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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평점 :
바디 –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은 도대체 오지랖이 어디까지일까? 단지 글을 재미있게 쓴다는 이유로 이 사람이 쓴 의학(?) 관련 책을 집어든다? 반쯤은 그런 호기심으로 이 책을 선택해 보았다. 각종 여행기라면 저널리스트가 쓰고도 남겠지만 의학, 과학 등은 전공자가 아닌데 단지 취재만을 해서 쓸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의구심은 모두 사라졌다. 제목 그대로 우리 몸에 관한 모든 지식을 망라한 듯한, 그의 취재력과 탐구력에 경의를 표한다.
몸에 관한 상식과 생활에 유용한 의학 지식이 빼곡하다. 무엇보다 딱 일반인의 눈높이로 지식을 전할 뿐 아니라 빌 브라이슨 특유의 문체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이 두꺼운 게 문제일 뿐.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행해진 인체 실험과 그 사후 조처에 관한 것이다. 같은 전범국가이지만 독일이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고 사과하고, 교육을 통해 재발하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는 반면 일본이 자신의 잘못을 뭉개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두 나라의 문화나 의식, 태도의 차이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잘못도 있다.
전후 많은 독일인들은 붙잡혀서 전쟁 범죄로 재판을 받았지만 일본인들 중에는 처벌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승전국인 미국에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면을 받았다. 731부대를 창설하고 운영한 의사인 이시이 시로는 많은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민간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미국과 일본은 연합국과 전범국, 승자와 패자, 점령국과 피점령국의 관계였음에도 굉장히 이상한 관계다. 비유하자면 인질범과 인질 사이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묘하게 유대관계 같은 게 형성된 것 같은 상황이랄까. 물론 그냥 인간적으로 끌려서 그런 것일 리 없다. 일본이 보통의 패전국처럼 증오로 적국 미국을 맞이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이해 타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여기에 미국의 이해가 만나 둘은 적대적인 관계에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737 부대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응징하기는커녕 그들의 생체 실험 성과물을 공유하는 것으로써 일본에 면죄부를 준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이 저토록 뻔뻔스럽게 구는 것에는 미국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미국은 비열한 강자의 전형을 보이며 한때는 자기가 잔인하게 가격했던 자에게 2인자의 자리를 내주는 비뚤어진 리더십을 보인다.
그런 태도도 납득이 안 되지만 더 놀라운 건 일본이다. 원자폭탄으로 두 개의 도시를 초토화한 점령국 미국을 최애 동맹국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니.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인 우리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균형적 태도가 필요하지만 강자들끼리 놀아나는 꼴을 참아주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피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혜로운 정부가 필요하며 우리 스스로가 지혜로운 국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재미있게 읽은 의과학 상식 책에서도 담론은 정치 사회적으로 나아가게 되는구나.
책 속에서 얻은 생활에 꼭 필요한 유용한 지식들을 정리해 본다.
- 생활비타민 D는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뼈와 이를 튼튼하게 하고 면역력 증진, 암과의 싸움을 돕고 심장을 튼튼하게 한다. 전 세계인 중 50퍼센트는 비타민 D 결핍상태란다.
- 데시벨은 로그 단위로 산술적 증가가 아니라 자릿수의 증가를 의미한다. 즉 10데시벨인 두 소리의 합은 20데시벨이 아니라 13데시벨. 96데시벨은 90데시벨보다 약간이 아닌 두 배 시끄러운 것이다.
- 아직 인공혈액은 만들지 못했고 연골은 자체 치료도 보충도 할 수 없다.
- 체온 1도가 오르면 바이러스 증식 속도가 200배 느려진다. 염증은 본질적으로 몸이 손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면서 생기는 것. 침입자와 마주치면 백혈구는 사이토카인이라는 공격용 화학물질을 분비한다. 몸이 감염에 맞서 싸울 때 열이 나고 아픈 느낌이 나는 것은 바로 이 물질 때문이다. 면역계가 모든 방어 수단을 총동원하여 마구 날뛰는 것이 사이토카인 폭풍이다.
- 아낙필락시스는 항생제, 식품, 라텍스, 곤충 등등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기도를 막는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이다(백신 부작용)
- 항생제 남용과 그로 인한 장내 미생물 고갈로 점점 자가면역 질환에 취약해질 수 있다. 여성이 자가면역 질환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
- 비타민은 우리 몸이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성분이지만 우리 스스로는 만들 수 없는 잡다한 13가지 화학물질이다.
- 저밀도 지방 단백질은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부르는 것. 콜레스테롤 관리는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섬유질은 몸이 완전히 분해할 수 없고 열량도 전혀 없고 비타민도 전혀 들어 있지 않지만 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어 준다.
-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위험할 수 있다. 몸은 수분 균형을 잘 관리하지만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콩팥이 물을 빨리 제거할 수 없게 되고 혈액의 나트륨 농도가 위험할 만큼 희석돼 저나트륨혈증이 올 수도 있다.
- 하인즈 케첩의 1/4은 설탕이다. 코카콜라보다 설탕 함량이 많다.
- 요즘의 과일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당분이 많아지도록 선택적으로 진화되었단다. 반면 과거의 과일보다 철분, 칼슘, 비타민 A등은 더 적다. 현대농업은 질은 낮고 수확률이 높으며 생장을 촉진하는 쪽으로 과일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 몸은 소금을 만들지 못하므로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적으면 무기력해지고 많으면 혈압이 치솟고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 나트륨은 건강을 위협한다.
사춘기 자녀를 둔 이들에게 유용한 아이들에 관한 의학 지식들도 있다.
- 뇌는 완전히 형성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10대 청소년 뇌 회로는 약 80%만 완성된 상태이고 쾌락과 관련이 있는 앞뇌 측좌핵은 10대 때 최대 크기로 자란다. 이 시기에는 도파민을 많이 생산한다. 그래서 10대 때 감정이 격렬한 것이란다.
- 사춘기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영양 상태가 좋아져서 그런 듯하다.
- 아데노신이 쌓이면 졸린다. 십대 청소년은 호르몬 때문에 아침 잠이 많다. 저자는 그래서 학교가 등교 시간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고교 86%가 우리나라 고등학교처럼 아침 8시 반 전에 시작한다는데 이걸 9시 등교로 돌린 건 참 잘한 일이었던 거다. 최근 보수 교육감들이 다시 이전처럼 등교 시간 자율로 정책을 바꾸려 하고 있다. 옆의 고등학교는 아침 7시 40분이면 모든 학생이 등교하는데 볼 때마다 아이들 수면 시간을 보장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