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오히려 그의 소설보다는 이 에세이가 재미있었다.

그의 문학성이 뛰어남에도 단지 나와 정서적으로 안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 그렇게 '고급하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만한'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소설에서 대체로 발견되는 (두세권 정도밖에 안 읽어서 그런 걸까)  냉소적이고 오만한 면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난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인간성과 가치관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작품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특별히 마음에 들거나 그 반대일 경우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소설에서 얼비쳐보이던 무라카미는 이 여행기에서 좀더 잘 드러난다. 역시 내가 생각한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회성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자기세계가 견고하고 침해받지 않고 싶어하며 어딘가 냉소적인...

뿌리없이 돌아다니는 삶이 아무리 잠깐일지라도 얼마나 허무한지를 잘 안다. 그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여행을 했는지, 단지 낭만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닌 어떤 정신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그 기간 그에게는 써야할 소설들이 있었기에 단순한 유랑이 아닌 치열한 삶이 되었겠지. 물론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행적, 소설가의 정신세계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탈리아나 그리스나 내가 좋아하거나 가보고 싶은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영국이나 독일보다도 이탈리아에 갔을 때 어쩐지 살아있는 느낌 같은 것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 활기는 한국과 많이 닮았다고들 하는데 물론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썩 좋지 못한 모습들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애정을 느끼듯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일본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못견뎌할 것도 같다. (무라카미의 책이 이탈리아에서 출판되지는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스의 하얀 집들이 산등성이에 그림처럼 놓여 있는 장면을 참 좋아한다. 한 집의 지붕은 그 윗집의 마당이 되는, 굳이 흰색을 집집마다 칠해두는 그 동네를 가 보고 싶다. 내내 나를 약오르게 했던 음식 이야기도 많이 끌린다. 맛있는 야채샐러드에 술(그는 포도주를 즐겼지만). 그리고 저녁들.

물론 나는 단순한 낭만과 유랑의 여행을 떠날 수는 없다. 그리스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몇 년 후 아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가기 전에 보나마나 둘이 머리를 맞대고 많은 공부를 할 것이고 바닷가 카페나 뒷골목보다도 유적지와 박물관을 찾겠지. 그리고 지난 번 여행들처럼 나중에 다시 와야지, 라고 생각을 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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