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의 옥중수고 1 - 정치편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 거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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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 이 멋진 말로, 그들이 채 읽지도 않은 그람시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용되었다. 뭐, 글을 읽지 않고 주변적인 이야기만으로 누군가를 아는 일, 흔하고, 그게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다. 대학시절 들은 그의 이름은 내 머리에서 잊혀졌지만 어느 날 우연히 저 말이 떠올랐다. ‘이성으로 비관하고(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왜 이 말이 떠올랐냐 하면, 지금, 답답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이 고스란히 학교 현장에 영향을 주고 결국 이대로 학교와 교육은 점점 피폐할 것이며 일개인으로서 교사들의 삶도 더욱 팍팍해질 것이라는, 스멀스멀 파고드는 비관론이 학교 교사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현상들은 고스란히 학교에서도 펼쳐진다. 이모, 오모와 같은 성장 중심주의, 경쟁지상주의 지도자들이 득세하자 똑같은 주장을 펼치는 학교 관리자들이 거기 편승해 득의양양하고 있다.

젊은 교사들의 절망이 깊어지고 있다. 때로 나는, 내가 이 척박한 교육현장을 20년이나 지나온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의 시대도 험난했지만 적어도 교장들이 비리를 저지를지언정 교묘히 자신의 죄과를 덮어두진 못했던 시대를 살았고 적어도 교무실 교장실에서, 정치권에서 핏대를 올리거나 탄압을 받았을지언정 아이들과는 정말 행복했고 학부모들과는 다정했던 그런 시대를 살았다. 앞으로 점점 학교가 황폐해진다 해도 내게 남은 시간은 10년쯤, 내가 정년을 다 채운다 할지라도 16년. 남은 시간이 더 짧다는 데에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저 젊은이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제 정말, 제대로 선생이 되어가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사랑하고, 잘 가르칠 수 있는 기술도 적절히 습득했고 상담도, 업무도 가장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된 30대의 멋진 교사들이 절망하는 모습은 어찌할 것인가.

그들이 비관론을 펼칠 때마다, 그리고 정말로 괜찮은 교사들이 학교를 못 견뎌서 떠나곤 할 때마다 나는 이 구절을 떠올렸다. 나는,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라는 말로 그들을 위로하였다. 나이든 나는 희망을, 젊은 그들은 절망을 이야기하는 현상은 무엇인가. 하긴, 돌이켜 보면 우리 20대 때 이성으로 조목조목 따져본 어떤 장면도 희망적이지 않았음에도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오기어린 희망의 의지를 펼쳤던 그 80년대도 그러하지 않았나. 이성은, 비관할 수밖에 없었으되 의지는 낙관으로 불탔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몸에 불을 지르던 젊은이들마저, 절망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희망을 던지기 위해 그러했다.

다시, 아니, 이제 그람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었다. 그의 책 속에, 낙관할 수 있는 어떤 근거들이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근거 없는 낙관론자가 아님을 보여줄 근거들.

마키아벨리에 대한 그람시의 해석이 일단 눈에 띈다. 한참 전에 군주론을 읽으면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도무지 이 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람시처럼 진보적인 사람에게 보수적일 뿐 아니라 뻔뻔스러울 정도로 지도자(지배자)의 논리에 충실한 충고를 하고 있는 마키아벨리가 어떻게 보일지. 하지만 의외로 그는 마키아벨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민중 또는 민족 곧 다대의 혁명적 계급들에게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아는 지도자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그 지도자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고자 했다.

마키아벨리즘은 보수적 지배집단들의 전통적인 정치기술을 개선하는 데에도 일조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마키아벨리즘의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성격이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한다. 군주시대에, 군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한 시대에, 군주의 정체와 탐욕에 대해, 쉽게 말하면 다 까발려 이야기함으로써(뻔뻔해 보이긴 하겠으나) 오히려 그들의 정체를 드러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마키아벨리가 그걸 까발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글을 썼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가 어떤 사적인 목적으로 썼든, 또한 그의 글이 뻔뻔한 군주들과 히틀러같은 독재자에게 어떻게 힘이 되었든지 간에 본질적으로 시대의 현상을 세세히 묘사함으로 반어법적으로 혁명적인 글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일 게다.

그람시가 마키아벨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런 점인 듯하다.

‘마키아벨리는 인간과 인간의 행동 동기에 대해서는 ‘비관적’(또는 현실적)이다,. 기차르디니는 비관적이 아니라 회의적이고 속좁다. 지성의 비관주의는 적극적 현실적인 정치가에게서 의지의 낙관주의와 결합될 수 있다.’

회의가 아닌 냉철한 비관,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지성적 대안, 거기서 나오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게다. 

재미있는 말이 있다. 카도르니즘. 권위주의적 지도자였던 카도르나의 이름에서 비롯한다. 자신이 지도하는 자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뜻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권위주의와 통치의 스킬을 충고하고 있다면 그 기술 안에는 이런 무지막지한 독재에 대한 경고도 들어있다. 말하자면 통치를 하되, 무식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어떤 독재자도, 궁극적으로 전권을 휘두르더라도 그 이전에는 피지배자의 말을 듣는 시늉을 한다. 그것과 잔혹한 통치를 랜덤으로 휘둘러 피지배자를 혼란스럽게 할지라도 말이다. 시종일관 귀를 막고 바보같은 지배를 실시하는 이들의 말로는 짧고 굵다. 나는 한동안 ‘카도르니즘’을 나의 사내 메신저 닉네임으로 썼다.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말은 우리에게 참 낯선 단어이거나 아주아주 그 반대로 우리 삶에 깊이 드리운 그림자이거나, 였을 듯하다.)

2장 국가와 시민사회에서도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하나의 계급을 대변하는 많은 서로 다른 정당들의 부대가 전체 계급의 요구를 더 잘 반영하고 더 잘 요약하는 단일한 정당의 한 깃발 아래로 결집한다면 - 유기적이고 정상적인 현상이다. ’

대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정권을 바꿔보겠노라고 야권단일화를 이야기한다. 이전에도 수많은 정당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있었다. 그걸 욕하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의론으로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서 정당을 바라본다면 그람시의 해석이 훨씬 현실적이고 정당하다. 제대로, 단일한 정당의 깃발 아래 결집하기를. 아니 정당의 이름으로 떳떳하게까지 아니더라도 단일한 세력화에 꼭 성공하기를.
 

‘투쟁이 법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때 그 투쟁은 분명 위험하지 않다. 그것이 위험해지는 것은 바로 법적인 균형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정되는 때이다.(물론 측정기를 폐기하면 나쁜 날씨도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수많은 법적인 논쟁에 놓은 사안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교조, 전공노의 민노당 후원금 사건, 한진중공업 사태 등. 이것은 불법(파업, 농성,)이므로 국가가 개입하겠다고 하는 무한한 사건들... 법은 있으되 제대로 집행되지 않거나 불합리한 법이거나 할 때 개개인이 선택할 방법은 투쟁밖에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물론 측정기를 폐기하면 나쁜 날씨도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도 재미있다. 간혹 정치인들은 착각한다. 측정기를 폐기함으로써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렸다는 어리석은 착각을. 착각하지 말라. 착각은 곧, 끝난다.

‘강력한 열정은 지성을 날카롭게 하는 데 필요하며 직관을 더욱 예리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말도 멋지지 않은가. 열정과 지성의 관계, 그 균형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어느 한쪽이 과하거나 넘칠 때의 부작용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위의 말은 어슷비슷해 보이는 또 다른 정열을 열정이라고 착각하란 뜻이 아니다. ‘저급하고 조급한 욕구와 정열은, 그것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분석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 또 그러한 행위가 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의식적인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오류의 원천이다. ‘선동가가 자기자신의 선동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조급한 욕구와 정열은 집착이 되기도 한다. 물론 당사자는 자신이 정의의 사도이면서 열정도 지닌 멋진 인간으로 이 한 몸 역사에 희생시킨다고 착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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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고 스페인 포르투갈 (2010~2011) - 자유여행자를 위한 map&photo 가이드북 (책+휴대지도+미니북) 저스트 고 Just go 해외편 19
시공사 편집부 엮음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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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재충전이란 말, 이렇게 실감난 일이 없었다. 여태까지의 여행은 준비가 즐겁다지만 지나치면 짐이 되고, 돌아온 후 뒷처리도 여독을 더 오래가게 했었다. 기록을 남기고 자료들을 보관하고 사진을 정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과제로 남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7월에 다녀온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여행 중 가장 완벽하고 깔끔하게 피로를 풀고 나를 재충전해준 여행이었다.  

 에어텔로 네 식구가 

7월 18일, 방학하자마자 에어텔 자유여행으로 남편과 나, 대학에 갓 들어간 아들, 중3 딸 이렇게 넷이 열흘 여행길에 올랐다. 자유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남편과 둘이 동경 4박5일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던 이전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은 문화도 많이 다르고 치안도 안전하지만은 않은 나라로, 그것도 도시간 이동이 잦은 여행이다. 다 큰 아이들이긴 하지만 애 둘도 데리고 가니 사실 걱정도 많았다. 시원찮은 영어는 그나마 통하지도 않는다 하지,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고 도시를 이동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게다가 여행이란 게 준비가 반이고 그 준비 과정의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 남편은 무리해서 열흘을 비워야 하는 직장의 자리 때문에 여행 전 미친 듯이 일만 했다. 가끔 애들 데리고 가는데 패키지 가는 게 낫지 않았으려나, 걱정만 할 뿐.  

여행사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런 걱정을 늘어놓으니 한 담당자가 코웃음을 웃으면서 "대학생 아드님 있다면서요. 여기 대학생들 배낭여행 많이 가요. 1학년요? 1학년때 젤 많이 가요'" 한다. 그래서 호기롭게 아들에게 "이번 여행은 네가 리더가 되어 보아라. 나중에 배낭여행 갈 연습한다 생각하고"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우렁차게 "네~"라고 대답만 할 뿐 내가 건네준 여행책자도 열심히 안 본다. 스페인어로 숫자라도 좀 외우라고 해도 대답만... 게다가 사춘기 딸램은 안간다는 아이를 겨우 "엄마, 거기도 유럽이니 음식이 좀 기대돼." 정도 수준으로 땡겨놓았을 뿐이었다. 여행기간보다 긴 약 한 달 간의 시간 동안 혼자 스페인어 공부하고 지도 보고 동선 짜고 예산 짜고 그랬다. 

김치는 안 데리고 간 공항 

떠나는 날, 공항버스 정거장까지 그리 멀진 않아 여름 새벽 햇살 속에 캐리어를 끌고 나가리라 했는데 남편이 전날 갑자기 차를 가지고 가잔다. 열흘간 주차비가 만만찮을 텐데? 했더니 네 명이 공항버스를 타고 가고 오면 대략 만원씩 네명 왕복 약 8만원 정도인데 비해 주차비는 하루 1만원에 4일 후부터는 50% 할인, 6만원 정도다. 공항버스비보다 싸다. 이동 구간에 택시를 타고 짐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수고도 접을 수 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어제 새벽에 공항 가는 길을 뒤늦게 검색해 보았는지 30분 더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서두른다. 한 시간이면 갈 줄 알았는데 67km나 된다고.  

공항에서 하나투어 담당자를 만나 비행기 티켓과 호텔 바우처, 유레일 패스를 받아야 한다. 가이드가 없는 자유여행이라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여행사 코너의 직원은 스페인 여행 담당자도 아니었고 그저 그것들을 전해주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지금부터 우린 알아서 잘, 비행기 타고 또 갈아타야 하는 것이다. 처음도 아닌데 뭘 먼저 해야 하는지 남편과 서로 덤앤더머 표정을 지으며 마주 보다가 짐을 부치러 갔다. 항공도 예약상황 출력물만 있지 티켓은 가서 받으란다. 원래 우리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에어프랑스를 타고 파리에서 갈아타는 것이었지만 일정 조정하는 과정에서 핀에어 항공을 이용하게 되었다. 유류 택스가 오히려 싸서 10여 만원씩 절약 효과가 생겼고 공항에 머무는 것이긴 해도 헬싱키를 거쳐 간다. 핀에어가 깔끔하다는 동생의 귀띔도 있었다. 짐을 부치러 가니 거기서 비행기 표를 주는데 여태껏 본 비행기표랑 많이 다르게 생겼다. 전엔 보딩 패스를 따로 주지 않았나? 이게 티켓 맞냐? 그냥 보딩 패스냐? 티켓에 왜 써 있는 글씨가 별로 없고 단순하냐 등등 혼자 중얼거리니까 티켓 맞겠지, 하고 김씨 세 명이 나의 노파심을 답답해 한다. 하지만 나는, '물어본다고 손해볼 것 없다 정신'(여행 내내 이 정신으로 다녔음)으로 다시 한 번 창구에 가서 이게 티켓 맞냐고 띨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항공사 직원은 아마도 이런 띠리한 줌마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하긴 아줌마아저씨들은 대개 패키지로 가니 가이드가 알아서 하긴 했겠구나) 그래서 친절하게 거기 써 있는대로 보딩 타임에 맞춰 들어가면 된단다. 그렇게 나는 출발 시간도 안 적히고 그냥 보딩 타임만 적혀 있는 비행기 표를 들고 갸우뚱거리면서 비행기를 탔다.

 5년 전, 터키 갈 때 대한항공에서 먹은 비빔밥과 또 다른 기내식이 다 맛있었던지라 먹는 거 좋아하는 딸아이가 "엄마, 기내식이 기대돼.'라고 말한다.(얘는 주로 먹는 게 기대되는 아이다.ㅋ) 하지만 이건 대한항공도 아시아나도 아니었다. 닭고기와 소고기 중 선택해서 먹는 식사도 양식이었고 두번째로 나온 샌드위치도 뭐 그랬다. 내려서 호텔 가면 가져간 라면을 먹자는 의견을 펼치는 중 갑자기 뒤통수가 띵하다. 그렇다~! 김치! 작은 낱개포장으로 열개나! 2만원어치나 사둔 **집 맛김치! 미리 싸두면 시어질까봐 아침에 넣는다고 김치냉장고에 둔 그 김치! 공항이 생각보다 멀다고 30분 더 일찍 나가야 한다는 남편 덕에 허둥허둥 나오느라(뭐 그렇게 안 나왔으면 챙겼으리란 보장도 없지 뭐) 냅두고 온 김치! 김치 없어 열흘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식구들에게 선언했을 때 그들은 뭐, 맛있는 거 많이 사먹으면 되지, 이런 너그러운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호텔에서 라면을 끓여 세 젓가락을 먹을 때 쯤 아들이 "김치만 있으면 환상인데.." 게다가 마침 그 직전 유럽 야채 노로 바이러스 사망 뉴스가 한참 돌았던 때였다. 그것도 스페인 유기농 오이..(나중엔 아니라고 했다지만) 10년 전, 남편과 유럽 여행을 할 때는 동네 수퍼에서 양상추를 사다가 고추장에 찍어먹으면서 유럽의 야채 없고 국물 없는 식사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마구 씹어주었었는데 이젠 야채도 먹기 그렇고 앞으로 열흘을 우린 뭘 씹고 사냐고! 사실은 학교에서도 중요한 사진을 어디 두었는지 못 찾은 채 방학을 맞아 울기가 깔린 상태에서 나는 그날 밤 일기에 나의 떨어진 총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갱년기가 다가오는 건지, 술을 좀 줄여야 하는 건 아닌지, 구구절절 적으며 자기 반성에 빠졌다. 

예약 다 해 준 호텔 들어가기도 힘들다니 

포르투갈 리스본 공항에서 시내 캄푸 페테누역에 있는 호텔 '홀리데이 인 콘티넬탈  리스본'까지는 아주 금방이었다. 초저녁 정취를 느끼며 바람부는 거리에 서서 호텔 바우처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길 감각이 안 살아난다. 남편이 거리에 있는 간이수퍼(우리 나라 정거장에 있는 작은 매점과 비슷하다. 단, 여기서는 간단한 토스트 같은 것도 판다.) 포르투갈은 영어가 잘 통한다더니 그 매점 아저씨도 유창한 영어로 왼쪽 오른쪽, 두 블럭, 한 블럭 하면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그러면 뭐하나, 우린 블럭들을 돌고 돌면서 자꾸 으슥한 데로 가고 있는 걸. 빨리 야경 구경하러 나와야 하는데,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펑키한 차림으로 담배 피는 10대들이 모여있고 경찰차 경광등 소리가 울려퍼지는 이 골목은 도대체 뭐냐... 그래서 다시 물어 찾아간 곳은! 아까 우리가 지나쳐 오면서, 이렇게 좋은 호텔은 아닐 거야(왜냐면 3성급 호텔이라고 되어 있어서 아이들에게 전에 터키 그리스 갔을 때처럼 좋은 호텔 아니니까 기대하지 말라, 우리나라 모텔 정도래, 이렇게 말해 두었기 때문에)라고 했던 으리으리한 호텔 아닌가! 무슨 이유인지 식구들을 5층, 7층 이렇게 떨궈놓은 게 괘씸했지만 카운터에서 이미 의사소통에 많은 고난을 겪은 관계로(그리고 방을 가까이 다시 배정해 달라, 이렇게 한국말로 해도 별로 먹히지 않을 의견을 피차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 카운터 직원이 영어를 잘 하긴 하지만 발음은 참 낯설었고 그에게 나의 영어도 그러하였을 터이므로- 말할 여력도 없었다. 여권 달라 해서 보여주는데 파르돈? 몇 번 하고 신용카드 맡기라 해서 남편이 왜? 우린 예약 다 하고 온 건데? 하고 발끈해서 설득하고... 여기 사인하라고 종이를 내미는데 그것도 헤매고 ... 그 직원 얼굴에 아, 이 '중국 사람들' 짜증나네 이런 표정이 살짝 보여서 얼른 엘리베이터로 도망갔다.  

 열라 사진 찍어대는 촌스러운 관광객들 

아, 그러고 보니 한 3일 리스본에 있는 동안 동양사람을 거의 못 보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가는 곳마다 눈길을 받아야 했고 나는 특히 니하오마, 이런 인사도 많이 받았다. 식구들 중 제일 작은 나는 졸지에 중국인 아줌마 취급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식구들마다 사진기를 손에 감고 다니는 모습이 우리나라에 관광 온 돈 많은 중국사람들이랑 비슷하다. 해외여행 귀할 때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대던 건 8,90년대의 일본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쯤 후 유럽에 넘쳐나는 일본인보다 더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렇게 사진을 찍어댔다. 요즘은 중국 사람들이 그러던데... 여행을 즐기기보다 많은 사진으로 남겨가려는 촌스러운 김패밀리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밤에 호텔 근처를 한바퀴 돌면서 아들은 유럽 너무 좋아! 여기서 살고 싶어!를 연발했다. 돌 건축물이 주는 깊은 분위기에 매료된 듯했다. 포르투갈은 밤에 좀 추울 수 있다는  내 말 안 듣고 아무도 긴 바지를 안 챙겨와서 산책 내내 춥다고들 난리였지만 분명 리스본의 첫인상은 상쾌하고 아름다웠다. 5층 방에서 내려다 보니 전통가옥 형태의 호텔 하나가 보인다. 저기서 묵었으면 더 좋았겠다고 아들이 아쉬워한다. 터키 여행 때는 민박 형태의 호텔에 많이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올리브 나무 듬성한 들판이 내다 보이는 회벽 기둥의 예쁜 호텔이 지금도 기억난다. 만약 배낭여행을 간다면 그런 숙소를 찾아 들어보고 싶다.  

여행사에서 호텔을 잘 잡아 준 것 같다. 여행사에 신신당부 하기를, 우린 밤 늦게까지 돌아다닐 거니까 시내에 동선이 좋고 안전한 곳에 숙소를 부탁한다, 했다. 전에 누가 스페인 패키지 여행을 좀 싼 곳으로 갔더니 호텔을 변두리에 잡아서 저녁만 먹으면 돌아다니지를 못했다고, 택시를 타야 나갈 수 있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행사 중 가장 유명한 곳을 알아보았는데 의외로 다른 여행사보다 10~20만원 쌌다.  호텔도 신신당부를 해서 그런지 세 곳 다 좋았다. 호텔이 동선도 중요하지만 낮에 힘들 때 잠시 들어와 쉴 수도 있으려면 시내에서 가까워야 한다. 여름의 유럽 여행은 덥고 힘들다. 서머타임 때문에 밤 10시까지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한낮에 아주 더울 땐 숙소에 들어와 점심도 한국식으로 잘 먹고 한숨 자고 오후에 나가는 식으로 체력을 조절하면서 다니면 오전과 오후 시간을 잘 즐길 수 있다.   

지하철 표 사는 데 30분 
햄, 베이컨, 과일 등의 호텔 조식을 보고 아이들이 좋아라 한다. 열흘 먹어봐라, 과연 좋을까..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많은 양의 식사를 즐겨 결국 접시 12개를 쌓고 말았다. 우리 집은 남편이 아침 당당을 하는데 늘 아름다운 밥상을 차린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침을 잘 먹고 저녁을 간단하게 먹곤 한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남들은 크로와상에 우유 한 잔 마시는 식사를 우리 애들은 무슨 뷔페 온 듯 먹는다. 그렇게 잘 자고 잘 먹고는 흐믓하게 첫 날 여행을 시작하느라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갔다. 가장 효용성 높은 여행서라고 해서 '저스트 고 스페인 포르투갈' 을 사서 무슨 수능 공부하듯 여러 번 읽고 우리 여행지인 세 도시별로 책자를 쪼개서 들고 다녔는데, 여기 포르투갈 편에 보면 '리스보아 카드'와 '7콜리나스'라는 지하철 표가 유용하다고 되어 있다. 리스보아 카드가 유용할 것 같아서 그걸 사려고  우선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고, 겨우 찾아서  그 카드를 물으니 없다 하고, 이러기를 30분, 결국 포기하고 '7콜리나스'를 사서 하루 종일 모든 교통을 이용하여 여기저기 다니자고 지하철 역으로 들어와 무인판매기에서 표를 사려 하니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 분명 화면에는 그 표 그림이 있는데 클릭이 안 된다. 겨우 영어 설명을 찾아내 다시 시작. 그건 클릭도 안 되는데 그 옆에 1일권이라고 써 있는 초록색 표(VIVA)를 보고 이거냐 저거냐 우리끼리 갑론을박하다가 그걸 샀다. 4유로 쯤 됐던가. 버스 전철 등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보면 통합권이 맞긴 한 것 같다. 여기까지, 표를 사는 데만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아마도 그 '세븐 콜리나스'라는 표는 올해 들어 없어진 것 같다. 그 책 뭐 잘못된 거 아니냐고 남편이 또 투덜거린다. 

그리고 여기도 교통 혹은 관광 회사 여럿이 여러가지 표를 판매하며 운행하는지 우리가 산 초록색 표를 가지고 트램을 타려고 했을 때(트램도 여러가지 모양 여러가지 색깔이 있었는데) 그 표를 보여주며 타려고 하니까 뒤에 것을 타라는 둥 안 된다는 둥 말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 포르투갈 가서 트램을 못 타고 온 우리 가족... 모든 책임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웠던 막내는 잘좀 알아보고 오지 시간 낭비한다고 계속 잔소리다. 오전에 겨우 로시우 광장 가서 놀고 결국 코멜리우스 광장까지 걸어가 바다를 보고는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아무 데나'들어갔다. 거기서 어죽처럼 생긴 생선+밥도 먹고 대구구이도 먹었다. 대체로 포르투갈은 음식이 다 맛있었던 것 같다. 맥주가 맛이 진하고 좋아서 사가고 싶었던 기억... 하지만 다들 힘들어 해서 호텔 가서 좀 쉬었다 나오기로 했는데 눈을 못 뜨고 다들 미친듯 잤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시차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고 8시가 다 되어서 나오다니! 트램 타고 알파마 지구를 가려다 못가서 저녁 때 거기 가자고 나왔는데 아들이 카운터에 가서 지도와 더불어 트램 28번을 어디서 타는지 알아왔지만 안내해준 정거장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걸어서 다음 지하철 역까지 갔다가 지하철 타고 외곽으로 나갔다가 거기 역무원으로부터 여기 아니고 로시우역으로 가란 말이다~! 이런 친절한 안내를 들어야 했다. 그 말에 수긍할 수 없다고 착각의 신에 빙의된 내가 지도를 보고 자꾸 북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결국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어디론가 갔다. 오밤중에 내려서 보니 거긴 제일 북쪽 끝 오리엔테 근처다.  

책아, 이넘아!  

책아! 트램 28번은 도대체 어디서 타는 거니? 그런 안내도 없고 뭘 트램을 꼭 타라는 거냐구! 하긴 책보다는 인터넷 블로그 같은 데 올라온 여행기가 더 따끈따끈하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결국 그 담날 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트램을 타지 말고 로시우 역에서 조금만 걸어갔으면 알파마 지구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스본은 서울처럼 큰 도시가 아니다. 왜 그리 트램에 목을 맸냐! 걸어가다 트램이 나오면 타도 되는 것을. 꼭 타고 싶었으면 아무 거나 타도 되는 것을! 리스본 가서 트램도 못타고 파두도 못 듣고 온 김씨 가족! 하지만 대신 '아무 버스'나 타고 북쪽 끝까지 가서 오레엔테 역 광장에서 뛰어다니며 놀았다. 와~! 리스보아 카드 안 사길 정말 잘했다. 우리가 책자에 나와있는 관광지 간 곳은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를 탄 게 전부다. 알차게 보낸 하루는 아니었다. 

신트라 동화나라 

둘쨋날, 우린 오늘 밤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로 가야 하 기 때문에 일단 체크 아웃 하고 짐을 다 끌고 산타 아폴로니아 역으로 갔다. 코인 로커에 짐을 넣어야 하는데 독해하는 데도 오래 걸렸다. 동전 구한다고 나간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옆에 편의점 있는데 거기서 물 사고 동전 만들면 되는데 아빤 아마 동전교환기를 찾아 매표소에 간 듯 하다고 답답해 한다. 아무튼 짐은 라커에 어찌어찌 넣고 우리는 신트라에 가기 위해 로시우역으로 갔다. 하지만 지하철 역 로시우가 아니라 철도역을 찾느라 또 헤맸다. 우리 길잡이 아들 김씨가 여기저기 묻고 '나를 따르라'를 했지만 결국 경찰에게 물어본 아빠 김씨 말이 맞았다. 여긴 왜 이렇게 이정표가 없는 거냐. 어제 백화점인가 했던 건물이 역사였다. 기차 타고 한 시간, 가는 동안도 쾌적했고 내려서도 날이 정말 맑았다. 신트라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냥 내리 걷기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페나 성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닌 듯했다. 역시 아들이 출동해서 인포메이션 센터가 가서 403번 버스를 타야 한다는 정보를 알아온다. 울 아들, 도대체 어떻게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갔는지 신기할 정도로 저질 영어를 하면서 전혀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물어보고 올게!'하고 출동을 하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요렇게 저렇게 가면 된단다. 틀린 적도 있었지만 대개는 맞고 바디랭귀지를 섞어서 포르투갈어와 영어를 섞어 하는 말들을(내 귀에는 안 들리는데) 다 알아듣는다. 

페나 성 입장료가 장난 아니다.국제교사증, 국제 학생증 다 소용없다. 하지만 딸과 나, 남편 셋은 가족권을 끊고 아들 혼자 표를 따로 끊으니 2,3유로쯤 절약되었다. 그래도 43유로쯤.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한 페나 성, 안에서 공주로 살아가는 삶은 딸도 나도 사양이다. 하지만 거대한 성이라기보다 영주의 작은 성 같은 느낌과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색색으로 칠해진 성의 모습이나 섬세하기보다는 우둑우둑한 느낌이 드는 장식들이 오히려 덜 권위적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참 사랑스럽다. 햇살이 참 맑은 날이었다. 그토록 많이 싸우면서 커왔던 다섯 살 차이 남매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잘들 뛰어다닌다. 여행 내내 우리 식구들은 안 다퉜다. 터키 여행 때 중2 껄렁이였던 아들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던 4학년짜리 꼬맹이였던 딸도 이젠 조금 힘들다고 투덜거리지 않는다. 음식이 안 맞아도 웃고 넘어가고 여러 상황에서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 놓치지 말아야 할 관광지가 많았겠지만 덜 보고 가야 나중에 다시 오고 싶을 거라고, 그냥 아무 데나 걷고 사람 구경하고 했다, 우리는...  

신트라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곳은 식당이 아니라 주점이다. 맑은 날, 현대식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서, 싸고 맛있는 식사와 맥주를 곁들였다. 조금씩 오후 햇살이 비친다. 남은 시간 다 못 본 리스본을 보려면 어딜 가야 하나. 사실은 '다 못 본'이 남은 관광지가 아니다. 거리거리를 빼곤 본 게 거의 없을 정도다. 두 군데만 꼭 가보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패션 박물관이다. 이번엔 좀 피곤하여 2선으로 물러서 있던 우리 대장, 아빠가 지도를 보고 진두지휘한다. 사실 리스본은 지하철 운행 구간도 짧고 도시도 아기자기해서 시내 중심부는 다 걸어다닐 수 있다. 돌고 돌면 또 아까 갔던 로시우 광장이고 코멜리우스 광장이고 그런다. 뭐 이런 헤맴이 싫은 사람은 패키지 여행을 해야 할 터이다. 배낭여행자들이 블로그에 어디어디 잘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영특한 것들! 하고 감탄한다. 우린 넷이서 왜 헤맸냐. 어쩌면 혼자가 아니라서 더 헤맸는지도 모른다. 이번 길을 아들이 책임지기로 했으면 나머지 사람이 그를 믿고 따른다. 물론 약간의 질책이 없진 않지만 누가 리더가 되어도 헤매더라, 그러니까 잘못 가도 봐주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린 열흘 동안 짜증도 내지 않고 서로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낄낄거리고 다녔다. 여행을 과제 수행길로 여기면 우린 40점 정도밖에 안 된다. 안 간 곳 못 먹은 음식이 너무 많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아무도 그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래, 책자에 나온 곳곳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정보일 뿐이다. 우린 종종 그것을 다 하고 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걷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그냥 쉬기,그냥 잘 먹기, 다른 나라 사람들 많이 사귀기... 자기만의 과제에 충실하면 된다. 우린 결혼 20주년의 의미 그대로 서로 사랑하는 가족임을 느끼며 돌아다니기... 라는 과제에 아주아주 충실했다.  

아, 그래서 출동한 아빠리더는 그러나 결국 지도를 잘못 봐서 또 코 앞에 패션 박물관을 두고 몇 바퀴를 돌게 만들고서야 박물관을 찾아 가게 했다. 하지만 헤맨 만큼 박물관은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재미있게 잘 놀았다. 거대한 성당이나 유적지 같은 건축물이나 문화유산에 흥미를 덜 느끼는 것은 사회를 싫어하는 취향이나 정서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여행 가기 전, '스페인이 투우, 애저(새끼돼지) 요리, 플라멩고가 유명하다는데 뭘 꼭 해 보고 싶어? " 그랬더니 두 애들이 플라멩고는 둘째치고 그런 잔인한 걸 왜 즐기냐면서 싫단다. 특히 애저 요리에 대해서는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물론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 나야 당연히 별로 흥미 없었던 메뉴고. 본인이 싫으면 거기 금은보화가 있어도 소용 없는 것이다.  

리스본의 마지막은 산타 아폴리아니 역의 야경이다. 공기가 맑아서 낮에도 좋았지만 저녁 산책도 좋다. 삼발이 놓고 넷이 사진을 찍는다. 우리의 사진은 대개 다른 누군가 이동하는 뒷모습이 많지만 바닷바람에 말갛게 씻긴 리스본의 마지막 밤, 아름답다. 

기차와의 슬픈 인연 

야간열차를 타고 마드리드로 가야 한다. 어젯밤, 패스를 기입하느라 잠을 설쳤다. 날짜 잘못 쓰면 벌금 문다고, 리포트 잘못 써도 안 된다고 해서 애를 많이 썼다. 뭐가 이렇게 어렵냐. 미리 받았으면 공부라도 했을 텐데... 또 야간 열차 타러 가서 플랫폼 찾고 다 했지만 언제부터 타야 하는지 여권이 필요한지, 따로 발권을 받아야 하는지... 창구에 앉아 있는 둥둥한 언니는 왜 그리 불친절한지.. 그리고 와서 기다리고 있는 호텔 트렌은 왜 그렇게 디젤 냄새를 심하게 풍기는지, 그리고 호텔트렌이라는데 외관이 어찌나 겸손한지... 겨우 시간이 되어 올라탄 야간열차 쿠셋칸. 비용이 들더라도 편안히 가고 싶다고 여행사에 요청했지만 이 내가 원한 '슬리퍼'가 아니라 '쿠셋'이었다. 샤워시설은커녕, 침대가 너무 작고 좁다. 짐 세 개 놓으니 세수하러 작은 세면대로 가기도 어렵다. 아들 키가 183, 남편이 178cm다. 두 남자가 누우니 발목이 밖으로 나간다. 화장실 자주 가는 남편이 다녀와서 얼굴이 누래졌다. 문 안 잠기고 물 안 나오고 너무 흔들리고 더럽고... 볼일 포기한다고. 그렇게 9시간 넘게 가야 했다. 타고 자리 잡자 마자 미국 여자애 둘이 문을 열더니 뭔가 잘못됐다고 따지려 든다. 자기네가 31,35번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거 7호찬데.. 그러니까 잘못봤다고 미안하다고 도망간다. 또 좀 있다 차장이 와서 패스와 여권을 검사하더니 남편에게 뭐라뭐라 한다.앗, 리포트 다 썼고 날짜도 다음 날로 잘 썼는데 왜? 승객이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좀 또박또박 해주든가. 짜증을 내는 차장을 보고 남편이 나에게 나가보란다. 나나 자기나 거기서 거기지... 암튼 뭔 말인지 잘 못알아 듣겠다. 차장은 짜증을 내면서 자고 있는 아들 머리통을 흘끔 보며 영어 더 잘하는 사람 없냔다. '없다'. 그의 말인즉슨, 우리가 열차를 두 번 탈 건데 두 번째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는 열차 날짜를 미리 적었다고 뭐라 하는 거였다. 그때그때 적는 거랜다. 누가 알았냐고! 혹시 열차를 놓치기라도 하면 이 패스는 못 쓰게 된단다. 그제서야 알아들은 나(긴장이 풀려서 - 아 큰 문제 아니구낭- ) 아하하 웃으니 그도 그때서야 웃는다. 그러면서 뭐 저녁 먹다가 기차를 놓칠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니냐, 그럼 다음 기차 타야 할 거 아니냐고, 근데 이렇게 써놔서 이젠 못 쓴다.. 그래서 우린 절대로 기차 안 놓칠 거라고 알아들었다고 하니까 충고로 해주는 말이란다. 그렇게 처음부터 친절했음 좋았을 걸... 

너무 좁아 슬펐던 쿠셋 

야간열차에서 내려서 남편과 아들은 두드려 맞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짐을 질질 끌고 온다. 마드리드의 아침, 차마르틴역은 더웠다. 창문에 코를 대고 밤 별을 하염없이 보다가 새벽 동트는 걸 본 나만 쌩쌩했다. 일단, 이 무거운 짐을 호텔에 맡겨야 한다. 미션의 연속이다. 분명 차마틴 역에서 호텔이 있는 그랑비아까지 열 정거장쯤 가면 되는데 어디서 타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청량리역처럼 기차 역에서 지하철 타려면 나가야 하는 걸까? 그래서 salid라고 써 있는 곳으로 나갔다. 맞다. 계단을 그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올랐다 내려가니 지하철 타는 곳.  여기 10회권이 있다고 했는데.. 어, 그런데 지하철 노선도에 그랑비아 역이 없다! 어찌 된 거니... 헤매고 있으니 여자 역무원이 와서 여기가 아니란다. 그렇구나...  기차표 파는 곳에서 지하철표를 구하고 있었다~! 우리 옆엔 미국인 관광객인 듯 보이는 친구들이 역시 표를 못 사고 쩔쩔매고 있었는데 저쪽 지하철 표 사는 곳에 가서도 10회권을 사면서(책에는 10회권을 여럿이 나눠쓸 수 있다고 써 있었지만 어떻게 표 하나로 여럿이 쓸 수 있냐는 남편 말 때문에 결국 10회권 네 장을 사서 뭐 열 번을 안 쓰겠냐고 각자 들고 다니기로 결심하기까지, 청원경찰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물으니 영어를 모른다고 묵묵부답, 한국인처럼 보이는 배낭맨 청년을 부르니 못들었는지 묵묵, 어떤 젊은 아가씨를 붙잡고 물으려 하는데 일본인 같기도 해서 포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표를 넣고 다음 사람이 빼서 또 넣고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린 왜 못했을까나? 나중에서야 그걸 알고 2~3장만 사도 됐을 걸 했지만 우리가 마드리드를 떠날 땐 아직 1,2회씩 남은 10회권을 그냥 들고 와야 했다. 이걸 어떻게 해? 아깝다(1회당 대략 1유로쯤 되니까 7,8유로를 그냥 남긴 셈이다) 하니까 남편이 서울 돌아가서 누구 스페인 여행하는 사람 있으면 주자, 그런다. 이 아저씨 나이가 47살인데 어떨 땐 무쟈게 순진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 표는 바르셀로나 가서 가우디 투어때 만난 사람들 여기저기 물어 마드리드에 갈 거라는 여학생들에게 주었다. 땡잡았다고 기뻐해서 참 좋았던 기억, 난다. 

그래도 호텔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서 더워지려는 시간, 그랑비아 역에 내리니 거의 분위기가 우리 명동 비슷하다. 사방에 옷가게다. 자라, H&M, 망고 같은 브랜드나 세련된 분위기나.. 도심 한가운데 호텔이지만 크진 않다. 꽤 오래된, 그러나 깨끗한 느낌의 작은 로비에 가서 일단 짐을 맡기겠노라 했다. 체크 인 시간은 1시 반이란다. 그런데 방 호수를 알려준다. 지금 바로 쓸 수 있단다. 이런 땡잡았다~! 리스본의 큰 호텔에서처럼 뭐 써라, 신용카드 맡겨라 그런 말도 없다. 그리고 바로 짐들어주는 할아버지가 우리 짐을 끌고 엘리베이터로 간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절로 팁을 찾을 수밖에... 덕분에 우린 샤워를 깨끗이 하고 톨레도에 가려고 나왔다. 어느 새 아들은 카운터에 가서 이 근처 맛있는 밥집이 어딘지 알아왔다. (늘, 난 이 녀석의 두세 단어 영어 실력으로 뭐라고 말하고 어떻게 알아듣는지가 궁금하지만 묻진 않았다. )브로셔를 하나 얻어들고는 이렇게 저렇게 가면 이 집이란다. 암튼 그집인지 아닌지 동네 분식점처럼 생긴 집에 들어갔다. 햄버거도 팔고 빠에야도 팔고 피자 사진도 있고... 그렇게 처음 접한 스페인 음식... 먹물 빠에야와 해물 빠에야, 그리고 네모난 철판에 담긴 피자(망치로 쪼개 먹는 ?) ... 영어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늙수구레한 아저씨와 스페인어 거의 모르는 우리는 그렇게 주문을 잘 했다. 빠에야 하나가 8유로면 결코 싸지 않다. 시내의 멋진 레스토랑도 아니고 깔끔하긴 하지만 동네 식당 규모이다. (하긴 명동은 분식점도 땅값 식사값이 비싸긴 하지) 바르셀로나에 가서 동네 중국식당 음식과 비교해 보아도 그렇고 산티아고 길을 따라 여행했다는 동료의 말을 따라도 그렇고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리고 그 맛! 맛이 없다기보다 너무 짜다! 책 어디서 봤는데, 꼭 소금 빼달라고 말하라고. 그런데 그 표현을 찾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씬 쌀!'이란다. 그 말을 한 번도 못 써먹고 짠 음식을 먹고 돌아다녔다. 

톨레도가는 버스 타는 일도 쉽진 않았다. 기차를 타고 가면 30분, 그러나 10유로라는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스페인 버스가 잘 되어 있다고 타보라고 권하는 블로거들이 하도 많길래 플라자 엘리쁘띠까역까지 갔다. 문제는 그 큰 버스 터미널 어디서 표를 파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는 거.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영어로 물어보니 아래층 내려가서 표를 사서 7번 플랫폼에서 타란다. 오르락내리락 몇 번 햐했지만 표 파는 창구를 못 찾았다. 7번 플랫폼에 가서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애에게 톨레도 가는 버스 타는 곳 맞냐교, 그런데 표는 어디서 사냐고, 묻고 몇 번을 헤맨 끝에 구석에 쬐그만(꼭 열쇠 수리하는 데처럼 작은 공간이다) 공간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표를 샀다. 그런데 이 아저씨 6번 플랫폼에 가라지 않나? 거기서도 어떤 대학생에게 물어보니 여기 맞다고 하다가 갑자기 줄을 이탈한다. 자긴 7번 가서 탄단다. 꼭 너도 이리 오는 게 좋을 걸, 이런 말인 것 같은데 기껏 줄 선 것도 아깝고 그 친구가 부랴부랴 떠나면서 뭐라뭐라 해서 그냥 어, 쟨 왜 7번으로 가는 거지? 하긴 아깐 또 다른 애가 7번이라고도 했는데 여기 톨레도라고 써 있기도 하고 뭐야... 이러다 버스를 탔다. 알고 보니... 우리가 탄 버스가 너무 오래 간다 했더니 여긴 완행이고 7번은 직행 타는 곳이었던 거였다. 덕분에 야간열차에서 모자랐던 잠을 실컷 자며 1시가 40분 후에 도착한 톨레도, 완전 열사의 사막 같았다. 그날이 유일하게 진정한 스페인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졸리고 피곤한데 뜨겁기까지.... 소코 트렌을 타자고 아무리 걸어도 지나가는 귀여운 기차는 우릴 태율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디서 타는 건지 알아보러 인포메이션까지 걷는 길,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마을은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여행도 몸 좋고 정신 좋아야 즐기는 거지 이건 뭐 빨리 그늘로나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이들이 비사그라 문에 서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멀어 보일 정도였다. 소코 트렌이란 작은 기차는 소코도베르 광장까지 가야 한다고 지도를 보며 가르쳐 준 여인의 말대로 (이번엔 호텔트렌 차장의 말을 못 알아들어서 열등감에 젖어 있던 남편이 잘도 알아듣고 '나를 따르라'를 하였다.) 그 광장까지 가는 길이 그나마 그날 우리가 걸은 긴 길이었고 나머지는 꼬마기차로 내내 돌았지만 그래서 엘 그레코의 집도 대성당도 못 가보았지만 그렇게 다녔기에 톨레도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다음 날 넷 모두 남편처럼 몸살 났을 걸? 

그날 저녁부터 남편은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늘 건강하기만 한 이 아저씨는 10년 전 유럽 여행 때도, 지금도, 여행 오기 직전, 긴 공백을 미리 메우기 위해선 일을 해놓고 가야 한다고 사전에 무리를 하더니만 (전날 밤새 일했다, 비행기 타면 잠자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면서) 결국 제일 먼저 탈이 난 것이다. 배탈에, 몸살에, 감기에, 더위 먹은 증상이 복합적으로... 

그래도 프라도  

다음날 아침, 드디어 여행 일정을 짠 사람으로서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프라도 가는 날이다. 사실 다른 세 명은 미리 여행 준비하는 즐거움이 뭔지도 모르는 채 그냥 엄마가 가자는  대로 가면 되겠지, 이러면서 아무 생각없이 온 사람들 같았다. 뭐, 물론 그래서 더 내가 이게 중요하다, 이거 꼭 가봐야 한다 그러면 네네 하고 말을 잘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린 이 미술관을 보러 스페인에 가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허풍을 엄청 쳤다. 특히 사전정보에 의하면 국제교사증과 학생증이 통하는지가 가장 확실한 관광지라서 그걸 꼭 써보리라, 이런 기대도 있었다. 또, 여행의 목적 중에는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 수시로 아들에게 표 사고 식구들 이끄는 건 네가 책임지라고 말했었다.  

관광철엔 붐빈다는 말에 아침 일찍 나가자고 잘 챙겨서 방코 데 에스파냐 역에 무사히 내렸다. 프라도 방향으로 잘 나가기까지 했다(스페인 은행 방향으로 나가라고 돼 있었다) 하지만 나가 보니 웅장한 건물이 둘이나 있어서 도대체 어떤 것이 은행인지 모르겠는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이정표가 참 박하다. 세계 3대 미술관이라면서 이정표가 없는 건 뭐냐. 물어보고 가자니까 물어보는 거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이 또 지도를 펼치면서 방향을 가늠한다. 그 때 나는 쪼르르 달려가서 도로공사를 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뮤제로 델 쁘라도?"라고. 알아는 들었는데 그 아저씨는 그런 거 모른단다. 아니, 3대 미술관이라며... 하긴 살기 바쁜 사람들은 아무리 유명해도 미술관 모를 수 있다. 아니, 생업과 관계없이라도 미술에 관심없으면 모를 수 있는 거지 뭐.. 그런데 두, 세번 물어도 다 모른단다. 이럴 때는 좀 젊고 세련된 사람을 붙잡아야 한다. 양복 쫙 빼입은 키다리 아저씨가 출근 중인 듯 보인다. 어설프게 또 돈데 에스따 뮤제오.. 떠듬거렸더니 이 아저씨 유창하게 영어로 건너서 한참 (뭐 약 1킬로 정도?) 걷다가 건너편에... 이렇게 설명하고 쿨하게 떠나신다.  

프라도까지 걸어가는 길 중앙에는 레티로 공원이 있었다. 길이 멀지 않게 느껴질 만큼 시원하고 상쾌하다. 일부러 공원 조성했다기보다 인도를 공원처럼 꾸민 듯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거기서 자기들을 파파로치처럼 찍어보라고(그냥 자연스럽게 찍으란 뜻이다) 청하더니 잡기놀이를 하고 뛰어다닌다. 아침에 하도 힘들어해서 이 미술관만 보고 들어가 쉬라 했던 남편도 자기 고향 용인과 수원의 가로수로 많이 쓰이던 플라타너스의 기를 받아서 그런지 갑자기 기운을 차린다. 유럽의 공원과 광장은 우리에게 부족한 부러운 문화이지만 특히 이 인도형 공원, 근사하다. 특히 많은 나무들... 

미술관은 한적했다. 아들에게 교사증과 학생증을 들고 가서 교사 한 명, 학생 한명, 18세 미만 한 명, 그냥 어른 한 명 이렇게 표를 사 오라고 했다. 한참 서 있던 녀석이 작은 애와 나를 부른다. 18세 미만, 데려오랬다고. 데려가 보여주면서 중학생이라고 하니까 여권을 보잔다. 이럴 줄 알고 우린 지갑에 여권 사본을 들고 다녔지롱~ 그제서야 알았다면서 무료티켓을 준다. 나와 작은 애는 무료이고 대학생은 반값(4유로?) 물론 남편은 다 내고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예술의 전당이나 이런 데서 가끔 교사신분증을 내밀면 2000원쯤 할인해줄 때가 있긴 했지만 대학생보다도 더 할인을 해주는 이 건전한 사고 방식이라니~! 우리는 방학때만 되면 애들 표장사 하느라고 판넬 몇 개 붙여놓고도 만원 가까운 전시장사를 하지만 유럽은 어지간한 곳은 18세 미만 어린이나 청소년이 다 무료이다. 이런 것도 과잉복지인지 묻고 싶다. 

프라도는, 최고였다. 미술관으로서도 훌륭하고 전시 동선도 환경도 최고였다. 입구에서 바이올린 켜는 아저씨의 선율에 매료된 아들놈이 자긴 저거 듣고 간다고 해서 흩어졌다가 우리 셋만 카페테리아에 앉아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면서 아, 이럴 때 녀석이 나타나면 좋을 텐데, 아들도 배고플텐데, 하고 간절히 기다렸다. 물론 바로 그때는 아니었지만 그 넓은 데서 딱 마주쳤을 때의 그 반가움이라니! 딸은 보는 그림마다 설명을 요구하고 표찰을 읽거나 해석해달라고 했다. 살아있는 오디오가이드가 되어서 내내 그리스 신화와 성경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얘, 여기 그림이 8000점이래. 이거 다 이렇게 설명 들으면서 다닐 거야? 했더니 하는 데까지 해야지~! 그런다. 먹는 거 빼고는 사춘기 특유의 귀차니즘을 자주 부리는 녀석이 웬일이냐~? 미대 다니는 아들은 뭐 더 말할 것 없이 즐겁게 그림을 보았나 보다. 얼추 4시간 이상을 거기서 있었다. 8천 점을 다 보진 못했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아들에게 고야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도를 보니 소피아 미술관이 바로 코앞이다. 원래 계획은 내일 마드리드를 떠날 때, 아토차 역 바로 옆인 그 미술관을 가려던 것이었지만 프라도를 나와 주변을 둘러보다 가까우니까 가보자, 이렇게 된 거였다. 물론 그 전에 점심을 먹었다. 오징어튀김을 먹어봐야 한다고 사진에서 찍은 게 사실 닭튀김이었고 딸애가 기껏 고른 건 거대한 햄버거였고, 남편은 짜서 싫다고 야채 샐러드를 시키고... 결국 스페인스러운 구석도 별로 없는 음식을 시켰고 예상대로 짜다. 다 못 먹긴 했지만 여기서도 아들은 하나의 미션을 수행했다. 내가 남은 음식(특히 튀김)을 싸달라고 해라, 저녁 때 맥주 안주하게. 그러면서 머리 속으로 랩핑 어쩌구... 문장을 만들고 있을 때 아들은 쿨하게, 손가락으로 그걸 가리키며 테이크 아웃!을 외치는 것 아닌가! 그러자 아들 또래의 알바생으로 보이는 웨이터는 오, 테이크 어웨이? 이러고 묻는다. 테이크 아웃과 테이크 어웨이의 차이는 뭘까~요~? 

이번엔 소피아 왕비 미술관에 갔다. 게르니카를 보러. 남편은 호텔 가서 쉬래도 괜찮다고 기운차게 따라온다. 여기 창구에서도 남편만 입장료를 내고 모두 무료로 들어갔는데 벽에 붙어있는(아마도 상설전시만 볼 건지, 기회전도 볼 건지, 뭐 그런 내용 같다.) 할인 내역이 하도 다양하고 복잡해서 정신이 없었다. 게르니카를 찾아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시 가다 보니 아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게르니카를 꼭 보라, 이런 당부가 얼마나 촌스러운지를 잘 알지만, 촌스러운 엄마짓을 나는 꼭 한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도 딸은 그다지 감동스러운 표정은 아니다. 이 아이는 달리 그림을 좋아했는데 그날도 달리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곤 했다. 여기엔 곳곳에 자원봉사자 같이 보이는 아줌마들이 안내를 하고 있는데 게르니카 앞에 그림 양 옆에 두 분이 앉아 있다. 가까이 가서 보자, 하고 남편 등을 떠미는 순간, 뿌~ 하는 경고음이 들리고 양 옆 아주머니가 손을 내젓는다. 그런 경고음은 수시로 울렸다. 많은 관람객들이 아무 저항선도 없는(바닥에는 금이 그러져 있지만 가로대같은 것은 없다) 그림의 시원한 앵글을 즐기며 더더 앞으로 다가가다 민망하게 웃고 나온다. 만약 그림 앞에 바가 하나 가로놓여 있었다면 그렇게 두 사람이나 앉혀 놓을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거대한 그림 앞에 가로줄이 쭉 그어져 버린다. 그림을 전시할 때 어떤 액자에 넣는지. 유리가 있는지 없는지, 프레임 재질이나 색이 무언지, 그림을 비추는 조도가 어떠한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높이에 걸어두는지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를 수 있다. 나는 게르니카의 전시 태도에 가장 감동했다.  

사실 소피아 미술관에는 현대미술 작품이 더 많았다. 기획전까지 두루 살펴 보다 보니 미로같은 미술관을 빠져나올 수 없는 느낌이 든다. 프라도의 무게가 컸던지 아니면 현대미술보다 좀더 드라마틱한 그림이 좋아서 그런지 아들은 (시각디자인 전공이지만 컴으로 작업하는 걸 싫어하고 소묘나 드로잉을 좋아한다) 조금 미리 나와서 무지개색 폴라포를 빨고 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우린 아트 숍에서 정신을 팔고 있다. 나보다 더 그곳을 좋아하는 남편, 특히 기념 티셔츠를 가는 곳마다 사는 남편은 게르니카가 프린트된 검은색 티를 고르고 있었다. 어머, 그런데 남편 가방은 어디 있는 거니? 아까 코인 라커에 맡겨두고 짐 찾았는데 작은 가방은 깊이 넣어두고 안 뺀 거다. 지갑이 들어있는...! 후다닥 나가는 사람한테 뭐라 하려다가 나는 그만 계산도 안 하고 티셔츠를 들고 나갈 뻔 했다. 금세 화장실 다녀온 사람처럼 온화한 얼굴을 되찾아 돌아온 남편에게 (영어로 말하는 거 무지 싫어하는데) 뭐라고 말하고 찾아왔냐고 했더니 I remained~ 어쩌구 했더니 웃으면서 얼른 찾아보랬다나. 남편 인상이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었을 것이다. 아까 짐 둔 그 높은 라커를 가리켰다는 걸 보면 그의 강렬한 외모는 동서양 다 먹히는 거, 맞다.ㅋ  

두 군데 미술관을 모두 돈 시간은 7시간. 타파스가 맛있다는 스페인에서 플라멩고까지는 아니어도 꼭 저녁에 한잔 하고 싶었다. 포르투갈에서도 파두 공연을 보며 한잔 하는 시간을 못 가진 게 참 아쉬워서 내내 타파스 타령을 했지만 몸살을 이기고 7시간 미술관 순례를 한 남편이 기어이 호텔에 와서 뻗어버렸다. 결국 바람 쐰다고 나간 아들에게 캔맥주 2개만~ 이렇게 부탁했다. 여기, 맥주가 진짜 맛있다. 맛있는 이유 중 하나는 식당이든 수퍼든 아주아주 시원하게 해서 팔기 때문인 것 같다. 농담삼아 동생과 내가 제일 맛있는 맥주는(사실 브랜드를 묻는 질문인데)? 라는 질문에 "딤채맥주"(김치냉장고에 3일 묵힌 병맥주가 정말 맛있다.) 라고 말할 만큼 맥주는 차야 제맛인데, 여기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맥주와 음료 온도가 환상이다. 참치, 김, 즉석 국, 라면 등으로 만찬을 벌이면서 혼자 캔맥주를 마시며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날, 기차는 낮 1시 30분에 떠난다. 여름 한낮에 더웠던 유럽여행의 기억에 그렇게 예약을 했다. 체크 아웃을 하고 나와 남은 시간 마지막으로 마드리드의 무엇을 볼까 생각했다. 일단 아토차 역에 짐부터 맡겨놓고 움직여야 해서 역에 가 보니 바로 소피아 미술관 옆이다. 어제 저것이 아마도 역일 것이야, 했던 바로 그곳. 거기가 스페인 열차 테러의 참사가 났던 곳이란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짐만 맡기고 마드리드의 마지막 일정, 왕궁으로 향했다. 여기도 여지없이 숨어 있는 복병은 '헤매기' 귀신이다. 아~ 이정표~ ! 날씨도 뜨겁다. 생각해 보니 마드리드는 더웠던 것 같다. 톨레도는 내륙이라 그런가 보다 했고 이 날은 금방 기차를 타러 가서 잘 몰랐는데 프라도를 간 날도 맑고 더웠는데 주로 미술관 안에 있어서 덜 지쳤을 뿐이었던 거다. 왕궁에 도착해 보니 줄이 길다. 그나마 거기가 매표소도 아니고 입구였다. 가이드가 표를 나눠주길래 표 파는 곳을 물으니 또 한참 돌아 가란다. 거기 줄은 더 길다. 그것도 땡볕에... 사실 우리 가족은 왕궁이나 성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보면 좋지, 신트라처럼 안에 들어가면 왕궁 생활을 엿볼 만한 이런저런 것들이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호사스런 삶을 엿보고 부러울 것 같지도 않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여우의 신포도?) 왔다 갔노라, 이거지 뭐... 그러다가 쭈그리고 앉아 있던 건물 안을 들여다 보았다. 웬 성당이다. 알무데냐 성당이란다. 난 개인적으로 성당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소를 좋아한다. 종교를 막론하고 성소 특유의 진지한 기운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 성당은 지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듯 싶고 관광지로 개방해 놓아서 그런지 좀 어수선하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단돈 1달라, 1유로, 100엔 짜리라도 초를 켜놓고 오곤 했던 내가 초 한 자루 밝히려고 아무리 찾아도 없다. 무슨 전기초(초 모양 전등)이 있긴 있다. 돈을 넣으면 불이 들어오나 보다. 뭐, 냉소적으로 말하면 뭐래도 초장사에 불과하다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그래도 구석 자리에 앉아 기도를 바치고 싶었다. 늘 그렇듯 뭘 바란다기보다 감사하면 살겠노라는 다짐을 늘어놓았다. 어슬렁거리는 딸에게 다가가 여기서 기도를 하면 들어주실 거라고 꼬셨다. 아들은 아기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녀서 그런지 수학여행을 가서도 혼자 대웅전에 올라가 절을 하고 내려올 정도인데 아쉬울 것 없는 딸아이는 그런 진지한 면모가 좀 부족하다 싶다. 그랬던 녀석이 우짠 일인지 고즈넉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오래 기도를 한다. 또 그 모습이 귀엽다고 오빠는 사진을 찍어준다. 아이들의 어린 기도를 바치기에 좀더 고즈넉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아토차 역은 참 크다. 일찌감치 가서 기차 타는 곳 먼저 알아두려 했는데 애들의 관심사는 '점심'이다. 결국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잔뜩 사들고 기차를 탔다. 그 전엔 아토차 역 중앙의 거대한 수목원 같은 곳에서 키워지는 거북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5년 전 터키에 갔을 때에도 유적지 설명을 듣기보다 거미, 고양이, 뱀, 이런 것들을 들여다 보고 터키 꼬마들하고 외계어를 주고받던 아이들이다. 중학생,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들의 관심은 관광지, 유적지가 아니라 동물, 그리고 사람(특히 꼬마들)이다. 아, 하나 더 늘었다. 쇼핑. 유럽은 여름 세일 기간이다. 여기저기 70% 세일이 붙어있다. 평소에 비싸다고 잘 못 사던 '자라' 매장을 볼 때마다 아들이 좋아라 한다. 바르셀로나 가서 쇼핑의 기회를 주겠노라 달랬음에도 기웃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톨레도 갔다 온 날도 호텔 맞은 편에 죽 늘어선 자라, 망고 이런 가게에 딸과 다녔는데 발 아프다던 애가 언제 그랬냐는 듯 지칠 줄 모르고 다닌다. 그래봐야 12유로짜리 티셔츠 하나 사왔지만... 

스페인 기차는 렌페라는 회사에서 운영한다. 호텔트렌이 그 '호텔'이란 이름이 무색할만큰 작고 허름했던 데 비해 이 기차는 깨끗하고 넒다.  3시간만 가면 된다는 데 안도하며 올라탔는데 쾌적하기까지 하니 모두 기분이 괜찮다. 앉자마자 애들은 사들고 온 식량을 펼친다. 배탈 나서 점심을 거르는 아빠와 보나마나 애들이 다 못 먹고 남길 거라 생각해서 자기 몫을 안 산 나에게 애들은 자꾸 샐러드며 감자칩을 권한다. 여행을 다니며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의 생존력은 놀랍다. 또 몸은 희한하게 여행의 시계에 잘 적응한다. 먹는 게 부실하거나 시간이 불규칙해도 어떻게든 적응하는 것이다. 잘 먹을 수 있을 때 비축하는 몸의 지혜, 식사보다 관광이 중요할 때 식사도 걸러줄 수 있는 몸의 아량... 음식의 질에 상관없이 감사하며 먹을 수 있는 몸의 적응력...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을 찾아들어간다. 트렁크 하나가 몹시 무겁다. 시부모님이 쓰시던 것 있는데 새걸 괜히 샀나 했지만 새로 산 두 개의 트렁크는 정말 가볍다. 제일 무거운 것을 맡은 아들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계단만 나오면 질겁을 한다. 나는 그런 아들이 아까워서 가끔 내가 들어준다고 덤비는데(난 그냥 매는 가방)  남편은 그걸 못하게 한다.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하는 거겠지... 암튼 비싼 귀중품이나 깨지는 물건 넣고 다닐 것 아니면 하드 케이스는 너무 무겁다. 하긴 비상식량 뽀또가 부서지고 컵라면이 찌그러져서 옷 담았던 하드 케이스 트렁크에 컵라면 등 식량을 옮겨 담으며 "우리에겐 이게 젤 소중한 것이여~" 하며 웃긴 했지만...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에 비해 느슨한 느낌이 든다. 이번 호텔은 떼두안 역 근처 주택가에 있다. 건물 하나가(한 블럭이 100제곱 미터 장방형으로 생겨 헤매기 딱 좋다. 내리자마자 상점 누나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고 가는 길 묻는 것은 역시 아들 몫. 무조건 자기를 따라 오란다. 두 블럭 세 블럭이라면서... 헤맸다. 그건 녀석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라기보다 똑같이 생긴 네모 건물들의 착시현상 탓이 크다. 이후, 이런 헤맴 증상은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거듭되었다. 심지어 떠나오기 전날 동네 치킨 산다고 나간 남편과 딸이 뱅뱅 돌다 한 시간 반만에(밤 11시 반 도착) 돌아온 일도 있었다. 번지수를 모르면, 모퉁이 돌면 여기와 저기가 너무 닮았고 중국음식점이 왜 그리 많은지 아, 저기, 우리 호텔 근처에서 본 중국집! 그러고 가 보면 딴집이고, 아, 저 과일가게, 호텔 다 왔다, 그러고 보면 딴 동네 가 있고, 이런 식인 거다. 그렇게 헤매면서도 죽어도 물어보는 걸 싫어하는 남편에게 딸이 물어보라고 몇 번 종용하다가 도저히 못참고(아이는 여행 와서 한 번도 자기가 먼저 영어로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가 열쇠를 안 빼고 방문을 잠궈 버려서 화난 내가 날 따라와 카운터에서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라고 했을 때만 쫓아와서 귀를 기울였을 뿐 여행영어? 이런 거엔 관심도 없었다.) 결국 길 가는 아저씨에게 아무개 호텔이 어디냐고 물었단다. 아빠의 인내심이 아이를 성장시킨다고 우리가 환호작약하니 딸이 쑥스러워한다.(부끄럽지 않을까? 못해서인지 소심해서인지... ) 호텔 카운터엔 동양식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친절한 아가씨가 있었다. 일본풍의 인사? 우릴 일본인이라 생각한 것 같다. 한국인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간다는데(우리가 여행을 다닌 7뤌 18일~7월 27일은 한국인이 거의 눈에 안 띄긴 했다. 여름방학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면 가능하면 빨리,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여행을 떠나는 게 좋을 듯하다. 내가 출발일을 잡은 날도 하루 이틀 간에 여행비가 차이났기 때문이었다.) 계획은 '햄버거를 사들고 분수쇼를 보러 간다' 이지만 기차 안에서 이미 먹었다. 사실 한국음식은 가능한 먹지 않으려 했지만 모두 짠 스페인 음식에 기겁을 하고 새로운 시도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아서 거의 하루 한 끼는 한국음식을 먹게 되었다. 이제 음식은 거의 바닥이 나간다. 트렁크 하나를 라면과 밥, 참치, 김 등으로 싸왔는데 그리고 여행일정은 아직 2,3일 남았는데... 혹시 남을 때 남더라도, 누굴 만나서 주더라도 비상식량은 풍부하게... 차라리 옷을 덜 싸오더라도(기념삼아 티셔츠 같은 것은 사입으면 되니까... 그리고 멋진 사진을 생각하며 이옷저옷 싸가지만 여행 다닐 땐 멋진 옷보다 시원하고 편안한 옷을 자꾸 입게 되더라.. )  

그렇게 저녁을 먹고 분수쇼를 보러 갔다. 마침 그 날은 토요일이다. 주말에만 볼 수 있다는 분수쇼, 그리고 9시부터 시작이라는데 저녁을 먹고 나니 그 시간쯤 된다. 누구는 좋은 자리 앉으려고  4시부터 가 있었다는데 우린 도착하니 마침 9시였다. 물론 서머타임제 때문에 한참 지나서야 해가 질락말락한다. 아, 남편은 침대에 고이 누워서 분수쇼 대신 휴식을 취해야 했다. 더위 먹고 배탈나고 감기 걸리고... 필요없겠지 하다가 혹시나 하고 공항에서 사간 종합감기약과 정로환, 타이레놀 대부분을 그가 먹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살짝 옮아온 수두를 혼자서 고열에 시달리며 다 앓아내던 그가 생각난다. 9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그의 온 몸에 돋아난 수두 자욱에 한 시간도 넘게 약을 발라주면서, 덕분에 아이들이 고생을 안 했다고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이번에 탈난 것도 나와 아이들의 피로까지 짊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바람이 많이 부는 에스파냐 역으로 기꺼이 산책을 나서면서도 내내 아빠를 아쉬워했다. 그만큼 분수쇼는 근사했고, 또한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 구경도 재미있었다. 까탈루냐 미술관의 웅장한 아름다움도 입구의 거대한 두 기둥과한시간도 넘게  가로등을 따라 걷는 길도 주변의이러저러한 건물들도 다 근사하다. 책에는 분수쇼 볼 때 소매치기를 주의하라고 했지만 사람이 많은 데 비해 별로 그런 위험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분수 앞 명당 자리는 꽉 차 있어 우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자 마자 다리 난간같은 곳에 걸터 앉기로 했다. 다리 옆으로 또 인도 같은 곳이 있어 난간이라고는 해도 어디 떨어질 위험은 없다. 처음엔 안정적으로 좋은 자리 잡았다고 좋아했는데, 어딜 가나 4,50대 아줌마들의 극성은 똑같은지, 미국인으로 보이는 아줌마들이 우리 보고 옆으로 좀 가라면서 비집고 들어온다. 아들이 서서 본다고 일어나 공간이 생기니 또 누가 옆으로 끼어들고... 게다가 담배까지 핀다. 외국인들 '4가지' 없다고,  저도 담배를 피지만 이렇게 옆사람 생각 안 하고 그러진 않는다면서 아들이 나를 그 담배연기로부터 가로막는다. 

분수쇼는 근사했다. 일단 규모가 엄청나다. 몇층 건물보다 높이 올라갈 뿐 아니라 마치 물의 요정들이 발레를 추듯 우아한 동작, 엄청난  포말... 바닷속에서 잔치를 벌인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음악과 어우러지고 빛과 어우러지고, 무엇보다 노을과 어우러지니까 더욱 아름답다. 동영상 찍느라 메모리를 다 써 버려서 스냅사진을 몇 장 못 찍은 게 아쉬웠다. 분수를 뒤로, 노을을 뒤로, 가로등을 뒤로 한 남매는 맑고, 발랄했다.  

소매치기, 이것도 여행담이 되어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분수쇼는 일요일까지 하니까 내일이라도 아빠를 여기 데려오잔다. 가우디 투어를 마치고 저녁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맥도날드와 케이에프시를 사러 나올 때 멀리서나마 잠시라도 분수쇼를 보자고 남편을 꼬드겼다. 문제는, 호텔에서 세 정거장밖에 안 되는 에스파냐 역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타는 순간 벌어졌다. 남편은 복대 형태의 가방을 배에 찼고 나는 작은 가방을 세로로 메고 다녔다. 물론 큰 돈과 여권 등은 호텔에 있지만 그날 쓸 돈을 지갑에 넣고 다녔고 여권 사본도 갖고 다닌다. 내 가방 앞 지퍼에는 쓰다 남은 잔돈이나 5유로 짜리 지폐도 있다. 스페인 치안이 어떠니 말이 많지만 여태 다니면서 불안한 분위기를 느낀 적도 없고 물건 간수를 잘 하니까 걱정도 안 했다. 그런데 지하철에 타자마자 (분수쇼 부근으로 갈 수록 사람이 많은 건 어제나 마찬가지다.) 갑자기 사람이 낑길 만큼 많아진다고 느끼는 순간 남편이 인파에 밀려 저 안쪽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난 내 앞의 가방이 불안해서 이리 오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미 남편은 웬 여자와 남자에게 안기다시피 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자꾸 남편에게 이리와~! 하고 큰 소리로 말하니까 문에 기댄 문신한 껄렁남이 나보고 뭐라뭐라 한다. 남편은 어떤 자그마한 금발여자에게 안기다시피(그 옆에는 떡대 대머리 문신남) 이상한 자세로 서 있었다. 문에 기댄 녀석은 꼭 '내 여자친구한테 왜 뭐라 해?' 그러는 것처럼 나한테 스페인어로 큰 소리로 뭐라 한다. 그래서 나도 영어로 "내 남편이라구~!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 손을 확 잡아당기는데 마침 다음 역 문이 열렸다. 그 세 남녀는 그 역에서 내리고 갑자기 지하철 안이 텅 빈 듯했다. 나는 오라는데 왜 안 오냐고 남편에게 화를 냈고 남편은 왜 자꾸 오라고 하냐고 사람이 많아서 밀리는데, 그러면서 짜증을 냈다. 그때 내 앞에 앉아 있던 어떤 사람이 내 가방을 보라고 가리킨다. 어머! 앞 지퍼가 열려있네! 어머, 땅 바닥에는 앞 지퍼에 넣고 다니던 지하철표와 영수증 같은 게 떨어져 있네! 난 깜짝 놀라서 지갑을 살폈다. 내가 가방을 꼭 안고 있어서 그런지 지갑 있는 곳 지퍼는 열리지 않았다. 어쩌면 앞 지퍼 안에 남아 있는 5유로말고 지폐 한두장(10유로짜리나 뭐...이런 게)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 주머니에 있던 딸아이 여권사본과 사진도 그냥 있는 걸 보면 아마 급히 지퍼를 열고 뭘 꺼내긴 했거나 꺼내려 하다가 말았던 것 같다. "나 털렸나봐""어디어디"남편이랑 이러고 있는데 어머! 남편 복대는 지퍼가 두 개나 다 열려있네! 그러니까 아까 그 금발녀의 남편 허그 자세가 바로 그거였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남편이 배를 꼭 쥐고 있어서 그랬는지 역시 없어진 건 없다. 말이 그렇지 당한 사람 기분은 그게 아니다. 세상에 대범하기로 이름난 남편이 손을 다 떤다. 자, 이것도 경험이지 뭐, 담담한 척하고 다음 역에 내려 분수쇼를 잠깐 보자고 나가서 대화는 아, 이거야? 멋지네?  어쩌구 했지만 넋이 나간 듯한 기분이었는지 아라베스크 비슷한 두 붉은 기둥(무슨 기념탑인가)을 지나고도 남편은 그 존재를 의식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에스파냐 역엔 맥도날드도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남편 말대로 람블라스로 갈 걸.. 결국 지친 몸 이끌고 람블라스 입구에 있는 맥도날드를 발견했다. 이제 아들이 먹고 싶어한 케이에프시를 찾아야 한다. 분명 여기 어디서 보았다. 찾으러 지하철에서 멀어져갈 수록 힘이 든다. 아들은 그냥 맥도날드를 꼭 먹고 싶다는 딸과 달리 '그럼 난 케이에프시 닭~'이라 말했을 뿐인데 애들이 먹고 싶어하는 건 꼭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악착같이 그걸 찾아내려 한다. 결국 내가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애들 먹이려고 마누라 발 아픈 건 생각 안 하냐? 그래서 결국 맥도날드 2인분을 사갔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간, 전화연락도 안 되니 애들이 얼마나 걱정을 했겠나. 아들은 잠들어 있고 딸은 햄버거 사왔다고 환호작약한다. 그래, 얘는 이런 맛에 맛있는 걸 차려주고 싶다~. 맛있게들 먹는다... 집에서는 일년에 몇 번 잘 얻어 먹지도 못하는 콜라 햄버거를, 스페인 음식 짜다는 이유로 여기 와서 일년치를 다 먹고 간다 .ㅋ  

가우디는 가우디 투어로 

일요일, 미리 신청한 가우디 투어 날이다. 워낙 좋다고 소문이 나 있고 내내 우리 힘으로 관광지를 찾아다녔으니까 하루쯤은 가이드의 힘에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유여행은 스스로 공부하고 느끼면 최고지만 준비가 덜 된 채 다니면 놓치는 게 너무 많을 수도 있다. 어느 블로거가 까사 바트요 사진을 올리고 저게 특이해 보여서 까사 바트요인가보다 했다는 글을 봤다. 우리도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은행이 이건지 저건지 모르고 지나칠 뻔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꼭 봐야 하는 곳에는 가이드가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0년 전 유럽 여행은 TC가 함께 했다. 그는 가이드가 아니어서 우리를 따라 다니지는 않았다. 그저 예약된 호텔에 도착한 첫날, 그 도시의 가장 중심지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는 가장 경제적인 동선을 알려줄 뿐이었다. 가령 런던에 가면 피카딜리에 가서 어디어디를 가 보라, 가는 방법은 뭐다, 이렇게 알려주는 정도다. 시간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었고 혹시 계획을 짜다가 막히면 의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머지는 우리들 마음대로였고. 또 중간에 근교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버스 예약이 되어 있어서 역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준패키지 정도 되는 여행이었는데 가이드 있는 여행과 배낭여행의 장점이 고루 결합된 형태였다.  

가우디 투어도 그런 식인 거다. 예약비 2만원과 가이드비 25~30유로 포함하여 일인당 5,6만원 정도. 입장료 따로 내야 하니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해 안내하는 가이드의 모습을 보면 그 돈이 결코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필 이날, 약간의 빗방울과 더불어 내려간 기온, 그리고 몸상태가 안 좋았던 아이들 때문에 하루 종일 퐁퐁 뛰어다니는 감동적인 가우디와의 만남을 기대했던 바가 좀 무색해지긴 했지만, 만약 가이드를 따라 다니지 않았더라면 중간에 제대로 안 보고 호텔 가서 쉬자고 하는 사람이 나올 뻔했다. 또,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게 그건지 모르고 지나칠 뻔한 것들도 많았다. 또 하나, 가이드 덕분에 버스를 타고 다녀보았다. 버스 노선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개 지하철로만 다녔는데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보는 시내의 풍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비록 몇 번을 타고 어디서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버스로 돌아다닌 동선도 좋았다. 

처음엔 까탈루냐 광장에서 10시에 모였다. 호텔에서 세 정거장밖에 안 된다고 방심했는데 갈아타는 구간이 너무 길어 결국 5분쯤 늦고 말았다. 거기서 람블라스 거리를 걸어 일단 레알광장과 구엘저택으로 갔다. 이 람블라스 광장은 결국 다음날 하루 종일 우리의 무대가 되었다. 여기서 지하철 타고 그란시아 거리로 가서 멀리서 까사 밀라를 먼저 보고 까사 바트요로 갔다. 까사 밀라 입장료를 포함하여 피카소미술관 등 여러 미술관을 줄 안 서고 들어갈 수 있는 아트 티켓이 25유로라고 하길래 100유로짜리를 턱 내밀고 4장을 샀다. 점심 먹고 까사 밀라를 들렀다 만나자고 했는데 짠 스페인 음식이 싫다는 아이들의 요구대로 일식당 '미요'에 들어갔는데 음식이 너무 조금 나온다. 게다가 여기도 짜다. 처음엔 익숙한 맛이 좋았다. 사실 일본식은 아니다. 볶음 국수는 중국식인지 동남아식인지 그렇고 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먹는 그런 맛이고..그런데 몹시 비싸고... 4인분을 먹고 양이 차지 않은 우리 먹순이가 결국 국수 하나를 더 먹자고 했지만... 늘 그렇듯 그렇게 '더' 먹은 음식은 항상 별로다. 짜서 물 타 먹었다. 다만 이 식당은 아주 깨끗하고 고급스러워서 우리 두 부부, 조금 불편했던 아랫배를 상쾌하게 달래줄 수 있었다는 거... 화장실이 깨끗하긴 한데 그로테스크하긴 했다. 그 깊고 푸른 색... 화장을 고치기엔 너무 어두운 조명...오우, 무서워... 

가우디, 혹시 외계인? 

식당에서 아트 티켓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오늘은 일요일... 내일은 월요일... 우리나라에선 월요일에 미술관이나 공연장 쉬는 곳이 많다. 혹시 여기도 그런 거 아닐까? 급히 책자를 뒤적이니 아니나 다를까, 피카소 미술관도 쉬고 까탈루냐 미술관도 월요일엔 문 닫는다. 미로미술관 역시... 그럼 내일 일정은 어찌 되는 거냐...? 그것도 그거지만 만약 이걸 확인 안 하고 우리가 점심 식사후 까사 밀라에 이 티켓으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알아챘다면 ... 100유로가 아까워 올해 안에 스페인 다시 와야 할 뻔했다 ㅋ.. 결국 까사 밀라는 줄서서 들어갈 시간도 없고 해서 포기하고 다시 만난 가이드에게 표 환불해달라고 해야 했다. 그나저나...다른 건 몰라도 스페인까지 와서 피카소 미술관을 못 가다니.. 뭐 그거야 우리 잘못은 아니지만 말이다... 가우디투어는 오늘밖에 없었으니까.. 아쉬워서 한숨을 쉬니까 아들이 "괜찮아, 난 피카소가 싫어" 그런다. 어머 그게 미대생이 할 소리니? 하지만 게르니카는 봤으니까 뭐.. 소피아 미술관에서 피카소 뿐 아니라 미로의 작품까지 충분히는 아니지만 더러더라 봤다. 그리고 그날 프라도를 포함하여 정말 알차게 미술관을 살폈으니까... 쩝...

그리고 구엘 공원이다. 곳곳이 재미난 곳이지만 특히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쓰이기도 했던 곳이 거대한 정수장치라는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 아래로 기둥을 타고 원래 주택지로 기획된 이 곳 주민들이 사용할 정수된 물이 흐르도록 장치가 되어 있었단다. 가우디의 천재성이 계산으로 끝나버리지 않는 대목이 많다. 그의 천재성은 물론 파밀리아 성당에서 폭발한다. 나는 솔직히 파밀리아 성당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괴한 느낌마저 든다. 가이드 말대로 옥수수 알 빼먹고 남은 옥수숫대처럼 생긴 기둥은 왜  그토록 높은 걸까? 성당 앞 면의 여러 조형물들은 아무리 성경의 이야기들이 슬프고 무섭다 해도 그렇게 시멘트 반죽이 흘러내린 것처럼 기괴하게 형상화될 필요가 있었을까? 석고로 실제 사람들의 모습을 뜨다 못해 아기천사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죽은 아기들을 석고로 떴다는 이야기는 가우디의 집요함에 대한 감탄보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또 그 높은 기둥이 가우디가 자기 별과 통신하기 위한 송수신 장치라고 우기고 돌아다녔다. 그만큼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 볼 수 없는 신비가 가우디에게 있다. 

마지막 날, 아직 못 본 것 투성이지만 계획했던 피카소 미술관도 미로 미술관도 갈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루 온 종일 쇼핑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침 일찍 어제 못 본 까사 밀라에 가기로 했다. 까사 밀라는 참 신비로운 집이다. 우리 한옥 중 미음자 집의 가운데 마당처럼 중정이 있어 어느 층에서나 내려다 볼 수 있다. 층을 돌아올라갈 땐 미로처럼 느껴지는데 우리 옛집의 마당 창고나 다락방이나 방 안에 또 방이 있어 그 구석구석이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던 기억과 닿아 있다. 물론 이 집은 고급 빌라다. 돈깨나 있던 사람들이 하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던 곳이다. 집이 구불구불해서 그런지 어디 하나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 없다. 가이드 말로는 메이드들의 동선은 주인과 맞닥뜨리지 않게끔 설계가 되어 있다지만 우리 중 가장 열심히 꼼꼼하게 살펴보고 내려온 남편은 상기된 목소리로 하인들의 방까지도 해가 잘 들도록 인간적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좋아하며 말한다. 뭐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가우디는 말이 없었다더라. 하지만 돈 많은 가우디이기도 하지만 한 편 새롭고 참신한 발상에 온몸을 던질 만큼 늘 새로웠던 그였던 만큼, 또 늘 자기가 바지런하게 몸을 움직였던 그였던 만큼, 일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그런 설계를 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유럽은 세일 중 

마지막 여행날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이제 쇼핑만 남았다는 즐거운 기분 때문에 그랬는지, 워낙 까사 밀라의 매력이 치명적이어서 그런지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관광을 했다. 옥상의 외계인 송수신 장치(ㅋ 굴뚝)까지 다 보고 먼저 내려온 아이들과 나는 아직 사진 찍느라 반도 안 돌고 있는 아빠를 기다리느라 마당처럼 생긴 중정에 앉아 있었다. 심심해 하던 아이들은 아트 숍을 구경한다고 들어갔는데 다 보고 다시 중정으로 들어오려고 하니 문이 일방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 숍은 밖에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으니 입장이 제한될 수밖에. 밖은 땡볕, 아빠는 언제 올지 모르니 서늘한 돌바닥에 앉아 있으면 딱 좋으련만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데 청경처럼 생긴 멋진 아주머니가 티켓을 들고 돌아서 다시 입장하란다. 문 넘어로 표를 건네주었는데 아들은 심란해 보인다. 뭐라고 영어로 설명을 하고 들어오나.. 일단 돌아와봐봐, 그러면서 마중을 나간 나도 나름 복잡한 상황을 영어문장으로 만들고 있었는데 티켓을 손에 들고 아들이 입을 떼는 순간! 앞에 서 있던 검표원 아가씨는 들어가라고 손짓을 한다. 오, 허탈~! 완벽한 문장을 만들었더라면 더 허탈할 뻔  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코엑스몰에도 커다란 '자라' 매장이 있다. 중저가라고는 해도 워낙 비싼 옷 안 사입는 나에게는 별 매력이 없는 곳이다. 아들은 가끔 세일하는 만원 전후의 티셔츠를 사갖고 와서 나에게 핀잔을 듣는다. 그만큼 나와 남편은 비싼 옷을 사지 않는다. 마침 유럽은 대대적인 세일기간이었다. 그냥 세일이 아니라 70~80% 세일이다. 관세 때문에 세일을 하지 않아도 한국보다 싼 가격일텐데 엄청난 폭의 세일을 하니 매장이 장난 아니다. 중3 소녀와 대1 청년은 오직 이 쇼핑의 매력에 열흘 내내 피를 마신 뱀파이어들처럼 지치지 않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이 마지막날을 기대했다. 아이들에게 일정한 금액 한도 내에서 쇼핑을 허하니 남편이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여행의 기쁨 중 최고를 먹는 것에서 찾는 남편이나 옷쇼핑에서 찾는 젊은 것들은 내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다. 맘껏 즐기자 하니 아들은 늘 그렇듯 혼자 어디론가 사라졌고 딸과 나는 자라 매장으로 달려갔다. 사람이 엄청 많은 만큼 이사람 저사람 뒤적거린 옷을 다시 정리하는 매장 점원들 손이 분주한 것도 당연한 일이겠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옷을 살펴본 다음에는 다시 옷걸이에 걸거나 똑같이 개어놓진 못해도 대충 비슷하게라도 다독여놓고 자리를 뜨는데,ㅡ 여긴 보다가 떨어져 땅바닥에 옷이 굴러다녀도 아무도 정리하지 않는다. 떨어진 옷을 옷걸이에 걸곤 하던 딸이 나중에는 자기 옷 구경하는 시간보다 옷정리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아니, 옷이 막 밟히고 신발이랑 가방이 짝짝이로 굴러다니는데 아무도 그걸 안치우지? 자기가 보던 옷도 툭 던져 놓고..., 우리 나라 사람들 싸가지 없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그런다. 5.99유로의 폴라티, 12.99유로의 니트 카디건, 질 좋은 면 원피스도 12유로다. 물론 비싼 옷은 쳐다도 안 보기도 했다. 저녁 시간에 만난 아들과 딸은 아직 몇 개 못 샀다고 시간을 더 달란다. 이번엔 남매가 자기들끼리 다니겠단다. 안 그래도 나는 더 이상 옷구경은 하고 싶지 않았고 보케리아 시장도 못 보고 가나 싶어 섭섭했던 차라 남편과 편먹고  저녁 8시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보케리아 시장은 막 철수를 할 무렵이라 흥이 좀 덜했지만 낯선 풍물이 확실히 재미있다. 과일이나 정육을 디스플레이한 방식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토끼와 닭을 껍질 벗긴 채 그대로 진열해 놓아 징그럽기도 했다. 상품화는 우리가 더 세련된 것 같기도 하고... 서양 사람들 내장을 안 먹는다고 들었는데 여긴 소 혀, 내장 따위도 따로 파는 가게가 있을 정도다. 견과류면 견과류, 과일이면 과일, 보기 좋게, 예쁘게 진열해 놓고 중간에 나뭇잎으로 장식도 해놓았다. 시장을 나와 해변까지 걸어보았다. 지하철로 2,3 정거장 되는 거리지만 끝까지 갈 만은 했다. 하지만 돌아갈 생각을 하니 참 끔찍한 거다. 남아있는 지하철 표 횟수를 계산하고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 30분 전에 다시 지하철을 타고 까탈루냐 역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식구들 선물은 거의 사진도 않았기에 초컬릿을 좀 사러 까루프에 들어갔다. 스페인제 초컬릿 찾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하지만 그때 뭉텅 집어온 made in spain 초컬릿과 젤리들은 다 매우 맛있었다. 아이들이 한 보따리 옷을 샀으려나 하고 왔는데, 웬걸, 버거킹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딸램이 신고 다니던 쪼리가 끊어져서 쇼핑을 잘 못했다나... 그놈의 쪼리... 5년 전 터키에서도 당시 중2던 아들놈이 내내 쪼리를 신고다니는 바람에 같이 다니던 일행에게 몹시 창피했었는데 이번에도 아이들은 그걸 신고 다닌다. 응급조처를 하고 일단 호텔에 가자고 하니 덜 산 옷에 미련을 못 버린다. 그럼 뭐하나 매장들은 문을 닫던데.. 메롱이다, 이것들아.. 

새벽의 바르셀로나 

여행 일정 중 기차타기 못지않게 걱정되었던 일이 마지막 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유류택스가 싼 핀에어를 이용하게 되어 일인당 10여 만원씩 절약하게 된 건 좋았는데 아침 10시 비행기라 그날은 그냥 하루를 버린 셈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8박 9일에서 하루 연장했는데 더 연장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었다. 물론 중간에 몹시 앓은 남편도, 짠 음식과 패스트푸드에 질린 아이들도 집에 돌아가기 전날 간다고 좋아했던 걸 보면 딱 알맞은 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호텔에서 공항까지 얼마나 걸릴지,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도 못 먹고 오전 시간 즐길 여유도 없이 떠나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지만 전날  프론트에 공항가는 길을 물어봐 두었고 여차하면 택시를 불러주겠다 하고 20분 정도 가면 된다 하니 걱정할 일은 아닌듯하다 생각했는데 어머, 여행 내내 맨 뒤에서 뒷짐지고 다니던 남편이 벌써 공항버스 타는 곳, 버스 요금까지 자세히 다 알아 두었다. 공항버스는 바로 까탈루냐 광장 우리가 가우디투어를 위해 모였던 기아 건물 근처다. 요금도  일인당 약 5유로 정도였고 공항까지 거리도 얼마 안 된다. 암튼 어제 잔뜩 사둔 과일을(싸고 맛있다고 엄청 사 먹었다. 특히 복숭아... ) 공항에서 아침 삼아 먹자고 따로 싸들고 아침 6시 반쯤 나왔다. 아침 잠 많은 아이들이라 걱정했는데 집에 간다고 좋아서 그런지, 상쾌한 새벽 기운을 받아 그런지 얼굴들이 맑다. 사람 없는 새벽 거리를 걷는다. 아침 동트는 햇살도 받고 아침노을도 보고 이번엔 내가 가장 큰 카메라로 끊임없이 찍었다. 아침의 까탈루냐 광장도 신선하다. 너무 이른 비행기를 탄다고 투덜거렸던 것이 민망하다. 이렇게 아니면 바르셀로나의 새벽을 맛볼 수 있었겠는가. .  

공항 의자에서 노숙자들처럼 그 많은 과일을 다 먹었건만 아이들은 또 맥도널드에서 거대한 햄버거를 먹는다. 어제 그토록 신나게 다녔으면서 또 공항 '자라'에 들어가서 열심히 들여다 본다. 나도 조카를 위해 'made in spain'의 빨간 스웨터를 샀다. 어른들 것은 다 세일하는 것을 샀지만 이건 제돈 다 주고 산다. 정말 예쁘다. 그런데, 우리 조카가 좀 자그마하긴 하지만 그래도 7살인데 녀석에게 맞을 만한 걸 고르니 2~3세용이다. 그래도 차라리 큰 게 낫겠다 싶어 5~6세용을 사긴 했는데 좀 웃기긴 했다. 서양아이들이라 큰가? 라틴 계통 사람들이라 크고 뚱뚱한 사람은 별로 없던데... 스페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체형이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스페인 브랜드 옷은 우리에게 맞춤이다. 품질도 고만고만하다. 사람들은, 참 예뻤다. 남자나 여자나 어지간하면 다 미남미녀다. 프랑스 가서도 느꼈던 건데 자그마하면서 야물게 생겨서 예쁘다. 앵글로나 게르만쪽보다 정서적으로 더 호감이 간다. 아~ 그러고 보니 소매치기 그녀도 예쁘긴 했다. 얼굴은 예쁜데 그 표정에서 아름답지 않은 인품이 보여 예쁘다고 느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보케리아 시장에서 생선 팔던 젊은 아낙도 예뻤다.  

폭우가 쏟아지던 한국 

한국에 돌아온 7월 27일, 공항에서 어른들께 전화를 하니 무사히 도착했는지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비가 온다고. 비가 오기야 오지만 걱정할 정도인가 싶었다. 착륙할 때 엄청난 구름 더미를 뚫고 내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날은 바로 우면산이 무너진 날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우리가 사는 강남까지 5시간 걸렸다. 너무 지루해서 번갈아 운전을 해야 할 정도였다. 서초동 남부터미널에는 떠밀려왔던 차들이 길을 가로막고 너댓 대가 그냥 서 있어서 정체가 더 심했다. 이미 물이 빠진 상태라 나는 무슨 사고가 난 후 뒷처리를 아직 못했나 싶었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서초동과 대치역 4거리에 둥 차가 떠다니는 게 아닌가 바로 우리가 그 길에 물 빠지자마자 지나온 것이었다. 대치역 4거리는 우리 옆 동네다. 우리는 공항에 세워두었던 차를 가지고 왔는데 집에 와 보니 지하주차장에 차가 한 대도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 듯 하지만 혹시나 해서 차들을 다 어디론가 대피시켰나 보다. 무슨 사차원의 세계를 다녀온 것 같은 기분... 

여행은 어찌나 잘 다녀왔는지 식구들이 모두 개운하게 여행을 잊은 듯이 지낼 정도였다. 늘 내 삶이, 그을음도 없이 촛농도 없이 완전연소, 말 그대로 소진[消盡]하는 것이기를, 늘 바라고 살지만 이 여행이 내겐 그랬다.  아쉬움이 왜 없겠나만은 자족, 그대로다. 좋았다. 여행과 함께 갔던 치 책도 좋았다. 다만, 독자들, 너무 여행책자만 믿지는 마시라. 요즘은 블로그에 생생한 자료들이 많다. 자기만의 일정을 공책에 정리하면서 블로그에서 얻은 정보를 옮겨 적어 보는 것도 좋겠다. 출력물을 많이 만들어가면 여기저기 자료 찾느라 어수선하다. 나도 지하철 노선도도 인원수대로 복사해 가고 복사물도 많이 가져가고 했지만 한사람만 들고 다니게 되더라. 책자도 가장 잘 된 것 하나 분철해 가지고 다니는 게 제일 좋다. 단,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책자에 있는 맛집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더 맛있는 나만의 명소는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이다. 뭐든지 내가 겪어야 내 것이다. 거리도, 관광지도, 그곳의 바람도. 

여행은 열흘이었지만 두 달 전부터 이 책으로 내내 여행 중이었다. 열흘간 손땀에 절어 둘둘 말리고 헤진 책을 다독여 다시 하나로 모으면서(버려도 될 것을 차마 못 버렸다) 상상여행 두 달을 포함한 나의 2011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안녕을 고한다. 안녕,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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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집
기타 (DVD)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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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시절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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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미있고 진지한 소설을 좋아한다고 해서 문체나 대중성 같은 것은 안 본다는 뜻이 아니다. 이 소설, 첫 장면부터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주인공이 죽고, 저승에서 이승을 보며 자기 살았던 이야기를 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시골 상갓집 같은 이런 분위기의 글을 좋아한다. 몽환적인 순간이다. 누군가는 죽고, 죽음을 애도하며 사람들이 밤을 새는 동안 혼은 지붕 위 같은 데서 사람들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서로들 가슴에 담았던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신비감. 물론 그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처음을 보면서 아리고 아름다운 이야기려니, 했던 내가 잘못 짚었다. 

이것은 투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달콤할 리 없는 이야기다. 실제로 공선옥은 지금도 싸움의 현장에 자주 얼굴을 보인다고 한다. 서재에 앉아서 신문을 뒤적이며 진보의 앞길에 선듯 발언을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이나 실천이 소설을 무겁고 딱딱하게 만드냐, 또 그건 아니다. 소위 '의식있는' 시와 소설들이 그 얼마나 비장하고 무겁고 아린 목소리였던가 생각하면 공선옥의 이 소설은 따뜻하고 귀엽고 천진하다. 시골 할머니들은 가장 유하여 가장 강한 이들, '암것도 몰'르기 때문에 세상에 가장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온갖 부당을 온 몸으로 수십 년을 겪고 살아왔으나 그 모든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이들이다.  

소설은 쇄석기 공장에 맞서는 주민들의 싸움을 그리고 있지만 중간중간에 그 싸움의 가장 중심에 선 할머니들이 젊은 날부터 어떻게 남편들 즉 가부장의 권위와 싸워왔는지도 그린다. 가장 가깝게는 남편들로부터, 그리고 가장 삶에 무관할 수 있던 어떤 '공장'으로부터도 아무 취급도 받지 않으면서 물처럼 싸우는 저들, 고단한 싸움의 과정에서도 처절하기보다 '씨물떡', 천연덕스러운 싸움으로 가장 쿨한 저 할머니들, 끝내 목숨을 놓아도 그 데모하던 시절을 인생의 가장 '꽃 같은 시절'로 여길 만큼 자기 목소리 한 번 가져보지 못했던, 그 할머니들이야말로 진짜 힘 센 투사들이다.  

다만, 진정한 아름다움이지만 기왕이면 진짜로 진짜로 힘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약하기에 아름다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 김진숙이 떠오른다. 그의 의지가 빛나는 눈빛과 강인한 목소리는 자칫 그를 강한 투사로 보이게 하지만 사실 그는 거대한 자본과 이념에 맞선 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턱 막히지만, 군주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 세상을 바꾸는 가장 무서운 힘이 '여러 사람의 목소리'라는 삼국유사에도 나오고 시경에도 나오는 그 이야기를 믿을 뿐이다. 믿어 보자. 다만, 그 믿음은  분명 실현될 것이로되, 그 이전까지 너무 많은 사람이 아파야 하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결국 너희, 우리의 목소리를 이기지 못하리란 것을, 두려움을 갖고 알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현명하면 미리 깨달아야만 너희도 망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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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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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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