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삶과 전설 1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어쩌다 대학 시절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무참하고 비장하던 그 가사와 음률들. 이제는 먼 과거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미순, 효순이 사건이며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며 세월호며 대통령 탄핵 사건 등 그 노래를 다시 불리는 광장에 설 일이 있었다. 수십 년이 흘러도 청산하지 못하는 노래에 대한 회한.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적어도 다시는 그런 노래를 부를 일들이 없을 그런 시대인가? 아직도 안심할 수는 없다. 우리 세대를 386세대라 불렀고 이제는 온갖 기득권을 누리면서 위선을 떠는 세대인 양 비난을 하지만 비난을 받아도 좋으니 다시는 과거의 이야기도 과거의 노래도 다시 반추할 일 없이 역사에서 영영 사라질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그 낡은 가사들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청춘의 노래였다. 안 그래도 욕 먹는 86세대의 라떼는타령이 될까봐 혼자 방안에서 가끔 불러보고 우리끼리만 옛 이야기를 나눌 뿐이지만 말이다.

 

홍콩의 시위와 미얀마의 군사 쿠테타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몹시 쓰리다. 보도되지 않은 많은 나라의 반독재 투쟁들도 있으리라 생각하면 더더욱.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군부의 총칼에 목숨을 잃을까, 최루탄이나 물대포에 중상을 입지 않을까 두려워할 일은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마르코스의 투쟁을 읽는 일이 남의 일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다행인 걸까, 아니면 지구촌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부당한 일과 그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에 연대를 다시 한 번 다짐해야 하는 걸까. 역사는 어떤 경우에도 추억이 되지 않는다. 추억이 되고 라떼는이 되면 부패한다. 그러므로 그람시나 체 게바라나 마르코스는 결코 낡은 역사가 되지 않는다.

 

파블로 네루다,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이탈로 칼비노, 존 버거,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마르코스가 즐겨 읽었다는 작가들을 마음에 품어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어본다.

 

<>

파블로 네루다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나

어두운 몸속에서 자라, 고동치다

입과 입술을 통해 튀어나왔다

저 멀리서 점점 더 가까이

조용히, 조용히 말은 왔다.

죽은 조상들에게서, 정처 없이 떠도는 민족에게서,

돌로 변한 땅에서,

그들의 가난한 부족에게 지쳐버린 땅에서,

슬픔이 길을 떠나자

사람들도 길을 떠나

새로운 땅, 새로운 물에 도착해,

그곳에 정착하니

거기서 그들의 말이 다시 자라나.

그래서 이것이 유산인 거다.

그래서 이것이

죽은 사람들과

아직 동트지 않은 새로운 존재의 새벽과

우리를 이어주는 파장인 거다.

 

마르코스가 진정 진보적이라는 것은 여성에 대한 인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멕시코의 반정부투쟁의 제일 앞에 나섰던 여성 투사들을 언급하면서 인류의 양심이 여성의 양심을 통과하고, 인간이라는 자각을 통해 자신이 여성임을 깨닫고 투쟁임을 깨닫습니다.”라고 말한다. 특히 존엄은 학습되는 게 아닙니다. 존엄하게 살지 않으면 존엄은 죽습니다. 존엄은 내부에서 솟아오르며, 우리에게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존엄은 국경 없는 모국, 그러나 우리가 자주 잊는 모국입니다.”라면서 존엄은 전염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이 골치 아픈 병에 훨씬 감염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여성들과 함께, 무엇보다도 그들에 의해 만들어 질 것입니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흔히 반군이니 게릴라니 하면 잔인한 마초를 떠올리기 쉽지만 마르코스는 연설로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고 많은 문학작품을 읽었으며 감성을 존중했다. 체 게바라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진정한 카리스마는 그런 데서 오는 것임을 새삼 떠올려본다. 체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고, 하지만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했다. 그가 위대했던 것은 꿈만 품은 이도 아니었고 현실과 싸우기만 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둘의 괴리를 실천으로 이었던 이고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일을 여럿이 함께 해냈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역시 목숨을 걸고 총을 들었지만 함께한 민중들에게는 세워야 할 이상적 세상을 그야말로 꿈결처럼 들려주었다.

 

우리는 꿈속에서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정직한 세상, 공정한 세상, 군대가 필요 없고 평화화 자유와 정의가 흘러넘쳐 아무도 그것을 아득히 먼 개념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며 빵, , 공기, 물 같은 것으로, 책이나 목소리와 같은 것으로 이야기하는 세상. 그 세상에는 정부에 이성과 선의가 있었고, 지도자는 뚜렷하고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복종함으로써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또한 실천했다.

 

난 내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죽음이 바로 10미터 앞까지 온 날, 난 바위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조금씩 자세를 낮추고, 소리 나지 않게 안전핀을 올린 다음 소리 나는 쪽으로 총구를 겨눴습니다. 난 아무 생각이 없었고, 내 손 끝에 방아쇠에 가만히 서 잇는 시간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으며 마치 이 모든 걸 외부에서 보고 있는 듯, 이제는 물린 듯, 마치 영화에서, 역사에서, 삶에서, 죽음에서 전에 이런 장면을 많이 본 듯, 두려움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게릴라전 중)

 

그가 현실을 타개하는 방식은 무장투쟁, 상호 존중, 전 지구적 평등과 평화, 그리고 연대였다.

 

(대륙을 잇는 저항의 네트워크를 언급하며) 차이를 인정하고 비슷함을 인정하기에,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른 저항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하나하나의 저항이 서로를 지원하는 매개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앙에 우두머리나 의사 결정자, 중앙 본부나 위계질서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저항하는 네트워크입니다.

 

마르코스의 연설에서 가장 비장하고 가장 치열하면서 가장 따뜻한, 극단의 리얼과 현실의 만남, 극단적으로 강경하며 가슴뭉클한,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공명하게 했던 역사들의 공감대를 발견한다. 그는 지금 어찌 살고 있는지, 닿을 수 없는 안부를 전해본다.

 

이제 저들은 우리를 고립시키려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들은 우리의 죽음이 헛되기를 바라고, 우리의 피가 돌과 똥 속에서 잊혀지길 바라고, 우리의 목소리가 잠잠해지길 바라고, 우리의 발걸음이 다시 한 번 멀어지길 바랍니다.

우리를 버리지 마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피를 가져가 여러분 자신을 기름지게 하고 여러분의 마음과 원주민과 비원주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좋은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십시오,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맡겨두지 마십시오.

이것이 헛된 일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대지와 하늘이 지체 높은 사람들의 재산이 아니었을 때 우리를 하나 되게 했던 피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우리를 소리쳐 부르게 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같은 길을 가게 하십시오.

권력자들이 떨게 하십시오.

작고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이 기쁘게 하십시오.

항상 죽은 사람들이 생명을 갖게 하십시오.

우리를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홀로 죽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투쟁이 권력자들의 터에서 벌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길이 같은 길이 되게, 모든 사람을 위한 길이 되게 하십시오.

자유! 민주주의! 정의!

 

멕시코 남동부 산악 지대에서

EZINCCRI-CG

부사령관 마르코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채에 미쳐서
아사이 마카테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마음이 경쾌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K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 청소년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에는 아마도 허수경의 시집이 빠짐없이 있을 것이지만 손때가 타도록 읽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 이의 책들을 여러 권 사들고 온다. 그가 타계했다면서. 나도 신문에서 기사를 읽었던 것 같다. 내게 허수경은 먼 곳에 가서 고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국의 언어로 문화와 인류와 아름다움 같은 걸 공부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기에 그 이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내게는 내가 살지 못한 삶(사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한 일이 외롭기 짝이 없었다고, 모국어를 잃을까봐 겁이 났다고 고백하건만)을 살았던 부러운 이라는 것 말고도 그의 죽음이 마음 아린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타계 1년 전쯤 친구 같고 언니 같았던, 첫 직장의 동료이자 선배인 이를 잃었다. 그도 60년을 못 채우고 돌아갔다. 그의 죽음이 너무 허망하고 믿기지 않았는데 어쩐지 어딘가 허수경과 닮았던 그 사람, 문학을 공부한 나보다 더 많은 시를 읽고 늘 음악을 듣고 늘 술에 취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돌아가기 전 해에 바흐의 악보를 우편으로 보내온, 차를 몰고 동해바다 옆을 달리며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곤 하던 그 사람, 그 사람이 자꾸 떠오른다.

 

이 책은 허수경이 공부했던 독일 뮌스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소개되는 독일 시들이 신선하다. 헤르만 헤세나 안톤 슈낙, 전혜린, 괴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독일어 문학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끼며 읽는다. 고등학생 때는 한때 독일문학, 한때 러시아 문학, 이런 식으로 탐닉했던 것 같다. 허수경이 소개한 시들을 다시 찾아 읽고 괴테의 시집을 뒤적이고 게오르크 트라클의 시집을 구해왔다. 내 인생에 독어 원어로 그 시를 음미할 날이야 있을까 싶지만 어딘가 견고하고 서늘하고 음습하고 냉철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이칠란드 문학의 세계를 궁금해 하면서.

뮌스터가 얼마나 관광지로서 매력적인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독일이라고는 20년 전 서유럽 여행 중 어느 오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잠깐 들렀다가 동네에서 맥주 한 잔 하고 1박을 한 게 다이다(그러니 언젠가 독일을 꼭 다시 가봐야겠다). 고교시절 전혜린의 수필을 읽으며 그가 걷는 독일 거리의 쓸쓸함에 감정이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얼마나 쓸쓸했을까. 얼마나 낯설었을까. 허수경은 또 얼마나 그랬을까. 게다가 그는 늘 두고 온 한국과 놓쳐버린 사랑을 아쉬워했으니까 더더욱.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여행이라면 몰라도 여기서 살라고 한다면 살고 싶지는 않다. 만약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그걸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허수경은 아마도 내가 상상만 하는 그런 외로움의 늪을 경험했을 것이다.

 

문장이 아름다워서 몇 장면을 필사했다. 2차 대전에 양손을 잃은 루드게리우스 성당의 예수상 이야기와 강을 따라 온갖 박물관과 도서관, 문화원이 늘어서 있는 도시 이야기를. 이렇게 나만의 추모를 마치고 나는 과거로 돌아가 어린 날 읽었던 허수경의 시를 다시 읽어보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리브는 그 사실이 놀라웠다. 첫 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여기 세상이 있다고. 하루하루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비명을 질러대는 세상이. 그리고 그것에 감사했다.

 

어쩌다 보니 미국문화에 푹 젖어 살고 있다. 영어 공부 한답시고 <프렌즈><모던 패밀리><가십 걸> 같은 미드를 주구장창 보고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미국인들의 문화가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다. 가령, 외도는 기본, 이혼은 흔한 일, 청소년을 대할 때에는 늘 성적인 일탈보다도 마약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그게 너무 커서 임신 정도는 일도 아닌?) 가장 큰 것, 서로에게 솔직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가족 간의 유대를 중시하면서도 분리는 확실히(우리 나라에 비하면) 하는 것, 등등.

 

<다시, 올리브>는 미드 속 도시(모던 패밀리는 캘리포니아가 배경이긴 하지만 중산층의 삶을 다루어서 좀 다른 분위기다)가 아닌 시골이 배경이고 주로 노년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놈의 그 바람피우는 이야기는 여기도 하염없이 나온다. 귀 수술을 위해 입원한 중에 몰입해서 읽었다. 많은 이들은 저자의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사에 감정이입을 했나 본데, 나는 그들이 사는 마을을 상상하는 재미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전작은 읽지 않았지만) 이제는 노년이 된 주인공과 그의 이웃들의 삶을 통해 나의 늙어감에 대해 생각했다. 50대인 지금 생각하는 늙음이 아닌 죽음을 앞두게 될 늙음 말이다. 언젠가 올, 언젠가 반드시 올 그 늙음. 양상은 물론 다르다. 대개 혼자서 한적한 마을에 드넓은 집에서 노년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미국의 노인들과는 좀 다르겠지만 대체로 혼자 외로움과 두려움을 맞이해야 한다는 점은 우리도 비슷하다. 우리 세대는 더 할 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반드시 혼자 남을 것이다.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해서 남편에게 나보다 오래 살아 나를 수습해달라고 농담 삼아 말하지만 내가 먼저 가고 남편이 혼자 남는 날들을 상상해도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다. 부디 좀 외롭더라도 품위 있게, 자연과 더불어 어른답게 살다가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