게 칭찬해 주고 좋아해 주면 될 일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모차르트 협주곡 23을 몰입해 들었다. 다른 책을 통해 예수의 행적을 읽으며,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의 행적으로 위로 받던 내가 마음으로 공지영의 여행에 동행했다(물론 그의 과감한 발길은 내 스타일은 아니다). 책 뒤에서인지 앞에서인지,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여행지에서 끔찍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그이의 마음에 마음으로 동참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기질과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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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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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제목부터 가슴이 아려오는,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집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이 사람은 분명 시인일 터인데, 누구일까. 왜 기존의 자기 이름으로 시집을 내지 않았을까.

 

글 쓰는 이들 중에는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다양한 글을 쓰는 이가 있다. 무슨 사연이 있긴 하겠지. 그게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아도 그이가 누구인지 나오지 않는다. 이 정도 필력이면 이미 기성의 작가나 시인일 법한데...

 

요즘, 세상이 슬프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무도한 세상에 인간은 이미 비인간화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제페토 시인도 그러지 않았을까.

 

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이러지 마세요, 어머니

그것은 숭고한 공포입니다

산사의 돌탑도

타인의 소망을 밟고 높아졌습니다

정성이 하늘에 닿을 때마다

내 가슴에는 평생 갚을

빚 더미가 쌓입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사랑을 두려워합니다

부디 당신이 밝힌 촛불에

데지 않게 하소서

누구도 죽게 마소서 <비나이다>

 

수능 열흘 앞 엄마의 기도에 대해

 

 

꼬리를 자르면

꼬리 없는 짐승이 되지

 

뿔을 자르면

뿔 없는 짐승이 되지

 

DNA를 따라

꼬리와 뿔은 다시 자라날 테고

 

(중략) 짭조름한 피 맛이 간절할 즈음

돌아와 사람을 물면 되지

 

목욕을 하겠지

큰절을 하겠지

 

짐승은 짐승이지

사람은 아니지 <짐승의 방식> - 5.18 망언한 국회의원에 대해

 

 

그의 슬픔과 울분은 슬프고 아픈 뉴스로 가득한 세상에서 비롯된 것일 터. 좋은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꿔본다. 한편으론, 그런 세상을 유지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해 본다. 때론 나 자신 대단한 일을 하지 않음에도 이토록 사는 일에는 이 드는가 한탄하는데 다음 시는 그 대답이 될 것 같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은 그나마 세상이 덜 나빠지지 않게 하는 큰 힘이 된다는, 그러나 무력하다, 하찮다, 알량하다고 나의 조그마한 삶을 스스로 폄하하지 말라는, 그런 시


아래 제페토의 시에 기대 글을 썼음을 밝힌다

https://brunch.co.kr/@f0f56614cd83447/43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실은 안간힘을 쓴다는 뜻이다

 

지금도 마천루와 전봇대는

쓰러지지 않으려 진땀을 흘리고 잇다

 

평안은 뉴스가 되지 않으나

별일 없는 날을 나는 사랑한다

 

행인들의 따분한 얼굴과

그들이 버티어낸 하루를 사랑한다 <별일 없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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