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하자 내 친구는 그림책
쓰쓰이요리코 / 한림출판사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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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내가 살던 집 뒤에 야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제비꽃이 많이 피었었다. 작은 요구르트 병에 가득 제비꽃을 꺾어 담아 마음 깊이 좋아하던 남자아이의 집에 찾아갔었다. 이사 온 아이와 사귀고 싶은 마음을 민들레와 제비꽃으로 수줍게 전하는 아이들의 조금 수줍고 호기심과 열망에 가득한 까만 눈동자는 내 딸의 것과 똑같다. 나도 그런 눈동자를 가졌을 것이다.

그림 속의 풍경은 이웃 나라의 것이지만 어쩐지 내가 어렸을 때 가 보았던 어느 읍의 모습 같기도 하다. 아파트나 높은 건물은 없다. 작은 규모의 이런저런 가게들이 한 줄로 이어진 중앙통에 늘어서 있고 멀리 산이 보인다. 그런 동네에서 살고 싶다. 저녁 무렵, 나의 다섯 살 난 딸 아이 손을 잡고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며 찬거리를 사고 아이가 갖고 싶은 작은 소꿉 셋트를 사고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 오고 싶다. 그림책을 읽어서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산을 향해 난 창문을 열고 혼자 술을 마시고 싶다...

아이의 그림책을 보면서 주제넘게 나의 공상에 빠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의 그림책을 좋아하고 거기에 푹 빠져서 읽는다. 그것도 여러 번을. 이제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책 속의 마을 풍경을 거꾸로 내 아이들은 마음 속에 담아 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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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둥지를 이고 다니는 사자 임금님 내 친구는 그림책
기시다 에리코 글, 나카타니 치요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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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 의도나 상징을 다 읽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권력을 가졌던 사자도 늙어 외롭게 되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나누며 따뜻하게 사는 것이라는 진리, 그러니까 너희도 사이좋게 나누며 살라, 는 교훈을 주려고 생각한다면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망정 이 그림책이 주는 향기를 오래오래 음미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한 주제와 의도를 담고 이야기를 썼을지라도 그림이 워낙 탁월해서인지 주제가 훈교조를 띠지 않는다. 그림 속의 사자는 정말 외로움이 뭔지를 알고 있는 듯 하다. 두 페이지에 걸쳐 커다란 나무 밑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사자의 그림이 있다. 나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면, 사자가 왕관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그 그림이 그렇게까지 적요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이 그림이 너무 좋아 축소복사를 해서 학급문집 만들 때 컷으로 쓰곤 했을 정도다.

사자는 단지 말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말하자면 자선이나 위안거리로서) 새들에게 자신의 왕관을 내준것은 아닌 것 같다(이것이 서양의 이야기와는 다른 점인 듯하다). 그렇다고 그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도 아닌 듯하다. 어쩌면 그 사자는 너무 늙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슬픈 장면이 기다리고 있을까봐 두려워지기까지 하다. 사자의 표정만큼 어딘가에 마음을 매어두지 않은 허허로움의 여운이 더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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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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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페이지를 펼쳐 보시라. 지금도 동해안을 따라 국도를 타면 바다를 면하고 있는 작은 학교들을 볼 수 있다. 혹은 지금은 바다에 묻혀 버린 작은 초등학교의 전설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으리라. 운동장에 서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학교의 선생이 되어, 아니, 아이가 되어 거기 바다가 있는 줄도 모른 채 놀고 뛰고 공부하는 꿈, 아직도 이룰 수 있는 꿈...

52페이지. 다비드 그로스만은 커다란 책이랄지, 책을 닮은 가방이랄지, 누추한 혹은 한 보따리만큼의 그의 인생이랄지를 오른 손에 들고 길 위에 서 있는 한 젊은이의 그림을 놓고 '같은 장소에서 두 밤을 지내는 적은 결코 없는' 한 남자 이야기를 써 나간다. 그 말없음, 그 흔적없음, 그 욕심없음에서 도(道)가 느껴진다. 아직도 이룰 수 있는 꿈...

117페이지. 책을 가득 실은 거룻배를 저어 한 사람이 바다를 향해 간다. 그 그림자로 보아 저녁인 듯도 하고 해 뜰 무렵인 듯도 하다. 새벽 바다와 초저녁 바다는 닮았다. 파도가 잦아들고 일순 멈춘 듯, 푸른빛을 잠시 가시고 은회색이 된다. 새벽이든 어스름이든 어디론가 간다는 것, 위태하기 짝이 없는 책들을 싣고서. 그러나 그 사람의 뒷모습은 평안해 보인다.

몸에 병이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차라리 팔 하나가 없는 편이 낫겠다 싶을 만큼 절망했다는 어떤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활자 중독증처럼, 삶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책과 글에서 찾아, 읽고 쓰는 일로 업을 삼고 취미를 삼고 인생으로 삼은 이들에게 책은 환상이요 꿈이요, 꿈 속에조차 동반하고픈 벗이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읽을 수 없는 날이 오리라. 그 절망을 상상하는 끝에, 감은 눈 끝에 책을 실어나르는 배의 노 젓는 나의 모습이 천천히 바다 끝 어디론가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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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 230 삽화와 해설
가시마 시게루 지음, 박노인 옮김 / 신한미디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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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혹은 그 곳에 갔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태피스트리의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혹은 알게 더 빛나게도 되었을까.
영국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았다.

물론 어렸을 때 <장 발장>이란 제목으로이긴 하지만 이미 레 미제라블을 읽었다. 내가 그 책에서 받은 충격은 가난했던 장 발장이 단지 빵 반 쪽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것, 인생이란 게 그렇게 허무맹랑할 수는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오로지 노력으로도 자신의 인생은 물론 세계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어린 도덕주의자에게 이 소설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는 오해와 혐오를 심어주었다.

그러니까 그 때 나는 신(神)이라거니 자애(慈愛), 양심이라거니, 혹은 사회의 모순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저항하는 이 소설의 다른 주제가 다가오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그 때 읽었던 '레 미제라블'도 아닌 '장 발장'을 엮은이의 오역과 작품에 대한 몰이해가 어린이들을 무책임하게 이끈 죄가 클 수도 있지만 나 아닌 많은 사람들도 이 작품의 줄거리를 그저 빵 반쪽 때문에 19년을 복역하고도 오래도록 쫒겨야 했던 한 착한 사나이와 비정한 경찰의 이야기라고만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뮤지컬로 만난 레 미제라블은 책 속에서나 만났던 19세기 프랑스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는 있었다고 해도 장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베르의 인간적 고뇌를 깊이 이해하게 해주었고 또한 1832년 6월의 바리케이트의 격동을 실감나게 만나게 했다. 역시 어린 날 보았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뛰쳐나온 듯한 프랑스의 젊은 지식인들이 바리케이드 높이 올라가 총을 들고 외치고 피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20대 때 우리가 많이 불렀을 법한 곡조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들었다.

어쩌면 내가 보았던 여러 판본의 레 미제라블이나 장발장에서 누군가 교묘히 저 장면을 시시하게 처리해 버리지나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만큼. 어쩌면 우리의 광주를, 어쩌면 80년대 봄부터 가을까지 대한민국 대학 캠퍼스 어디선가 있었을 법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비분강개, 공조, 의협심, 배신, 두려움, 갈등, 격정이 거기 있더라. 그리고는 그 다음날 파리에 갔다. 파리는 아름다웠지만 이상하게도 전 날 본 뮤지컬의 무대처럼 어두운 구석이 느껴졌다. 그것이 파리의 아름다움이기도 했을까.

돌아와 다시 레 미제라블을 읽기로 했지만 완역판을 찾아 쪽수가 많은 책들을 살피다가 그만 유그판 삽화가 들어 있는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이 책이 헌책방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것, 워낙 그림을, 특히 에스키스 류를 좋아하는 나를 사로잡는 그림들이 자그마치 180매나 된다는 것, 또 삽화에 들어있는 어린 코제트의 그림은 음산해서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강렬했던 바로 그 뮤지컬의 포스터였던 것 등등이 이유였다.

이 책의 미덕은 삽화들이 고스란히 내가 본 뮤지컬 무대의 톤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 말고도 글쓴이 가시마 시게루가 박학과 다식을 자랑하며 이 책과 빅토르 위고와 19세기 파리에 대해 아는 대로 입체적인 설명을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도대체 위고는 어떤 인간이기에 이런 소설을 썼는가를 알고 싶은 독자에게 마리우스는 바로 위고의 젊은 날의 모습임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친절, 마리우스를 업고 장 발장이 도망친 파리 하수구가 왜 미로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건축학적인 지식을 발휘하는 이 책을 보고 나면 이로써 레 미제라블에 대한 갈증이 풀렸다는 느낌보다는 다시 한 번, 완역판을 꼭 읽어보리라는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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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
김기찬 지음 / 중학당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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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가에서 건네주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가령 불가에서는 개가 사람으로 환생하기 직전 단계라고 말한단다. 그래서 동물들 중 가장 불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집이나 절에서 개를 키우면 귀신을 보거나 쫓는다고도 한다.

정말 그런지 어떤지는 몰라도 사람과 가장 가까이 사는 가축인 개에게서 '인격'과 닮은 어떤 '격'을 발견하는 일이 더러 있다. 예전에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서 무심한듯, 그러나 자기 세계에 깊이 빠져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노인네들에게서 발견되는 상념의 공동(空洞) 현상 비슷한 것을 보곤 했다. 그럴 때 개의 눈을 들여다 보며 마음 속으로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하고 물어보면 환각처럼 그 개의 전생 몇 겹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곤 했던가. 아니면 오래 전에 가신 친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하고. 가령 젊은 날처럼 술 마시고 늦은 귀가를 하시는 아버지의 새벽길에 기다렸다는 듯 주둥이로 뒷꿈치를 쿡쿡 치는 모습은 힘은 없어 크게 야단치지는 못하시되 마음으로 한껏 안타까이 늦게 귀가한 젊은 아들에게 푸념하시던 생전의 할머니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윤회를 믿는다. 착하게 살면 다른 생을 살 수 있으리란 믿음.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다. 과거로는 환생할 수 없는 것인지. 벌써 어린 시절이 그리운 나이가 되었나 보다. 특히나 툭툭 불거지는 네모난 보도블럭이 깔린 한옥집 골목들. 남의 집 담장 밑에 쭈그려 앉아 친구랑 수다를 떨면 어떤 '미는' 창문이 열리며 저리 가서 얘기해라, 지금 시험공부 한다, 던 어떤 자취생의 목소리가 있던, 시멘트 바른 마당이나마 너른 마당에 하숙이든 자취든 월세든 거기 사는 이들이 다 한 마당을 향해 문들을 놓은 집들. 허름한 산동네에 산던 친구네. 그 언덕받이로 내려오면 해질녁의 나를 배웅하고 내일 또 놀러오라던 어린 친구. 이상하게도 흑백의 시대였던 그때로 환생할 수는 없는지.

하지만 이 책을 들여다 보면서 가끔씩 그때로 돌아간다. 사는 사람들하고 꼭 닮은 어수룩하고 피곤한, 그러나 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개들, 차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돗자리를 펴고 담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숙제를 하는 아이들 가랑이 사이에서 졸고 있는 똥강아지. 비참이나 누추를 넘어선 마음의 너른 공간, 산동네서만 보이던 걸릴 것 없는 하늘이 이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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