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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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료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박노자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줄지를 많이 고민했다. 전에 나는 그에게서 문화적 소양이 깊은 평화주의자의 냄새를 맡았고 치우치지 않는 사회주의의 냄새도 맡았었다. 동료는 그를 아나키스트라 생각한다. 책의 진도가 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그렇다고 했다.

유명한 사람들이 자기를 '...주의자'라고 스스로 일컫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왜 이 나이가 되도록 당당히 무슨 주의자임을 말하지 못할까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규정은 필요에 따라 지을 수도 있고 무의미한 자기과시이며 자기규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인간의 복잡하고 아름다운 영혼은 사회과학적 규정으로는 일 부분에 대해서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그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되거나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노자를 '무슨주의자'로 부르며 공감하는 것은, 또 그에게 그토록 많은 '주의자'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비록 그것이 부정확한 것일지라도 그만큼 우리에게 냉철하면서도 가슴 뜨겁고 지적 오만이 아닌 인간 보편에 대한 애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학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그만큼 그의 사고의 범위와 영역이 복잡 방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으로 나는 전혀 이름을 들어볼 기회가 없던 많은 아웃사이더들을 만났다. 또 남의 나라 역사의 구석을 살펴보는 일은 참으로 아프지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덜 편견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려면 그런 아픔도 감수해야 하는 일임을 다시 깨달았다.

그는 복잡한 여러 나라, 여러 사회들의 역사를 통해 제국의 오만과 곳곳에 스민 역사의 인과관계들을 바라보게 했지만 나는 한편으로 이것이 사회과학적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 본질'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제국의 역사를 가진 나라나 우리처럼 피지배자 역으로 긴 역사를 살아온 나라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안고 있는 인간의 잔혹한 지배의 본성. 과연 우린 제국의 지배역사에 너희들의 도덕성을 보라, 라고 큰 소리칠 수 있을지, 우리 안의 제국의 얼굴, 우리 안에 있는 더 잔인한 지배의 속성에 대해서는 어찌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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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이순원 지음 / 세계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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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읽을 생각이 없었던 책이지만 얼마 전 지독한 사춘기 방황으로 끝내 내게 반항하다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우리반 한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펼치게 되었다. 반항의 역사를 담았다 하기에 그 아이가 읽으면서 공감을 할까 어떨까 하고... 책이 맘에 꼭 들면 그 아이에게 선물을 하리라 하고...

우리 반 그 아이가 어른들과 학교에 그토록 격렬하게 반항을 하는 주된 고리는 '두발'문제이고 요모조모를 따져보면 노는 걸 매우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 공부도 곧잘 하고 특별한 원인이 없다. 타고난 기질일지 어떨 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 아이 속에 뭔가가 부글거리고 있고 특히 어른들이 '꼽기' 그지 없어서 조금만 '건드려주면' 기냥 폭발한다는 것이다. 기골이 장대한 그 녀석 아버지도, 현명한 그 어머니도 어쩌지 못할 만큼. 그런, 자기도  알 수 없는 반항의 정체에 공감할 친구가 될 만 할까 했더니...

이 소설 속의 주인공(아마도 이순원씨 자신)은 분명 어린 나이에 일찍 후까시도 잡아보고 담배며 술, 여자, 자퇴와 가출의 온갖 일탈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유없거나 지향 없는 그런 '일반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나는 좀 실망했다. 소설 속의 나는 어쨌거나 뛰어난 머리와 맘만 먹으면 전교 1등도 할 수 있고 운이 좋아서든 어쨌든 원하는 대로 뛰쳐나가 농사를 지어 대성공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땅의 수많은 '반항아'들은 아무리 맘을 먹어도 전교 1등은 커녕 학교공부에서 낙오된 자가 대부분이고 집 나가 봐야 초장부터 엄청난 사회적 '탄압'에 멍들어야 할 뿐 아니라 운이 나쁘면 첫걸음부터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돌아오기 일쑤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책은, 거봐, 잘난 것들, 공부 잘하는 것들은 방황도 남다르네, 잘났어 정말, 이런 기분을 맛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책 속 주인공의 행보가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성에 대한 고민에서 참으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고(15년 남자 중학생들만 가르치다 보니), 공부 아니면 모든 꿈을 접어야 하는 청소년들의 좁은 행보는 1960년대나 2000년대나 많이 달라진 게 없어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또한 주인공은 방황을 해도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가닥을 잡아가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에게 사춘기라는 것이 그냥 한때 젊음을 다해 놀아볼 만한 어떤 시기는 아니라는 것도 생각하게 해 줄 것이다.

이 책을 그 아이에게 권하기로 하는 대신,  2학기에 이 책을 포함한 몇몇 성장소설들을 읽고 자전적 성장소설 쓰기를 할 생각이다. 작년에 한 번 '노래듣고 소설쓰기'를 하면서 탄력이 붙었으리라 믿고 졸업하기전 짤막한 소설 한 편을 쓰게 하리라 '나의 열 여섯에 바치는 성장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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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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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너무 좋았고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의 제목에 반해 읽었지만 두번째 책에서 고개를 갸웃했었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11분'을 샀을까... 신문에  난 전면광고를 보고 그 문장에 또다시 혹했던가, 상품권에 눈이 멀었던가... 주문을 하고 난 후에야 이 책이 '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엘료라면 실망시키지 않겠지, 쉽게 언급할 수 없는 '성'에 대하여, 흔히 말하듯이 그것이 성스런 사랑을 위해 밟아야 하는 수순이라거나 어찌할 수 없는 본연의 욕망이니 너무 죄의식에 사로잡힐 필요없이 자유로워야 네 영혼도 자유로우리라, 하는 식으로 나가지는 않을 듯하여 기대를 걸고 읽었다.

물론 그의 작품은 남달라 보이긴 했다. '창녀'란 이름과 상관없이 밤마다 일기장에 자신을 갈무리하는 진지한 마리아, 그녀에게는 막달라 마리아의 전격적인 개과천선도 없고 변화의 계기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의 내면의 빛과 힘으로 그 모든 것을 해낸다.

그러나  1년 동안 하루에 3명씩 숱한 남자를 상대하고도 영혼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던 지혜롭고 지적이며 영적인 스물 세살의 그녀는 성녀인가? 성에 관한 그 모든 것이 억압인 대한민국의 여자로 태어나서 스스로 겪지도 않고 저지르지도 않은 모든 성적 일탈과 사고에 대해서조차 상상의 스트레스를 감내하기 힘든 이 땅에서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산뜻하게, 딱 일년만, 돈만 많이 벌고, 남자를 상대하면서 제정신으로 게다가 그들에게 정신과적 심리상담까지 해주면서, 그리하여 정말 그녀가 원하는 만큼의 돈도 벌고 완벽한 남자를 만나서 완벽하게 사랑받고...

세 책에서 모두 서로의 영혼을 알아봐 주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지만 오로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껴진 것은 '베로니카' 뿐이었다. 무슨 설화에서처럼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와 성스런 영혼과 진정한 사랑 그 모두를 가지며 오로지 그 사랑의 걸림돌은 현실의 어떤 고난도 남들의 비난도 상황도 아닌 자기자신의 영적 고뇌 외에는 없는 그들, 그런 사랑이 세상 어디에 하나쯤 있을 수는 있다고 쳐도 공감할 수는 없으며 그들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리고,

뜬금없이 끝으로 가면 어? 이 책의 주제는 오르가슴 혹은 여성해방이었나? 싶은 주제로 방향을 튼다. 내가 이미 사춘기때 다 알아버린 지식들을 그녀는 그토록 숱한 남자를 대하면서도 얻지 못했던  진정한 오르가슴을 갑자기 느끼는 마리아는 여태 무지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랑 없이 섹스를 했기 때문인가. 여성이여,  자신의 오르가슴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돈'을 벌기 위해 자기 몸을 던진 그녀는 그토록 예찬받아도 되는 것인가...

코엘류를 그만 읽을까 싶다. 그리고 엄청난 광고전을 벌이고 있는 출판사에게, 문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과연 가슴에 손을 얹고 이 책이 그토록 문학적으로 아름답고 읽힐만 하기에 그토록 크게 광고를 하고 잇는지 묻고 싶다. 물론 정답은 '팔릴 만하기에'이겠지만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 광고에 혹해 이 책을 선택한 나도 바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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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 심리학
글렌 윌슨 지음, 김문환 옮김 / 연극과인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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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가 연출자도 배우도 아닌 바에는 어쩌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단지 애호가에 불과한 내가 이 책을 집어들었던가.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서, 무대에 선 배우들의 심정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었을 터이고 작품을 만들고 무대미술과 음악을 담당한 이들의 마음을 읽어서 좀더 깊이있게 작품을 음미하고 싶지 않았을까. 아니, 사람의 심리를 헤아리는 일의 그 신비한 능력을 조금이라도 어떻게라도 얻고 싶진 않았을까.

책  읽은 보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갈증처럼, 객석에 앉아 있고 싶은 욕구에 늘 시달리는데, 책을 읽으면서 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바그너의 작품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  어두운 객석에 혼자 앉은 기분을 느꼈으며 공연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열망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내가 아는 작품들이 별로 언급되지 않았기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오페라를 많이 예로 들고 서구의 오래된 영화를 많이 다루는데 차라리 예를 많이 들지 않을 바에는 좀더 분석적이기나 하던가...

아마도 연극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쯤 될 것 같은 이 책의 필요성에 비해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씌여진지 오래되었다는 점과 저자가 생각하는 '공연'의 한계가 넓지 않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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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지음 / 오래된미래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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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름답고 부유하고 유명한 배우였기에 감동이 더 컸다. 이렇게 힘들게 살지 않아도, 적당히 폼나게 인격 빛나게 살 수 있는 방법도 많았을 테니까. 그녀의 타고난 열정과 감수성과 순수함을 자꾸 아픈 땅으로 내몰고 자기 반성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참으로 지혜롭다. 자신의 유명세와 지위를 이용해서라도 한 아이라도 더 살리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단순명쾌한 지혜.

개인적으로, 앞뒤가 안 맞을 듯 보이는 삶에의 열정과 허무의 양면성에 공감과 매력을 느끼면서,  둘 다 현실의 것에서 거리가 먼 것들일 수도 있는데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아이들을 품에 안는 그 사람의 힘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전부터 '언젠가'라고 생각했던 것을 책 절반쯤 읽을 때 당장 실천에 옮겼다. 나는 당장 이 번 달에 '풀꽃 장학생'을 선정하여 장학금을 건넸다. '언젠가 내가 좀더 여유가 생기면 그 때 하리라' 하였던 일을 지금 당장. 나의 삶을 '당장' 바꾸어 놓은 두 번 째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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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2-1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을 보고 난후 초코릿도 안먹고 원래 걸치는걸 싫어해서 보석류에는 관심이 없지만 결혼한느 동생들에게 한마디씩합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정말 네게 필요한것이냐구요....아 그리고 너무 멋지세요..
풀꽃장학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