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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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원소인 탄소 예찬을 처음 읽은 것은 아마도 김상욱의 글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의 <문과남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다. 죽음은 원자로 돌아가는 길이며 심상한 일이라는 결론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유물론자들의 과학 예찬은 이렇게도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 유명한 프리모 레비의 글을 60년 생애 처음으로 읽었다. 시사인에 연재한 김명희 씨의 명문에 감탄하다가, 그의 마지막 글에서 헌사를 읽었다. 사실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기대어 자신도 원소들 이야기로 세상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고. 과학과 사회학이 만나는 글을 읽으며, 인문학적 통찰이 과학에 뿌리를 두면 이렇게 멋질 수 있다를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이 덕분에 처음으로 프리모 레비를 읽는다.

 

이 책의 맨 마지막 탄소편은 통째로 글을 옮겨 적어보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김상욱과 유시민은 이 책을 읽었던 게 아닐까? 다시 한번 나는, 모든 생은 무의미하지 않으며, 죽음조차 끝이 아님을 탄소론에서 읽는다.

사실 모든 이는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을 보면서 남편과 유물론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계관이다라면서도 재미있게 본 모순된 행동을 했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각종 종교들에 접근해 보아도 결론은 같다. 죽음은 끝이며 영적인 다른 세계는 없(을 것이). 다만, 원자로 돌아간 내 몸은 지구의 다른 존재를 위해 이로울 것이니 내 죽음은 여기서 끝인 게 아니라는, 아주 고대 그리스적이고 원초적이고 단순한, 데모크리토스스러운 유물론이 도달한다. 참으로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어쩌면 그래서, 그 모진 세월에도 잘 버텼던 프리모 레비가 명성도 얻고 평온도 얻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도 모른다. 내 삶과 죽음의 무게는,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하되, 결코 죽음이 두려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것. 나는 그들 중 하나(one of them)일 뿐이고 죽으나 소멸하지 않고 이 세상/이 우주 어딘가에 남는다는 것. 몸을 바꿔 달리 태어난다는 것(프리모 레비에 의하면 변화는 생명의 속성, 그러므로 죽은 후에도 나는 또다른 생명인 것이다)에 도달하여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유태인 학살, 세월호, 4.3, 광주...

모든 비극은 마주 대하기 끔찍하면서도 곱씹어야 할 이유가 있다. 돌아서 달콤하고 평안한 이야기만 즐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어쩌면 인류의 원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프리모 레비를 거듭 말했나 보다. 그리고 철학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중3 제자에게 이 책을 권해 보았다. 네가 원하는 문학과 과학, 철학이 만나는 접점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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