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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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아마도 허수경의 시집이 빠짐없이 있을 것이지만 손때가 타도록 읽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그 이의 책들을 여러 권 사들고 온다. 그가 타계했다면서. 나도 신문에서 기사를 읽었던 것 같다. 내게 허수경은 먼 곳에 가서 고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국의 언어로 문화와 인류와 아름다움 같은 걸 공부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었기에 그 이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내게는 내가 살지 못한 삶(사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한 일이 외롭기 짝이 없었다고, 모국어를 잃을까봐 겁이 났다고 고백하건만)을 살았던 부러운 이라는 것 말고도 그의 죽음이 마음 아린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타계 1년 전쯤 친구 같고 언니 같았던, 첫 직장의 동료이자 선배인 이를 잃었다. 그도 60년을 못 채우고 돌아갔다. 그의 죽음이 너무 허망하고 믿기지 않았는데 어쩐지 어딘가 허수경과 닮았던 그 사람, 문학을 공부한 나보다 더 많은 시를 읽고 늘 음악을 듣고 늘 술에 취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돌아가기 전 해에 바흐의 악보를 우편으로 보내온, 차를 몰고 동해바다 옆을 달리며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곤 하던 그 사람, 그 사람이 자꾸 떠오른다.

 

이 책은 허수경이 공부했던 독일 뮌스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소개되는 독일 시들이 신선하다. 헤르만 헤세나 안톤 슈낙, 전혜린, 괴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독일어 문학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끼며 읽는다. 고등학생 때는 한때 독일문학, 한때 러시아 문학, 이런 식으로 탐닉했던 것 같다. 허수경이 소개한 시들을 다시 찾아 읽고 괴테의 시집을 뒤적이고 게오르크 트라클의 시집을 구해왔다. 내 인생에 독어 원어로 그 시를 음미할 날이야 있을까 싶지만 어딘가 견고하고 서늘하고 음습하고 냉철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이칠란드 문학의 세계를 궁금해 하면서.

뮌스터가 얼마나 관광지로서 매력적인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독일이라고는 20년 전 서유럽 여행 중 어느 오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잠깐 들렀다가 동네에서 맥주 한 잔 하고 1박을 한 게 다이다(그러니 언젠가 독일을 꼭 다시 가봐야겠다). 고교시절 전혜린의 수필을 읽으며 그가 걷는 독일 거리의 쓸쓸함에 감정이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얼마나 쓸쓸했을까. 얼마나 낯설었을까. 허수경은 또 얼마나 그랬을까. 게다가 그는 늘 두고 온 한국과 놓쳐버린 사랑을 아쉬워했으니까 더더욱.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여행이라면 몰라도 여기서 살라고 한다면 살고 싶지는 않다. 만약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그걸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허수경은 아마도 내가 상상만 하는 그런 외로움의 늪을 경험했을 것이다.

 

문장이 아름다워서 몇 장면을 필사했다. 2차 대전에 양손을 잃은 루드게리우스 성당의 예수상 이야기와 강을 따라 온갖 박물관과 도서관, 문화원이 늘어서 있는 도시 이야기를. 이렇게 나만의 추모를 마치고 나는 과거로 돌아가 어린 날 읽었던 허수경의 시를 다시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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