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
김기찬 지음 / 중학당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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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불가에서 건네주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가령 불가에서는 개가 사람으로 환생하기 직전 단계라고 말한단다. 그래서 동물들 중 가장 불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집이나 절에서 개를 키우면 귀신을 보거나 쫓는다고도 한다.

정말 그런지 어떤지는 몰라도 사람과 가장 가까이 사는 가축인 개에게서 '인격'과 닮은 어떤 '격'을 발견하는 일이 더러 있다. 예전에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서 무심한듯, 그러나 자기 세계에 깊이 빠져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노인네들에게서 발견되는 상념의 공동(空洞) 현상 비슷한 것을 보곤 했다. 그럴 때 개의 눈을 들여다 보며 마음 속으로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하고 물어보면 환각처럼 그 개의 전생 몇 겹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곤 했던가. 아니면 오래 전에 가신 친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도 하고. 가령 젊은 날처럼 술 마시고 늦은 귀가를 하시는 아버지의 새벽길에 기다렸다는 듯 주둥이로 뒷꿈치를 쿡쿡 치는 모습은 힘은 없어 크게 야단치지는 못하시되 마음으로 한껏 안타까이 늦게 귀가한 젊은 아들에게 푸념하시던 생전의 할머니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윤회를 믿는다. 착하게 살면 다른 생을 살 수 있으리란 믿음.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다. 과거로는 환생할 수 없는 것인지. 벌써 어린 시절이 그리운 나이가 되었나 보다. 특히나 툭툭 불거지는 네모난 보도블럭이 깔린 한옥집 골목들. 남의 집 담장 밑에 쭈그려 앉아 친구랑 수다를 떨면 어떤 '미는' 창문이 열리며 저리 가서 얘기해라, 지금 시험공부 한다, 던 어떤 자취생의 목소리가 있던, 시멘트 바른 마당이나마 너른 마당에 하숙이든 자취든 월세든 거기 사는 이들이 다 한 마당을 향해 문들을 놓은 집들. 허름한 산동네에 산던 친구네. 그 언덕받이로 내려오면 해질녁의 나를 배웅하고 내일 또 놀러오라던 어린 친구. 이상하게도 흑백의 시대였던 그때로 환생할 수는 없는지.

하지만 이 책을 들여다 보면서 가끔씩 그때로 돌아간다. 사는 사람들하고 꼭 닮은 어수룩하고 피곤한, 그러나 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개들, 차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돗자리를 펴고 담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숙제를 하는 아이들 가랑이 사이에서 졸고 있는 똥강아지. 비참이나 누추를 넘어선 마음의 너른 공간, 산동네서만 보이던 걸릴 것 없는 하늘이 이 책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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